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7일

미국의 가련한 어용나팔수가 되지 말아야 한다

【평양 6월 26일발 조선중앙통신】최근 미국에 추종하는 일부 나라들이 오래전에 사멸된 정전감독기구의 존재를 거론해대며 우리를 함부로 걸고든것과 관련하여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 대변인은 6월 26일 조선인민군신문사 기자가 제기한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얼마전 중유럽나라들의 대표란자들이 서울에 쓸어들어와 그 무슨 《고위급정무회의》라는것을 벌려놓았다고 한다.

우리는 그들이 누구의 청탁을 받고 무슨 리유로 이 무더운 날씨에 그리도 분주하게 돌아쳤는지 아무러한 관심도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때와 장소에 어울리지 않게,또 자기들의 체모에 맞지 않게 무턱대고 우리를 걸고들며 고약한 언행을 일삼은데 대해서는 스쳐지낼수 없다.

저 멀리 유럽의 그 무슨 《4개국협의체》의 고위급정객이라고 자처하면서 기자회견을 벌려놓은 이자들은 느닷없이 《중립국감독위원회》를 거론해대기 시작하였다.

이 자리에서 그들은 조선정전협정에 따라 조선경외로부터의 군사인원 및 무장장비의 반입과 증강을 감독통제할 사명을 띠고 조직되였던 정전감독기구가 형식상으로는 없어진듯 하지만 실지로는 여전히 존재하며 활동하고있는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해나섰다.

그러면서 그 실체가 존재한다는것만 보아도 조선반도가 《심각한 화약고》라는 국제사회의 우려를 보여주는것으로 된다고 제나름대로 떠들어댔다.

청중들이 이미 사람들의 망각속에 파묻혀버린지 오랜 《중립국감독위원회》라는것을 들추어내며 론의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고 반문하자 그들은 《상징적인 의미》가 상당히 중요하기때문이라고 대꾸하였다.

그들이 무엇때문에 정전감독기구에 그토록 애착을 가지고 그 존재를 인정하려 했는가는 구태여 물을 필요가 없다.

조선반도정세가 항시적인 긴장격화에서 벗어나자면 우리가 핵을 《포기》하고 《진정한 변화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수작으로 제 본심을 서슴없이 드러냈던것이다.

겉만 다를뿐 내뱉은 소리는 미국이 놀아대는 수작그대로였다.

이번에 우리를 걸고든 정객들은 조선정전협정에 따라 조직된 이전 《중립국감독위원회》성원국의 인물들이다.

《중립국감독위원회》가 본래의 사명과는 달리 미국의 대조선침략책동의 하수인으로 전락되고 자기의 생명인 중립성과 공정성을 줴버린탓에 력사의 락엽속에 매몰되였다는것은 누구보다 그들이 먼저 잘 알고있다.

초보적인 주대도 없이 미국에 아부하며 이 기구를 조락시킨 장본인들이 20년이 훨씬 넘어 세기가 바뀐 오늘에 와서까지 조선반도긴장격화의 책임을 우리에게 넘겨씌우며 세상부끄러운줄 모르고 꼴불견스럽게 놀아대고있는것이다.

미국의 대조선침략흉계에 편승하여 정전협정을 백지화하고 정전감독기구를 송두리채 파괴한 그들의 범죄적행위는 앞으로 반드시 결산되여야 할것이다.

사람들은 미국의 반공화국나팔수들로 전락된 이자들의 가련한 몰골에 쓴웃음을 보내고있다.

동시에 6.25를 계기로 어중이떠중이들을 동원하여 정전감독기구의 부활놀음을 벌려놓아보려는 미국의 잔꾀를 낱낱이 꿰뚫어보고있다.

그 누구도 정의와 진리를 압도할수 없다.

이번 기회에 미국이 던져주는 몇푼의 돈에 팔리워 어용나팔수노릇을 하는 가련한자들에게 점잖게 충고하고저 한다.

조금이라도 지각이 있다면 자기 존엄을 목숨처럼 간주하여야 하며 언제나 불의에 맞서 정의에 살아야 한다.

향방없이 불어대는 바람결에 따라 이리 흔들,저리 흔들 하는 들판의 허수아비처럼 놀아대지 말아야 할것이다.

젊음으로 약동하고 세기를 주름잡으며 폭풍쳐 내달리고있는 우리 공화국의 위상은 그 누구도 감히 건드릴수 없다.

이 엄연한 현실을 똑바로 보고 미국은 무덤속에 들어간 정전감독기구를 다시 되살려보려는 어리석은 기도를 애당초 버려야 한다.

그럴 시간이 있다면 지난 1950년 6.25가 미국의 운명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들었으며 그 이후 감행한 대조선침략책동이 지금까지 어떤 후과를 초래했는가를 심중히 돌이켜보아야 할것이다.

박두한 최후의 반미대결전에서는 정전이라는 말자체가 있을수 없다는것이 우리 군대의 불변의 립장이다.

미국과 추종자들은 이에 대해 순간도 잊지 말아야 할것이다.

[공식문건] 남은것은 오직 하나 기다리고있는 최고사령부의 타격명령뿐이다

오늘 26일 괴뢰군부호전광들은 아무러한 사전통보도 없이 연평도주변해상에서 우리측 수역을 향하여 포탄을 발사하는 엄중한 군사적도발을 감행하였다.

이 무모한 군사적도발은 우리의 신성한 령해에 대한 고의적인 선불질로 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달아보려는 북침흉계의 로골적인 발로이다.

최근 조선서해 열점수역에서의 사태발전이 이 모든것을 그대로 실증해주고있다.

어선단속을 구실로 감행되는 괴뢰군함정들의 우리측 령해침범행위는 날이 갈수록 계단식으로 확대되고있으며 백령도,연평도,대청도 등지에서 때없이 벌어지는 광란적인 총포사격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되고있다.

조성된 사태에 대처하여 조선인민군 서남전선군관하 모든 타격집단들은 완전한 보복태세를 갖추고 섬멸적인 타격준비를 끝낸 상태에 있다.

우리는 가뜩이나 예민한 열점수역에서 벌어지고있는 괴뢰군부호전광들의 무모한 선불질이 괴뢰국방부는 물론 청와대의 배후조종과 련관되여있다는것을 모르지 않는다.

지금 안팎으로 헤여나올수 없는 최악의 《국정》위기에 빠져 운명의 벼랑끝에 내몰려있는 박근혜와 그 일당은 예민한 열점수역의 도화선에 불을 질러 정세를 폭발전야로 몰아가는것으로 최후의 출로를 찾아보려고 발악하고있다.

우리 서남전선군 전체 장병들은 쌓이고쌓인 분노를 터쳐 도발자들을 씨도 없이 징벌할 보복일념으로 가슴을 불태우고있다.

남은것은 오직 하나 기다리고있는 최고사령부의 타격명령뿐이다.

도발자들은 무모한 선불질을 해댄 후과가 얼마나 처절한가에 대해 두고두고 통탄하게 될것이다.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위업실현을 위한 력사의 장거

우리가 왕재산혁명사적지를 찾은것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을 시작하신 50돐을 맞게 된다는 기쁨으로 여기 최북단의 온성땅도 끝없는 환희로 들끓고있던 때였다.언제 봐야 군의 첫 새벽을 먼저 맞군 하는 책임일군들로부터 강의수준을 높이기 위해 남모르게 애를 쓰는 왕재산혁명박물관의 나어린 처녀강사에 이르기까지,백수십명의 부모없는 아이들을 친자식으로 맡아 어엿하게 키워가는 선군시대 모성영웅만이 아니라 최우등의 자랑을 안고있는 소년단원들도 군안의 그 누구나 어버이장군님에 대한 다함없는 경모의 정으로 가슴 불태우고있었다.

