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2일

혁명가들이 철저히 지켜야 할 계급적원칙

우리 인민의 꿈과 리상인 사회주의강성국가를 건설하는 전력사적과정은 계급투쟁을 동반한다.

우리 당의 권위가 비상히 높아지고 우리 나라의 위력이 강화되는데 겁을 먹은 적들은 어떻게 하나 승승장구하는 우리의 사회주의제도를 허물어보려고 매일,매 시각 미친듯이 발악하고있다.

뿌리가 썩으면 나무에 병이 드는것과 마찬가지로 계급적원칙에서 탈선하면 혁명을 망쳐먹게 된다.

계급적원칙을 떠난 혁명가의 표징을 론할수 없다.정세가 어떻게 변하건 제국주의반동들에 대하여 그 어떤 환상도 가지지 말고 계급적원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것은 어버이장군님께서 우리 천만군민에게 남기신 간곡한 유훈이다.

사람들은 지금도 16년전 11월 신천땅을 찾으신 어버이장군님께서 하신 말씀을 잊지 않고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계급교양사업을 강화하는것은 우리 당의 일관한 방침입니다.우리 공화국을 압살하려는 미제를 비롯한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의 책동이 더욱 강화되고있는 오늘의 현실은 인민들속에서 계급교양을 그 어느때보다도 더욱 강화할것을 절실히 요구하고있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하신 말씀이 오늘도 천만군민의 심장을 울려주고있다.

신천박물관은 미제와 계급적원쑤들의 귀축같은 만행을 보여주는 축도이며 력사의 고발장입니다!

우리는 신천군에서 미제침략자들이 히틀러파쑈도당을 릉가하는 가장 야수적인 살인만행을 감행한데 대하여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미제침략자들이야말로 정신착란증에 걸린 미친놈들이며 두발가진 승냥이들입니다.우리는 미제국주의자들과 한하늘을 이고 같이 살수 없으며 적들과는 끝까지 싸워야 합니다.우리는 미제국주의자들에 대한 자그마한 환상도 가져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그 이름만 불러보아도 침략자,야수의 무리 미제와 계급적원쑤들에 대한 증오로 치가 떨리고 이가 갈리는 복수의 땅 신천,

교활한 제국주의자들이 《평화》와 《박애》를 침발린 소리로 설교할 때,거기에 속아넘어갔던 나라 사람들이 미제에 대한 환상이 어떤 가슴터지는 비극을 남기였는가를 피를 토하며 절규할 때가 아니였던가.

바로 이러한 때 단행하신것으로 하여 신천땅에 대한 우리 장군님의 현지지도는 오늘도 비상한 무게를 가지고 계급투쟁의 무기를 더 날카롭게 벼리는 길만이 조국을 지키고 사회주의를 끝까지 수호할수 있는 길이라는 진리로 사람들을 각성시키고있다.

급변하는 세계정치정세의 소용돌이속에서 적아에 대한 식별이 모호해지고 계급투쟁의 무기인 칼과 총이 용광로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궤변이 국제무대에 나돌고있던 때의 일이다.

당시로서는 종잡기 어려운 복잡한 물음이 우리 혁명앞에 제기되였다.

국제정세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신 어버이장군님께서 단호히 선언하시였다.

조선에는 총이 필요없는것이 아니라 필요하다!

총이 필요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아직 혁명이 무엇인지도,총알맛이 어떤것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우리 당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총이 없어 락동강까지 나갔다가 후퇴를 한 쓰라린 교훈을 체험한 당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손에서 총을 놓지 않을것이며 더 위력한 총을 만들것이다!

《완화》와 《화해》의 회오리속에서 계급의 대가 흔들리고있는 엄중한 사태를 련결시켜 분석하시는 우리 장군님의 현명성,바로 여기에 걸출한 혁명가로서의 그이의 투철한 계급적원칙성이 있는것이였다.

그후 어느 한 나라에서 일어난 사태를 주시하며 사람들은 우리 장군님의 비범성에 경탄을 금치 못하였다.

계급교양을 잘하지 않은 어느 한 나라에서 착취받고 압박받던 지난날을 잊은 사람들이 생활상애로를 불평하며 나아가서 수정주의사상에 물젖어 혁명과 계급투쟁을 포기하고 제 혼자만 잘살려는 경향이 우심해졌다.

결과 피땀흘려 세운 사회주의를 지켜낼수 없었다.

