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왕재산혁명사적지를 찾은것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을 시작하신 50돐을 맞게 된다는 기쁨으로 여기 최북단의 온성땅도 끝없는 환희로 들끓고있던 때였다.언제 봐야 군의 첫 새벽을 먼저 맞군 하는 책임일군들로부터 강의수준을 높이기 위해 남모르게 애를 쓰는 왕재산혁명박물관의 나어린 처녀강사에 이르기까지,백수십명의 부모없는 아이들을 친자식으로 맡아 어엿하게 키워가는 선군시대 모성영웅만이 아니라 최우등의 자랑을 안고있는 소년단원들도 군안의 그 누구나 어버이장군님에 대한 다함없는 경모의 정으로 가슴 불태우고있었다.
온성사람들이 류다른 감흥속에 6월 19일을 기다린것은 여기가 항일무장투쟁시기 첫 국내당조직이 태여난 고장이기때문만이 결코 아니였다.위대한 장군님께서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을 시작하신 후 진행하신 지방당사업에 대한 현지지도자욱이 소중히 아로새겨져있는 곳이 바로 여기 온성군당위원회이다.더우기 력사적인 조선로동당 제3차 사상일군대회에서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를 우리 당의 최고강령으로 선포하시고 혁명전통교양을 실속있고 활발하게 벌릴데 대하여 강조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 혁명전통교양의 훌륭한 거점을 마련하시기 위해 정력적인 헌신의 자욱을 수놓으신 영광의 땅이 다름아닌 조국의 최북단 온성군의 왕재산리인것이다.
왕재산대기념비의 건립,그것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의 요구에 맞게 혁명전통교양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키시기 위하여 천재적인 예지와 불멸의 혁명령도로 이룩하신 력사적장거였다.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는 나라와 민족의 만년재보로서 인민대중을 수령이 이룩한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으로 튼튼히 무장시키며 수령이 개척한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해나가도록 교양하는데서 가장 큰 감화력을 가진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혁명전통은 혁명의 명맥을 이어주는 더없이 귀중한 사상정신적재보입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왕재산대기념비위치를 정해주신 장소에서 우리와 만난 왕재산리의 김종철동무는 왕재산회의와 왕재산대기념비 그리고 제2청산리로 불리우는 왕재산리야말로 왕재산의 3대자랑이라고 할수 있다고 하면서 자기 고장 자랑을 무척 하는것이였다.척 보기에는 수수한 농장원같아도 자기 고장,자기 단위에 새겨진 백두산위인들의 령도업적을 가장 큰 자랑으로 여기며 손금보듯이 꿰들고있을뿐아니라 하나라도 더 소개하기 위해 마음을 쓰는 그가 무척 돋보였다.
우리는 정미순 왕재산혁명박물관 교양과장의 해설을 들으며 왕재산혁명사적지를 돌아보았다.그는 우리에게 먼저 왕재산대기념비에 모셔진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이 왕재산을 배경으로 서게 된 사연에 대해 알려주면서 대기념비건설과정 하나만 놓고보아도 우리 장군님처럼 고결한 충정과 천재적인 예지,비상한 조직적수완과 완강한 실천력을 지닌 특출한 정치가,걸출한 위인은 아마도 세상에 없을것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혁명전적지,혁명사적지건설에서 새로운 전환이 일어나던 1970년대의 잊지 못할 나날들을 돌이켜보았다.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가 전면에 나섰던 그때 위대한 장군님께서 주체의 혁명전통을 옹호고수하고 계승발전시키기 위하여 특별히 중요하게 관심을 돌리신 문제의 하나가 바로 어버이수령님의 불멸의 혁명업적이 깃들어있는 혁명전적지,혁명사적지들을 잘 꾸리고 그를 통한 교양을 강화하는것이였다.
이미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60돐을 맞으며 만수대언덕에 수령님의 동상을 높이 모신 만수대대기념비를 최상의 수준에서 훌륭히 일떠세우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련이어 당창건 30돐을 맞으며 위대한 수령님의 조국해방업적이 수많이 깃든 조국의 최북단 왕재산에 기념비를 건립하고 혁명사적지를 꾸릴것을 발기하시였다.그리고 강력한 건설력량도 무어주시고 설비와 자재보장대책,정연한 건설지휘체계도 세워주시였으며 모든 도들과 중앙기관들에서 이 사업을 적극 지원하도록 하시였다.
그러던 주체63(1974)년 5월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왕재산혁명사적지건설장을 몸소 찾아주시였다.친히 현지에까지 나오시여 대기념비건설의 기본원칙을 명철하게 밝혀주시고 그 위치까지 바로잡아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력사적인 현지지도는 왕재산혁명사적지건설을 힘있게 밀고나가는데서 중요한 계기로 되였다.
