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26일

[정세론해설] 무엇을 노린 편가르기놀음인가

중동지역에서 이슬람교국가가 자기 세력을 계속 확장해나가고있어 그를 반대하는 나라들의 불안과 우려를 자아내고있다.이러한 심리를 악용하여 자기의 불순한 목적을 실현하려고 시도하는 세력이 있다.다름아닌 미국이다.미국이 하는 행동이 그것을 보여주고있다.

요즘 미집권자를 비롯한 고위인물들은 저저마다 나서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테로박멸》을 위해 국제련합군을 내와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느니,미국이 《지도력》을 발휘하여 이슬람교국가와 싸울 광범한 국제련합을 주도할것이라느니 뭐니 하는 소리를 하고있다.

얼핏 들어보면 마치도 미국이 국제사회와의 협력밑에 테로소멸을 위해 애쓰고있는것처럼 느껴진다.하지만 여기에는 심각한 문제점들이 있다.그것은 미국이 이슬람교국가를 반대하는 국제련합에서 두령노릇을 하겠다는것이며 여기에는 로씨야와 수리아,이란을 비롯한 일부 나라들이 참가할수 없다는것이다.

미국은 의도적으로 편가르기를 하고있다.신통히도 미국이 저들주도하의 국제련합에서 배제하는 나라들은 반미적이거나 잠재적적수로 보는 나라들이다.

하다면 미국이 무엇때문에 이따위 놀음을 벌려놓는가 하는것이다.

얼마전 수리아외무성 부상은 미국주도의 반이슬람교국가국제련합에 대해 의혹을 표시하면서 수리아와 로씨야를 배제하는 련합은 일정한 목적을 추구하는것일수 있다고 하였다.결코 우연한 소리가 아니다.

미국은 반테로를 코에 걸고 다른것을 노리고있다.

력사를 거슬러올라가볼 필요가 있다.

이미 알려진것처럼 새 세기에 들어와 미국에서는 9.11사건이 발생하였다.미국은 이것을 구실로 《반테로전》을 선포하고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일방적인 군사적공격을 들이대고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미국은 9.11사건이 저들에게 다른 나라들을 침략할수 있는 《전쟁면허증》을 주기라도 한것처럼 《반테로》를 떠들며 이 나라,저 나라에 함부로 무력을 사용하였다.지어 미국편이 아니면 《테로》편이라는 식으로 편가르기를 하고 《테로소멸》을 위해서는 무력사용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망발을 마구 늘어놓았다.미국은 자기 편에 서는 나라들은 《선》으로,그렇지 않은 나라들은 《악》으로 규정하였으며 미국을 중심으로 한 《반테로련합》은 《선의 축》으로,여기에 속하지 않은 나라들은 《악의 축》이라고 하면서 세계를 제멋대로 이편저편으로 갈라놓았다.

미국이 《악의 축》으로 규정한 나라들은 저들과 사상과 가치관이 다른 나라들이였다.

결국 미국이 《테로소멸》을 위해 무력을 사용하겠다고 한것은 저들의 비위에 맞지 않는 나라들을 《악》으로 락인하고 힘으로 거꾸러뜨리겠다는 선전포고였다.

미국의 목적은 딴데 있지 않았다.저들주도하의 《반테로련합》을 통해 추종세력들을 더욱 틀어쥐는것과 함께 거기에 끼우지 않은 나라들에 심리적압박감과 위협을 주고 저들에게 맞서는 나라들에 대해서는 짓뭉개버리는 방법으로 기를 꺾자는것이였다.한마디로 《반테로》를 구실로 저들의 눈에 거슬리는 나라들을 제거하고 미국이 판을 치는 세계를 만들겠다는것이였다.

지금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언제인가 현 미집권자는 《그날은 오고야말것이다.우리는 미국의 강대한 지도력이 세계를 뒤덮는것을 보게 될것이다.》라고 말하였다.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오늘에 와서 미국은 이슬람교국가가 자기 세력을 확대하고있는것을 좋은 기회로 삼고 그것을 저들의 불순한 목적실현에 유리하게 써먹으려 하고있다.

