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5일

병사시절처럼 삶을 빛내이며

사람들은 병사시절에 많은것을 배운다.

당과 수령에 대한 절대적인 충정과 조국과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숭고한 혁명적동지애,맡은 임무에 대한 책임성과 불같은 헌신…

그래서 사람들은 인생의 굳건한 리정표를 새겨준 병사시절을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언제나 그 시절처럼 살기 위해 애쓰는것이다.

오늘도 초도를 지켜섰던 병사시절의 그 모습으로 경공업전선의 앞장에서 내달리는 미더운 일군이 있다.그가 바로 영광은하피복공장 지배인 박정숙동무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오늘 우리 일군들이 서야 할 위치는 대오의 맨 앞자리이며 일군들은 생눈길을 헤쳐나가는데서 척후병이 되고 화선에 나가 대오를 이끌어나가는 기관차가 되여야 합니다.》

영광은하피복공장 지배인으로 임명되여 공장을 돌아본 그는 일터를 선군시대의 요구에 맞게 꾸릴 결심을 안고 공장의 당일군을 찾아갔다.

그가 터놓는 이야기를 심중히 듣고있던 초급당비서 리기현동무는 나직하나 힘있는 어조로 말했다.

《초도에서 사관장으로 있을 때 중대를 잘 꾸려 전군에 소문을 냈던 지배인동무가 아닙니까.혁명적군인정신으로 일해나가면 못해낼것이 없습니다.》

그의 머리속에 불현듯 풍랑사나운 배길로 초도를 찾으시였던 위대한 장군님의 자애로운 모습이 떠올랐다.

(당에서는 나를 믿고 경공업전선의 한 초소를 맡겨주지 않았는가.언제나 병사시절처럼 결사관철의 정신으로 살리라.)

그날 밤 그는 먼동이 터올 때까지 공장을 어떻게 하면 일신시키겠는가를 모색하였다.

며칠후 공장구내에는 공장건설전망도가 나붙었다.

박정숙동무는 종업원들과 함께 새로 일떠세울 공장건물의 기초를 파기 시작했다.다른 때보다 거의 1.5배나 늘어난 생산계획을 해제끼면서 수백㎥의 흙을 파내는 일은 헐치 않았다.

종업원들의 앞장에는 언제나 박정숙동무가 서있었다.

흙을 가득 담은 질통을 지고도 성차지 않아 돌까지 안고 달리는 그에게 책임기사 리해송동무가 그러다 쓰러지면 어쩌겠는가고 걱정했다.피로한 기색을 애써 감추며 번듯하게 일떠설 공장건물을 생각하면 힘든줄 모르겠다고 말하는 그를 바라보며 종업원들은 뜨거운것을 삼키였다.

공장건설에서 제일 애로되는것이 강재문제였다.

누군가에게서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미제의 야만적인 폭격에 의해 파괴되였던 다리주변에서 파철을 해결할수 있다는 말을 들은 그는 종업원들과 함께 현지로 달려갔다.

허리를 치는 물속에서 파철을 건져내며 전투를 벌리던 어느날 휴식참이였다.지쳐서 맥을 놓고 앉아있는 종업원들의 얼굴을 일별하던 그는 북통을 들고 나섰다.

《동무들,노래를 부릅시다.항일유격대원들처럼 신념의 노래를 부르면서 승리의 그날을 향해 더 힘껏 달려봅시다.》

북통을 두드리며 건드러지게 뽑는 지배인의 노래가락에 맞춰 종업원들은 덩실덩실 춤판을 벌리였다.이렇게 그는 락천적인 기백과 이신작칙의 모범으로 대오를 이끌었다.

세멘트와 목재를 해결하기 위해 그가 걸은 밤길은 또 그 얼마인지 모른다.

그 나날 그의 곁에는 언제나 신심과 용기를 북돋아주는 초급당비서 리기현동무가 서있었다.

이렇게 되여 공장은 짧은 기간에 옛 모습을 찾아볼수 없게 변모되였다.하지만 박정숙동무는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그는 이어 수천㎡에 달하는 3층건물을 보란듯이 일떠세울 대담한 목표밑에 건축공사를 끝내고 마감단계에서 다그치고있다.

그것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맡기고 가신 우리 인민들이 보다 행복한 생활을 마음껏 누리게 될 그날을 위해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이어가시는 현지지도강행군길에 자신들의 발걸음을 따라세우려는 박정숙동무와 종업원들의 신념과 의지의 분출이였다.

꽃도 향기가 있어야 벌과 나비가 찾아들듯이 일군은 인정미가 있어야 대중이 따른다.

종업원들의 사업과 생활을 친부모의 심정으로 돌봐주는 박정숙동무의 불같은 헌신은 우리 지배인이라는 친근한 부름을 낳게 하였다.

언제인가 생산공정을 돌아보던 그는 재봉1작업반의 한 종업원이 앓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그 종업원은 부모를 잃고 오빠와 함께 살고있었다.종업원들의 생활에 미처 관심을 돌리지 못했던 자기의 사업을 돌이켜보며 그 종업원의 집으로 찾아간 그는 병상태를 알아보고 즉시에 필요한 대책을 세워주었다.집에서 만든 영양식품도 가져다주고 보약들도 마련해주면서 성의를 기울이는 진정에 의해 그 종업원은 병을 말끔히 털어버리고 다시 기대앞에 서게 되였다.그는 그 종업원이 새 가정을 이룰 때에도 친부모의 심정으로 이불이며 부엌세간들을 갖추어주었다.

