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29일

민족운명수호의 생명선

◇ 최근 우리 군대는 초정밀화된 전술로케트발사훈련을 련이어 진행하였다.이것은 미제와 남조선괴뢰호전광들의 날로 악랄해지는 북침핵전쟁도발책동에 철추를 내리고 조선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안전을 수호하기 위한 지극히 정당한 자위적조치이다.우리가 이번 전승절에 즈음하여 또다시 터친 화력타격훈련의 폭음은 미제와 괴뢰호전광들의 그 어떤 침략책동도 단숨에 제압하고 이 땅에서 전쟁의 화근을 통채로 들어내고야말 단호한 의지를 내외에 힘있게 과시하였다.

이 땅에서 전쟁의 포성이 멎은지도 61년이 되였다.하지만 조선반도에서는 언제 한번 전쟁의 위험이 가셔진적이 없었다.올해에 들어와서만도 미국은 남조선괴뢰군과 함께 《키 리졸브》,《독수리》합동군사연습을 비롯한 각종 대규모의 북침전쟁불장난소동을 계속 감행하여 조선반도에 핵전쟁의 검은구름을 짙게 몰아왔다.얼마전에는 침략의 대명사로 알려진 악명높은 핵항공모함 《죠지 워싱톤》호를 투입한 가운데 우리 공화국에 대한 선제공격을 가상한 련합해상훈련을 광란적으로 벌리였다.지어 미국과 괴뢰패당은 지난 조선전쟁에서 당한 수치스러운 참패의 력사를 가리우고 가소롭게도 그 무슨 《승전》에 대해 떠들어대며 제2의 조선전쟁을 도발하려고 미친듯이 날뛰고있다.우리가 날로 엄중해지는 내외호전세력의 침략책동에 대처하여 자위적국방력을 백방으로 강화해나가는것은 누구도 시비할수 없는 자주적권리이다.

◇ 자위적국방력은 나라의 평화와 민족운명수호의 생명선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국방력강화는 국사중의 국사이며 강력한 총대우에 조국의 존엄과 인민의 행복도 평화도 있습니다.》

포악한 제국주의침략세력에 맞서 자주권과 생존권을 지키고 평화와 자주적발전을 이룩해나가자면 자위적국방력이 강해야 한다.제국주의자들의 달콤한 회유에 넘어가 군사력을 포기하였다가 종당에는 침략의 희생물이 되고만 여러 나라들의 비극적사태는 자기 힘이 강하지 못하면 자주권과 생존권을 결코 지킬수 없다는 피의 교훈을 새겨주고있다.

미제와 민족반역의 무리들에 의해 반세기가 넘도록 항시적인 핵전쟁위협을 당해온 우리에게 있어서 국방력을 강화하는것은 특별히 중요한 문제로 나선다.력사와 현실은 나라의 평화와 민족의 운명을 위협하는 침략세력의 군사적도발이 계속되는 한 그것을 무적의 힘으로 짓부시기 위한 자체의 군사력을 더욱 강화해나갈것을 요구하고있다.만약 선군의 기치밑에 마련된 우리의 자위적국방력이 없었다면 이 땅에서 핵전쟁의 불구름은 치솟은지도 오랬을것이다.이에 대해서는 남조선 각계도 《미국의 대북군사적공격을 막아내고있는것은 유엔도 아니고 국제사회의 반대도 아니다.그것은 오직 선군으로 다져진 북의 강력한 전쟁억제력이다.》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있다.

우리의 자위적국방력이야말로 조선반도의 평화와 온 겨레의 안전을 수호하고 통일조국의 륭성번영을 영원히 담보하는 억만금과도 바꿀수 없는 민족의 귀중한 재부,생명선이다.

◇ 우리 공화국의 애국애족의 선군정치와 자위적국방력강화노력을 적극 지지옹호하는것은 온 겨레의 성스러운 민족적의무이다.

지금 핵과 미싸일을 중추로 하는 우리 공화국의 자위적국방력을 거세하기 위한 미국과 괴뢰패당의 반공화국도발소동은 그 어느때보다 악랄하다.미국과 남조선괴뢰들은 우리 군대의 정상적인 로케트발사훈련을 그 무슨 《결의위반》이니 뭐니 하고 떠들어대며 반공화국고립압살책동의 도수를 높이고있다.하지만 적대세력의 그 어떤 도전도 선군의 기치를 높이 들고 병진로선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 힘차게 나아가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억척같은 신념을 꺾을수 없다.

선군으로 마련된 무진막강한 군사적힘이 온 민족을 지켜주고있다.해내외의 각계층 동포들은 미국의 핵전쟁도발책동을 철저히 제압하고있는 우리 공화국의 강력한 자위적국방력에서 커다란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간직해야 하며 사상과 리념,정견과 신앙의 차이를 뛰여넘어 조국과 민족을 위한 선군정치를 한마음한뜻으로 옹호해야 한다.선군옹호의 길에 평화와 통일이 있고 부강번영하는 통일조국의 창창한 래일이 있다.

선군의 빛발아래 하나로 굳게 뭉쳐 자주적운명개척을 위해 힘차게 투쟁해나가는 우리 민족의 앞길은 그 누구도 막을수 없다.