온성사람들이 류다른 감흥속에 6월 19일을 기다린것은 여기가 항일무장투쟁시기 첫 국내당조직이 태여난 고장이기때문만이 결코 아니였다.위대한 장군님께서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을 시작하신 후 진행하신 지방당사업에 대한 현지지도자욱이 소중히 아로새겨져있는 곳이 바로 여기 온성군당위원회이다.더우기 력사적인 조선로동당 제3차 사상일군대회에서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를 우리 당의 최고강령으로 선포하시고 혁명전통교양을 실속있고 활발하게 벌릴데 대하여 강조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 혁명전통교양의 훌륭한 거점을 마련하시기 위해 정력적인 헌신의 자욱을 수놓으신 영광의 땅이 다름아닌 조국의 최북단 온성군의 왕재산리인것이다.

왕재산대기념비의 건립,그것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의 요구에 맞게 혁명전통교양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키시기 위하여 천재적인 예지와 불멸의 혁명령도로 이룩하신 력사적장거였다.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는 나라와 민족의 만년재보로서 인민대중을 수령이 이룩한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으로 튼튼히 무장시키며 수령이 개척한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해나가도록 교양하는데서 가장 큰 감화력을 가진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혁명전통은 혁명의 명맥을 이어주는 더없이 귀중한 사상정신적재보입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왕재산대기념비위치를 정해주신 장소에서 우리와 만난 왕재산리의 김종철동무는 왕재산회의와 왕재산대기념비 그리고 제2청산리로 불리우는 왕재산리야말로 왕재산의 3대자랑이라고 할수 있다고 하면서 자기 고장 자랑을 무척 하는것이였다.척 보기에는 수수한 농장원같아도 자기 고장,자기 단위에 새겨진 백두산위인들의 령도업적을 가장 큰 자랑으로 여기며 손금보듯이 꿰들고있을뿐아니라 하나라도 더 소개하기 위해 마음을 쓰는 그가 무척 돋보였다.

우리는 정미순 왕재산혁명박물관 교양과장의 해설을 들으며 왕재산혁명사적지를 돌아보았다.그는 우리에게 먼저 왕재산대기념비에 모셔진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이 왕재산을 배경으로 서게 된 사연에 대해 알려주면서 대기념비건설과정 하나만 놓고보아도 우리 장군님처럼 고결한 충정과 천재적인 예지,비상한 조직적수완과 완강한 실천력을 지닌 특출한 정치가,걸출한 위인은 아마도 세상에 없을것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혁명전적지,혁명사적지건설에서 새로운 전환이 일어나던 1970년대의 잊지 못할 나날들을 돌이켜보았다.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가 전면에 나섰던 그때 위대한 장군님께서 주체의 혁명전통을 옹호고수하고 계승발전시키기 위하여 특별히 중요하게 관심을 돌리신 문제의 하나가 바로 어버이수령님의 불멸의 혁명업적이 깃들어있는 혁명전적지,혁명사적지들을 잘 꾸리고 그를 통한 교양을 강화하는것이였다.

이미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60돐을 맞으며 만수대언덕에 수령님의 동상을 높이 모신 만수대대기념비를 최상의 수준에서 훌륭히 일떠세우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련이어 당창건 30돐을 맞으며 위대한 수령님의 조국해방업적이 수많이 깃든 조국의 최북단 왕재산에 기념비를 건립하고 혁명사적지를 꾸릴것을 발기하시였다.그리고 강력한 건설력량도 무어주시고 설비와 자재보장대책,정연한 건설지휘체계도 세워주시였으며 모든 도들과 중앙기관들에서 이 사업을 적극 지원하도록 하시였다.

그러던 주체63(1974)년 5월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왕재산혁명사적지건설장을 몸소 찾아주시였다.친히 현지에까지 나오시여 대기념비건설의 기본원칙을 명철하게 밝혀주시고 그 위치까지 바로잡아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력사적인 현지지도는 왕재산혁명사적지건설을 힘있게 밀고나가는데서 중요한 계기로 되였다.

우리는 답사자들,참관자들과 함께 왕재산혁명사적지를 돌아보면서 위대한 장군님께서 왕재산혁명사적지를 훌륭히 꾸리기 위해 얼마나 크나큰 심혈을 기울이시였는가를 더욱 잘 알게 되였다.

주체64(1975)년 3월 어느날 두번째로 건설장을 찾으시였을 때에도 진눈까비에 얼어붙은 미끄러운 모형대돌우에까지 몸소 오르시여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을 가장 정중히 모실 위치를 정해주신 위대한 장군님,친히 왕재산마루의 회의장소에까지 오르시여 답사생들이 어버이수령님께서 걸으신 조국진출로정대로 답사를 하도록 그 로정까지 정해주시였고 수령님께서 항일의 날에 걸으신 조국진군의 길을 이어 우리 함께 걸어내려가자고 하시며 가파로운 산길을 앞장에서 헤치신 그이의 끝없는 헌신의 자욱을 어찌 다 전할수 있으랴.

그날의 사연깊은 로정을 따라 왕재산대기념비앞에 다시 이르렀을 때 교양과장은 어버이수령님의 동상 대돌에 새겨진 1975년 10월 13일이라는 글발을 가리키면서 위대한 장군님께서 세번째로 왕재산을 찾으시였던 날이라고,이날 그이께서 손수 동상제막포를 벗기시여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을 제막하여주시였다고 하였다.그러면서 이렇게 왕재산대기념비건설을 위해 세차례나 자기네 온성군을 찾으시였던 우리 장군님이시였지만 그때마다 지척인 회령땅에만은 한번도 들려보시지 못하였다고 못내 가슴아파하는것이였다.누구나 치미는 격정을 금치 못해하였다.우리 장군님께서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의 요구에 맞게 혁명전통교양을 강화하는데서 왕재산대기념비건설이 얼마나 중요한 의의를 가지였으면 그 나날 세차례나 온성땅을 찾으시면서도 김정숙어머님의 고향 회령에 한번도 들려보시지 못하시였으랴.

문득 한 일군이 들려주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주체90(2001)년 7월 어느날 외국방문의 길에 오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특별렬차로 두만강철다리를 넘으실 때 사색깊은 눈길로 출렁이는 두만강을 바라보시며 김정숙어머님의 고향 회령에 대하여 뜨겁게 추억하시였다.그러시고는 자신께서도 어머님이 그리워질 때마다 회령에 가보고싶었지만 일감이 너무 많아 시간을 낼수 없었다고 하시면서 언제인가 왕재산혁명사적지건설을 지도하러 온성에 갔을 때에도 시간이 없어 회령에 들려보지 못하였는데 그때 회령을 지나면서 울리는 기적소리가 가슴을 파고들었다고,그때의 일도 하나의 추억으로 남았다고 저으기 갈리신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사랑하는 어머님의 고향에 잠간 들리시는것마저도 뒤로 미루시고 우리 당의 혁명전통을 더욱 빛내이시기 위해 왕재산에로의 현지지도길을 순간도 지체하지 않으신 위대한 장군님,

참으로 왕재산혁명사적지는 우리 당의 성스러운 혁명전통이 어떻게 마련되고 빛나게 계승되는가를 온 세상에 소리높이 전하는 력사의 산 증견자인것이다.