기술준비실의 김련희동무가 입원치료를 받던 어느날이였다.병원에 면회를 갔던 박정숙동무는 김련희동무의 근심어린 얼굴을 띄여보고 사연을 물었다.

래일이 새 학년도가 시작되는 날인데 막내딸을 데리고 학교에 가겠다고 약속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는 흔연히 말했다.

《학교에는 내가 대신 가겠으니 걱정말고 병치료를 잘하세요.》

종업원들을 위해 아낌없는 진정을 바쳐가는 지배인의 뜨거운 동지적사랑은 어디 가나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다.

인민군대의 지휘관들처럼 종업원들을 위해 신발창이 닳도록 뛰여다니며 박정숙동무는 부업기지도 꾸리고 수백마리의 염소를 키워 영양가높은 우유도 정상적으로 공급하도록 하였다.

병사시절의 그 나날처럼 삶을 빛내일 불타는 열정을 안고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가는 박정숙동무와 같은 혁명적군인정신의 체현자들이 있어 우리 당의 정책이 빛나게 관철되는것이다.

황금이냐,애국이냐

얼마전 조선중앙력사박물관을 찾았던 우리는 지난 시기 수많은 력사유물들을 수집하여 나라에 바친 한 부부에 대하여 알게 되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우리 선조들이 이룩해놓은 민족문화유산을 그저 허무주의적으로 대할것이 아니라 귀중히 여길줄 알아야 합니다.》

리경행,전순옥부부를 찾아 우리의 발길이 닿은 곳은 평안남도 안주시 문봉동 37인민반이였다.

아담한 단층살림집에서 살고있는 리영성이 우리를 반겨맞았다.알고보니 그는 리경행,전순옥부부의 맏아들이였다.

그를 통해 어머니마저 지난 8월에 세상을 떠난 사실을 알게 되였다.아쉽게도 이야기의 주인공을 만날수 없었으나 우리의 걸음은 헛되지 않았다.

우리는 리영성에게서 그의 부모들의 력사유물수집과정을 자세히 들을수 있었다.

리경행이 일본에서 살 때였다.

그에게는 황금이냐,애국이냐 하는 갈림길에 놓인적이 있었다.

귀국준비를 하던 리경행은 지난 시기 일제에게 략탈당한 우리 나라의 귀중한 문화재들이 일본의 한 민간인의 손에 들어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였다.그는 그 력사유물을 기어이 찾으리라 굳은 결심을 품었다.

이 일로 하여 그는 조국으로 돌아가는것을 잠시 미루지 않으면 안되였다.

주체51(1962)년 6월 가족을 바래고난 리경행은 즉시 일본의 조선력사전문가와 조선관계학자들을 찾아다니며 우리 나라의 문화재를 추적하기 시작했다.고심어린 노력끝에 그는 조선봉건왕조시기의 아악보를 보관하고있는 한 일본인에게 접근하게 되였다.

하지만 돈밖에 모르는 그 일본인은 거액의 돈을 요구하며 좀처럼 그것을 내놓으려 하지 않았다.그래서 리경행은 집과 가산을 판 돈을 주고도 모자라 안해가 결혼기념으로 준 시계와 입었던 양복저고리까지 팔았다.이렇게 되여 그는 끝끝내 조국의 귀중한 문화재를 되찾게 되였다.

이 사실을 안 일본의 한 음악평론가가 그를 찾아왔다.그 평론가는 조선봉건왕조 500여년간의 음악예술사가 기록되여있는 그 자료를 가지고 돈벌이를 하면 거액의 돈을 손에 넣을수 있다고 하면서 조선에 가지 말고 함께 돈벌이를 하자고 꼬드기였다.

결국 리경행은 조국의 재부를 팔아 억만장자가 되느냐 아니면 애국의 신조를 지키느냐 하는 량자택일의 길에 서게 되였다.

그는 그 두 길앞에서 서슴없이 후자의 길을 택하였다.

리경행이 이렇게 치부의 길이 아니라 애국의 길을 택할수 있은것은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겼던 지난날의 망국노의 설음을 뼈저리게 느꼈기때문이며 조국의 귀중한 문화재가 남의 나라에 있는것을 제 살점이 뜯기운것만큼 가슴아팠기때문이였다.

그래서 그는 물질문화보존협회를 조직하고 우리 나라의 력사유물과 자료를 가지고있는 일본사람들을 수소문하여 찾아다니며 조국의 귀중한 문화재수집에 온갖 정력을 바치였다.

한번은 일본의 한 학자를 통해 일본제국주의의 한 우두머리가 조선의 많은 유물과 력사자료들을 가지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그자는 한때 제국주의일본의 거물로 있다가 국제재판에 의해 A급전범자로 판결된자였다.

리경행은 그자의 수중에 있는 유물과 자료들을 되찾는것을 조국이 자기에게 준 신성한 임무로 간주하였다.

하기에 그는 오랜 력사유물과 자료에 관심을 돌리는 민간단체인 물질문화보존협회 성원의 자격으로 그자와 교제하여 7만권에 달하는 장서를 정리할 기회를 얻게 되였다.이 과정에 그는 귀중한 자료들을 수집할수 있었다.

그 자료들가운데는 일제의 조선침략자료들과 함께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직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에 관한 자료들도 있었다.

