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63(1974)년 5월 중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왕재산대기념비건설장을 현지에서 지도하시였다.
당시 왕재산대기념비기초공사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왕재산회의를 진행하신 왕재산이 아니라 그 옆봉우리인 장덕산에서 진행되고있었다.
공사정형을 료해하신 장군님께서는 왕재산대기념비는 수령님께서 항일무장투쟁시기 력사적인 회의를 지도하신 장소가 있는 왕재산의 중턱에 세워야 하며 왕재산대기념비를 왕재산옆봉우리에 세우면 사람들이 그곳을 왕재산으로 잘못 생각할수 있다는데 대하여 일군들을 깨우쳐주시였다.자기들의 잘못된 생각을 뉘우치고있는 일군들에게 기념비건설에서 기본원칙은 기념비를 사적지에 접근시키는것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왕재산대기념비는 어버이수령님께서 항일무장투쟁시기 력사적인 회의를 지도하신 장소가 있는 왕재산의 중턱에 웅장한 모습으로 건립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왕재산대기념비건설장을 두번째로 찾으신것은 주체64(1975)년 3월 중순이였다.
건설현장에 이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을 모실 위치와 높이에 대하여 알아보시였다.
일군들의 대답을 들으신 그이께서는 수령님의 동상에 탑의 그늘이 질수 있다는것과 동상이 탑과 너무 가까와 두드러지게 보이지 않게 된다는데 대하여 지적하시였다.
그러시고 동상대돌을 더 높여야 하며 수령님의 동상을 앞으로 내다모셔야 한다고 명철하게 가르쳐주시였다.
여간만 미끄럽지 않은 모형대돌우에까지 오르시여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왕재산혁명사적지건설에서 수령님의 동상위치를 바로 정하는 문제가 제일 중요하다고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오늘과 같이 왕재산대기념비에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을 훌륭하게 모실수 있은것은 전적으로 위대한 장군님의 천재적인 예지와 고결한 충정을 떠나 생각할수 없다.
주체64(1975)년 10월 중순 어느날이였다.
온성에 오시여 곧바로 왕재산대기념비로 가신 위대한 장군님께서 왕재산혁명박물관에 도착하신 때는 해질무렵이였다.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을 몸소 제막해주신데 이어 대기념비를 오랜 시간 구체적으로 돌아보시였으며 나라의 최북단을 비롯하여 군안의 여러곳에 꾸려진 혁명사적지,혁명전적지들과 국경관문 남양을 현지지도하시고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신 우리 장군님이시였다.
박물관에서 그이께서는 잠시의 휴식도 없이 진렬실의 벽면과 바닥에 전시된 수천점의 사적물들과 자료들을 빠짐없이 살펴보시였다.그 과정에 박물관에는 과학적인 자료를 많이 전시하여 당시의 혁명투쟁력사를 자료적으로 론증할수 있게 해야 한다고 일깨워주시고 구체적인 방도도 가르쳐주시였다.
우리 장군님께서 왕재산혁명박물관 일군들과 강사들의 한결같은 절절한 소망을 헤아리시여 은정깊은 사랑을 부어주시고 그곳을 떠나신 때는 사위가 어둠속에 깊숙이 잠긴 시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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