제13차 전국발명 및 새 기술전람회가 진행된다

전국의 과학자,기술자,근로자들의 높은 기대와 관심속에 제13차 전국발명 및 새 기술전람회가 오늘부터 8월 5일까지 3대혁명전시관 새기술혁신관에서 진행되게 된다.

온 나라가 경애하는 원수님의 력사적인 올해신년사의 사상과 정신을 높이 받들고 최첨단돌파전을 힘차게 벌리고있는 시기에 진행되는 제13차 전국발명 및 새 기술전람회는 당의 과학기술중시정책의 생활력을 남김없이 과시하고 지적제품류통이 보다 활발히 진행되도록 하는데서 중요한 계기로 된다.

전람회에는 성,중앙기관들과 각 도(직할시)과학기술위원회들에서 선발된 수천건의 우수한 발명 및 새 기술,새 제품들이 출품된다.

이번 전람회는 지적제품과 발명 및 특허제품들을 다양한 형식과 방법으로 소개선전하며 새 기술지식을 보급하는 방법으로 진행된다.

제13차 전국발명 및 새 기술전람회는 당의 령도따라 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새로운 비약의 불바람을 세차게 일으켜나가고있는 천만군민의 투쟁을 힘있게 고무추동할것이다.

전화의 나날에 있은 통쾌한 전투일화들(5)

전략적인 일시적후퇴가 시작되였다.강원도 철원군 영북면 운천리(당시)에서도 군인가족들이 자동차에 오르고있었다.차우에서 늙은이들과 녀인들,아이들을 거들어주던 한 군인이 떠날 차비가 끝나자 차에서 훌쩍 뛰여내리며 군인가족들에게 손을 흔들었다.그가 바로 박명수였다.

《그럼 무사히들 가십시오.》

후퇴의 길을 함께 가는줄 알았던 군인가족들은 놀랐다.대렬인솔자인 면당의 한 일군이 박명수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동무도 어서 타라고 일렀다.

《고맙습니다.하지만 나는 군인입니다.지휘관으로부터 받은 임무가 있습니다.》

그를 미덥게 바라보던 일군은 다시 만나자는 말을 남기고 자동차에 올랐다.

박명수군인이 받은 임무는 군수품창고를 지키는것이였다.반공격명령을 받은 대대가 전선으로 떠나갈 때 지휘관은 그에게 군수품창고를 지킬데 대한 임무를 주었던것이다.

쿵-쿵-

적들의 포소리가 점점 가까와지고있었다.결사전을 각오한 그는 싸움준비를 서둘렀다.이럴 때 군수품창고를 향해 급히 걸어오는 몇사람이 보였다.

인민유격대를 뭇고 산으로 들어가는 영북면 당위원장(당시)과 그 일행이였다.무기와 탄약을 접수한 면당위원장은 박명수에게 지금 적들이 코앞에까지 기여든것만큼 자기들과 함께 인민유격대가 있는 산으로 들어가는것이 어떻겠는가고 물었다.

《나는 그렇게 할수 없습니다.나는 지휘관으로부터 이 군수품창고를 지킬데 대한 임무를 받은 군인입니다.》

지휘관으로부터 받은 명령지시를 놓고 사소한 에누리나 흥정도 모르는 그에게 면당위원장은 더 다른 말을 할수 없었다.

면당위원장일행과 헤여진 때로부터 한시간가량 지나 땅크를 앞세운 적들이 창고로 달려들었다.

결사전을 각오한 박명수는 군수물자가 적들의 손에 들어갈수 없게 창고에 불을 질렀다.그는 혼자의 몸으로 적땅크와 적병 200여명을 소멸하고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그때로부터 30여년세월이 흐른 어느 해 나라에서는 준엄한 시련의 시기 이름도 알리지 않고 희생된 한 인민군전사의 위훈을 높이 평가하여 그에게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하였다.

조선전쟁시기 미8군사령관이였던 워커는 조선전선에 기여들자마자 《유엔군병사들이여!설사 그대들앞에 있는것이 어린이나 로인이라 할지라도 그대들의 손이 떨려서는 안된다.죽이라.그렇게 함으로써 그대들은 자신을 파멸로부터 구원할것이며 유엔군병사의 책임을 다하는것이다.》라는 명령을 내린 악명높은 살인《장군》이였다.

어느날 워커는 련천지구의 미제침략군사단과 영국려단을 시찰하고 그들의 사기를 돋구어주기 위해 서울의 미8군사령부를 떠났다.

현지에 도착하여 고용병들에게 훈장을 나누어주고난 워커는 제일 큼직한 《무공은성훈장》을 제 아들에게 달아주려고 안주머니에 따로 넣었다.그런데 놈이 련천에 들어갔을 때 조선인민군 제2전선부대가 련천시내에 대한 포위를 결속하고있었다.

날이 밝자 맹렬한 공격전이 벌어졌다.이날 1800여명의 적들이 소멸되였는데 살아남은 놈들은 서울쪽으로 쫓겨가고있었다.중땅크를 앞세우고 뒤에 꼬리를 물고 늘어선 승용차행렬속에 워커의 차도 있었다.그 차는 전선지휘용으로 특별히 개조한 방탄장치와 전복방지장치까지 갖춘 장갑차였다.