수리아문제만 놓고보아도 그렇다.

오래전부터 반미자주의 구호를 들고나가는 수리아를 눈에 든 가시처럼 여겨온 미국은 이 나라의 합법적정부를 거꾸러뜨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최근년간에는 테로분자들을 부추겨 이 나라에서 내전을 일으켰으며 그 책임을 수리아정부에 뒤집어씌우고 압력을 가하였다.하지만 미국은 수리아정부를 전복할수 없었다.지금에 와서 미국은 때가 왔다고 보고있다.그들은 수리아에 있는 이슬람교국가기지를 타격한다는 명분을 세워 군사적으로 개입하고 여기에 수리아반정부세력과 추종세력들까지 끌어들여 련합된 힘으로 이 나라를 전복하려 하고있다.실지 그러한 조짐들이 나타나고있다.

최근 미합동참모본부 의장은 국회 상원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이슬람교국가에 대응하기 위해 미지상군파병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하였다.미국주도하의 다국적무력의 수리아에 대한 대규모적인 공습계획도 작성되였으며 이미 실천단계에 들어섰다.미국회에서는 수리아의 반정부세력들에 대한 자금과 무장장비제공 등이 론의되고있다.

모든것이 명백하다.미국은 《반테로련합》이라는 구실을 내대고 추종세력들을 저들에게 단단히 얽어매고 수리아와 같이 마음에 들지 않는 나라들을 힘으로 다스리려 하고있다.이런 방법으로 국제무대에서 주도권을 쥐고 세계에서 패권적지위를 차지하자는것,이것이 바로 미국이 편가르기를 하며 노리는 중요한 목적이다.

수리아다음에 어느 나라가 미국의 목표로 되겠는가 하는것은 그 누구도 알수 없다.하지만 확언할수 있는것은 그것이 미국이 저들의 세계제패야망실현에 장애로 된다고 여기는 나라들이라는것이다.

만일 《반테로》의 간판밑에 감행되는 미국의 이러한 책동을 저지시키지 않는다면 세계가 더욱 소란스러워질것이라는것은 불보듯 뻔하다.

현실은 국제사회가 미국의 편가르기놀음을 각성을 가지고 대할것을 요구하고있다.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와 김정일동지께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아 외국손님들 경의 표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아 25일 쯔.초그졸마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몽골 사회민주녀성동맹대표단을 비롯한 외국손님들이 경의를 표시하였다.

손님들은 세계의 평화와 자주화위업수행,나라들사이의 친선관계발전에 거대한 업적을 쌓아올리신 절세위인들에 대한 다함없는 흠모의 마음안고 위대한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의 립상을 우러러 숭고한 경의를 표시하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와 김정일동지께서 생전의 모습으로 계시는 영생홀들에서 그들은 대원수님들께 삼가 인사를 드리였다.

그들은 훈장보존실들과 위대한 대원수님들께서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현지지도와 외국방문의 길에서 리용하신 승용차와 전동차,배,렬차보존실들을 주의깊게 돌아보았다.

손님들은 방문록에 글을 남기였다.

몽골 사회민주녀성동맹대표단 단장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위대한 수령들이신 김일성주석께와 김정일동지께 숭고한 경의를 표시한다,그분들의 위업은 영원히 계승될것이다고 썼다.

푸른 신호를 지켜 20여년

그날도 신영복동무는 여느날과 같이 초소에 섰다.어둠속에 묻힌 사위는 고요했다.짙은 안개까지 서려 한치앞도 가려보기 힘들었다.신영복동무는 감시초소밖으로 나가 전지불을 켜들었다.아직은 초봄이라 날씨는 추웠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가.멀리서 은은한 기적소리가 울려왔다.기적소리가 가까와졌을 때 문득 자동차의 전조등불빛이 그의 눈을 때렸다.그는 자동차를 향해 정지신호를 보냈다.하지만 짙은 안개때문에 전지로 보내는 신호도,차단봉도 가려보지 못한듯 자동차는 속도를 늦춤이 없이 달려왔다.마치 결승선이라도 되는듯 건늠길을 향해 육박해오는 렬차와 자동차…

순간도 지체할수 없었다.