우리 당의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을 옹호고수하고 전면적으로 계승발전시켜나가는것은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의 요구에 맞게 주체혁명위업을 승리적으로 전진시키기 위한 근본담보의 하나이다.

대를 이어 계속되는 혁명에는 자기의 근본이 있고 혈통이 있다.혁명이 자기 궤도를 따라 끊임없이 전진하자면 뿌리로 되는 바탕을 잊지 말아야 하고 그 순결성을 고수해야 한다.

왕재산을 내리는 길에서 우리는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조선소년단창립 68돐에 즈음하여 만경대혁명학원을 방문하시였다는 소식에 접하였다.

백두에서 개척된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려는 굳은 결심과 의지를 안으시고 삼지연으로,마두산으로 향하시였던 그 걸음을 우리 혁명의 피줄기를 억세게 이어갈 핵심골간들이 육성되는 만경대혁명학원에로 이어놓으신 경애하는 원수님,

조선혁명이 년대를 이어가며 순결하게 고수하는 백두의 혁명전통,이 줄기찬 피줄기,주체의 혈통이야말로 강성국가건설에 활력을 부어주는 삶과 투쟁의 원줄기이며 김일성민족,김정일조선의 더없이 귀중한 교범이다.

항일혈전사를 책에서 배운 세대들이 새로운 주체100년대의 주인공,주력군을 이룬 오늘의 강성국가건설대전에서 그 진리성과 의의가 더더욱 부각되는 백두의 혁명전통은 우리 혁명의 종국적승리를 이룩하기 위한 만년담보인것이다.

그것을 증명하듯 왕재산하늘가에 저녁노을이 붉게 비끼였다.

천재적인 예지,고결한 충정

주체63(1974)년 5월 중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왕재산대기념비건설장을 현지에서 지도하시였다.

당시 왕재산대기념비기초공사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왕재산회의를 진행하신 왕재산이 아니라 그 옆봉우리인 장덕산에서 진행되고있었다.

공사정형을 료해하신 장군님께서는 왕재산대기념비는 수령님께서 항일무장투쟁시기 력사적인 회의를 지도하신 장소가 있는 왕재산의 중턱에 세워야 하며 왕재산대기념비를 왕재산옆봉우리에 세우면 사람들이 그곳을 왕재산으로 잘못 생각할수 있다는데 대하여 일군들을 깨우쳐주시였다.자기들의 잘못된 생각을 뉘우치고있는 일군들에게 기념비건설에서 기본원칙은 기념비를 사적지에 접근시키는것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왕재산대기념비는 어버이수령님께서 항일무장투쟁시기 력사적인 회의를 지도하신 장소가 있는 왕재산의 중턱에 웅장한 모습으로 건립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왕재산대기념비건설장을 두번째로 찾으신것은 주체64(1975)년 3월 중순이였다.

건설현장에 이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을 모실 위치와 높이에 대하여 알아보시였다.

일군들의 대답을 들으신 그이께서는 수령님의 동상에 탑의 그늘이 질수 있다는것과 동상이 탑과 너무 가까와 두드러지게 보이지 않게 된다는데 대하여 지적하시였다.

그러시고 동상대돌을 더 높여야 하며 수령님의 동상을 앞으로 내다모셔야 한다고 명철하게 가르쳐주시였다.

여간만 미끄럽지 않은 모형대돌우에까지 오르시여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왕재산혁명사적지건설에서 수령님의 동상위치를 바로 정하는 문제가 제일 중요하다고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오늘과 같이 왕재산대기념비에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을 훌륭하게 모실수 있은것은 전적으로 위대한 장군님의 천재적인 예지와 고결한 충정을 떠나 생각할수 없다.

주체64(1975)년 10월 중순 어느날이였다.

온성에 오시여 곧바로 왕재산대기념비로 가신 위대한 장군님께서 왕재산혁명박물관에 도착하신 때는 해질무렵이였다.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을 몸소 제막해주신데 이어 대기념비를 오랜 시간 구체적으로 돌아보시였으며 나라의 최북단을 비롯하여 군안의 여러곳에 꾸려진 혁명사적지,혁명전적지들과 국경관문 남양을 현지지도하시고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신 우리 장군님이시였다.

박물관에서 그이께서는 잠시의 휴식도 없이 진렬실의 벽면과 바닥에 전시된 수천점의 사적물들과 자료들을 빠짐없이 살펴보시였다.그 과정에 박물관에는 과학적인 자료를 많이 전시하여 당시의 혁명투쟁력사를 자료적으로 론증할수 있게 해야 한다고 일깨워주시고 구체적인 방도도 가르쳐주시였다.

우리 장군님께서 왕재산혁명박물관 일군들과 강사들의 한결같은 절절한 소망을 헤아리시여 은정깊은 사랑을 부어주시고 그곳을 떠나신 때는 사위가 어둠속에 깊숙이 잠긴 시간이였다.

총서작품,혁명소설창작에서 보다 큰 전진을

4.15문학창작단에서 모란봉악단의 전투적이며 혁신적인 창조기풍을 따라배워 수령형상창조를 핵으로 하는 혁명문학건설에서 오늘의 시대적요구에 맞게 보다 새로운 전진을 안아오기 위한 창작전투가 힘있게 벌어지고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작가들은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혁명력사와 불멸의 업적을 형상한 총서작품들과 함께 구성과 양상이 새롭고 특색있는 혁명소설들을 력사적사실에 기초하여 더 많이,더 훌륭하게 창작하여야 합니다.》

4.15문학창작단의 창작지도일군들과 작가들은 위대한 수령이시기 전에 위대한 인간이신 수령님과 장군님의 인간적인 풍모를 감명깊게 보여주기 위한데 중심을 두고 모두가 떨쳐나 절세위인들의 불멸의 업적을 형상한 총서작품들과 혁명소설작품창작에서 보다 새로운 전진을 안아오기 위해 창작적열정을 총폭발시키고있다.

당조직의 지도밑에 창작지도일군들은 총서작품들에 절세의 위인들의 불멸의 업적을 어느 한 부문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우리 당과 인민군대,국방공업을 강화발전시키신 내용들을 비롯하여 당과 혁명,조국과 인민앞에 쌓으신 불멸의 업적을 폭넓게 형상하도록 하기 위한 구체적인 창작방향을 매 작가들에게 제시해주고 창작지도사업을 면밀하게 짜고들고있다.

작가들속에서는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인간적인 풍모를 보다 폭넓게 형상하기 위해 불멸의 령도업적이 깃들어있는 모든 부문에서 절세위인들의 위인적인 인간상을 새롭게 발견하여 작품창작에 구현하려는 열의가 날로 높아지고있다.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위인적인 인간상을 가장 뚜렷하게 부각시킬수 있는 새로운 생활의 단면들을 찾아내기 위해 수많은 현지지도단위들을 직접 편답하며 구체적인 혁명사적자료를 수집하기도 하고 한 고장에 깃들어있는 수십년간의 령도사적을 진지하게 탐구하기도 하면서 작가들은 절세위인들의 숭고한 내면세계를 깊이있게 형상하는데 온넋을 쏟아붓고있다.

평원군 원화협동농장의 농민들속에 계셨던 어버이수령님의 위인적풍모를 한식솔의 가장으로 보다 친근하게 형상한 작품,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조국의 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해 렬차강행군길에 계셨던 위대한 장군님의 불면불휴의 애국헌신을 그이의 체험세계에서 묘사한 작품창작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있다.

또한 세계를 굽어보시며 최첨단돌파사상을 제시하시고 온 나라의 CNC화를 실현하시기 위해 한생을 불같이 사신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업적을 칭송한 작품을 최상의 수준에서 완성하기 위한 사색과 탐구도 심화되고있다.