그때 그의 기쁨은 이루 말할수 없이 컸다.

문화재들을 수집하는 나날에 그는 김옥균의 자필로 된 족자와 16세기 률곡 리이의 자필로 된 족자,일제가 작성한 우리 나라 지하자원도 등을 수집할수 있었다.

이리하여 그는 커다란 기쁨안고 조국으로 향하였다.

그의 손에는 두개의 트렁크가 들려져있었다.그 트렁크들에는 수천점에 달하는 우리 나라의 귀중한 문화재들이 들어있었다.

비록 부피도 크지 않고 무게도 많지 않은 두개의 트렁크였지만 거기에는 천만금으로도 그 가치를 헤아릴수 없는 리경행의 뜨거운 애국심이 무겁게 실려있었다.

귀국한 후에도 그는 이역땅에서 갖은 천대와 민족적멸시를 당해야만 했던 자기와 가족이 조국의 품에 안겨 무상치료제,무료교육제의 혜택아래 아무런 근심걱정없이 생활하게 된것이 너무도 고마와 안해와 같이 력사유물수집사업을 계속해나갔다.

리경행은 오래동안 로동생활을 하면서 여가에 력사유물발굴수집사업을 중단없이 벌리였다.그는 물론 안해도 전국각지를 메주밟듯 하면서 민가에 묻혀있는 국보적가치를 가지는 력사유물과 력사자료들을 수많이 수집하였다.

하여 리경행,전순옥부부는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80돐에 즈음하여 200여점의 력사유물들을 나라에 바친데 이어 위대한 장군님의 탄생 55돐에도 150여점의 력사유물들을 조국에 기증하였다.

나라에서는 일본에서 살 때나 귀국한 후에나 오직 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문화전통을 빛내일 한마음안고 한생을 력사유물과 력사자료수집사업에 바쳐온 이들부부의 애국적소행을 높이 평가하여 리경행로인에게는 공민의 최고영예인 로력영웅칭호를,전순옥녀성에게는 로력훈장을 수여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86(1997)년 3월 조선중앙력사박물관에서 리경행,전순옥부부가 기증한 력사유물자료전시회를 열도록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전시회장에는 그들이 꾸준한 노력으로 얻어낸 1만 8 000여점의 유물,자료들중에서 수백점이 전시되였다.

세월이 갈수록 우리 당의 사랑과 은정은 더해만 갔다.당과 국가에서는 리경행을 전국문화보존부문일군열성자회의에,주체92(2003)년에는 전순옥녀성을 남편을 대신하여 선군시대영웅대회에 불러주었다.

력사의 갈피에는 조국의 명예는 안중에도 없이 오직 돈밖에 모르는 수전노들이 력사유물을 팔아 일신의 부귀영화를 추구한 비사들이 적지 않게 기록되여있다.

그러나 개인의 치부와 안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조국의 고귀한 문화재가 략탈당하고 덧없이 있는것이 가슴아파 력사유물을 지키고 빛내이기 위한 애국의 길에 스스럼없이 나선 사람들이 리경행,전순옥부부였다.

하기에 조국과 인민은 그들의 생을 참된 애국자의 삶이라고 값높이 부르는것 아닌가.

변함없는 아침일과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절대불변의 신념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수령님과 장군님의 사상과 업적을 견결히 옹호고수하며 끝없이 빛내여나가야 한다.》

해방된 이듬해 10월에 백두산3대장군을 모시였던 해주시 옥계혁명사적지,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이 넘쳐나는 요즘 여기 옥계혁명사적지로는 시의 많은 일군들과 근로자들,청소년학생들이 찾아와 해주시를 인민의 행복이 꽃펴나는 락원으로 꾸려주신 백두산3대장군의 불멸의 령도업적을 뜨겁게 되새기며 깨끗한 충정을 바쳐가고있다.

그들속에는 황해남도체신관리국 아래단위의 일군들과 종업원들도 있다.

지난 수십년세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번짐이 없이 옥계혁명사적지에 대한 관리사업에 정성을 다하고있는 이들,도체신관리국 아래단위 일군인 강성일동무와 조남수동무를 비롯한 청년동맹원들에게 있어서 이 사업은 매일아침의 첫 일과로 되고있다.그뿐이 아니다.기업소의 일군들과 종업원들은 해마다 관리비품들을 성의껏 마련하여 이곳 혁명사적지에 보내주고있다.

최근에만도 이들은 혁명사적지주변에 100여그루의 수종이 좋은 나무를 심고 꽃밭도 조성하였다.

수양산의 계곡마다에서 샘솟아 흘러내리는 맑은 물이며 기묘한 바위들,온갖 새 날아들어 우짖는 푸른 숲…

아름다운 절경을 이룬 옥계천지구가 훌륭한 문화휴식터로 전변된 모습을 볼 때마다 기업소의 일군들과 종업원들은 백두산3대장군의 인민사랑을 후세에 길이 전해갈 순결한 마음을 안고 옥계혁명사적지 관리사업에 정성을 다하고있는것이다.

《우리도 만선이예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미술작품에는 시대상과 인민의 다양한 생활이 반영된다.》

얼마전 만수대창작사창립 55돐기념 미술전시회장을 찾았던 나는 한폭의 미술작품앞에서 좀처럼 걸음을 뗄수 없었다.

만선의 배고동소리 높이 울리며 포구로 돌아오는 고기배들을 향해 손저어 화답하는 양식공처녀들의 랑만과 희열에 찬 모습을 형상한 유화 《우리도 만선이예요》였다.

