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축산은 어느 단위에서나 다 하여야 합니다.》
2중3대혁명붉은기 대동강탄광은 평안남도의 탄광들중에서 어제도 오늘도 한본새로 석탄생산을 잘하는 단위로 소문이 났다.그 중요한 비결의 하나가 지난 18년동안 당의 축산정책을 철저히 관철하여 후방사업에서 혁신을 일으킨데 있다.비록 작은 탄광이지만 해마다 토끼,염소,양,소,돼지 등 수천마리의 집짐승을 길러 탄부들에게 매달 고기와 젖가공품을 공급함으로써 당의 축산정책의 생활력을 높이 발휘하고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이 성과는 온 탄광이 일욕심많은 일군이라고 자랑하고있는 지배인 민병주동무의 사업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다.당정책옹위전에서 그가 발휘한 투쟁기풍은 우리 일군들에게 무엇을 깨우쳐주는가.
당정책의 운명은 일군들의 어깨우에 지워져있다.이렇게 놓고볼 때 결사관철대오의 1번수가 되여야 한다는 각오로 돌파구를 열어나간 이곳 지배인의 경험은 시사적이다.
지금으로부터 18년전 봄 탄광에서 처음으로 토끼기르기를 시작한 때였다.그런데 뜻밖에도 토끼들이 무리로 쓰러지는 현상이 련이어 나타났다.
일군들은 눈앞이 캄캄해졌다.관리공들은 주저앉아 일어날념을 못하였으며 일부 종업원들은 일군들이 되지도 않을 일을 크게 벌려놓고 고생만 시킨다고,고기를 안먹어도 좋으니 들볶지 말아달라는 의견까지 제기하였다.
응당 그럴수 있었다.허리띠를 조이면서 차고우에 한층을 더 올려 토끼우리를 짓고 련일 먹이풀을 장만하느라 많은 땀을 흘렸는데 헛고생이 되였던것이다.한순간에 잃은것을 한해 지어 몇해동안 노력해도 봉창하기 힘든것이 바로 축산이 아닌가.
민병주동무는 밀려드는 자책감으로 가슴이 아팠다.토끼우리를 짓고 종자와 먹이보장대책을 세워준것으로 지배인으로서 할 일을 다한것으로 여기면서 사양관리를 관리공들에게만 맡겨놓고 등한히 하였던것이다.
중요한 원인은 토끼기르기가 단순한 후방사업이 아니라 당정책옹위전,사회주의수호전이라는 관점에서 일하지 못한데 있었다.
드디여 그는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내가 결사관철대오의 1번수가 되자.
그는 즉시 위대한 장군님의 력사적인 로작 《풀먹는집짐승을 많이 기를데 대한 당의 방침을 철저히 관철하자》를 다시금 깊이 연구하는 과정에 풀먹는집짐승을 전군중적운동으로 기르자면 집짐승기르기에 대한 과학기술보급사업을 잘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래야 집짐승기르기를 과학적으로 할수 있다고 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강령적교시에서 문제해결의 열쇠를 찾아쥐였다.
과학축산의 래일을 내다보며 작전하고 실천해야 큰 전진을 이룩할수 있다.이런 주견을 가지고 전개한 지배인의 사업에는 교훈적인 문제들이 있다.
과학축산의 성과 역시 인재가 결정하기마련이다.이것을 명심한 지배인은 해당 부문을 찾아가 안타까운 심정을 터놓고 절절하게 호소하였다.끝장을 볼 때까지 같은 걸음을 반복해가는 그의 불같은 정열에 손을 든 그들은 전문학교를 졸업한 젊은 축산기수를 보내주었다.
그러자 종업원들은 어지간히 실망하는 기색이였다.경험있는 축산기사가 오면 과학기술보급사업과 고기생산에서 혁신이 일어날것이라고 기대했던것이다.
그러나 지배인은 그를 평성수의축산대학의 일하면서 배우는 교육체계에 망라시켜 기사로 키우는 한편 그가 터득한 기술을 탄광에 보급하고 기술지도사업도 할수 있도록 하였다.