작가들은 절세위인들의 인간적인 풍모를 보다 폭넓게 체득하고 새로운 생활적바탕에서 형상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과 함께 지금까지 없던 구성형식과 전개방식으로 수령형상작품들을 창작하기 위한데도 배가의 노력을 기울이고있다.

이와 함께 수령형상작품창작에서 언어표현을 작가의 개성과 장기대로 기발하게 찾아내여 쓰기 위한 사색과 노력도 활발해지고있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조국관,인민관,후대관을 가슴뿌듯하게 느끼게 하는 혁명소설창작에서 고정격식화된 틀을 깨고 매 문장을 박력있게 구사하여 약동하는 느낌,비약하는 시대의 숨결을 감수하게 하려는 혁신적인 창작시도들이 늘어나고있다.

모란봉악단의 진취적이며 혁신적인 창조기풍을 따라배워 기어이 명작폭포를 안아오기 위한 4.15문학창작단 일군들과 작가들의 불같은 열정은 머지않아 발전하는 시대의 요구에 맞게 보다 새롭게 창작된 총서작품들과 혁명소설들을 인민들에게 안겨주게 될것이다.

침략자의 피할수 없는 운명

◇미국이 지난 조선전쟁에서의 그 무슨 《승전》을 기념하는 광대극들을 대대적으로 벌려놓고있다.

지난해를 놓고보자.미국회에서는 《조선전쟁참전용사의 해》를 지정하는 결의안이 통과되였다.미국방성 청사에서는 《조선전쟁기념전시관》이라는것이 문을 열었다.그런가하면 미호전계층은 흔히 《잊혀진 전쟁》으로 불리우는 조선전쟁을 이제는 《잊혀진 승리》로 다시 정립할 때가 왔다고 떠들었다.

묻건대 잘못 고른 시간에 잘못 고른 장소에서 잘못 고른 《적》에 대한 잘못한 전쟁을 하였다고 비명을 지르며 항복서에 도장을 찍던자들이 과연 누구인가.저들이 당한 참패가 너무도 망신스러워 입밖에 내기조차 저어하던 미국이 이제 와서 패배를 《승리》로 둔갑시키고 《기념행사》놀음을 벌린다고 하여 조선전쟁의 진상이 달라질수 없다.

◇정의의 싸움에 일떠선 인민은 승리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력사는 정의의 전쟁에 궐기한 인민은 반드시 승리한다는것을 보여주고있습니다.》

64년전 미제가 이 땅에 강요한 전쟁은 침략과 반침략,전쟁세력과 평화애호력량사이의 첨예한 군사적대결인 동시에 제국주의련합세력의 반동적공세로부터 정의를 고수하기 위한 준엄한 수호전이였다.당시 미제는 거의 모든 인적,물적자원을 긁어모아 조선전선에 투입하였고 전쟁사에서 인류가 알지 못하는 가장 잔인한 방법을 다 적용하였다.허나 결과는 어떠했는가.22만㎢밖에 안되는 자그마한 반도에서 200여만명에 달하는 다국적인 호전광무리가,100차례가 훨씬 넘는 전쟁들에서 한번도 패한적이 없다던 미제가 3년동안의 전쟁에서 일찌기 체험해본적이 없는 대참패를 당하였다.

당시 미국방장관이였던 마샬은 《신화는 깨여지고말았다.우리는 남들이 생각하던것처럼 그렇게 강한 나라가 아니였다.》라고 고백하였다.

그렇다.조선전쟁에서 제국주의우두머리 미제의 《강대성》의 신화는 휴지통에 구겨박혔다.그때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장장 수십년간 총포성없는 치렬한 조미대결전에서 미국은 언제나 패자의 수치를 면치 못하였다.력사는 아무리 포악하고 강대한 적이라고 해도 자기 위업의 정당성을 깊이 깨닫고 투쟁하는 인민을 당할수 없으며 최후의 승리는 정의의 편에 있다는것을 확증해주었다.

◇제2의 조선전쟁은 미제에게 종국적파멸을 가져다줄것이다.

승냥이는 꿈속에서도 양무리를 생각한다고 미제는 언제 한번 우리 공화국에 대한 침략기도를 버린적이 없다.최근 몇달사이에만도 미제가 《독수리》,《키 리졸브》합동군사연습 등을 벌려놓으며 조선반도에 핵전쟁불구름을 어떻게 몰아왔는가 하는것은 구태여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우리 나라는 국제무대에 평화와 번영을 애원하고 구걸하던 어제날의 약소국가가 아니다.나라의 자주권을 침해하는 원쑤들에 대해서는 행성의 그 어디에 있건 무자비한 타격을 가하려는 멸적의 의지로 충만되여있는것이 우리 무장력이고 민족의 자주권을 수호하고 조국통일대업을 이룩하기 위해 산악같이 일떠서는것이 우리 인민이다.우리 군대와 인민은 미국이 감히 제2의 조선전쟁을 도발하는 경우 침략군이 발붙이고있는 모든 곳을 타격할것이며 지구상에서 악의 제국을 송두리채 들어내고야말것이다.

재일본조선청년동맹 제23차대회 진행

【도꾜 6월 25일 조선통신발 조선중앙통신】재일본조선청년동맹(조청) 제23차대회가 22일 총련 조선대학교에서 진행되였다.

남승우 총련중앙상임위원회 부의장과 김차돌 재일본조선청년동맹 중앙상임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대의원들이 참가하였다.

대회에서는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제23차 전체대회 앞으로 보내주신 축하문이 랑독되였다.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중앙위원회에서 보내온 축전과 조국의 여러 단위들 그리고 재일본조선류학생동맹 중앙상임위원회,도꾜조선제1초중급학교 소년단에서 보내온 축전들이 소개되였다.

김차돌위원장이 보고를 하였다.

그는 22기사업기간 조청을 충정의 대오로 튼튼히 다지고 조국사랑,동포사랑,미래사랑의 정신을 높이 발양하여 동맹원들이 애족애국운동의 주인이 되여 적극 활동하여왔다고 말하였다.

총련 제23차 전체대회결정을 철저히 집행하기 위한 과업에 대해 언급하였다.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을 단결의 유일중심으로 높이 받들어모시고 조청을 총련의 믿음직한 계승자로 튼튼히 준비하며 애족애국운동을 새 세대를 중심으로 전환할데 대한 요구에 맞게 광범한 동포청년학생들을 더 많이 찾아내고 참신한 대중운동을 전개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조국의 강성국가건설과 조국통일위업실현에 기여하는 운동과 대외활동을 청년들의 특성에 맞게 활발히 벌려나갈것이라고 말하였다.

특히 다음해에 맞게 되는 총련과 조청결성 60돐 기념행사준비를 다그쳐나갈데 대해 강조하였다.

그는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 밝혀주신 길을 따라 총련의 자랑스러운 력사와 애족애국의 전통을 줄기차게 이어나감으로써 일대 번영기가 펼쳐지는 조국과 더불어 재일조선인운동의 새 전성기를 청춘의 열기로 앞당겨 안아올것이라고 언명하였다.

이어 일본청년단체인사들의 련대발언과 각급 조청조직일군들의 토론이 있었다.

대회에서는 재일본조선청년동맹 중앙상임위원회 위원장으로 김용주대의원이 새로 선출되였다.

남승우부의장이 발언하였다.