문제는 나라의 복잡한 정세속에서 지난날 정권을 반대하여 책동하던자들과 그 후손들은 벼락부자가 되고 정권을 지켜싸우던 사람들과 그 후손들은 졸지에 거지와 실업자로 되고만것이였다.

이런 비극적인 사태를 주시하시며 어버이장군님께서는 력사적교훈은 로동계급의 당이 계급교양을 하지 않고 계급적원칙을 버리는것은 결국 자기 무덤을 파는것이나 같다는것을 보여준다고 신랄히 분석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후손들,김정일동지의 전사,제자들이 영원히 가슴에 새기며 살아야 할 귀중한 가르치심이다.

혁명은 누가 누구를 하는 치렬한 계급투쟁이다.

계급성문제는 혁명을 지키는가,버리는가 하는 근본문제이다.

로동계급의 계급의식은 사회주의사상에서 핵을 이루며 사회주의교양에서 기본은 계급의식을 높이는것이다.

아직 계급적원쑤들이 그대로 남아있고 혁명의 과녁도 변하지 않았다.

지구상에서 제국주의를 완전히 쓸어버릴 때까지 계급적원쑤들을 반대하여 견결히 싸워이기려는것이 어버이장군님의 슬하에서 총대맛을 알고 계급의 무기를 날카롭게 벼려온 우리 천만군민의 신념이고 의지이다.

매와 같은 눈으로 적들의 준동을 살피고 맹수와 같은 기질로 적들의 숨통을 조여야 적들과의 대결에서 승리할수 있다.

어버이장군님께서는 우리 전사들에게 언제나 계급적으로 예리하고 견결하여야 한다고,모든 문제를 계급적선에서 날카롭게 보아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계급적선에서의 탈선은 곧 파멸의 길이다.

계급적원칙을 양보하기 시작하면 원쑤들이 책동할수 있는 틈을 주게 된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한 인민군전사의 운명에 닥쳤던 뜻밖의 일은 오늘도 사람들에게 계급적선에서는 추호의 탈선도 있어서는 안된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락동강까지 나갔던 그 전사가 집에 와보니 평시에 물욕에 어둡던 아버지가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에 적들에게 가담하여 나라앞에 죄를 지었다.

계급적원칙앞에서 전사는 투철하였고 그 어떤 자비와 용서를 몰랐다.불미스러운 아버지의 과거로 하여 그 전사는 오래동안 마음에 상처를 입고있었다.

이 사실을 아신 어버이장군님께서 숱한 품을 들이시여 그 사건을 해명하도록 하시였으며 그를 친히 보증해주시였다.

계급적선에서 한치의 양보도 허용치 않은 견결한 그 전사에 대한 웅심깊은 사랑의 발현이였다.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의 주역인 반동적인 사상문화가 우리 지경을 넘어서지 못하도록 하여야 한다.

제국주의자들이 우리 내부에 퇴페적인 부르죠아사상과 생활양식을 퍼뜨리기 위해 그처럼 집요하게 날뛰는 근본목적도 본질은 우리 인민의 계급의식을 마비시키려는데 있다.

혁명가의 생기이고 기질이며 활력인 견결한 투쟁력,이는 제국주의자들의 끈질긴 책동을 물거품으로 날려보내는 위력한 무기이다.

계급적원칙과 배치되는 기회주의를 경계하여야 한다.

그시그시의 정세에 따라 계급적원칙이 없이 유리한쪽으로 붙는 지조없는 경향이며 혁명의 절대금물인 기회주의는 혁명이 이룩한 성공탑을 순식간에 말아먹을수 있게 하는 매우 위험천만한 사상독소이다.

혁명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직 혁명이라는 궤도에서 탈선하지 말아야 하며 계급적원칙을 좌우명으로 심장에 간직해야 한다.

계급적으로 예리하지 못하고 제기된 문제를 평화주의적으로 대하는 경향을 경계하여야 한다.

모든 문제를 그저 좋게만 보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원쑤들의 침해로부터 당의 통일단결을 견결히 수호할수 없으며 준엄한 날 결코 한모퉁이를 막아나설수 없다.

우리의 계급적원칙은 철두철미 혁명의 수뇌부결사옹위와 직결된다.

혁명의 수뇌부결사옹위와 관련하여 0.001mm의 편차도 허용치 않으려는것이 우리 군대와 인민의 철의 의지이다.

위대한 장군님 따라 걸어온 선군혁명의 천만리를 경애하는 원수님을 따라 억만리로 이어가리!