선창에 가득찬 물고기들이 금시 살아서 펄펄 뛰는것 같고 물고기비린내가 확 풍겨오는것만 같은 그림은 먼바다에서도 잡고 가까운바다에서도 잡으며 나가면서도 잡고 들어오면서도 물고기를 잡을데 대한 우리 당정책이 현실로 꽃피고있는 포구의 정서와 랑만을 그대로 안아보게 하는 명화였다.

사회주의바다향기가 차넘치는 내 조국의 벅찬 모습을 반영한 유화를 바라보느라니 문득 얼마전 당보에 실렸던 조선인민군 제567군부대관하 18호수산사업소를 찾으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자애로운 영상이 다시금 숭엄히 안겨왔다.

한평생 조국의 산과 들을 황금산,황금벌로 전변시키기 위하여 마음쓰신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유훈을 철저히 관철하는것과 함께 사회주의조국의 바다도 황금해로 만드는것이 우리의 숭고한 의무이라고 말씀하신 경애하는 원수님,

황금해,조용히 마음속으로 외워만 보아도 가슴이 세차게 설레이게 하는 위대한 김정은시대가 낳은 또 하나의 시대어,그 시대어와 더불어 사회주의만세소리가 온 세상에 울려퍼지고 인민의 리상이 현실로 꽃핀 희망찬 래일이 벅차게 어려왔다.

그럴수록 미술작품에서 울려나오는 양식공처녀의 소박한 목소리-《우리도 만선이예요》가 시대의 크나큰 메아리되여 나의 가슴을 쾅쾅 두드렸다.

결코 그림의 주인공처녀의 목소리로만 들려오지 않았다.내 조국의 드넓고 풍요한 바다와 포구들에서 우리 당의 호소에 심장으로 화답하며 산악같이 떨쳐나선 애국자들의 목소리로 나의 귀전에 메아리쳐왔다.저 양식공처녀들처럼 평범한 애국자들이 내 조국의 바다를 황금해로 전변시키고있다.

크지 않은 그림이였지만 우리는 이 한폭의 미술작품을 통하여 당정책을 어떻게 결사관철해야 하는가를 실천으로 보여준 황금해력사창조의 선구자들의 모습과 함께 우리도 만선이라며 화답해나선 수천수만의 어로공들과 양식공들 그리고 포구와 갑판에서 바다바람을 맞으며 시대의 벅찬 숨결을 화폭에 담아가고있는 미술가들의 모습도 감동깊게 그려볼수 있었다.

이런 애국의 산울림이 동서해의 포구마다에서,이 땅의 드넓은 협동벌들과 푸른 산마다에서,사회주의대건설장들과 최첨단돌파전의 전구들에서,람홍색공화국기 휘날리는 포성없는 전투장들에서 울려퍼질 때 내 조국은 얼마나 강대하고 아름다운 나라로 빛을 뿌릴것인가.

뜨겁게 굽이치는 그리움의 대하,신념의 맹세

온 나라 천만군민이 어버이장군님을 목메여 부르며 찾던 피눈물의 그날로부터 어느덧 3년,자강도인민들의 마음은 정녕 류다르다.

자강도는 자신에게 정든 고장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며 사나운 눈보라와 한여름의 뙤약볕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자강땅을 찾고 또 찾아주시며 사랑을 주고 믿음을 주고 천백배의 힘과 용기를 안겨주신 위대한 장군님,

진정 우리 장군님의 불면불휴의 로고와 현명한 령도아래 고난의 행군을 락원의 행군으로 이어가고 강계정신을 창조한 자강땅인민들이기에 달이 가고 해가 바뀔수록 장군님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가슴마다에서 용암처럼 끓어번지고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위대한 장군님을 우리 당과 인민의 영원한 수령으로 높이 모시고 장군님의 혁명생애와 불멸의 혁명업적을 길이 빛내여나가야 합니다.》

이른아침 우리는 인풍언덕을 찾았다.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동상을 정중히 모신 인풍언덕은 새벽부터 많은 사람들로 붐비였다.

동상주변관리사업에 티없이 맑고 깨끗한 충정을 바쳐가고있는 도안의 일군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청소년학생들의 아름다운 소행은 위대한 장군님을 사회주의대가정의 친어버이로 천세만세 받들어모시고 장군님의 위대한 혁명생애와 불멸의 업적을 길이 빛내여가려는 자강땅인민들의 철석의 신념과 의지를 그대로 펼쳐보이고있다.

우리와 만난 강계혁명사적지 관리원 정춘희동무는 위대한 장군님의 서거 3돐이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인풍언덕을 찾아 충정을 바쳐가고있는 일군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청소년학생들의 대렬이 계속 늘어나고있다고,날이 가고 해가 바뀔수록 더해만지는것이 어버이장군님에 대한 자강땅인민들의 사무치는 그리움이라고 뜨겁게 이야기하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동상주변관리사업을 변함없이 해오고있는 시량정사업소 강봉옥동무,온 가족이 받아안은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과 은정을 어찌 잊을수 있겠는가고 하며 손자,손녀와 함께 매일아침 인풍언덕을 찾아 뜨거운 지성을 바쳐가고있는 강계시 외룡동 김희성로인과 김계옥녀성 그리고 강계철도상업관리소의 박금수동무와 종업원들의 모습도 보인다.