신영복동무는 자동차를 향해 두팔을 벌린채 쏜살같이 달려갔다.자동차가 급정거하며 멈춰섰다.그로부터 몇발자국앞으로 렬차가 지나갔다.

운전사가 뛰여내려 신영복동무를 안아일으켰다.

신영복동무의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지만 얼굴에는 웃음이 비껴있었다.…

이 이야기는 얼마전 우리가 오몽리역가까이에 있는 건늠길감시초소에서 신영복동무를 만나고있을 때 건늠길을 지나가던 한 운전사가 들려준 말이다.

우리는 그가 유조차운전사이며 20대의 젊은 청년이라는것밖에는 모른다.그가 바람을 일구며 차를 몰아간 후에야 이름이며 소속을 묻지 못했다는것을 깨달았다.신영복동무도 그를 몰랐다.하기야 20여년세월 건늠길감시원으로 성실히 일하면서 그가 무사히 떠나보낸 자동차들과 운전사들은 얼마나 많을것인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사람의 삶의 가치는 사회와 집단을 위하여 얼마나 이바지하였는가 하는데 따라 결정됩니다.》

신영복동무를 취재하러 왔다는 소식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가던 길을 미루고 일손을 멈추고 우리와 마주앉았다.

이 한가지 사실을 놓고도 오랜 세월 자기의 초소를 묵묵히 지켜온 그의 아름다운 정신세계에 대하여 엿볼수 있었다.

나이지숙한 한 철길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신영복동무는 처녀시절에 오몽리의 철길에서 일하였다.그후 제대군인청년과 가정을 이루었고 그의 생활은 철길을 떠나 검덕에서 흘렀다.그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것은 20여년전이였다.그의 품에는 남편의 사회주의애국희생증이 간직되여있었다.

그때 당시 그가 왜 고향으로 돌아왔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못하였다.

광산당조직에서는 남편을 잃은 신영복동무를 극진히 위해주고 아껴주었었다.

그는 어딜 가나 우선이였고 그에게는 늘 헐한 일감만 맡겨졌다.신영복동무는 생각이 깊어졌다.서로 돕고 이끌며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는 사회주의제도가 귀중하고 전사의 위훈을 그토록 값높이 내세워주는 당의 은덕이 고마울수록 더 많은 일을 하고싶었다.이렇게 되여 그는 광산을 떠났던것이다.

《처음 우린 영복동무를 미처 리해하지 못했댔습니다.은혜도 모르는 나약한 인간으로 생각했지요.》

50대의 한 녀성이 하는 말이였다.알고보니 그는 신영복동무와 동창생이였다.

신영복동무는 누구보다 자기를 리해해주어야 할 소꿉동무들까지도 자기를 곡해하는것이 야속하고 안타까왔다.하지만 그는 자기의 진정을 쉽게 터놓지 않았다.갈길은 멀고 험했다.

신영복동무는 건늠길감시원이 되였다.철도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그는 건늠길감시원의 임무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얼마후 그의 건늠길초소는 철길대는 물론 분국적으로도 손꼽히는 초소로 되였다.그러니 그에게는 늘 시간이 모자랐다.

그러던 어느날 밤이 깊어서야 집에 들어서던 그는 깜짝 놀랐다.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던것이다.

아이들을 부르는 신영복동무의 목소리가 어둠속으로 애타게 울려갔다.그때 건너편마을쪽에서 대답소리가 들려왔다.신영복동무는 어푸러질듯 달려갔다.누군가가 아이들을 앞세우고 마주오고있었다.철길대의 일군이였다.

《아이들끼리 있더라니 우리 집엘 데려갔댔소.빨리 돌아선다는게 좀 늦었구만.》

새옷들을 입고 좋아라 웃고 떠드는 아이들을 품에 안는 신영복동무의 얼굴로는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내렸다.

이런 밤,이런 날이 그 얼마였으랴.