천만의 철의 대오가 이런 열화의 신념으로 심장을 불태우는 길이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성스러운 선군혁명력사를 더욱 빛내이는 길,존엄높은 백두산대국의 위력을 더 장엄히 과시하는 영광의 길이다.

군민협동작전의 위력을 남김없이 과시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올해에도 군민협동작전으로 평양시를 더욱 웅장화려하게 건설하고 도,시,군들을 해당 지방의 특색이 살아나게 잘 꾸려야 합니다.》

당의 높은 뜻을 받들고 함경남도에서 군민협동작전의 위력을 높이 떨치며 인민의 행복을 위한 창조물을 련이어 일떠세우고있다.

얼마전 마전유원지개건공사장에서 우리와 만난 지휘부일군인 함경남도인민위원회 부국장 김동걸동무는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우리는 지금 군민협동작전으로 어렵고 방대한 마전유원지개건공사를 다그치고있습니다.》

그의 안내를 받으며 공사장을 돌아보는 우리의 가슴은 벅차올랐다.

군대와 인민이 한마음한뜻이 되여 착공의 첫삽을 박은 때로부터 불과 몇달동안에 1단계공사과제인 10여개 대상에 40여동에 달하는 샤와탈의장들과 정각,청량음료점,해양감시탑을 비롯한 건축물들을 기본적으로 일떠세우고 체육구와 주차장들,구내도로들을 형성하여 본래의 모습을 전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유원지지구를 일신시켜놓았다.

모래와 자갈,돌을 보장하는 문제가 긴급히 제기되였을 때였다.이것을 알게 된 인민군군인들과 함흥시안의 각 구역 근로자들,가두녀성들은 주변의 가까운 하천에서 채취하여 공사장까지 운반하기 위한 치렬한 전투를 벌렸다.그리하여 많은 연유와 륜전기재를 쓰지 않으면서도 난문제였던 골재보장문제를 원만히 풀수 있었다.

군민협동작전으로 한개 대상씩 불이 번쩍 나게 해제꼈는데 특히 골뱅이형식으로 된 200석청량음료점은 설계가 독특하고 시공이 힘들어 누구도 맡아하기 주저하는 대상이였다.인민군군인들과 흥남비료련합기업소의 일군들과 로동자들은 기발한 착상과 완강한 공격전,립체전을 들이대여 단 두달동안에 이 공사를 훌륭히 완공하는 기적을 창조하였다.

500석청량음료점건설을 맡은 인민군군인들과 2.8비날론련합기업소,흥남전극공장의 일군들과 로동자들의 일본새도 다를바 없었다.10동에 달하는 샤와탈의장건설을 맡은 인민군군인들과 함흥시안의 흥덕,해안,동흥산구역을 비롯한 여러 구역의 일군들과 근로자들은 방대한 량의 굴착작업과 콩크리트치기작업을 짧은 기간에 성과적으로 해제끼는 위훈을 창조하였다.

함흥철도국과 도림업관리국,도도시설계연구소,국가과학원 함흥분원,함흥강철공장,부래산세멘트공장,함흥세멘트공장은 물론 룡성기계련합기업소,설비조립련합기업소,함흥청년전기기구공장을 비롯한 수많은 련관단위들에서 군민협동작전에 호응하여 자재와 설비,장치물생산보장에 박차를 가하고있다.

인민군군인들과 도안의 건설자들의 가슴속에는 지난해 5월말 선군혁명령도로 그처럼 바쁘신 가운데서도 몸소 마전해수욕장을 찾아주시고 인민들이 즐겨찾는 해수욕장을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잘 꾸려주자고 하시던 경애하는 원수님의 자애로운 모습이 뜨겁게 간직되여있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인민사랑의 높으신 뜻을 받들고 인민군군인들과 도안의 일군들과 근로자들은 이처럼 한덩어리가 되여 인민의 행복을 창조하는 투쟁에 떨쳐나선것이다.

공사장 여기저기서 군대와 인민의 벅찬 투쟁모습을 목격할수록 군민협동작전을 펼친 우리 당의 령도의 현명성과 위대한 생활력이 가슴뜨겁게 안겨왔다.

돌이켜보면 지금으로부터 3년전 고원-함흥도로개건공사를 석달도 못되는 짧은 기간에 해제낀것도,지난해에 야외물놀이장과 실내물놀이장,유희시설과 체육시설을 갖춘 종합적인 문화휴식터인 함흥물놀이장을 9개월 남짓한 기간에 건설한것도,함흥시안의 여러곳에 로라스케트장과 배구장,롱구장,바드민톤장 등을 갖춘 인민공원을 번듯하게 일떠세운것도 다 군민협동작전이 낳은 고귀한 결실이다.