어찌 이들뿐이랴.

도의 일군들과 수많은 당원들과 근로자들,청소년학생들이 매일아침 여기 인풍언덕을 찾아 위대한 장군님을 선군조선의 태양으로 영원히 받들어갈 열화같은 충정을 아낌없이 바쳐가고있다.

진정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동상을 높이 모신 인풍언덕은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날과 날을 이어가는 자강땅인민들의 마음이 소중히 자리잡고있는 곳이다.

자강도의 그 어느 일터,그 어느 령길에나 조국과 인민을 위해 초강도강행군길을 끊임없이 이어가신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발자취가 뜨겁게 새겨져있지 않은 곳이 있단 말인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생전에 수십차례나 자강도를 찾으시고 연 350여개 단위들을 현지지도하시면서 자강도인민들을 강계정신의 창조자로 내세워주시고 친어버이사랑을 끊임없이 베풀어주시였다.자강도를 중소형발전소건설,CNC화,최첨단돌파전의 기수로,경제강국건설의 선구자로 내세워주시고 자강도의 로동계급과 인민들을 위하여서는 아까울것이 없다고 하시며 현대적인 닭공장,돼지공장들을 세워주신 위대한 장군님,

하늘아래 첫 동네로 불리우는 랑림군의 외진 산골마을까지 찾고찾으시며 헌신의 자욱을 남기신 우리 장군님의 인민사랑의 이야기는 그 얼마나 가슴뜨거운것인가.

여기 인풍언덕에 높이 모신 위대한 장군님의 동상을 삼가 우러르면 잊지 못할 영광의 날들이 다시금 가슴뜨겁게 돌이켜진다.

산세험한 봉우리,뽕밭과 야외가설막에도 들리시여 산이 많은 자연지리적조건을 리용하여 풀먹는집짐승기르기와 누에고치생산에서도 전국의 본보기가 되여야 한다고 하시며 우량품종의 종자양,종자염소도 보내주시고 자강도가 잠업도,비단도가 되도록 현명하게 이끌어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자애로운 모습이 눈시울뜨겁게 어려온다.

강계시에 위대한 장군님의 동상을 높이 모신다는 소식에 접했을 때 자강도인민들은 뜨거운 격정을 금치 못했었다.

인풍언덕에 위대한 장군님의 동상을 높이 모신 때로부터 도의 일군들과 근로자들은 이곳을 찾고 또 찾으며 위대한 어버이의 품속에서 자신들이 받아안은 생활이 얼마나 소중한것인가를 가슴뜨겁게 되새기며 장군님의 유훈관철에서 자랑찬 위훈을 수놓아왔다.

온 자강땅이 위대한 장군님의 유훈관철을 위한 투쟁으로 부글부글 끓어번지였다.

저 멀리 3월5일청년광산의 로동계급은 원료투입으로부터 페설물처리에 이르기까지 모든것이 완벽한 현대적인 제련소를 1년이라는 기간에 훌륭히 일떠세웠으며 강계청년발전소,장자강발전소를 비롯한 수력발전소의 전력생산자들은 나라의 전력공업발전에 쌓으신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업적을 전력증산성과로 빛내이였다.도의 기계공업부문 공장,기업소들에서 새 세기 산업혁명의 불길속에 현대화,무인화의 경쟁열풍이 일고 강계시가 위대한 장군님의 념원이 더욱 활짝 꽃펴나는 사회주의선경도시로 변모되였다.

올해의 불리한 조건에서도 알곡생산과 잠업에서 커다란 성과를 이룩한 자랑과 긍지를 안고 여기 인풍언덕에 올라 위대한 장군님께 삼가 충정의 보고를 드리며 도안의 농업부문 일군들과 근로자들은 다음해에도 알곡생산과 누에치기에서 획기적인 전환을 일으킬 불타는 결의를 다진다.

그렇다.위대한 장군님의 유훈관철을 위한 투쟁으로 날과 달을 이어온 주체103(2014)년 12월의 인풍언덕에서 자강도의 일군들과 근로자들은 다시금 엄숙히 맹세한다.

위대한 장군님,장군님의 념원대로 경애하는 원수님의 령도따라 자강땅에서 로동당만세소리,사회주의만세소리가 더 높이 울려퍼지게 하겠습니다!

실리있는 벼겨가스발동발전기

요즘 신천군량정사업소에서 자체로 만들어 리용하고있는 벼겨가스발동발전기는 구조가 간단하고 실리가 있는것으로 하여 사람들의 호평을 받고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현시기 증산과 절약투쟁을 힘있게 벌리는것은 나라의 경제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중요한 조건으로 됩니다.》

신천군량정사업소에서 새로 만든 이 발동발전기는 가스발생로와 청정 및 랭각기,발동기,발전기로 되여있다.사업소에서는 자체로 생산한 전기로 전력수요를 보장하면서도 저녁이면 사업소구내는 물론 읍지구의 10여리구간에 설치된 가로등과 불장식등을 켜게 하고있다.

그뿐이 아니다.전력생산과정에 나오는 목초액으로 년간에 1t이상의 농약을 만들어 농업부문에 보내주고있으며 타르는 철길침목방부재로,벼겨재는 대용비료로 리용하거나 용접봉피복제를 만드는데 쓰게 하고있다.

