주체39(1950)년 11월 중순 어느날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한 인민군지휘성원을 부르시여 놈들의 총공세를 총반격전으로 단호히 짓부시기 위한 새로운 작전적방침을 알려주시며 적후투쟁을 강화할데 대한 임무를 주시였다.
수령님께 그 일군은 흥분된 마음으로 총반격전이 언제 시작되는가고 말씀드리였다.
수령님께서는 현재 적들의 기도로 보아서는 이달 24일이나 25일경으로 예견된다고 하시였다.
그때로부터 한주일이 지난 11월 24일 적들은 《크리스마스총공세》를 개시하였다.하지만 《크리스마스총공세》는 불과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총퇴각전》으로 되여 38°선이남에로의 수치스러운 패주로 이어졌다.
이에 대해 서방의 한 기자는 이렇게 썼다.
《11월 24일은 잘못 택한 날자였다.미군은 이날 총공세를 개시하자마자 다음날로 인민군대의 총반격에 부딪쳤던것이다.…그것은 인민군 최고수뇌의 작전능력에 실로 한계가 없다는것을 다시한번 보여주었다.…
미군의 총공세가 한창 고조에 이르렀을 때에 단행된 총반격전은 권투명수가 링에 부딪쳤다가 튕겨나오는 상대를 맞받아치기순간강타로 꺼꾸러뜨리는것과 같은 효과를 노린 묘한 전술이였다.그것은 그대로 완전한 성공이였다.》
주체59(1970)년 5월 어느 한 발전소를 건설할 때였다.
공사가 마감단계에 이르자 세멘트문제가 일정에 올랐다.세멘트가 긴장하여 수십리물길굴에 대한 콩크리트피복공사가 원만히 진행되지 못하고있었다.일군들은 방도가 떠오르지 않아 몹시 안타까와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 사실을 아시고 건설부문 일군들을 부르시여 협의회를 여시였다.그이께서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굴에다 콩크리트피복을 해야 되는가,안해도 되는가 하는것을 토론해보자고 하시였다.
일군들은 굴에다 콩크리트피복을 하는것이 기존상식이여서 어리둥절해하였다.
수령님께서는 설계일군들로부터 물길의 암질상태와 기술적요구를 구체적으로 알아보시고나서 원래 암반이 좋고 균렬상태도 없으면 피복을 안하는 방법으로 나가는것이 나쁘지 않다고,그저 내부를 매끈하게 따내면 된다고 가르치시였다.
일군들은 눈앞이 확 트이였다.공사기일을 앞당기면서도 자재를 절약할수 있는 명안중의 명안이였던것이다.
어버이수령님의 천리혜안의 예지에 의하여 공사에 필요한 10여만t의 세멘트가 필요없게 되였으며 공사는 힘있게 추진되였다.
안주시건설을 시작하던 때에 있은 일이다.
그때 설계일군들이 고층살림집들을 건설할것을 예견한 지대는 지반이 좋지 못했다.진펄지대였던것이다.
도시형성측면에서 보면 그곳에 주택구획을 앉히는것이 리상적이였지만 막대한 자금이 들었다.그렇다고 하여 주택구획을 다른 곳에 옮기자니 진펄지대처리가 문제로 나섰다.
현지에 나오시여 안주시건설을 지도하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설계일군들의 고충을 아시고 말뚝을 박아야 할 곳에 꼭 살림집을 지을 필요가 있는가,그곳에는 거리를 넓게 형성하고 공원이나 록지를 만들어 나무를 심으면 된다고 명쾌하게 말씀하시였다.
하여 진펄지대에 록지와 공원을 앉히도록 도시형성안이 만들어지고 건설이 시작되였다.
그런데 진펄에 공원,록지를 형성하자니 진펄의 웅뎅이들을 메워야 하겠는데 그것 또한 헐치 않았다.작업량이 너무 방대하였다.
이러한 때인 주체64(1975)년 2월 또다시 안주시건설장을 찾아주신 수령님께서는 제기되는 문제를 보고받으시고 해결방도를 명철하게 밝혀주시였다.그이께서는 칠성공원의 웅뎅이는 깊이 파고 늪을 크게 만드는것이 좋겠다고,그렇게 하면 공원에 있는 웅뎅이를 메우기 위하여 흙을 다른데서 날라오지 않아도 될것이라고 가르쳐주시였다.
참으로 많은 자금과 로력을 절약하면서 늪과 호수가 몇개씩이나 있는 독특한 공원을 손쉽게 건설할수 있게 하는 일거량득의 명안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