신영복동무에게는 십여개의 보풀인 수첩들이 있다.

거기에는 그가 수십년세월 맞고보낸 화차며 려객렬차들에 대한 자료들이 적혀있다.

수첩의 갈피에는 이런 수자들도 적혀있다.

《도랑치기 25m,싸리나무심기 15그루,화단가꾸기…》

이것은 신영복동무가 평범한 하루에 진행한 작업량이다.그러니 그는 수십년세월 얼마나 많은 나무와 꽃들을 가꾸고 철길을 관리하였겠는가.

《건늠길초소를 지날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군 합니다.감시원어머니처럼 살수 있을가 하구말입니다.감시원어머니는 사람은 한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깨우쳐주는 스승이나 같습니다.》

한 처녀대학생의 말이였다.

갑자기 신영복동무가 일어섰다.익숙된 동작으로 차단봉을 내린 그는 초소앞에 차렷자세를 하고 섰다.

이제는 미세한 진동을 놓고도 곧 렬차가 통과하게 된다는것을 느끼는 그였다.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의 생각은 깊었다.

우리 사회에는 저렇듯 스스로 정한 초소에서 순간의 후회나 동요도 없이 묵묵히 삶을 바쳐가는 아름다운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바로 그런 애국자들이 많아 내 나라,내 조국이 부강번영하는것이며 우리의 생활은 이렇듯 아름다운것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 로씨야,에짚트인사가 선물을 드리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66돐에 즈음하여 로씨야,에짚트인사가 선물을 드리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 드리는 선물을 로씨야 넥스뜨유한책임회사 총사장 뽀뽀브 와짐 리보비치와 에짚트현대당 알 가르비아도위원회 총비서 아브둘 파타흐 하드라가 8월 28일과 9월 6일 해당 나라에서 사업하고있는 우리 나라 일군들에게 전달하였다.

[정세론해설] 반드시 리행되여야 할 자주통일선언

력사적인 10.4선언이 발표된 때로부터 7년이 되여온다.

10.4선언의 발표는 조국통일운동사에 특기할 민족사적사변이였다.지금으로부터 7년전 10월 평양에서 6.15의 사변과 더불어 두번째로 되는 북남수뇌상봉이 열리고 북남관계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이 채택됨으로써 북남관계를 새로운 발전단계에 확고히 올려세우고 자주통일,평화번영의 앞길을 활짝 열어나갈수 있는 확고한 도약대가 마련되게 되였다.

온 겨레의 지향과 요구에 맞게 10.4선언이 계속 리행되였더라면 6.15통일시대는 참으로 눈부신 전진을 이룩하였을것이며 조국통일위업의 완성은 겨레의 눈앞에 락관적인 현실로 다가왔을것이다.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남조선에서 반6.15세력의 준동이 악랄해지면서 10.4선언의 리행이 중단됨으로써 북남관계가 전례없는 파국에 처하였으며 조국통일운동은 커다란 우여곡절을 겪고있다.

오늘의 준엄한 현실은 북남관계발전과 조국통일위업실현에서 6.15공동선언과 함께 10.4선언의 리행이 얼마나 사활적이고 절박한 문제로 나서는가 하는것을 뼈에 사무치게 절감하게 하고있다.

10.4선언은 북남관계개선의 진로를 뚜렷이 명시해주고있는 민족공동의 자주통일대강이다.

10.4선언은 6.15공동선언의 실천강령으로서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밑에 북과 남의 화해와 단합,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며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의 새 국면을 열어나갈수 있는 가장 옳바른 길을 밝혀주고있다.

6.15공동선언을 통해 천명되고 10.4선언을 통하여 다시금 확인된 자주통일의 리념은 우리 민족끼리이다.이 리념은 나라의 통일을 우리 민족의 리익과 요구에 맞게 실현하게 하는 위력한 정신적무기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조국통일의 주체는 북과 남,해외의 전체 조선민족이며 나라의 통일은 오직 우리 민족끼리의 립장에 철저히 설 때 민족의 리익과 요구에 맞게 자주적으로 실현할수 있습니다.》

우리민족끼리리념은 북과 남이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나갈것을 요구하고있다.그것은 외세의 지배와 간섭을 배격하고 나라의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의 자주적의사와 요구에 맞게 풀어나가려는 투철한 민족자주의 정신,온 겨레가 하나로 굳게 뭉쳐 조국통일을 위해 마음과 힘을 합쳐나가려는 확고부동한 대단결의지의 발현이다.