사업소에서 창안제작한 벼겨가스발동발전기는 년중 정미과정에 나오는 전체 벼겨량의 10%를 가지고 온 한해 필요한 전기를 생산할수 있을뿐아니라 잡관목이나 톱밥,강냉이속을 비롯한 지방에 흔한 대용연료도 리용할수 있어 협동농장들과 지방공업공장들에서 적극 받아들이고있다.

사업소의 일군들과 기술자들은 자기 지방에 흔한 연료원천에 의거해서 생산을 정상화하기로 하였다.이들은 나라의 긴장한 전력문제를 푸는데 조금이나마 이바지할 마음안고 여러차례의 실패에도 주저앉지 않고 기발한 착상과 완강한 노력으로 마침내 발전효률이 높으면서도 실리가 있는 벼겨가스발동발전기를 제작하였다.특히 사업소기술집단은 집체적지혜와 힘을 합쳐 종전의 벼겨가스발동발전기의 가스발생로와 청정 및 랭각기사이에 원심분리기원리를 리용한 회리식류체분리기를 설치하고 벼겨건조로,려과기와 같은 장치들을 보충하여 타르제거문제를 원만히 해결하였다.

지난봄에 진행된 제29차 중앙과학기술축전에서는 이곳 량정사업소에서 출품한 회리식류체분리기를 설치한 벼겨가스발동발전기가 높이 평가되였다.

지금 사업소를 찾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들처럼 당의 과학기술중시로선을 높이 받들고 그 관철에 떨쳐나설 때 훌륭한 성과를 거둘수 있다고 한결같이 이야기하고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대변인성명을 유엔총회와

유엔총회 제69차회의 3위원회에서 미국이 EU의 일부 나라들과 일본을 내세우고 강권과 정치경제적압력으로 거수기를 긁어모아 반공화국《인권결의》를 강압통과시킨것과 관련한 11월 20일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대변인성명이 2일 유엔총회와 유엔안전보장리사회 공식문건 A/69/616-S/2014/849호로 배포되였다.

[정세론해설] 퍼구슨사태를 통해 본 범죄왕국의 정체

최근 미국에서 당국의 인종주의정책에 항의하는 대중적인 시위가 몇달째 계속 벌어지고있다.날로 확대되고있는 반인종주의시위는 백인경찰이 흑인청년을 살해한것을 계기로 시작되였다.

지난 8월 미주리주의 퍼구슨시에서 백인경찰이 18살 난 흑인청년을 총으로 무참히 쏘아죽이는 사건이 발생하였다.흑인청년은 6발의 총탄에 맞아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다.

극도의 인종차별과 인간증오사상이 골수에 꽉 찬 백인경찰의 야수적만행은 피부색이 다르다는 《죄》로 미국사회에서 《2부류》공민취급을 당하며 갖은 멸시와 학대속에 살아가는 수많은 흑인들의 분노를 폭발시켰다.격분한 흑인들은 대규모적인 시위를 벌리면서 관계자처벌을 요구해나섰다.바빠난 경찰측은 흑인청년이 경찰에게서 총을 빼앗으려 하였기때문에 사격하였다고 가해자의 범죄행위를 정당화해나섰다.하지만 법의감정결과 사망자의 머리와 팔 등에 난 총상자리는 그가 손을 들었거나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다는것을 확증해주었으며 따라서 경찰측의 주장이 거짓이라는것이 드러나게 되였다.

격노한 시위참가자들은 《인종차별주의적인 경찰관은 필요없다》 등의 구호를 웨치면서 경찰관을 엄중히 처벌할것을 촉구해나섰다.사건이 발생한 퍼구슨시에서 시작된 반인종주의시위는 삽시에 전국각지에로 확대되였다.중무장한 경찰들은 시위군중을 향해 연막탄과 최루탄을 쏘아대며 폭압에 날뛰던 끝에 시위자들을 집단적으로 체포해감으로써 사회적분노를 더욱 고조시켰다.

도처에서 항의시위가 련일 벌어지고있는 속에 미주리주의 쎄인트 루이스시에서 23살 난 흑인청년 한명이 경찰이 쏜 총탄에 맞아죽는 사건이 또다시 터졌다.이로 하여 시위투쟁은 보다 격렬하게 진행되고있다.현지주민들의 항거기운이 거세여지는데 위압을 느낀 미주리주 지사는 주에 비상사태를 선포하였으며 당국은 시위군중에 대한 진압에 군대까지 동원시키고있다.시위는 현재 뉴욕과 워싱톤,보스톤,로스안젤스 등 미국 전국각지의 170여개 도시로 번져지고있다.그들은 사법당국이 흑인청년을 살해한 주범을 직무에서 해임시키는것으로 여론을 무마해보려고 시도하고있는데 대하여 강력히 항의하였다.날로 강화되고있는 반인종주의시위는 미국사회의 고질적인 인종차별에 대한 광범한 대중의 쌓이고쌓인 분노의 폭발이다.

오늘날 미국에서 차별적인 인종정책으로 하여 흑인들의 처지는 매우 비참하다.미국이 1965년에 채택된 온갖 인종차별철페에 관한 협약에 가입하였다고 하지만 실지에 있어서 국내에서의 인종적,종교적차별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극심한 형편에 놓여있다.

미련방수사국의 자료에 의하면 총체적으로 미국에서 사람에 대한 증오때문에 감행된 범죄건수가운데서 80%이상이 인종적,종교적,민족적증오감에 의한것이라고 한다.또한 인종증오에 기초한 범죄가운데서 거의 70%의 경우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희생물로 되고있다.