우리는 답사자들,참관자들과 함께 왕재산혁명사적지를 돌아보면서 위대한 장군님께서 왕재산혁명사적지를 훌륭히 꾸리기 위해 얼마나 크나큰 심혈을 기울이시였는가를 더욱 잘 알게 되였다.
주체64(1975)년 3월 어느날 두번째로 건설장을 찾으시였을 때에도 진눈까비에 얼어붙은 미끄러운 모형대돌우에까지 몸소 오르시여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을 가장 정중히 모실 위치를 정해주신 위대한 장군님,친히 왕재산마루의 회의장소에까지 오르시여 답사생들이 어버이수령님께서 걸으신 조국진출로정대로 답사를 하도록 그 로정까지 정해주시였고 수령님께서 항일의 날에 걸으신 조국진군의 길을 이어 우리 함께 걸어내려가자고 하시며 가파로운 산길을 앞장에서 헤치신 그이의 끝없는 헌신의 자욱을 어찌 다 전할수 있으랴.
그날의 사연깊은 로정을 따라 왕재산대기념비앞에 다시 이르렀을 때 교양과장은 어버이수령님의 동상 대돌에 새겨진 1975년 10월 13일이라는 글발을 가리키면서 위대한 장군님께서 세번째로 왕재산을 찾으시였던 날이라고,이날 그이께서 손수 동상제막포를 벗기시여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을 제막하여주시였다고 하였다.그러면서 이렇게 왕재산대기념비건설을 위해 세차례나 자기네 온성군을 찾으시였던 우리 장군님이시였지만 그때마다 지척인 회령땅에만은 한번도 들려보시지 못하였다고 못내 가슴아파하는것이였다.누구나 치미는 격정을 금치 못해하였다.우리 장군님께서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의 요구에 맞게 혁명전통교양을 강화하는데서 왕재산대기념비건설이 얼마나 중요한 의의를 가지였으면 그 나날 세차례나 온성땅을 찾으시면서도 김정숙어머님의 고향 회령에 한번도 들려보시지 못하시였으랴.
문득 한 일군이 들려주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주체90(2001)년 7월 어느날 외국방문의 길에 오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특별렬차로 두만강철다리를 넘으실 때 사색깊은 눈길로 출렁이는 두만강을 바라보시며 김정숙어머님의 고향 회령에 대하여 뜨겁게 추억하시였다.그러시고는 자신께서도 어머님이 그리워질 때마다 회령에 가보고싶었지만 일감이 너무 많아 시간을 낼수 없었다고 하시면서 언제인가 왕재산혁명사적지건설을 지도하러 온성에 갔을 때에도 시간이 없어 회령에 들려보지 못하였는데 그때 회령을 지나면서 울리는 기적소리가 가슴을 파고들었다고,그때의 일도 하나의 추억으로 남았다고 저으기 갈리신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사랑하는 어머님의 고향에 잠간 들리시는것마저도 뒤로 미루시고 우리 당의 혁명전통을 더욱 빛내이시기 위해 왕재산에로의 현지지도길을 순간도 지체하지 않으신 위대한 장군님,
참으로 왕재산혁명사적지는 우리 당의 성스러운 혁명전통이 어떻게 마련되고 빛나게 계승되는가를 온 세상에 소리높이 전하는 력사의 산 증견자인것이다.
우리 당의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을 옹호고수하고 전면적으로 계승발전시켜나가는것은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의 요구에 맞게 주체혁명위업을 승리적으로 전진시키기 위한 근본담보의 하나이다.
대를 이어 계속되는 혁명에는 자기의 근본이 있고 혈통이 있다.혁명이 자기 궤도를 따라 끊임없이 전진하자면 뿌리로 되는 바탕을 잊지 말아야 하고 그 순결성을 고수해야 한다.
왕재산을 내리는 길에서 우리는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조선소년단창립 68돐에 즈음하여 만경대혁명학원을 방문하시였다는 소식에 접하였다.
백두에서 개척된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려는 굳은 결심과 의지를 안으시고 삼지연으로,마두산으로 향하시였던 그 걸음을 우리 혁명의 피줄기를 억세게 이어갈 핵심골간들이 육성되는 만경대혁명학원에로 이어놓으신 경애하는 원수님,
조선혁명이 년대를 이어가며 순결하게 고수하는 백두의 혁명전통,이 줄기찬 피줄기,주체의 혈통이야말로 강성국가건설에 활력을 부어주는 삶과 투쟁의 원줄기이며 김일성민족,김정일조선의 더없이 귀중한 교범이다.
항일혈전사를 책에서 배운 세대들이 새로운 주체100년대의 주인공,주력군을 이룬 오늘의 강성국가건설대전에서 그 진리성과 의의가 더더욱 부각되는 백두의 혁명전통은 우리 혁명의 종국적승리를 이룩하기 위한 만년담보인것이다.
그것을 증명하듯 왕재산하늘가에 저녁노을이 붉게 비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