그러나 전시환경에 맞게 개조한 방탄장갑차도 워커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하였다.

워커는 전날밤 인민군 최종운소대장이 인솔하는 공병전투원들이 언땅을 파헤치고 지뢰를 매설한 다음 그우에 눈을 뿌리고 자동차바퀴자욱을 냈다는것을 알리 없었다.

중땅크가 지뢰에 걸려 녹아나고 워커의 차도 앞뒤로 된타격을 받았다.

도로가 막혀 오도가도 못하고있을 때 인민군병사들이 벼락같이 달려들어 수류탄을 던지고 기관단총을 휘둘러댔다.

워커는 얼어붙은 진흙땅우에 피를 토하며 쓰러졌고 그가 가지고다니던 훈장과 메달들은 시체옆에 너저분하게 나딩굴었다.

전투가 끝난 다음 전장을 수색하던 인민군병사들중에는 대대로 머슴을 살다가 토지개혁으로 땅의 주인이 되여 황소를 가지고 농사를 짓던 실농군이 있었다.그는 워커가 흘린 훈장과 메달을 보자 전쟁이 끝나면 집에 돌아가 황소코뚜레를 그것으로 장식할 생각을 하고 몇개 주어서 건사하였다.

그것이 후날 살인《장군》 워커가 인민군대의 매복전에서 죽었다는것을 확인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전쟁이라면 오금을 못쓰고 미친개처럼 전장을 돌아치던 워커는 이렇게 제가 지른 불속에서 타죽고말았다.

불을 즐기는자는 불에 타죽기마련이다.

7.27전승은 김일성장군님의 불멸의 력사적공적

조국해방전쟁을 승리에로 조직령도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의 불멸의 업적을 칭송하는 목소리가 남조선인민들속에서 높이 울려나오고있다.

전체 군대와 인민을 원쑤격멸의 성전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서게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령도에 대해 한 인터네트언론은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김일성주석께서는 전쟁에서 결정적역할을 하는것은 자기 위업의 정당성을 굳게 믿고 떨쳐나선 군인들과 민중의 사상의식이라는 점을 강조하시였다.

전쟁개시 다음날인 6월 26일 김일성주석께서는 《모든 힘을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라는 방송연설을 하시여 전체 민중에게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시였다.

또한 1950년 10월 21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에서 하신 결론 《인민군대내에 조선로동당 단체를 조직할데 대하여》를 발표하시여 인민군대안에 당단체를 조직하도록 이끄시였다.

이 조치로 군인들이 정치사상적으로 튼튼히 무장할수 있는 확고한 담보가 마련되였다.

한 섬유공장 로동자는 김일성장군님의 명령을 받은 인민군대는 이르는 곳마다에서 미국놈들을 멸살시켰는데 대전에서는 미24사단이 독안에 든 쥐모양이 되였고 사단장은 포로신세가 되였다고 말하였다.

각곳에 펼쳐진 《민심의 광장》에서도 현대포위전의 빛나는 모범을 창조한 대전해방전투,세계전쟁사의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갱도전과 적극적인 진지방어전,비행기사냥군조운동과 땅크사냥군조운동,적들의 불의적인 침공에 대한 즉시적인 반공격과 련속적인 타격전 등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해방전쟁시기 창조하신 독창적인 군사전략과 전법,업적들에 경탄을 표시하는 목소리들이 끝없이 울려나왔다.

서울대학교의 한 교수는 조선전쟁에서의 이북의 승리는 김일성장군님께서 내놓으신 군사사상의 승리,군사전략의 승리,군사로선의 승리이고 장군님의 두리에 일심동체가 된 인민군과 민중의 무비의 영웅성의 승리라고 주장하였다.

불세출의 위인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전승업적에 대하여 대전의 한 재야인사는 《무적의 총대로 침략자들을 서산락일의 운명에 처박아넣고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을 수호해주신 김일성주석님은 진정 민족의 영웅,강철의 령장이시다.》고 격찬하였으며 현대명인사 연구원 전영진은 《김일성장군께서 다국적군을 추풍락엽으로 만드신 7.27전승은 인류전쟁사의 기적을 창조한 신화적쾌승이였고 전설적무공이다.》고 칭송하였다.

부산의 한 퇴역장성도 《6.25의 비극을 7.27전승이라는 쾌거로 바꾸어놓으신 김일성장군님의 불멸의 력사적공적은 위대한 령장을 모신 군민은 거대한 힘을 가지고있으며 그 어떤 대적의 침략도 쳐물리치고 승리할수 있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고 강조하였다.

오늘 남조선인민들은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사상과 위업을 빛나게 이어나가시는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 계시기에 승리의 7.27은 민족의 영원한 존엄,억년 드놀지 않는 백전백승의 기치라는 진리를 더욱 깊이 새겨안고있다.

[정세론해설] 돌부처도 낯을 붉힐 광대극

지난 조선전쟁에서 쓰디쓴 참패를 당하고 수치만을 걸머진 미국과 남조선괴뢰들이 력사의 교훈을 망각하고 반공화국광대극까지 벌리면서 어리석게 놀아대고있다.최근 미국과 괴뢰들이 가소롭게도 《잊혀진 승리》나발을 불어대며 7.27을 저들의 《승전일》로 둔갑시키려고 획책하고있는것이다.