불가능을 모르는 혁명군대의 본때를 높이 떨쳐가는 인민군군인들의 투쟁기풍은 전투장들마다에서 도안의 일군들과 근로자들을 위훈에로 적극 고무해주었다.

도에서 함흥대극장뒤에 공원을 꾸릴 때였다.공사량은 방대하였다.공원건설에 동원된 인민군군인들은 군인기질,군인본때를 보이며 지칠줄 모르는 완강한 투쟁정신과 일본새로 공사를 불이 번쩍 나게 다그쳤다.그들은 공원을 하루빨리 건설하여 함흥시민들에게 더 좋은 문화정서생활조건을 마련해줄 한마음안고 공사속도와 질을 부쩍 높이였다.

함흥시안의 각급 기관,기업소 일군들과 건설자들은 인민군군인들의 투쟁정신,창조기풍을 본받아 공원건설을 하루빨리 다그치기 위하여 적극 투쟁하였다.성천강구역의 일군들과 근로자들은 규모가 큰 여러개의 대상건설을 도맡아 인민군군인들과 어깨겯고 공사를 본때있게 다그쳤다.흥남구역과 사포구역의 일군들과 근로자들은 군인건설자들의 투쟁기풍을 본받아 로라스케트장과 분수못,화분대 등을 새로 꾸려 거리와 마을을 사회주의선경으로 꾸리기 위한 사업에서 성과를 거두었다.

군민대단결의 위력은 함경남도 곳곳에 일떠선 기념비적창조물들에 뜨겁게 어려있다.

-군민협동작전!

참으로 크나큰 힘과 믿음,창조의 희열이 용솟음치는 시대어이다.인민군군인들과 도안의 건설자들은 이 시대어를 가슴벅차게 되새겨보며 지금 마전유원지개건공사 2단계과제를 앞당겨 끝내기 위한 치렬한 전투를 벌리고있다.

군민협동작전의 위력에 떠받들리여 도안의 이르는 곳마다에는 로동당시대의 창조물들이 날을 따라 우후죽순처럼 일떠서고있다.

기다려지는 수업시간으로 만든 교육자

얼마전 회상구역 회양고급중학교를 찾은 우리에게 이곳 교장이 한 말이였다.

그는 김금숙교원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그러면서 학생들과 학부형들이 그를 무척 존경하고 따른다는것이였다.《우리 선생님》이라는 정다운 부름속에는 10월8일모범교수자인 그의 높은 실력과 능력이 비껴있다.

비행사의 딸로 태여난 김금숙은 어려서부터 남달리 관찰력과 탐구심이 강했다.하나의 사물현상을 놓고 련이어 물음을 제기하며 세심히 파고들기도 하고 때로는 엉뚱한 질문을 하기도 하여 부모들과 교육자들을 놀라게 하였다.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크면 연구사가 될것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함흥화학공업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수학교원이 되였다.그가 교단에 선지도 이제는 15년이 되였다.

이 나날 그는 여러명의 7.15최우등상수상자를 배출시켰으며 근 20명의 학생들을 대학과 전문학교들에 보냈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학생들을 쓸모있는 인재들로 키우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가 하는것을 잘 알수 있게 한다.

우리의 호기심을 더욱 끈것은 그가 받은 2개의 새 교수방법등록증이였다.다 최근에 받은것이였다.

그가 연구한 새 교수방법은 교원들과 학생들속에서 호평을 받고있다.

실천에서 큰 은을 나타내고있는 새 교수방법을 내놓기까지에는 그의 남모르는 헌신적노력이 깃들어있다.

몇년전 그는 교육과 관련한 CD자료와 참고도서들을 보면서 학생들을 강성국가건설에 실질적으로 이바지할수 있는 역군으로 준비시키자면 교수방법을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높은 수준에서 개선해야 한다는것을 깊이 느끼게 되였다.

그는 교수방법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에서 앞선 여러 단위들을 찾아다니며 그곳 일군들,교원들과 론쟁을 벌리고 교육사업에서 얻은 경험을 허심탄회하게 나누었다.그 과정에 많은것을 배우고 체험하였다.이것은 그의 자질을 더욱 향상시키고 안목을 넓히는데 좋았다.