그는 애국 1세,2세들이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장군님을 천세만세 높이 받들어모시는것처럼 조청원들이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을 충정으로 모시고 그이의 위대성을 가슴에 깊이 새긴것은 22기기간에 얻은 가장 귀중한 사상정신적재부라고 피력하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보내주신 축하문을 심장으로 받들고 총련 제23차 전체대회결정을 집행하기 위한 애족애국운동에서 조청이 선봉적역할을 수행하며 우리 학교졸업생들을 빠짐없이 조청조직의 두리에 묶어세우고 일본학교를 다니거나 졸업한 청년학생들을 더 많이 찾아내여 폭넓은 조직망,련계망을 형성할데 대해 언급하였다.

그는 조청이 영광스러운 김정은시대 재일조선청년운동을 새 전성기에로 강화발전시키기 위해 활력있고 약동적인 활동을 벌려나갈것을 기대한다고 강조하였다.

대회에서는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 삼가 드리는 편지가 랑독되였다.

대회가 끝난 다음 재일본조선청년동맹 중앙위원회 제23기 제1차회의가 진행되였다.

명작창작에로 추동하는 고무적기치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 참가자들에게 보내신 력사적인 서한 《시대와 혁명발전의 요구에 맞게 주체적문학예술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나가자》에서 《명작폭포로 당의 선군령도를 받들자!》라는 전투적구호를 제시하시였다.이 구호에는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를 소집한 우리 당의 깊은 의도가 담겨져있으며 시대와 혁명앞에 지닌 문학예술인들의 성스러운 사명과 임무가 명백히 밝혀져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문학예술부문에서는 우리 혁명의 전진속도와 들끓는 현실에 발맞추어 사상예술성이 높고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시대적명작들을 많이 창작하여야 합니다.》

우리 군대와 인민은 주체혁명의 위대한 새시대가 펼쳐지고있는 장엄한 환경속에서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유훈을 철저히 관철하고 인민의 모든 꿈과 리상을 하루빨리 실현하기 위한 새로운 주체100년대의 력사적진군을 힘있게 다그치고있다.오늘의 격동적인 현실은 천만군민의 정신력을 최대로 폭발시켜 선군혁명의 최후승리를 앞당기기 위한 혁명적인 사상공세의 불바람을 세차게 일으킬것을 요구하고있다.사상전의 포성을 높이 울리는데서 문학예술은 대단히 중요한 사명을 맡고있다.시대와 혁명은 문학예술이 혁명적진군의 앞장에서 벅찬 시대적흐름을 선도하고 힘있게 추동해나갈것을 그 어느때보다 절실히 바라고있다.

이 성스러운 력사적과제가 다름아닌 문학예술부문의 창작가,예술인들의 어깨우에 지워져있다.문학예술인들은 혁명적인 문학예술작품으로 천만군민의 정신력을 폭발시켜 우리 혁명의 진군속도를 비상히 높여주고 혁명의 승리적전진을 가로막으려는 원쑤들의 발악적인 책동을 혁명적인 사상문화로 짓부셔버리는 사상전의 맨 앞장에 서있다.우리 당의 사상과 정책,의도를 생동한 예술적형상을 통하여 인민들에게 감정정서적으로 파악시키고 인민들의 심장속에 깊이 심어주며 천만군민을 주체혁명위업,선군혁명위업수행에로 힘있게 고무추동하는 우리 당사상전선의 전초병,시대의 선도자로서의 중대한 력사적사명을 지니고있는것이 다름아닌 문학예술인들이다.

당의 두리에 천만군민을 더욱 철통같이 묶어세워 강성국가건설과 사회주의수호전에로 불러일으키자면 문학예술인들이 사상의 포문을 열고 명작창작의 포성을 드세차게 울려야 한다.당과 혁명,조국과 인민이 바라는 명작들을 더 많이 창작하는 여기에 선군시대 문학예술인들의 사명과 본분이 있는것이다.

시대와 혁명발전을 고무추동하는 훌륭한 명작을 창작하는가 못하는가 하는것은 창작실무적인 문제이기 전에 문학예술발전의 직접적담당자인 문학예술인들이 우리 당의 선군령도를 충직하게 받들고 주체혁명위업,선군혁명위업을 고무추동하는가 아니면 조국과 혁명,시대의 부름을 외면하고 허송세월하는가 하는 매우 심각한 사상적문제,정치적문제이다.

혁명과 건설에서 문학예술의 중대한 사명과 역할,문학예술인들에 대한 시대와 혁명의 요구를 깊이 통찰하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문학예술발전에서 새로운 전환을 이룩하기 위하여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를 소집하시였으며 대회참가자들에게 현시기 문학예술부문에서 들고나가야 할 전투적구호를 제시하시였다.

《명작폭포로 당의 선군령도를 받들자!》,이 전투적구호에는 선군시대 문학예술인들이 혁명적인 창작창조열풍으로 시대의 명작들이 폭포처럼 쏟아져나오게 하여 당의 선군령도를 받드는데서 영예로운 사명과 본분을 다해나갈것을 바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크나큰 기대와 믿음이 담겨져있다.

명작폭포,이는 문학예술부문에서 방사포의 일제사격과도 같이 잠시도 중단없이,일제히 터져나와야 할 명작창작의 드세차고 맹렬하며 줄기찬 포성을 의미한다.천만군민의 정신력을 폭발시킬수 있는 훌륭한 명작이 련이어 쏟아지게 하려는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이고 의지이다.

우리에게는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와 김정일동지께서 마련하여주신 주체적문예사상과 리론이 있으며 문학예술발전을 위한 우리 당의 구상과 의도를 가장 훌륭히 실현할수 있는 문예인의 대부대가 있다.제9차 전국예술인대회에서 제시된 전투적구호에 심장으로 화답해나선 문학예술부문 일군들과 창작가,예술인들은 모란봉악단이 창조한 혁신적인 창조기풍을 따라배우기 위한 사상전의 불바람을 세차게 일으키고있다.문학예술부문 일군들과 창작가,예술인들은 전투적구호에 담겨진 깊은 뜻을 명심하고 당의 크나큰 신임과 기대에 높은 창작실적으로 보답하기 위한 투쟁을 줄기차게 벌려나가야 할것이다.

6월 26일에 꽃펴난 혁명일화들

한때 우리 나라 축구팀의 10번선수는 《아시아축구의 별》로 명성을 떨치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각별한 사랑과 믿음을 받으며 보람찬 선수생활을 해온 그에게는 세월이 가도 잊지 못하는 뜻깊은 하루가 있다.

후날 그는 그 하루에 대하여 이렇게 썼다.

《주체61(1972)년 6월 26일이였다.

훈련에 열중하고있던 나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부르신다는 뜻밖의 련락을 받고 그이께서 계시는 곳으로 달려갔다.장군님께서는 나를 만나주시고 내가 4.25체육단 축구선수로 임명되였다는것을 알려주시였다.나는 자기 귀를 의심하였다.당시 우리 나라에는 그런 체육단이 없었던것이다.

그러는 나를 정겹게 바라보시며 그이께서는 이제 4.25체육단이 조직되였다는것을 선포하는 모임에 참가해야 하겠다고,우리 나라 축구를 하루빨리 세계적수준에 끌어올리기 위해 힘껏 노력하여야 한다고 고무해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흥분된 마음으로 모임에 참가하였던 나를 비롯한 선수들과 감독들을 또다시 만나주시고 체육선수단의 이름을 4.25라고 한것은 선수들이 1932년 4월 25일에 창건된 항일유격대원들의 수령님에 대한 충실성,불요불굴의 투쟁정신과 강한 규률성을 본받도록 하기 위해서이라고 말씀하시였다.계속하여 그이께서는 4.25체육단앞에 나서는 과업도 제시해주시였다.