얼마전 괴뢰당국은 그 무슨 《평화통일기반구축의 디딤돌》이니 뭐니 하며 7.27을 계기로 《기념식》을 국제행사로 요란하게 치르고 이를 정례화할것이라고 떠들어댔다.이에 따라 괴뢰보훈처는 27일 서울에서 지난 침략전쟁에 참가했던 괴뢰군과 추종국가고용병들을 위한 《기념음악회》를 여는 추태를 부리였다.이어 벌어진 《감사만찬》이라는데서는 그 무슨 《전쟁영웅선정기념패》와 《평화의 사도》메달을 수여하는 광대극도 펼쳐졌다.지어 괴뢰들은 미국에서 벌어진 《정전기념식》이라는데 대표단까지 파견하여 《잊혀진 승리》를 경축하는 놀음도 벌리였다.더우기 웃기는것은 《동아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들과 전문가라고 자처하는자들이 지난 조선전쟁은 《더이상 잊혀진 전쟁》이 아닌 《영예로운 전쟁이자 영광의 승전》이라느니,《전쟁종결의 시대를 앞당기는 촉매제》니 하고 법석 고아대고있는것이다.나중에는 남조선집권자까지 나서서 《대통령기념사》라는것을 외우며 패전을 《승전》으로 묘사하는 해괴한 추태까지 부리였다.그야말로 돌부처도 얼굴을 붉힐 광대극이 아닐수 없다.

미국과 남조선괴뢰들은 지난 조선전쟁에서의 저들의 대참패를 기억조차 하고싶지 않아 몇년전까지만 해도 7.27을 계기로 그 어떤 공식행사놀음도 벌리지 않았다.침략전쟁도발자,수치스러운 참패자들에게 있어서 지난 조선전쟁이 《잊혀진 전쟁》으로 되여온것은 당연한것이였다.

그러던것이 지난해부터 미국이 창피스럽게 그 무슨 《잊혀진 승리》에 대해 떠들며 각종 광대극을 벌려놓자 그에 장단을 맞추어 괴뢰들도 《기념》놀음에 매달리기 시작하였다.지난해 미국방성은 6.25를 계기로 청사에 《조선전쟁기념전시관》이라는것을 차려놓고 저들이 남조선을 그 누구의 《침략》으로부터 지켜냈다고 광고하였다.한편 남조선괴뢰들은 6.25를 무슨 명절처럼 《기념》하면서 조선전쟁에 동원되였던 미제침략군살인마들과 외국고용병들에게 훈패를 달아주고 《감사》를 표시하는 어리광대놀음을 벌리였다.남조선집권자자체가 앞장에서 《혼돈된 력사인식》이니 뭐니 하며 지난 조선전쟁에 대한 《력사교육을 바로해야 한다.》고 피대를 돋구었다.올해에 들어와서도 괴뢰패당은 정전협정일이 그동안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다.》고 볼부은 소리를 늘어놓으며 민간인들까지 동원하여 반공화국광대극을 펼치고있다.

지금 남조선 각계는 물론 국제사회는 미국과 괴뢰당국이 지난 조선전쟁의 진실을 외곡하며 뻔뻔스럽게 참패의 력사를 가리우고 여론을 오도하는데 대해 조소를 금치 못하고있다.

세상이 다 아는바이지만 7.27은 영웅적조선인민이 지난 조국해방전쟁에서 세계《최강》을 자랑하던 미제의 거만한 코대를 꺾어놓은 위대한 승리의 날이다.이에 대해서는 력사에 똑똑히 기록되여있다.지금도 판문점의 정전협정조인장에는 당시 《유엔군》사령관이였던 패전장군 클라크가 항복서에 도장을 찍은 자료들이 그대로 남아있다.클라크는 승리하지 못한 정전협정문에 수표한 최초의 미군사령관이라는 수치감밖에 얻은것이 없다고 눈물까지 흘리며 패전을 인정하였다.지금에 와서 미국과 괴뢰들이 아무리 《잊혀진 승리》니 뭐니 하고 광고해도 거기에 귀를 기울일 사람은 없다.

미국과 괴뢰패당이 이런 어처구니없는 광대극을 벌리며 해괴망측하게 놀아대는것은 조선전쟁도발자로서의 저들의 흉악한 정체를 가리우고 전쟁발발의 책임을 우리에게 넘겨씌우며 반공화국적대감을 극구 고취하여 제2의 조선전쟁을 도발하려는 음모의 산물이다.최근 괴뢰들이 정전협정이 조선반도에서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담보》해왔다느니,정전협정체결이후 저들이 미국과 《호상방위조약》을 체결한것은 북의 《남침을 막기 위한 전략적결단》이였다느니 뭐니 하면서 상전과 야합하여 북침전쟁불장난을 미친듯이 벌리고있는것도 그것을 실증해주고있다.