10.4선언은 우리민족끼리정신에 따라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해나가며 민족의 존엄과 리익을 중시하고 모든것을 이에 지향시켜나갈 립장을 다시금 명백히 표명하고 그에 기초하여 북남관계개선과 통일위업실현에서 제기되는 제반 실천적인 문제들에 구체적인 해답을 주고있다.

우리민족끼리리념을 근본정신으로 하는 력사적인 10.4선언은 자주통일시대의 현실을 통하여 그 견인력과 생활력을 남김없이 과시하였다.

그 과정에 우리 겨레는 북과 남은 떨어져서는 못살 하나의 민족임을 페부로 절감하였다.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리행을 통하여 북과 남은 우리 민족끼리 얼마든지 힘을 합칠수 있으며 그 어떤 시련과 난관도 뚫고 화해와 단합을 이룩할수 있다는 락관을 가지게 되였다.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밑에 북남관계가 신뢰와 화해의 관계로 전환되고 민족공조의 장이 펼쳐진것은 북남선언들의 정당성에 대한 뚜렷한 과시이다.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채택으로 밝은 전망이 펼쳐졌던 북남관계의 앞길에 엄중한 장애가 조성된것은 전적으로 북남선언들을 부정하며 그 리행을 거부해나선 괴뢰보수패당의 반통일적망동의 필연적결과이다.

리명박역적패당은 처음부터 우리민족끼리리념을 《배타적민족주의》,《편협한 민족주의》라고 거리낌없이 모독하면서 그것을 기본정신으로 하는 6.15공동선언과 10.4선언들에 대한 악의를 감추지 않았다.

북남선언들의 리행에 대해 《무리한 요구》라고 악담질하면서 북남사이에 활발하게 진행되여오던 여러 갈래의 대화와 접촉,화해,협력사업을 모조리 중단,파탄시켜버렸다.더우기 괴뢰들이 당치않은 구실을 내대면서 금강산관광을 중단시키고 악명높은 《5.24조치》를 발동하여 북남래왕과 협력,교류를 전면차단한것은 북남관계사에 류례없는 비극으로 기록되여있다.

현 괴뢰보수집권세력도 말로는 기존의 북남합의들을 존중한다고 했지만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리행에 대한 부정적자세를 감추지 않고있다.그들은 불순하기 그지없는 《통일대박》론이라는것을 들고나오고 《통일대비》니,《드레즈덴선언》이니 하면서 체제통일야망을 공공연히 드러내고있다.

최근에는 그 무슨 《대화》와 북남사이의 《신뢰구축》에 대해 입이 닳도록 떠벌이고있다.하지만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리행을 거부하면서 《대화》와 《신뢰구축》을 운운하는것은 어불성설이다.

실제로 현 괴뢰당국은 북남관계개선을 위한 우리의 선의와 노력에 《키 리졸브》,《독수리》합동군사연습,《을지 프리덤 가디언》합동군사연습과 같은 대규모의 북침전쟁불장난소동으로 대답해나섰는가 하면 외세와 야합하여 반공화국《인권》모략책동에 기승을 부리고있다.

특히 최근에는 《풍선작전》의 명목밑에 조국을 반역한 인간쓰레기들을 내몰아 우리를 반대하는 범죄적인 삐라살포망동에 더욱 열을 올리고있다.겨레의 통일열망을 북침의 총포성으로 악랄하게 억누르면서 동족의 사상과 제도를 악의에 차서 헐뜯는 괴뢰패당이 《대화》와 《신뢰》를 아무리 외워대도 그것을 곧이들을 사람은 없다.

