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수령님께서는 담당의사가 드리는 권고나 요구는 언제나 들어주시였다.
일군들은 담당의사의 그 《권위》를 믿고 자기들이 해결하지 못한 한가지 문제를 풀어보려고 하였다.수령님께서 공장,기업소들에 대한 현지지도를 하실 때 유해로운 작업장들에 더는 들어가시지 않도록 담당의사를 내세워보자는것이였다.그 발기자는 항일무장투쟁시기부터 어버이수령님을 모셔온 한 책임일군이였다.
어느날 담당의사는 수령님께 정중하게 말씀드리였다.
《수령님,유해로운 곳에는 들어가시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그이께서는 그의 말을 들으시고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기셨다가 고맙기는 하지만 동무들말대로 하면 날더러 옛날량반이 되라는것인데 나는 인민을 피해다니는 량반이 되고싶지는 않다,유해로운 곳일수록 꼭 찾아들어가야 하며 그것을 막기 위한 방도를 찾아주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인민을 떠난 우리가 무슨 값있는 존재이겠는가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결국 담당의사의 《요구》는 실현될수 없었고 일군들의 계획은 수포로 되고말았다.
어느해 겨울이였다.
평안남도를 현지지도하시는 어버이수령님께 일군들은 오늘은 일요일인데 사냥을 하시면서 휴식하셨으면 하는 청을 드리였다.
수령님께서는 그동안 회의를 지도하느라고 문건들이 많이 밀렸으니 그것들을 보아야겠다고 하시며 사양하시였다.
그래도 일군들이 거듭 말씀드리자 그이께서는 너그럽게 웃으시며 재미있는 옛이야기를 들려주시였다.
…옛날 어느 나라에 사냥을 좋아하는 한 임금이 있었다.그는 나라의 정사는 돌보지 않고 늘 사냥터만 찾아다녔다.그러다나니 인민들은 도탄에 빠지고 국력은 쇠퇴하였다.이 틈을 타서 외적들은 호시탐탐 침략의 기회를 노렸다.
많은 신하들은 나라의 위태로운 형편에 대하여 임금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듣기 좋은 말만 하였다.유독 한 사람만이 이제는 사냥을 삼가하고 국사를 돌보아야겠다고 진심으로 권고하였다.
하지만 자기 힘으로 임금의 마음을 돌려세우지 못하리라는것을 알게 된 그는 고민끝에 심화병을 앓게 되였다.림종의 시각에 그는 자기를 임금이 자주 다니는 산기슭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얼마후 임금이 그 신하의 무덤옆을 지나게 되였다.무덤에서 별안간 그 신하의 유령이 나타나더니 부디 사냥을 삼가하고 문란된 국사를 수습하여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원하사이다라고 눈물을 흘리며 절절히 아뢰였다.임금은 그제서야 비로소 큰 충격을 받고 사냥을 그만두었다.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아마 그 임금이 유령을 만나더니 제정신이 들었던 모양이라고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주체61(1972)년 6월 량강도를 현지지도하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저녁식사에 일군들을 청하시였다.
이날도 그이의 식탁은 검소하였다.특별히 눈에 띄운것이 있다면 싱싱한 취나물이 오른것이였다.그것은 수령님께서 낮에 무산지구전투승리기념탑을 돌아보시다가 탑뒤쪽에서 발견하시고 몸소 뜯으신것이였다.
대다수가 취를 처음 보는 일군들이였다.
수령님께서는 그들앞에 취나물그릇을 밀어놓으시며 어서 많이 들라고 이르시였다.
일군들은 구미가 바싹 동하여 저마끔 취나물에 손을 가져갔다.
그런데 선참으로 취 한잎을 고추장에 찍어 입에 넣은 일군이 얼결에 얼굴을 찡그리며 어쩔바를 몰라하였다.씁쓸하고 떫기도 한데다가 야릇한 냄새까지 풍기니 더 넘길수 없는 모양이였다.
그를 띄여보신 수령님께서는 물론 취가 모든 사람들에게 단 음식은 아니라고,그러나 나는 어제나 오늘이나 이 맛을 잊을수 없다고 하시였다.그러시면서 산에서 싸울 때 취나물쌈을 별식으로 생각하고 먹었다고,내가 취나물쌈을 좋아했기때문에 정숙동무는 행군도중에 취만 보이면 배낭속에 뜯어넣었다가 식사때 내놓군 하였다고 감회깊이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의 눈굽은 축축히 젖어들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내가 왜 동무들에게 취나물이야기를 하는가,동무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나라를 찾자고 백두산야에서 풀뿌리를 캐먹으면서도 굴하지 않고 싸우던 그 혁명정신을 잃지 말자는것이다,우리가 항일의 혁명정신을 잊어버리면 우리 혁명은 주눅이 들고만다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은 식탁에 오른 취나물쌈을 보며 그이의 말씀을 심장속에 깊이 간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