력사에 영웅적조선인민의 빛나는 승리,침략자 미제의 수치스러운 대참패로 기록된 조선전쟁을 감히 저들의 《승리》로 둔갑시키려 하면서 새 전쟁도발소동에 미쳐날뛰는 미국과 괴뢰호전광들의 망동은 우리 군대와 인민의 치솟는 격분을 자아내고있다.

전쟁도발자들이 아무리 《잊혀진 승리》에 대해 떠벌이며 별의별 《기념》놀음을 다 벌려놓아도 조선전쟁에서의 쓰디쓴 참패의 력사는 세계에 공인된것으로서 절대로 지울수 없다.

만일 내외호전광들이 《잊혀진 승리》나발을 불어대며 또다시 북침전쟁의 불을 지른다면 도발자들은 백두산혁명강군의 무자비한 타격으로 모조리 격멸되여 항복서에 도장을 찍을 놈조차 없게 될것이다.

세인을 경탄시킨 전승일화들(5)

조국해방전쟁시기 어느날 이른새벽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 녀성일군을 부르시였다.그로 말하면 얼마전에 사망한 허헌선생의 딸로서 문화선전상(당시)의 중임을 맡고있었다.

그는 아버지를 잃고 너무도 가슴이 아파 며칠째 식사를 못하고있었다.

아버지를 그리도 극진히 보살펴주신 수령님을 뵈옵는 순간 녀성일군은 인사말도 올리기 전에 오열을 터뜨리였다.

그를 측은하게 바라보시던 그이께서는 지난 정월에는 김책동무가 갔고 이번에는 허헌선생이 가고 이렇게 내가 아끼고 믿던 사람들이 먼저 갔다고 하시며 손수건을 눈가로 가져가시였다.그러시고는 오랜 시간 고인에 대한 감회깊은 추억을 하시였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최고사령부의 창가에 아침해살이 비껴들었다.수령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서시며 이제는 함께 식당으로 가자고 이르시였다.녀성일군은 서둘러 일어나며 집에 가서 식사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녀성일군에게 집에 가야 함께 식사할 사람도 없겠는데 왔던김에 아침이나 들고 가라고 하시며 그를 식당으로 데리고가시였다.

식탁에는 두그릇의 흰쌀죽이 차려져있었다.녀성일군은 영문을 몰라 주춤거리기만 하였다.

수령님께서는 그러는 그를 자리에 앉혀주시면서 나도 목이 메는데 동무는 더할것이라고,밥이 목에 걸려 안넘어갈것 같아서 죽을 쑤라고 하였다고 갈리신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녀성일군은 불행을 당하고 음식을 들지 못하는 자기의 가슴아픈 정상을 헤아리시여 수령님께서 흰쌀죽을 쑤게 하셨다는것을 알고 눈물과 함께 죽을 들었다.

참으로 우리 수령님은 자신의 아픔보다도 전사들의 아픔을 먼저 생각하시며 그들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가셔주시려고 마음쓰신 위대한 인간이시였다.

 

조국해방전쟁이 한창이던 어느날 한 외국기자가 최고사령부에 찾아왔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그의 관심사는 미제의 대규모적인 《신공세》와 관련하여 앞으로 전쟁의 전망이 어떠하겠는가 하는것이였다.

한 일군이 좀 기다려야 하겠다고 말하자 외국기자는 머리를 끄덕이였다.그도 우리 수령님께서 얼마나 바쁘신가를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하지만 그는 생각보다 빨리 들어오라는 허락을 받았다.

그이께서 계시는 방에 들어선 그는 예상외로 조용한데 놀랐다.방 한쪽에 놓인 작전대앞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무엇인가를 보고계시였다.

수시로 변화되는 전선정황에 대한 문건을 보시는가?

그런데 그이의 옆에 선 한 병사(견장을 보니 분명 한줄배기병사였다.)가 서서 수령님께 무엇인가 이야기하고있었다.

안내일군이 기자에게 지금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병사의 학습정형을 검열하고계신다고 속삭이듯 알려주었다.

기자는 뻥해졌다.그처럼 분망하신 때에 학습검열이라니?…

《앞으로 전후복구건설을 위해 공부하러 떠나보낼 사람들을 미리 준비시키는 학습입니다.》

일군의 말에 그는 다시한번 놀랐다.

그렇다면 그이께서는 이미 전쟁의 승리를 확신하고계신다는것이 아닌가!!

펀뜻 정신이 든 외국기자는 곧 발자국소리를 죽여가며 조용히 되돌아나왔다.

뒤따라나온 일군이 왜 그러느냐고 묻자 그는 웨치듯 말하였다.

《됐습니다.나는 이미 취재를 끝냈습니다.》

영웅들의 위훈을 빛내주시며

조국과 인민의 기억속에 영생하는 전화의 영웅들을 생각할 때면 위대한 장군님께서 청춘도 생명도 조국보위성전에 다 바친 전사들을 잊지 않으시고 그들이 세운 위훈을 값높이 빛내여주신 감동깊은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력사는 자기 인민과 인류의 미래를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한 사람들의 업적은 영원히 남아있으며 그들의 위훈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빛난다는것을 보여주고있습니다.》

주체85(1996)년 2월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최전연에 위치한 351고지를 찾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적정을 료해하시며 아군의 작전전술을 완성하기 위한 방안들을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그러시고는 만족하신 표정으로 전망대안을 유심히 둘러보시였다.