지배인은 인재가 자기의 기술을 남김없이 발휘하게 하는 사업도 놓치지 않았다.토끼의 비루스성출혈병예방약을 자체로 만들어 리용한 사실이 그 실례이다.전염속도가 매우 빠른 이 병에 걸린 토끼의 죽는률은 98%에 달하였다.전망적으로 2천마리의 토끼를 기르자면 이 예방약을 자체로 생산해야 실리가 있다고 단정한 지배인은 대학공부를 하고있는 축산기수가 이것을 졸업론문과제로 선정하도록 이끌어주었다.그리고 제조실과 현미경 등을 보장해주고 아침저녁 들리다싶이 하면서 애로되는것을 풀어주었다.그리하여 그는 이 비루스에 감염된 토끼의 내장을 리용하여 예방약을 제조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원가를 줄이면서도 고기생산을 늘이는데 기여할수 있었다.
겨울철먹이생산보장을 위해 변성먹이,효모먹이를 자체로 만들 때에도 지배인을 비롯한 일군들은 자재해결만이 아니라 제작전투에도 뛰여들어 설비들을 성과적으로 만들어내게 하였다.특히 강냉이짚,콩짚 등을 자체로 확대배양한 토착미생물균으로 처리하여 생산한 발효먹이는 토끼는 물론 염소,양에게도 좋은 먹이로 되였다.
해마다 봄부터 가을까지 풀먹이를 장만하는 사업의 선두에도 지배인을 비롯한 일군들이 섰다.경쟁도표에 자기 이름부터 써넣고 종업원들의 앞장에 서서 새벽에 산판에 올라 벤 풀을 져들이였다.해마다 400여t의 강냉이짚을 마련하는 전투도 지배인을 비롯한 일군들이 기수가 되여 성과적으로 해내군 하였다.
1번수의 자욱은 비록 크지 않아도 전대오가 따라서게 하였다.탄광에서는 지난 기간 한해에 1 000마리이상의 토끼를 길러 탄부들에게 토끼곰을 해먹이였으며 염소를 150마리로 늘여 해마다 1t이상의 고기와 8t의 젖을 생산하여 탄부들과 유치원에 공급하게 되였다.
당의 축산정책의 생활력이 높이 발휘되게 하자면 일군들이 항구적으로 틀어쥐고 내밀어야 할 사업들이 있다.여기서 지배인 민병주동무가 중시하고 실천한 두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가 축산에서 자만하면 퇴보한다는 교훈을 찾고 계속 혁신한것이다.
한가지 사실을 놓고보자.탄광에서 해마다 토끼,염소기르기를 잘하고있는 소식이 퍼지자 도처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경험을 배워갔으며 주인들은 어딜 가나 받게 되는 칭찬에 무안할 정도였다.
이런 때 당보에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어느 한 인민군부대의 축산기지를 현지지도하시면서 풀먹는집짐승기르기에서 일대 비약을 일으킬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신 소식이 실리였다.
지배인은 자책감에 휩싸였다.비약은 질적변화를 의미한다.그런데 우리는 해마다 같은 종수와 마리수의 풀먹는집짐승을 기르면서도 다른 단위보다 앞섰다는 현 상태에 만족해하고있다.축산도 제자리걸음을 하다가는 종당에 주저앉게 될것이 아닌가.
찾은 교훈은 심각하였다.고기생산문제가 단순한 실무적사업이 아니라 당정책의 생활력을 높이 발휘하여 당의 권위를 옹호하는 중요한 정치적사업이라는것을 심장에 쪼아박지 못한데 있었다.
당의 요구대로 비약하자면 자만함이 없이 새로운 목표를 세워야 하였다.
지배인은 당조직과 토의한 다음 양과 함께 소를 기를 목표를 제기하였다.문제를 정책적으로 보고 현재와 미래를 혁신적인 안목으로 분석종합한 끝에 내린 결심이였다.
사실 탄부들은 젖가공품을 매일 찾았지만 염소고기는 그렇지 못하였다.한편 양고기,소고기로는 여러가지 맛있는 료리를 만들수 있고 영양가도 높아 탄부들이 많이 요구하고있었다.