남조선당국의 북남선언말살책동,극단적인 반공화국적대행위로 말미암아 북남관계는 파국의 수렁에서 좀처럼 헤여나지 못하고있으며 대결과 긴장은 나날이 격화되고있다.

력사와 현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여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리행이 화해와 단합,북남관계개선의 길이라면 선언들에 대한 부정은 불신이고 대결이며 북남관계파국이라는것이다.

남조선당국이 진심으로 북남사이의 대화와 신뢰에 관심이 있다면 력사적인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존중하고 그것을 리행할 의지부터 표명해야 할것이다.

북남선언들을 리행하는가 거부하는가 하는것은 북남관계개선을 바라는가 대결을 추구하는가를 가르는 시금석이다.

괴뢰당국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존중과 리행을 떠난 그 어떤 대화와 신뢰도 거짓이며 기만이라는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혁명활동소식을 여러 나라에서 보도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모란봉악단의 신작음악회를 관람하신 소식을 네팔신문 《아르판》과 나이제리아 김일성김정일주의연구 전국위원회,스위스조선위원회 인터네트홈페지가 5일부터 10일까지의 기간에 보도하였다.

네팔신문과 스위스인터네트홈페지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사진문헌을 모시였다.

무성하는 꽃망울들은 사랑과 정을 노래한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전체 인민이 수령을 중심으로 사상의지적으로,도덕의리적으로 굳게 뭉치고 온 사회가 동지적으로 서로 돕고 이끄는 하나의 대가정을 이루고있는것은 우리 식 사회주의의 본질적특성이며 무한대한 힘의 원천이다.》

경애하는 원수님을 어버이로 모시고 하나의 대가정을 이루고 사는 우리 나라 사회주의사회에서는 만사람의 심금을 뜨겁게 울려주는 가지가지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날로 꽃펴나고있다.

그들속에는 수십명이나 되는 부모잃은 아이들을 맡아 친혈육의 심정으로 따뜻이 돌봐주고있는 문덕군상업관리소 일군들과 종업원들도 있다.

누가 보건말건,알아주건말건 조국의 미래를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아낌없이 바쳐가고있는 그들의 심장속에 소중히 간직된것은 과연 무엇이던가.

군상업관리소 소장 김성각동무에 대하여 사람들은 흔연히 이렇게 말하군 한다.인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그러나 그가 수십명이나 되는 부모잃은 아이들을 맡아키울 결심을 하게 된것은 단순히 인정이나 동정심때문이 아니였다.

지금으로부터 6년전 봄 어느날이였다.

읍주변 협동농장에 종업원들과 함께 모내기지원작업을 나온 소장 김성각동무는 급병으로 세상을 떠난 한 농장원부부에 대하여 알게 되였다.몸이 심하게 앓는 속에서도 포전을 떠나지 않고 알곡증산을 위해 아글타글 헌신한 그들의 소행은 김성각동무의 심금을 뜨겁게 울려주었다.그러면서도 한쪽으로는 마음이 절로 무거워짐을 금할수 없었다.그들부부가 남겨놓은 어린 세 자식이 마음에 걸리였던것이다.이웃집에서랑 농장에서 그들을 돌보아준다고 했지만 김성각동무의 눈앞에는 어두운 그늘이 비낀듯 한 어린 아이들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라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문득 지나온 나날이 어제런듯 흘러갔다.

뜨거운 동지적의리심을 알게 해준 군사복무의 나날이며 문덕군의약품관리소에서 맡은 일에 헌신하던 그가 당의 믿음속에 군상업관리소 소장으로 배치되여 주민들의 상품보장사업을 위해 힘든줄 모르고 뛰여다니던 일들…

상업관리소 소장으로 임명받은 날 고향의 아버지가 하던 당부도 생각났다.그의 고향은 자강도 희천이다.그처럼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강행군시기 위대한 장군님의 령도를 충직하게 받들어가던 나날의 잊지 못할 이야기를 들려주며 아버지는 말하였었다.자강도사람임을 잊지 말라고.

하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망설이고있는가.그의 심장은 알지 못할 충동으로 세차게 고동치기 시작하였다.