전망대의 한쪽 벽면에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351고지전투에서 배출된 공화국영웅들의 사진이 게시되여있었다.

영웅전사들의 사진을 한장한장 유심히 바라보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351고지를 사수한 영웅들은 정말 영웅이라고,그들은 다 우리 당이 아끼고 내세우는 로병들이라고 뜻깊게 말씀하시였다.

전화의 영웅들에 대한 숭고한 도덕의리심이 넘치는 그이의 말씀에 부대지휘관들은 뜨거운 격정을 금할수 없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부대지휘관들을 둘러보시며 351고지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어버이수령님께 끝없이 충직한 영웅전사들이 피로써 쟁취하고 사수한 조국의 고지,영웅의 고지라고 말씀하시였다.그러시면서 전화의 나날 우리 인민군용사들이 351고지를 점령하고 지켜싸우던 때의 이야기를 감명깊게 들려주시였다.

주체42(1953)년 6월 2일 밤에 진행된 351고지공격전투는 처음부터 치렬했다.

인민군용사들은 한몸으로 가시철조망을 덮고 자기의 등으로 전우들을 통과시켰고 《김일성장군 만세!》를 소리높이 웨치며 불뿜는 적화구를 가슴으로 막아 아군의 돌격로를 열어나갔다.

적들이 《난공불락의 요새》,《불퇴의 선》이라고 호언장담하던 351고지는 우리 인민군군인들의 영웅적투쟁에 의하여 전투를 시작한지 단 15분만에 점령되였다.

그후 적들은 351고지를 다시 빼앗아보려고 고지우에 무차별적인 폭격과 함포사격을 퍼부으면서 하루에도 수십차례씩 필사적인 돌격을 가해왔다.그때마다 351고지용사들은 한치의 땅도 적들에게 내여주지 말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을 지켜 고지를 영예롭게 사수해냈다.…

이야기를 끝마치시고도 그때의 영웅전사들을 그려보시는듯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아무 말씀 없으시였다.

고지의 높고낮은 산발들을 이윽토록 바라보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351고지는 앞으로도 영원히 어버이수령님을 위하여,당과 조국을 위하여 청춘도 생명도 다 바친 영웅전사들의 이름과 함께 조국의 고지,영웅의 고지로 이름을 떨칠것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조국의 고지, 영웅의 고지로 빛나는 351고지,이 사연깊은 고지에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영웅전사들이 세운 위훈을 조국과 더불어 빛내여주고싶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나라는 351고지영웅들과 같은 수많은 영웅전사들의 고귀한 희생과 피어린 투쟁에 의하여 부강번영하는 사회주의조국으로 자랑높이 일떠설수 있었고 영원히 수령님의 존함과 더불어 영웅조선,주체조선의 위용을 떨칠것이라고 하시면서 당과 수령에게 끝없이 충직한 영웅전사들의 불멸의 위훈은 조국청사에 길이 빛날것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값높은 평가의 말씀,여기에는 351고지의 영웅들이 세운 위훈은 영원히 대를 이어 전해질것이며 새 세대 병사들도 전화의 영웅들처럼 조국의 전초선을 믿음직하게 사수해나갈것을 바라시는 위대한 선군령장의 크나큰 믿음이 뜨겁게 어려있었다.

신념의 붉은 쇠물로 아로새긴 승리

승리!

누구는 승리를 위해 애젊은 가슴으로 불뿜는 적화점을 몸으로 덮었고 수류탄묶음을 안고 적땅크밑에도 서슴없이 뛰여들었다.또 누구는 그 승리를 위해 입에 수류탄을 물고 적들속에 몸을 날렸고 턱으로 중기관총의 압철을 눌러 조국의 고지를 사수했다.

불과 불이 오가는 격전장에서 멸적의 총검을 들고 피와 살,목숨까지도 아낌없이 바쳐싸운 용사들,우리의 위대한 전승의 력사속에는 그들의 위훈만이 기록되여있는것이 아니다.어버이수령님을 위하여,당과 조국을 위하여,모든것을 전쟁승리를 위하여 재더미속에서,적들의 폭격과 포격속에서 증산돌격전을 벌리며 전승사의 한페지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 전시로동계급,그 유명무명의 애국자들속에는 신념의 붉은 쇠물로 전승을 안아온 성진제강소(당시)의 미더운 로동계급도 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부강조국건설은 조국수호를 떠나서 생각할수 없습니다.》

청소한 우리 공화국에 대한 미제의 침략책동에 성강로동계급의 무쇠마치가 무섭게 떨리였다.

《모든것을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당의 이 전투적호소에 나라의 강철고지를 맡은 자신들이 어떻게 화답해야 하는가를 성강의 로동계급은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새 조국건설을 위하여 타오르던 성강의 불길은 침략자들에 대한 증오의 불길,조국결사수호의 불길로 더욱 거세차게 타번졌다.

이들은 서울시가 해방된 주체39(1950)년 6월 28일에 벌써 전쟁이 일어나기 하루전인 24일에 비하여 160%라는 높은 실적을 기록하였다.평화적건설시기도 아닌 전쟁직후 성강의 출강률은 전쟁전에 비하여 130%로 뛰여올랐다.