목표가 혁신적이면 난관극복의 기질이 생기는 법이다.축산기지를 건설할 위치문제가 제기되자 지배인은 주변산들을 발이 닳도록 오르내리면서 고기용양품종생육에 좋은 800m이상의 해발고를 가지면서도 도로,풀판,물,위생방역에 유리한 조건을 갖춘 장소를 찾아냈다.그는 종업원들과 함께 굴착기를 끌어올리고 현장에서 침식하면서 로천채굴로 쌓인 버럭산을 밀어내고 터전을 닦았다.그리하여 한달동안에 집짐승우리들과 창고들,관리공들의 숙소건설을 성과적으로 끝낼수 있었다.
양종자를 도내에서 구입할수 없게 되였을 때였다.양기르기가 불가능할것이라고 누구나 생각하고있을 때 지배인은 도처에 수소문하고 해당 절차를 거친 다음 다른 도에까지 달려가 끝끝내 7마리의 양종자를 구해왔다.고기용소종자도 이런 노력속에 마련되였다.해마다 그 마리수를 늘이기 위한 투쟁이 탄광적으로 힘있게 벌어진 결과 그후 양만 해도 80마리에 이르게 되였다.
지배인이 둘째로 중시한것은 일관성있게 내미는 문제였다.
몇해전 탄광에서는 새 종합축산기지건설문제가 론의되고있었다.풀먹는집짐승만이 아니라 돼지와 닭,오리도 많이 기르라는것이 당의 축산정책의 요구라는 관점에서 지배인이 내놓은 발기였다.
그 시기 온실남새와 버섯생산을 늘여 인민들의 식생활수준을 더욱 높일데 대한 당의 방침이 련이어 제시되였다.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종합축산기지건설을 중지해야 할것이라고 생각하였다.그럴만도 하였다.당시 탄광에서는 진료소와 편의봉사기지개건공사,살림집건설 등 많은 일감을 벌려놓은 상태여서 자재와 로력이 매우 긴장하였다.난문제로 나선것은 주변이 돌산뿐이여서 건설부지가 없고 먹이원천도 부족한것이였다.
제힘을 믿지 않는것자체가 패배주의이다.지배인은 스스로 채찍질하면서 이 모든것을 다같이 내밀 결심을 굽히지 않았다.오늘 이것을 하라면 어제 하던것을 줴버리는 식으로 쟁개비끓듯 해가지고서는 무슨 일에서나 성과를 거둘수 없다고 한 당의 뜻을 되새기며 내린 결심이였다.
초급당비서 한창호동무는 지배인의 결심을 지지해주고 당세포,근로단체조직들을 발동하여 사상공세를 맹렬히 벌림으로써 대중의 마음이 하나로 지향되게 하였다.
비록 60고개를 썩 넘기였지만 앞장에서 뛰고있는 지배인의 왕성한 패기와 정열은 대중의 정신력을 더 높이 분출시켰다.석탄을 캐야 할 탄부들에게 짐을 지워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백석탄직장의 로동자들이 건설을 스스로 맡아안았으며 종업원들과 가족들도 물심량면으로 도와나섰다.터전을 닦기 위한 함마전이 한달동안 치렬하게 벌어졌다.
제힘을 믿으니 강자가 되였다.짧은 기간에 남새온실,버섯생산기지와 함께 조선식기와를 떠인 종합축산기지가 번듯하게 솟아났던것이다.
집짐승먹이문제도 지배인의 중단없는 사색과 노력속에 해결되였다.각종 설비들을 갖춘 식료가공기지가 생겨나고 여기서 나오는 많은 부산물은 돼지와 닭,오리먹이로 리용되였다.또한 쌀겨와 콩깨묵,약간의 강냉이가루에 첨가제를 섞은 배합먹이를 생산리용하였으며 고리형순환생산체계를 세워 고기와 버섯생산을 늘이였다.결과 탄광에서는 종전보다 알곡먹이를 절약하면서도 많은 고기를 생산하게 되였다.
탄부들의 식탁이 풍성해지는것만큼 석탄산은 높아져 해마다 생산계획을 넘쳐 수행하는 남다른 성과가 이룩되였다.
민병주동무의 사업경험에서 우리의 일군들이 찾아야 할 교훈은 무엇인가.그것은 당의 축산정책의 생활력을 높이 발휘하기 위해서는 행정일군도 당일군과 꼭같이 결사관철의 1번수가 되여 끝장을 볼 때까지 일관성있게 내밀어야 종업원들의 식탁에서 사회주의만세소리가 울려나올 그날을 앞당기게 된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