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39(1950)년 6월말 우리 인민군대가 서울을 해방한 다음날 저녁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군사령부의 한 일군을 부르시였다.그이께서는 일군에게 미제침략군의 해군함대를 단단히 답새겨놓아야 하겠다고 하시며 우리 해군의 힘으로 미제의 대형함선들을 요정낼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본것이 있는가고 다정히 물으시였다.
수령님께 그 일군은 아직 그런 전투방안을 연구해보지 못하였다고 말씀드리였다.
그러는 그를 보시며 수령님께서는 오늘 제2어뢰정대로 미국놈들의 중순양함을 까부실데 대한 명령을 주려고 동무를 불렀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사실 그 어뢰정대는 단 4척의 어뢰정뿐이였다.
적의 중순양함집단에 비하면 우리 어뢰정은 그 크기와 무장장비에서 1/440,인원은 불과 1/105밖에 안되였다.
세계해전사에는 력량상차이가 그렇게 큰 조건에서 이긴 기록이 없었다.하여 일군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수령님께서는 물론 우리의 해군력량을 다 동원하여도 대비조차 할수 없는 적의 중순양함을 때리라고 하니 놀랄수 있다,그러나 정의의 싸움에 떨쳐나선 인민군대는 미국놈들의 원자무기도 이길수 있는 강한 힘을 가지고있다고 하시면서 미구에 벌어지게 될 대담한 해상공격작전의 령활한 전술적방안들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그이의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은 일군은 배심이 든든해지고 신심이 생겼다.
그로부터 며칠후 우리의 제2어뢰정대해병들은 주문진앞바다에서 적의 중순양함집단에 대한 대담한 공격전을 단행하였다.이날 영용한 우리 해병들은 적의 1만 7 000t급 중순양함을 격침시키고 1만 4 000t급 경순양함을 격상시킴으로써 세계해전사에 없는 빛나는 위훈을 창조하였다.
세계는 력사에 류례없는 특기할 해전상보로 죽가마끓듯 하였다.세계의 면전에서 톡톡히 망신을 당한 미제는 이 해전을 두고 귀신이 곡할노릇이라고 비명을 질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선사령부를 찾아 갓 해방된 서울로 나가실 때의 일이다.
주체39(1950)년 7월 중순 깊은 밤 수령님을 모신 승용차가 림진강가에 이르렀다.이미 나루터와 다리는 폭격으로 파괴되였다.림진강량안을 련결하고있는 다리라고는 철다리 하나밖에 없었다.
적비행기가 언제 날아들어 철다리를 폭격할지 또 어느때 기차가 통과할지 그 누구도 알수 없는 곳으로 어둠을 헤치며 승용차를 몬다는것은 생명을 내대야 하는 위험천만한 일이였다.
하건만 우리 수령님께서는 그 길을 서슴없이 택하시였다.그이께서는 운전사에게 전선에서 동무들이 우리를 기다리고있다고,처음 해보는 일이지만 너무 주저할 필요는 없다고 하시며 먼저 차에 오르시였다.
언제나 대중의 의사를 존중하시면서도 자신을 위한 일에서는 그 어떤 아량도 허용치 않으시는 그이의 위인적풍모를 잘 알고있는 운전사는 더는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캄캄한 밤 레루우에 반사되는 별빛을 전조등으로 삼아 승용차는 손더듬하듯 서서히 움직이였다.
덜커덩!…
금시 아래로 쏠렸던 차는 다음침목에 바퀴가 닿자 모지름을 쓰며 떨었다.차바퀴가 침목을 넘어설 때마다 운전사의 심장은 쿵쿵 높뛰였다.눈 한번 깜박할새없이 긴장된 운전사의 몸은 삽시에 온통 물주머니로 되여버렸다.
이 력사적인 순간 수령님의 마음은 전사들이 피흘리며 싸우고있는 전선으로만 달리였다.
긴장한 시간들이 위험의 고비를 넘고넘으며 한초한초 흘러갔다.어느덧 위대한 수령님을 모신 야전승용차는 철다리의 마지막침목을 넘어섰다.얼마나 긴장했던지 운전사의 온몸은 땅속으로 잦아드는것만 같았다.
기관차도 아닌 승용차로 철다리를 넘었다고 하면 사람들은 선뜻 믿어지지 않을것이다.아마 지구상에 기관차가 출현한이래 철다리로 승용차가 통과한 례를 알지 못하기때문이리라.
이 기적같은 일은 전선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신 우리 수령님의 강철의 의지와 무비의 담력,전사들에 대한 그이의 무한대한 사랑이 낳은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