우리는 배심이 든든해졌고 앞이 환히 내다보였다.4.25정신으로 팀을 강화하고 그 정신으로 경기를 진행한다면 승리는 확정적이라는 생각이 가슴가득히 차올랐다.》

참으로 우리 장군님께서 안겨주신 4.25정신이야말로 우리 축구선수들은 물론 모든 체육선수들이 영원히 간직하고 높이 발휘해나가야 할 필승의 정신이며 승리의 보검이였다.

 

주체88(1999)년 6월 26일 위대한 장군님께서 한 일군으로부터 조선인민군협주단의 사업을 료해하실 때였다.

장군님께서는 사업보고를 받으시고 잠시 생각에 잠겨계시다가 한 녀성안무가의 이름을 뇌이시며 그가 올해 8월에 생일 60돐을 맞는다고 하는데 그것을 계기로 그의 독무회를 조직해주어야 하겠다고 이르시였다.

순간 일군은 놀랐다.그도그럴것이 생일 60돐이나 70돐을 계기로 독창,독주회같은것이 진행된적은 있었어도 독무회가 진행되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것이다.

그의 심정을 헤아려보신 장군님께서는 그는 어릴 때부터 무용을 잘하여 세계적으로 소문을 낸 동무라고 말씀하시였다.

일군의 가슴은 뜨거워올랐다.

그로 말하면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품속에서 자라난 재능있는 무용배우였다.

언제인가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어린 동무가 춤을 잘 춘다고,동작이 민첩하고 멋있게 춘다고 치하해주시였으며 그를 다시 만나신 자리에서 50살까지 춤을 출수 있겠는가고 물으시였다.그때 그는 어버이수령님께 50살이 아니라 60살까지 춤을 추겠다고 결의를 다지였다.

장군님께서는 추억깊은 안색으로 일군에게 생일 60돐을 계기로 독무회를 하는것은 흔치 않은 일이라고 하시였다.

하여 그의 독무회가 성황리에 진행되게 되였다.그날 그는 무대에서 축하의 인사를 받으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였다.

그 눈물은 60청춘으로 무대를 장식하도록 하여주신 우리 장군님에 대한 다함없는 감사의 눈물이였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여러 나라 대통령에게 축전을 보내였다

안따나나리부

 나는 마다가스까르독립 54돐에 즈음하여 당신과 귀국정부와 인민에게 열렬한 축하를 보냅니다.

나는 이 기회에 우리 두 나라사이에 존재하는 친선협조관계가 끊임없이 강화발전되리라고 믿으면서 나라의 안정과 발전을 위한 당신과 귀국인민의 사업에서 성과가 있을것을 축원합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마뿌또

 나는 모잠비끄공화국 국경절에 즈음하여 당신과 귀국정부와 인민에게 열렬한 축하를 보냅니다.

나는 이 기회에 우리 두 나라사이의 전통적인 친선협조관계가 날로 더욱 강화발전되리라는 확신을 표명하면서 나라의 안정과 경제발전을 위한 당신과 귀국인민의 사업에서 보다 큰 성과가 있을것을 충심으로 축원합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누악쇼뜨

 나는 당신이 모리따니이슬람공화국 대통령으로 다시 선거된것과 관련하여 당신에게 열렬한 축하를 보냅니다.

나는 이 기회에 우리 두 나라사이에 존재하는 력사적이며 전통적인 친선관계가 더욱 강화발전되리라는 확신을 표명하면서 나라의 발전과 번영을 위한 당신의 책임적인 사업에서 보다 큰 성과가 있을것을 충심으로 축원합니다.

전선과 후방으로 오고간 편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우리 인민은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의 시련속에서 자기가 세운 새 제도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바쳐 싸웠습니다.》

우리앞에 두통의 편지가 있다.

하나는 불타는 고지에서 한 조선인민군 전사가 1951년 새해를 맞고 고향에 보낸 편지이다.

《아버지!

승리의 새해를 축복합니다.…

저는 전우들과 함께 적을 무찔러 앞으로 진격을 계속하면서 필승의 새해를 맞이하였습니다.

저는 오늘도 전호속에서 〈남부끄럽지 않게 나라를 위하여 용감히 싸우라!〉고 하신 아버지의 말씀을 가슴깊이 간직하고있습니다.

지난번에 적들이 반돌격하여왔을 때 저는 번개같이 달려나가 총창으로 단번에 열놈이나 거꾸러뜨렸습니다.

앞으로도 눈앞에 나타나는 적이면 그 수가 얼마이건 놈들에게 복수의 총탄을 퍼부으며 몸을 바쳐 육박전으로 찔러죽이겠습니다.

원쑤들과의 싸움에서 더욱 용감하고 대담하겠습니다.…》

또 한통의 편지는 1950년 11월에 만포군 고산면 남상리(당시)의 한 녀인이 전선에서 싸우는 둘째아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영아!

나는 네가 이 시각에도 그 마귀같은 미국놈들과 총부리를 겨누고 용감히 싸우고있으리라고 믿는다.

밉살스러운 미군비행기들이 지난 열이튿날 산간벽지인 우리 남상리를 폭격하여 덕길이네 집과 여러 집을 불살랐단다.

나는 그놈들의 비행기를 볼 때마다 이가 갈리여 못 견딜 지경이다.

며칠전에 인민군대가 고사포로 미국놈비행기를 떨구어버리는것을 보고 어찌나 마음이 씨원하던지 막 손벽을 쳤다.

너의 형 인영이도 미국놈들을 모조리 내몰아야 한다고 하면서 인민군대에 입대하였다.

나는 너희들을 인민군대에 보낸 영예를 한아름 안고 아무러한 걱정없이 힘차게 살아가고있다.

올해농사도 잘되여 강냉이현물세만도 지난해보다 다섯가마니나 더 바쳤고 전선의 승리를 위하여 애국미 열가마니를 헌납하였단다.

얼마전 전선으로 출동하는 인민군대들이 우리 집에서 하루밤 묵어갔는데 나는 너희들을 본것만치나 반가와서 있는 힘과 정성을 다하였다.

마지막으로 전선의 승리를 위하여 애쓰는 이 에미의 노력을 헛되이 말고 그 밉살스러운 미국놈들을 한놈도 남기지 말고 하루바삐 쳐부셔달라는것을 신신당부한다.

부디 몸건강히 잘 싸워다오.》

고향으로 보낸 한 인민군전사의 편지,전선으로 날아간 후방의 한 어머니의 편지!

편지의 내용이며 문투로 보아 전선에서 싸우는 수많은 병사들중 한사람,평범한 후방인민들중 한 녀성임을 알수 있다.

소박한 병사의 편지,후방의 한 어머니의 글줄이 우리의 마음속에 커다란 충격의 파문을 일으키는것은 무엇때문인가.

무릇 편지에는 가지가지의 사사로운 감정들과 남모르는 사연들,개인적인 부탁들이 담긴다.

하지만 그들은 엄혹한 전쟁의 시련속에서 편지를 쓰면서도 결코 자기들이 겪는 애로와 난관이나 혈육들만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범상한 글줄마다에 한없이 숭고하고 열렬한 사상감정이 맥박치고있으니 그것은 바로 원쑤격멸의 정신,조국에 대한 불같은 사랑이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의 3년간 전선에서 후방으로,후방에서 전선으로 얼마나 많은 편지들과 우편엽서들이 날아가고날아왔으랴.그 색날은 편지들을 한장두장 다 펼쳐보지 않아도 우리는 가슴뜨겁게 느낄수 있다.그 하많은 편지들에 굽이친 하나의 생각,하나의 열망을.