그로부터 며칠후 그는 군안에 있는 부모잃은 아이들을 모두 데려다 키울 결심을 당조직에 터놓았다.당조직에서는 그의 결심을 지지해주며 관리소가 맡아 아이들을 잘 키우자고 그를 적극 떠밀어주었다.

얼마 안되는 종업원력량으로 원료기지도 새로 확장하고 상품보장사업도 개선하는 등 관리소가 해야 할 일은 많았지만 김성각동무는 당이 아파하는 문제를 놓고 그 어떤 타산이나 조건을 앞세우지 않았다.김성각동무는 즉시 생산현장으로 리용하던 건물을 개건하여 침실,학습실,식당,세면장,목욕탕을 비롯한 문화후생시설을 꾸려놓고 그해 6월 국제아동절을 맞으며 군안에 있는 부모잃은 아이들을 데려왔다.그날 관리소에서 성의껏 차린 음식을 맛나게 먹으며 웃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김성각동무의 얼굴에도 미소가 어리였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첫걸음을 뗀데 불과하였다.그의 앞에는 아직 먼길이 놓여있었다.

김성각동무가 아이들을 처음 관리소로 데려왔을 때 그들속에는 하루종일 가야 말 한마디 없이 지내는 아이도 있었고 성격이 거칠어진 아이도 있었다.몸이 약해 자주 앓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을 관리소로 데려온지 며칠이 지난 어느날 저녁이였다.

그날도 여느때와 다름없이 아이들의 침실을 돌아보던 김성각동무는 복도의 한구석에서 소곤소곤 들려오는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였다.

《울지 말아.이제 오빠가 크면 지금까지 차려주지 못한 생일을 합쳐 크게 차려줄게.그렇게 하지?》

《응.》

가까이 다가가보니 룡반리에서 데려온 아이들이였다.그들을 바라보는 김성각동무의 생각은 깊어졌다.

(제 부모가 살아있다면 딸자식의 생일을 그냥 스쳐보낼수 있었겠는가.)

한창 부모의 슬하에서 재롱을 부리며 뛰놀아야 할 어린것들의 마음에 잠시라도 그늘이 지게 하였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났다.

다음날에 있은 종업원모임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부모잃은 아이들이 제일 그리워하는것은 바로 친부모의 정입니다.우리가 아이들을 데려온것은 그 무슨 소문이나 내고 평가를 바라서도 아닙니다.우리들은 부모잃은 아이들의 친아버지가 되고 친어머니가 되여 거짓과 꾸밈을 모르는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이 더 활짝 피여나게 하여야 합니다.》

그 말은 무엇보다먼저 자기자신에게 하는 말이였다.

일감이 많아졌다.한쪽으로는 원료기지를 확장하기 위한 사업이,다른 한쪽에서는 아이들의 영양개선을 위한 미꾸라지서식장건설이 진행되였다.

출장길도 많아졌다.어제는 상품확보를 위해 출장길에 올랐고 오늘은 아이들의 학용품이며 생활용품을 해결하기 위해 먼길을 떠났다.

어느날 밤 출장길에서 돌아온 김성각동무는 아이들의 잠자리를 돌아보고나서 아이들의 식당에 들렸다.그의 손에는 큼직한 잉어 몇마리가 들려있었다.

감기에 걸린 그에게 집에 가서 뜨끈하게 끓여먹으라고 출장길에서 만난 옛 전우가 마련해준것이였다.그런 잉어들을 내놓으며 그는 말하였다.

《잊지 말고 래일 아침 아이들에게 맛을 보이오.》

다음날 잉어탕을 맛나게 먹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식당종업원의 가슴은 뜨거워졌다.그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였던것이다.