미국에서 소수민족출신 주민들은 범죄의 피해자로,사법당국의 편견의 희생물로 되고있다.실례로 소수인종이 주민의 절반정도를 이루는 뉴욕에서 그들은 경찰이 감행하는 모든 검열단속의 80%를 받고있다.2012년에는 시카고시에서 야간순찰대가 흑인남성들을 《수상한자》로 잡아들이고 종이주머니를 리용한 질식시키기,전기고문 등 온갖 야만적인 고문을 들이대여 우격다짐으로 《자백》을 받아냈다고 한다.2011년 한해동안에 뉴욕시에서 경찰에 단속당한 미국인들의 수는 68만 5 000명에 달하였는데 그들중 85%이상이 아프리카 및 라틴아메리카계 주민들이였다.

경찰이 백인을 멈춰세우는 경우 8%만이 수색을 당한다고 한다.어느 한 통계자료를 분석한데 의하면 미국에서 2008년부터 2010년까지의 기간에 주민의 64%를 이루는 백인이 모든 수입의 76%를 얻은 반면에 주민의 각각 13%와 16%를 이루는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라틴아메리카계 미국인들이 차지하는 몫은 수입의 8%,9%이다.자료들은 백인미국인과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사이의 신용평가에서의 차이가 계속 벌어져 사실상 경제적인종차별현상을 초래하고있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인종적불평등은 주택소유에서도 표현되고있는데 백인미국인들속에서 거의 4분의 3이 자기 집을 가지고있다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중에는 그런 사람이 절반도 되지 않는다.소수민족출신 주민들과 이주민들은 선거에서도 제도적제한을 받고있다.《보스톤개관》에 의하더라도 미국에서는 보통 200만명이상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선거할 권리를 빼앗기고있다.미검사총장까지도 소수민족출신 주민들이 신분증명을 요구하는 법조항에 의해 선거권을 행사하는데서 제한을 받거나 그 권리마저 잃고있다고 자인하였다.

미국에서 소수민족출신 주민들이 일자리를 얻는다는것은 하늘의 별따기와 같으며 겨우 직업을 얻어 뼈가 휘도록 일을 해도 차별적인 대우를 받기는 마찬가지이다.로동성의 통계자료에 의하더라도 2012년 10월에 백인들의 실업률이 7%인데 비해 아프리카계와 라틴아메리카계 미국인들인 경우 실업률이 각각 14.3%,10%에 달하였다.

2013년 7월 18일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흑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국적인 여론조사결과에 의하면 응답자의 75%가 자기들이 로동생활에서 불공평한 대우를 받고있다고 불만을 터놓았다.

이러한 현실은 21세기에 들어선 오늘 미국이 다른 나라들의 인종차별에 대해 운운하는것은 저들의 허물을 가리우기 위한 기만극에 불과하다는것을 여실히 보여주고있다.

국제사회계는 미국을 두고 《세계최악의 인권불모지》,《인권유린의 왕초》라고 강력히 규탄하고있다.

이란외무성 부상은 21세기에 들어선 오늘날 인종차별에 대해 말하는것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고 조소하였다.

꾸바의 쁘렌싸 라띠나통신은 미국에서의 현 사태는 인종차별이 이 나라 사회제도에 깊은 뿌리를 두고있다는것을 증명해주고있다고 전하였다.

유럽리사회 대변인도 평화적시위를 벌리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무력이 사용되고 체포소동이 벌어지고있는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고 미당국자들은 왜 그렇게 많은 주민들이 거리로 떨쳐나와 시위를 벌리는가 하는 리유를 저들의 사회정치적배경에서 찾아보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세계가 미국을 인권에 대해 론할 자격을 완전히 상실한 인권유린의 원흉으로 락인,규탄하고있는것은 지극히 응당하다.

여론들이 평하고있는바와 같이 최근 미국에서 발생한 퍼구슨사태는 미국의 체질적인 병집의 산물이며 반인종주의시위는 반동적인 제도가 낳은 필연이다.인종차별의 력사가 끝장나지 않는 한 미국에서 이러한 비상사태는 앞으로 계속될것이다.외신들은 이번 퍼구슨사태로 하여 미국사회가 세차게 흔들리고있다고 전하고있다.

세계 많은 나라들은 미국이 국제무대에서 마치 《국제인권재판관》이기라도 한듯이 다른 나라들의 《인권실태》에 대해 점수를 매기며 세계를 훈시하다가 이번에 제 집안에서 터진 일로 망신을 당하고 웃음거리가 되였다고 야유조소하고있다.

미국은 국제사회계의 이러한 비난을 성근하게 받아들이고 남의 집일을 《걱정》하면서 간참하기보다는 제코나 씻는것이 좋을것이다.

사적기대앞에 설 때마다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문천발브공장 일군들과 로동자들은 자기들의 일터에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였던 영광의 그날을 잊지 못해하고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사람의 참다운 인생은 로동으로 시작되고 로동속에서 빛납니다.》

조국과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지니시고 한평생 현지지도의 길을 끊임없이 이어가신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자욱은 여기 문천발브공장 청년가공직장에도 깃들어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돌려보신 선반 주체54(1965)년 5월 7일》,

기대앞에 붙은 글발이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울려준다.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공장을 찾으시였던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곳 청년가공직장 생산현장을 일일이 돌아보시였다.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처녀선반공 황옥금동무의 작업모습을 대견하게 바라보시였다.이름은 무엇이며 나이는 몇살인가,기대는 언제 잡았는가고 다정히 물으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도 한번 깎아보자고 하시는것이였다.