어찌하여 우리 군대와 인민에게는 자기자신의 생명,피를 나눈 부모형제들의 생사보다도 조국의 한치 땅,풀 한포기,나무 한그루가 더 귀중하였는가.

그것은 그들모두가 나라의 운명속에 개인의 운명도 있음을 뼈저리게 체험한 새 조선의 산아들이였기때문이다.그들의 기쁨과 행복,슬픔과 아픔은 바로 조국의 생사운명과 혈맥처럼 이어져있었기때문이다.

그렇다.

가렬한 전쟁의 포화속에서 속심도 타산도 각각인 오합지졸의 고용병무리가 단 한발 포탄의 작렬에도 산산이 흩어질 때 우리 군대와 인민은 바로 이런 하나의 조국결사수호의 의지로 철통같이 뭉치였으며 침략자들과의 판가리결전에서 청춘도 생명도 아낌없이 바치였다.

전선과 후방으로 오고간 편지!

이 소박한 편지들에 1950년대에 우리 군대와 인민이 이룩한 위대한 전승의 비결이 비껴있다.

미제와의 최후결산을 앞둔 이 땅에서 군대와 인민의 편지는 오늘도 조국보위초소에서 일터와 마을로,일터와 마을에서 조국보위초소로 끊임없이 오고간다.영원한 승리의 진리를 담고.

큰 실효를 거둔 포전이동해설강의

모내기전투를 앞둔 어느날 군계급교양관강사들의 강의합평회에 참가하였던 강령군당위원회 선전선동부의 한 일군은 선뜻 자리를 뜰수 없었다.강사는 손세까지 써가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같은 방식을 되풀이하는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것이다.

강령군은 지역상 연평도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곳에 위치하고있다.

연평도포격전이 일어났을 때 이곳 인민들은 인민군군인들을 적극 원호하여 군민대단결의 위력을 힘있게 과시하였다.그때로부터 여러해가 흘렀지만 이곳 당원들과 근로자들은 그날을 자주 추억하고있다.

사회주의를 수호하자면 쌀이 많아야 한다.

당원들과 농업근로자들이 농업전선을 사회주의수호전의 전초선으로 여기도록 하자면 계급교양을 한번 해도 대중의 심금을 울리도록 해야 한다.

문제를 이렇게 본 군당위원회는 계급교양사업을 종전의 방식에서 벗어나 포전이동해설강의로 전환시키였다.

군당위원회는 모든 정치사업이 포전에서 진행되고 더우기 분산적으로 일하고있는 농촌실정에 맞게 군계급교양관강사들을 내세워 이동해설강의를 진행하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사상사업을 오분열도식,행사식으로가 아니라 일상적인 사업으로 때와 장소를 가림없이 진행하여 사람들이 공기를 들이마시듯이 당의 사상을 체득할수 있게 하여야 합니다.》

군당위원회 선전선동부의 지도밑에 군계급교양관강사들은 계급교양해설강의안에 보다 새로운 자료,농업근로자들이 알고싶어하는 문제를 담기 위해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군당책임비서 김봉현동무는 이 사업을 당책임일군이 해야 할 몫으로 여기고 직접 틀어쥐고 밀고나갔다.

바쁜 속에서도 강사들의 시범강의를 빠짐없이 들어보았고 필요한 조언도 주었다.군계급교양관강사들에게 출력이 높은 휴대용증폭기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주었다.하여 그들이 도에서 진행된 계급교양관강사들의 경연에서 우승을 한 단위의 강사들답게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계급의식으로 무장시키는데서 선도자가 되도록 이끌어나갔다.

모내기가 시작되자 군계급교양관강사들은 이동강의판과 배낭식증폭기를 가지고 농업근로자들이 일하는 곳이라면 그 어디라도 가야 한다는 립장에서 자전거로 하루에 70리,지어는 100리길을 달렸다.

포전강의의 특성에 맞게 강의도 짧게,농업근로자들이 알아들을수 있게 통속적으로 진행하였다.

-남조선괴뢰역적패당은 연평도포격전에서 되게 얻어맞고 정신을 차릴 대신 우리 공화국의 체제와 존엄을 헐뜯는 반공화국모략소동에 더욱 열을 올리고있다.남조선전역이 《세월》호대참사를 빚어내고 남조선을 최악의 인권불모지로 만들어놓은 괴뢰역적패당에 대한 치솟는 분노로 끓고있다.끊임없이 벌어지는 남조선 각계층 인민들의 대중적항의투쟁은 살인악마 박근혜역도를 권력의 자리에서 끌어내릴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으려는 민심의 강렬한 지향과 의지의 반영이다.…

강사들의 포전강의의 실효는 컸다.강의가 끝날 때마다 강의장소는 미제와 계급적원쑤들을 단죄하는 성토장으로 화하군 하였다.말그대로 농업근로자들의 심장에 강렬한 복수심을 만장약해주는 계기로 되였다.그것은 그대로 모내기전투실적에서 나타났다.지난해보다 모내기를 보름이나 앞당겨 끝낸 사실이 그것을 증명해주고있다.

군당위원회가 군계급교양관강사들을 내세워 진행한 포전이동해설강의는 계급교양사업에서 격식과 틀을 마슨 교양형식의 하나라고 말할수 있다.

[공식문건] 미제와 남조선괴뢰들의 6.25전쟁도발은 천추에 용납 못할 대범죄이다

미국과 리승만괴뢰도당이 이 땅에 침략전쟁의 불을 지른 때로부터 64년이 되였다.

청소한 우리 공화국을 요람기에 압살하고 세계제패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미제가 도발한 지난 조선전쟁은 조선민족에 대한 대학살을 감행하고 조선반도를 초토화한 가장 야만적이고 파괴적인 전쟁이였다.

1950년 6월 25일 리승만역도를 사촉하여 창조와 건설의 동음으로 약동하고 인민들의 행복의 웃음소리 넘치던 우리 공화국을 불의에 침공한 미제는 우리 인민들을 가장 잔인한 수단과 방법으로 무참히 학살하고 이 땅을 페허로 만들었다.

《닥치는대로 죽이라.》,《북조선을 재더미로 만들어 이 지구상에서 없애버리라.》,바로 이것이 미제가 조선전쟁에서 내든 피비린내나는 살륙과 파괴의 명령이였다.

이에 따라 미제침략자들과 그 추종세력들은 남녀로소,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우리 인민을 쏘아죽이고 불태워죽이고 목매달아죽이였으며 생매장해죽이였다.

침략과 인간도살에 쩌들대로 쩌든 극악한 살인마들에 의해 120여만명의 무고한 평화적주민들이 무참히 학살당하여 강산이 피로 물들고 미제공중비적들이 무차별적으로 쏟아부은 근 60만t의 폭탄과 나팜탄에 의해 공화국북반부는 집 한채,벽돌 한장 성한것 없는 말그대로 재더미로 화하였다.

인류력사는 제2차 세계대전시기 히틀러파쑈도당이 감행한 야수적만행을 가장 잔인하고 치떨리는 죄악으로 기록하고있지만 미제양키들이 조선전쟁에서 저지른 만행은 그 야만성과 잔인성,포악성에 있어서 히틀러파쑈도배를 훨씬 릉가하였다.