이것을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긴 미제는 성강의 불을 꺼보려고 악랄하게 책동하였다.주체39(1950)년 8월 20일 쌍포앞바다에 기여들어 성진제강소에 첫 함포사격을 퍼부은 적들은 8월 28일 또다시 공중비적들을 내몰아 맹폭격을 가하였다.이로 하여 제강소는 재더미로 변하였다.하지만 그 어떤 물리적타격수단으로써도 조선로동계급의 정신력만은 건드릴수 없었다.강철고지,그것은 목숨이 붙어있는 한 적들에게 단 한치도 내줄수 없는 조국결사수호의 최전연고지였다.

성강의 로동계급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중요설비들을 깊은 산골짜기에 옮겨놓고 강철생산을 멈추지 않았다.

공화국북반부에 침입한 적들을 몰아낸 재진격이후 성강의 로동계급은 또 어떤 영웅적인 투쟁을 벌리였던가.

산에 갱도를 뚫어 제강소를 차려놓고 쇠물을 부어내던 그 불굴의 군상이 력력히 어려온다.

돌이켜보기조차 가슴아프고 있는것보다 없는것이 더 많았던 그때였다.하지만 성강의 로동계급은 야장간에서 자전거바퀴로 만든 손풍구를 돌리며 소공구를 벼려냈다.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적들이 떨군 시한탄과 불발탄을 해제하여 폭약을 마련해가지고 갱도를 뚫었으며 그속에 전기로를 들여앉혔다.갱도안에는 강철직장,조강직장,제관직장,단야직장,공무직장이 들어앉았는데 그야말로 온 제강소가 통채로 갱도에 들어간셈이였다.

갱도안에 제강소를 차려놓는다는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였다.성강의 로동계급은 소형전기로와 용선로,280mm압연기,가열기,박판압연기 등 육중하고 방대한 물동들을 밑에다 굴대를 받치고 한치한치 밀어가면서 갱도속으로 운반하였다.무시로 달려드는 적기의 폭격속에서 설비들을 이동해가는 전투는 목숨을 내댄 결사전이였다.그것이 얼마나 간고한 전투였는가 하는것은 어느 한 다리에서 불과 200m 떨어져있는 갱도까지 기계함마 1대를 옮겨가는데 옹근 나흘이 걸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잘 알수 있다.

전기로에서 받은 쇠물을 강재로 완성하는 공정을 맡은 공무직장의 로동자들은 필요한 전력을 자체로 보장하기 위해 밖에 있는 증기기관차를 갱도에 끌어오기로 결심하였다.철길도 없는 맨땅우에서 증기기관차가 움직이게 한다는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하지만 성강의 로동계급은 순간도 잊을수 없었다.한겨울에 갱도공사를 진행하고 강철생산을 벌리고있는 자기들에게 전선군인들과 꼭같이 솜옷도 안겨주시고 전쟁의 그 어려운 속에서 대형변압기를 비롯한 중요동력설비들을 보내주는 조치도 취해주신 어버이수령님의 그 사랑,그 믿음에 강철로동계급의 심장은 충정으로 높뛰였다.

전시강철생산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이다!

이 신념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다.자체로 제작한 대형권양기를 수십명이 달라붙어 돌리고 기관차바퀴밑에 두터운 철판을 깔아 한치한치 전진하던 성강로동계급의 모습을 오늘도 조국은 잊지 않고있다.

돌이켜보자.기관차바퀴가 지나갈 때마다 우그러들어 못쓰게 된 철판은 그 몇장이였던가.그들은 적기의 맹폭격속에서 수백장의 철판을 갈아대고 육중한 대형권양기를 무려 40여회나 옮기면서 1 000m가 넘는 거리로 기관차를 움직여오고야말았다.천정기중기도 없는 갱도안의 전기로에 손로동으로 원료를 장입하고 500kg능력의 소형전기로로 하루 4~5t의 쇠물을 부어낸 용해공들,소형압연기로 중형압연소재를 밀어내며 강재를 뽑아낸 압연공들…

성강로동계급의 피와 땀,목숨과도 같은 포탄들은 원쑤들의 머리우에 불벼락이 되여 떨어졌다.조국의 강철고지를 이렇듯 믿음직하게 지켜낸 영웅적로동계급의 불굴의 투쟁이 있어 승리의 7.27은 온 세계에 더욱 찬연히 빛을 뿌리게 되였다.

그렇다.그들은 신념의 붉은 쇠물로 승리를 아로새겼다.혁명의 준엄한 년대마다 강철로 당중앙을 결사옹위한 성강의 자랑스러운 전통은 어제도 오늘도 래일도 영원히 이어질것이다.

보답의 한길만을 걸으리

얼마전 본사편집국으로는 서성구역 서천동에서 사는 김동길동무가 쓴 한통의 편지가 왔다.