갑자기 심하게 앓아 병원에 입원한 아이의 병치료를 위해 하루밤에 백여리를 달려 귀한 보약을 구해온 가슴뜨거운 일이며 명절날,생일날이면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아이들과 함께 모여앉아 노래도 부르고 기념품도 안겨준 일…

올해에 들어와 김성각동무와 종업원들은 군일군들과 합심하여 아이들이 생활하는 건물을 새로 개건하였다.학습실과 물놀이장,야외놀이장,아늑한 침실 등 보다 편리하게,더욱 훌륭하게 개건된 아이들의 보금자리,그것은 잠자리이기 전에,학습실이고 놀이장이기 전에 아이들을 위하는 김성각동무와 종업원들의 아름다운 마음이였다.옥보다 아름다운 그들의 마음속에 아이들의 보금자리가 먼저 자리잡았던것이다.

사람들은 이곳 종업원들이 돌봐주고있는 아이들이 하나같이 건강할뿐아니라 만나면 깍듯이 인사를 하고 물어보는 말에 공손히 대답하는 등 례절이 밝고 문화적소양도 높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좋은 씨앗도 김을 매주고 덧비료도 주어야 풍성한 열매를 맺듯이 아이들을 이렇게 키우기까지에는 소장 김성각동무를 비롯한 종업원들의 노력을 떠나 생각할수 없다.

어느해인가 군상업관리소 일군들과 종업원들은 아이들과 함께 평양견학을 간적이 있었다.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관람하던 김성각동무는 무릎에 앉혀놓은 어린이가 배경대에 씌여지는 글자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것을 알게 되였다.순간 김성각동무가 받은 가책은 컸다.

지금까지 아이들을 위해 바삐 뛰여다닌다고는 하였지만 아이들의 학과학습에는 낯을 적게 돌려온 자신을 발견하였던것이다.

평양에서 돌아오는 길로 김성각동무는 군의 교육일군을 만났다.

《부모잃은 아이들도 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품속에서 자라는 한식솔입니다.그들속에서도 영웅이 나오고 나라의 부강발전에 이바지하는 인재도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되여 학교선생님들의 방조속에 부모잃은 아이들의 수업후 과외학습 및 개별학습지도가 조직되게 되였다.

김성각동무는 아이들의 소질을 키워주기 위한 사업에도 힘을 넣었다.한 소녀애가 성악에 재능이 있다는것을 알고는 군학생소년회관 성악소조에 다니도록 해주었고 한 소년이 자동차운전기술에 취미가 있는것을 알고는 여러가지 참고서들도 안겨주면서 체계적으로 깊이 배우도록 떠밀어주었다.

하루종일 일에 다몰리다가도 아이들과 마주앉아 그날 공부한 학습장도 봐주고 숙제장도 검열해주는 김성각동무의 모습은 꼭 친아버지모습그대로였다.

때로는 연필을 쥔 아이의 손을 꼭 감싸쥐고 글씨련습도 해주고 때로는 숙제를 제대로 하지 못한 아이를 엄하게 타일러주며 나라의 역군이 되라고 품어주고 이끌어준 김성각동무와 종업원들의 사랑과 헌신을 어찌 한두마디의 말로 다 전할수 있겠는가.

김성각동무와 종업원들의 깊은 관심속에 지난해 8월 백두산선군청년발전소건설장으로 달려나간 동무들의 뒤를 이어 김일국이가 군복을 입고 조국보위초소로 떠나갔다.

그로부터 몇달이 지난 후 일국이에게서 편지가 왔다.편지에는 이런 맹세의 구절들이 씌여있었다.

《…저를 품어주고 키워준 그 품이 고마운 조국,어머니당의 품이라는것을 조국보위초소에서 다시한번 깨달았습니다.저를 믿어주십시오.고마운 그 은혜에 꼭 보답하겠습니다.언제나 저의 머리맡에 머물러있던 그 사랑의 눈빛,따스한 손길을 잊지 않을것입니다.》

얼마전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김성각동무와 이곳 종업원들의 소행을 보고받으시고 은정어린 감사를 보내주시였다.

당의 후대사랑,미래사랑을 꽃피워가는 문덕군상업관리소 소장 김성각동무와 종업원들,바로 이들과 같은 사람들이 있어 이 땅에 무성하는 꽃망울들이 부르는 사랑과 헌신에 대한 고마움의 노래소리는 오늘도 래일도 영원히 울려퍼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