황옥금동무가 너무나 당황하여 어쩔바를 몰라하며 손에 기름이 묻는다고 아뢰이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손에 기름이 묻으면 뭐랍니까,기름묻은 손이 보배손입니다라고 하시며 친히 선반을 돌리시며 제품을 깎으시였다.

우리 세상은 로동계급의 세상이라고 하시며 한평생 우리 로동계급속에 계신 어버이장군님,

하기에 황옥금동무는 못 잊을 그날의 사연을 새 세대 로동자들의 가슴마다에 새겨주며 그들모두를 로동을 사랑하는 정신을 지니도록 키워주고있다.

공장의 일군들과 로동자들은 어버이장군님의 그날의 높은 뜻을 받들어 오늘도 각종 발브생산에서 새로운 혁신을 창조해나가고있다.

병사들은 나의 아들딸

오늘 백두산혁명강군은 무적필승의 위용을 힘있게 떨쳐가고있다.

그 자랑스러운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는 병사들에 대한 사랑을 지니시고 전선길을 끊임없이 이어가신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 불태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혁명동지들과 인민들에 대한 사랑과 믿음은 김정일동지의 정치에서 기본특징을 이룬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언제인가 일군들에게 이렇게 확언하시였다.

나는 앞으로도 전사들과 같이 흙냄새도 맡고 포연이 자욱한 전투초소들에서 전사들과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최고사령관이 될것입니다.…

이것이 력사앞에서 우리 장군님 더욱 굳히신 철의 의지였다.

가슴뜨거운 이야기가 되새겨진다.

어느해인가 위대한 장군님께 일군들은 전선지대에만은 다시 나가시지 말아달라고 간절히 아뢰였다.

잠시 생각깊은 눈길로 일군들을 바라보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나직하나 힘있는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지금 전연초소에서는 나의 수많은 아들딸들이 조국의 방선을 지키고있습니다.나는 전선경계근무를 수행하고있는 아들딸들의 군무생활을 료해하고 그들을 고무해주어야 하며 그러자면 전선지대에 찾아가야 합니다.…

순간 일군들의 가슴은 쿵 울리였다.이름할수 없는 격정이 그들의 온몸을 휩쌌다.

나의 아들딸!

장구한 군건설력사에 총쥔 군인들을 자기 아들딸들이라고 부르며 최전연초소들에 사랑의 자욱을 남긴 위인이 과연 있었던가.

오늘도 천만의 심장을 울려준다.

어찌하여 우리 장군님 전선길을 그리도 쉬임없이 가고 또 가시였던가.

언제나 우리 장군님의 마음속에서 세차게 끓어번진것은 무엇이였던가.

사랑이였다.병사들에 대한 끝없는 헌신이였다.

사랑이 아니였다면 그렇게 위험한 곳에 한몸을 내대시며 가실수 없다.그렇게 끊임없이,그렇게 많은 곳을 찾아가실수 없다.

앞에는 전선 또 전선이여도 거기엔 병사들이 있기에,그 길은 험준한 칼벼랑길이였어도,그 길은 세찬 파도가 앞을 막았어도 거기엔 병사들이 있기에 가고 또 가신 우리 장군님,

시작은 있어도 그 끝을 모르는것이 인민군병사들에 대한 우리 장군님의 위대한 사랑이였다.

적들이 코앞에 도사리고있어도 위험을 무릅쓰시고 인민군군인들에게 크나큰 믿음과 사랑,일당백의 슬기와 용맹을 안겨주시기 위하여 찾아주신 판문점,우리가 언제 순풍에 돛을 달고 다닌적이 있었는가고 하시며 풍랑사나운 날바다를 헤치시고 병사들을 찾아주신 섬초소,병사들을 찾아 톺아오르신 오성산칼벼랑길,천리방선의 1211고지와 351고지…

쉬임없이 이어가신 위대한 장군님의 선군길에 얼마나 많은 사랑의 서사시가 수놓아져있었던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녀성해안포병들이 받아안은 약크림에 대한 이야기며 이제야 한시름 놓인다고,자신의 소원이 풀렸다고 우리 장군님 그리도 만족해하시던 인민군군인들에게 공급되는 정제소금에 대한 이야기,현지시찰의 길에서 병사들이 먹을 간장의 색갈과 그 맛까지 친히 헤아리시며 뜨거운 사랑과 은정을 돌려주신 이야기…

어찌 한두마디 말이나 글로 다 이야기하랴.

나의 아들딸!

열화와 같은 위대한 장군님의 병사들에 대한 그 사랑,

그 위대한 사랑이 나의 아들딸이라는 다섯글자에 응축되여있다.

자식을 위하는 부모의 사랑만큼 사심이 없고 헌신적이며 뜨거운 사랑은 없다.부모는 자식을 위해 산다.자식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이 나라의 모든 부모들의 사랑을 다 합쳐도 따르지 못할 사랑을 인민군장병들에게 안겨주시며 선군길을 이어가신 우리 장군님이시였다.

정녕 위대한 장군님께 있어서 군인들은 단순히 최고사령관과 전사라는 군직관계가 아니라 사상과 뜻을 같이하는 진정한 혁명동지였으며 사랑하는 아들딸들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