《8년세월을 하루와 같이 지극한 정성을 바친다는것은 누구나 할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편지는 한 영예군인의 건강증진을 위해 소문없이 오랜 세월을 바쳐온 김만유병원 의료집단의 감동깊은 소행을 전하고있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보건부문 일군들속에서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아름다운 소행과 감동적인 사실이 많이 나오고있는것은 우리 인민의 자랑입니다.》

수십년전 조국의 하늘가에 비행운을 새기며 수령결사옹위의 항로를 억세게 날던 김동길동무는 전투임무수행중에 그만 부상을 당하여 군사복무를 더는 할수 없게 되였다.

당의 사랑과 믿음속에 김책공업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어느 한 단위에서 일하던 그는 과학백과사전출판사 기자로 배치받은 후 짧은 기간에 《항공과학기술의 세계》,실화집 《공화국과 더불어 빛나는 매들의 위훈》 등 여러권의 도서들을 집필하였다.

비록 불편한 몸이였지만 은빛날개를 번뜩이며 저 하늘을 날아예던 어제날의 용감한 비행사답게 생의 순간순간을 줄기차게 이어나가던 그는 8년전 어느날 끝내 자리에 쓰러지고말았다.

그로부터 얼마후 김동길동무를 태운 구급차는 김만유병원으로 달리였다.그와 그의 온 가족은 바로 그 시각 한 평범한 영예군인의 치료를 위해 보건성과 김만유병원의 일군들사이에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으며 병원에서 어떤 대책들을 시급히 취하고있었는지 다는 모르고있었다.

병원일군들의 적극적인 방조속에 실장 리옥란,담당연구사 김영호,간호원들인 류은영,로성희동무를 비롯한 이곳 연구집단은 그때부터 심한 뇌타박과 뇌출혈후유증으로 인한 신경쇠약 등으로 몸져누운 김동길동무의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해 낮과 밤이 따로 없는 전투를 벌리였다.

높은 의료수기와 함께 환자의 심리상태까지 헤아려가며 진행해야 하는 신경내과질환치료는 사실 말처럼 쉬운것이 아니였다.

어느날 이곳 연구실에 갓 배치되여온 한 연구사가 실장을 찾아왔다.

《저를 용서해주십시오.제가 오늘 본의 아닌 행동으로 환자의 얼굴에 그늘이 가게 하였습니다.》

바쁜 일로 총총히 입원실복도를 지나던 길에 문득 만난 환자의 물음에 친절하게 웃으며 대답하지 못한 그것이 마음에 걸려 외우는 그를 바라보며 실장은 한생의 충고가 될 의미심장한 말을 해주었다.

《우린 의료일군들이예요.어떤 정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따뜻이 대해주는 우리들의 모습에서 환자들은 한식솔의 정과 함께 마음속안정도 가지게 된다는걸 순간도 잊지 맙시다.》

그날 침상에 누워 안해로부터 이에 대한 사실을 알게 된 김동길동무는 치료에 필요한 온갖 조건을 우선적으로 보장해주면서도 그 성의가 부족한듯 미세한 자기의 감정변화까지도 놓치지 않고 념려해주는 이곳 의료일군들의 진정이 고마와 조용히 눈시울을 적시였다.

그후 환자는 기적적으로 건강을 추세우고 생의 활력에 넘쳐 병원문을 나섰다.

한 영예군인을 위하는 이곳 의료일군들의 사랑과 정성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8년동안의 오랜 세월 부피두툼해진 환자의 병력서를 펼쳐보았다.

거기에는 환자상태를 알아보고나서 치료에 필요한 값비싼 약들을 정상적으로 보장해준 정형들이 날자와 함께 상세히 적혀있었다.

그러나 병력서에는 많은 사실들이 적혀져있지 않았다.

뇌혈관질환이 제일 많이 나타나는 봄,가을철마다 아침저녁으로 병상태를 알아보고 이상한 징조라도 보이면 즉시에 달려가던 이야기며 몸보신에 좋은 음식들을 들고 찾아가 친혈육의 정과 사랑을 기울여온 사연많은 이야기들…

이런 헌신적인 노력과 뜨거운 진정에 의해 8년전 그날에 벌써 운명의 경각에 다달았던 그의 병은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호전되여갔다.

한 영예군인의 건강증진을 위해 남모르게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온 사람들은 김만유병원의 의료일군들만이 아니였다.

지난 10여년간 그를 따뜻이 돌봐주고있는 과학백과사전출판사 처장 김유삼동무며 길을 가다가 갑자기 쇼크상태에 빠져 쓰러진 김동길동무를 사경에서 구원하는데 이바지한 체신성아래단위 운전사인 김광철동무 그리고 그와 온 가족의 생활상편의를 위해 지성을 다해온 서성구역의 일군들과 김종태전기기관차련합기업소의 일군들…

화목한 대가정의 한식솔이라 부르는 이런 고마운 사람들이 있어 그는 지칠줄 모르는 정력을 안고 집필전투를 힘있게 벌려 지난 한해동안에만 해도 두차례에 걸쳐 글작품집을 만들어 경애하는 원수님께 삼가 올릴수 있었다.

김동길동무는 지금 나라의 항공운수발전에 이바지하게 될 기사집필에 힘을 넣고있다고 하면서 편지의 마감에 자기의 격동된 심정을 이렇게 터놓았다.

《고마운 우리 제도,귀중한 어머니조국을 위해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저의 지혜와 열정을 깡그리 바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