그러나 침략자들은 나라의 자주권을 수호하기 위해 결사항전에 떨쳐나선 영웅적인민을 굴복시킬수 없었으며 결국은 우리 군대와 인민앞에 무릎을 꿇고 항복서에 도장을 찍지 않으면 안되였다.

미제는 조선전쟁에서 당한 쓰디쓴 참패에서 교훈을 찾을 대신 우리 공화국에 대한 침략야망을 버리지 않고 새 전쟁도발책동을 더욱 악랄하게 감행하여왔다.

미제는 정전협정에 서명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남조선에 핵무기를 끌어들여 극동최대의 핵화약고로 전변시켰으며 년대와 세기를 넘어오며 무분별한 군사적도발과 핵전쟁책동을 광란적으로 벌려 조선반도정세를 전쟁접경에로 치닫게 하였다.

남조선괴뢰들은 미국에 추종하여 북침야망을 실현해보려고 반공화국대결과 전쟁책동에 더욱 미쳐날뛰고있다.

조선반도의 평화와 나라의 통일을 위한 우리의 공명정대하고 합리적인 제안들을 외면하고 대결소동에 열을 올리다 못해 《핵선제타격》과 《평양점령》까지 떠벌이며 우리 공화국에 대한 핵위협과 침략기도를 로골적으로 드러내고있는 도발자,침략자들이 바로 미국과 괴뢰패당이다.

지어 미제와 그 앞잡이 괴뢰군사깡패들은 우리 민족에게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재난을 들씌운 6.25침략전쟁을 《북의 남침을 저지한 전쟁》으로 외곡하면서 저들의 전쟁범죄를 극구 찬미하는 해괴한 추태까지 부리고있다.

그러나 제반 사실은 미제와 남조선괴뢰패당이야말로 조선전쟁의 도발자이며 조선반도의 평화를 파괴하는 장본인이라는것을 여실히 증명해주고있다.

조선평화옹호전국민족위원회는 조선침략전쟁을 도발하고 우리 민족에게 참혹한 재난을 들씌웠으며 이 땅에 또다시 전쟁의 참화를 몰아오려고 발광하고있는 미제와 남조선괴뢰패당을 온 민족의 이름으로 준렬히 단죄규탄한다.

미제와 그 주구 괴뢰패당의 무분별한 반공화국전쟁책동을 수수방관한다면 우리 민족은 불피코 제2의 6.25참화를 면할수 없다.

오늘 조선반도의 평화는 철두철미 우리의 선군정치와 자위적인 핵억제력이 있음으로 하여 보장되고있다.

미제와 괴뢰호전광들이 민족의 자주권을 수호하기 위한 우리 공화국의 정의의 억제력과 침략자,도발자들을 격멸소탕하기 위한 우리 혁명무력의 단호한 의지와 자위적조치에 대해 《위협》이니,《도발》이니 하고 걸고드는것은 황당무계하고 파렴치한 망동이다.

우리 군대와 인민은 미제와 괴뢰호전광들이 신성한 우리 조국땅에 단 한점의 불꽃이라도 튕긴다면 산악같이 일떠서 침략자들을 무자비하게 격멸소탕하고 이 땅에서 전쟁의 화근을 송두리채 들어낼것이다.

북과 남 전체 조선민족은 삼천리강토우에 또다시 핵전쟁의 불구름을 미친듯이 몰아오는 미제와 괴뢰역적패당에게 준엄한 철추를 내리기 위한 거족적인 성전에 분연히 떨쳐나서야 한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들과 세계평화애호인민들은 조선반도의 평화를 파괴하는 장본인이 누구인가를 똑바로 보고 호전광들의 무모한 침략전쟁기도를 단호히 저지파탄시켜야 한다.

미국과 괴뢰들은 제2의 6.25전쟁도발이 가져올 파멸적후과를 똑바로 알고 함부로 날뛰지 말아야 한다.

참관사업이 있은 며칠후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당원들과 근로자들속에서 계급교양을 더욱 강화하여야 하겠습니다.》

지난 6월 중순 어느날 저녁이였다.

그날도 작업반별생산실적을 알아보는 평양측정계기공장 초급당위원회 부비서 김정수동무의 얼굴에는 흡족한 기색이 어리였다.각 작업반들의 실적들이 눈에 띄게 치달아오르는것이 알리였다.

확실히 며칠전 중앙계급교양관에 대한 참관을 조직한것이 큰 효과를 내고있었다.

참관이 있은 날 불구대천의 원쑤 미일침략자들과 계급적원쑤들에 대한 치솟는 적개심을 금치 못하면서 놈들을 족치는 심정으로 맡겨진 생산과제를 두몫,세몫씩 해제낄 결의들을 다진 종업원들이였다.

그런데 프레스작업반의 실적에 이르러 초급당일군의 눈은 뚝 굳어졌다.어느결에 실적이 처지고있었던것이다.

(참관도 함께 하고 결의도 꼭같이 다진 그들이 웬일일가?)

이런 생각을 더듬으며 온밤 잠 못 들던 그는 다음날 아침 첫 시간에 프레스작업반 현장으로 곧바로 나갔다.계급교양의 실효가 그 어떤 말보다도 실천에서 뚜렷이 나타나야 한다는것을 념두에 둘 때 시급히 대책할 문제가 있다고 보았던것이다.

작업반원들과 한데 어울려 그들과 일하면서 실태를 구체적으로 알아본 초급당일군은 자기의 예측이 틀리지 않았다는것을 포착하였다.

참관후 며칠동안 왁왁 하면서 기세좋게 나가던 그들이 불리한 조건이 조성되자 손맥을 놓기 시작한것이였다.게다가 전투의 정황에 맞게 초급일군들이 사회주의수호자로서의 자각을 높여주기 위한 사상교양사업을 기동적으로 따라세우지 못하고있었다.

초급당일군은 작업반초급일군들을 책망하지 않았다.말보다 실천으로 초급일군들을 이끌었다.

작업반원들과 자리를 같이한 그는 참관사업이 진행된 이후 생산실적이 계속 오르는 단위들의 실례를 들어가며 일깨워주었다.

조건이 어렵기는 그 단위들도 마찬가지이다,문제는 조건에 있는것이 아니라 각오에 있다,그들처럼 멸적의 의지로 가슴 불태우며 일하면 못해낼 일이 없다,자,우리 식 사회주의를 말살하려고 날뛰는 놈들이 기절초풍할 정도로 다시 일어나 본때를 보이자고 호소하였다.

이에 고무된 강정남,주명학,석명진동무들을 비롯한 작업반원들은 저마다 주먹을 흔들며 떨쳐일어났다.그리고 원쑤들에 대한 치솟는 증오로 가슴끓이며 불꽃튀는 전투를 벌리였다.

일시 처지던 작업실적은 놀라울 정도로 쑥쑥 뛰여올랐다.

작업반초급일군들은 참관사업이후 일정한 성과가 있다고 하여 마음을 놓고 분위기를 고조시키지 못하였던 자신들을 뉘우치였다.

민영철동무를 비롯한 작업반초급일군들이 분발하여나서니 당원들과 종업원들의 생산열의는 더욱 높아졌다.

이날 작업반에서는 전날 미진된 과제를 수행하면서도 그날계획을 넘쳐 수행하게 되였다.

이렇게 되여 공장의 모든 단위들에서 원쑤격멸의 함성을 높이 울리며 날에날마다 높은 실적만을 기록하게 되였다.

참관사업이 있은 며칠후 종업원들의 실천을 놓고 보다 큰 실효가 나타나도록 계급교양을 심화시켜나간 이곳 초급당일군들의 사업은 혁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