그것을 계기로 김금숙은 앞선 단위들의 교육방법을 구체적으로 연구분석한데 기초하여 학생들이 교원의 강의에 흥미를 가지고 저절로 끌려들어 학습의 주체가 되도록 교수방법을 개선하였다.

비근한 실례로 공간도형에 대한 강의를 할 때 그는 콤퓨터화면으로 최근에 일떠선 현대적인 기념비적창조물들과 문화정서생활기지들을 펼쳐보이며 학생들이 자기 생각을 마음놓고 발표하게 한다.이를 통해 학생들은 발표력도 높아지고 이미 배운 지식을 공고히 하며 학습의욕이 커지게 된다.

교원은 이들의 충만된 열의를 대상물에 대한 관찰과 대비,실제조작을 통해 개념과 요소,성질을 찾아내는데로 이끈다.이때 학습조를 무어 학생들이 서로 토론을 하게 하면서 몇가지 물음을 제시하여 그날 배울 정의를 그들스스로 이끌어내게 한다.

이렇게 그 수업에서 줄 내용을 현실과 결부시켜 이끌어낸 후에야 교원은 학생들이 말한것처럼 바로 그것이 오늘시간에 배울 내용이라고 하면서 정리단계로 넘어간다.그러면 학생들은 신심에 넘쳐 공부에 더욱 열중하게 된다.

결과 학생들의 인식적효과성은 종전보다 2~3배 높아지게 되였다.

이렇게 진행되는 수학수업시간은 학생들에게 있어서 기다려지는 시간으로 되고있다.

김금숙과 같이 하나를 배워주어도 혁명과 건설에 실지 써먹을수 있는 산지식으로 되게 교수방법을 부단히 개선해나가는 교원을 학생들이 우리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따르는것은 당연한것이다.

어머니의 진정

평양어린이식료품공장 3대혁명소조원들의 모임이 끝났다.모두가 술렁거리며 회의실을 나서건만 한 처녀소조원만은 의자에 앉아 옴짝할줄 몰랐다.소조책임자 김송미였다.

방금전 모임에서 홍성희초급당비서가 하던 말이 아직도 귀전에 쟁쟁히 들려왔다.

(소조가 잠에서 깨지 못했다고? 시대에 따라서지 못한다고?…)

좀처럼 가슴에 맺혀 내려가지 않았다.억울하다고 할 정도로 감수하기조차 힘들었다.

송미가 공장에서 3대혁명소조원으로 사업해온지는 몇년 잘된다.그 기간에 이룩한 성과는 자기자신도 믿기 어려울만치 컸다.수많은 창의고안증서들과 과학기술성과등록증들을 보며 송미는 생각했다.얼마 남지 않은 소조생활기간을 떳떳이 총화할수 있게 되였다고.

그 긍지와 자부가 새로 온 초급당비서의 출현으로 졸지에 허물어지게 될줄이야…

사실 그가 처음으로 여는 모임이여서 송미를 비롯한 소조원들의 기대는 무척 컸었다.

어떤 과업을 맡겨줄가 하는 생각과 함께 소조가 이룩한 성과들에 대한 평가도 은근히 기대했던 송미였다.

그런데 칭찬은커녕 추궁만 받고보니 어디 가서 실컷 울고싶은 심정이였다.

더우기 마음을 허빈것은 모임을 끝내며 초급당비서가 내린《명령》이였다.

소조원들이 직장,작업반들에 나가 로동자들과 함께 일하라는것,현실에 들어가 배우면서 새로운 기술혁신종자들을 골라잡으라는것.

송미는 저도모르게 한숨을 내쉬였다.그는 자리에서 무겁게 일어났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3대혁명소조원들은 늘 들끓는 생산현장에서 로동자,기술자들과 일도 같이하고 기름냄새도 맡으면서 그들에게서 허심하게 배우고 이신작칙의 모범으로 군중을 이끌어나가야 합니다.》

현장생활에 몸을 잠근다는것이 헐치 않았다.

콩을 선별하는 일은 그런대로 일없었지만 벨트콘베아가 고장나면 허리가 늘씬할 정도로 콩마대를 져나르군 하였다.

일도 힘들었지만 보다 참기 어려운것은 소조원들이 구실을 못해서 현장에 나왔다는 말이 나돌고있는것이였다.

소조원들속에서 의견이 분분했다.

생산로동을 하자고 공장에 왔는가고 볼부은 소리를 하는 소조원도 있었고 이제는 기술혁신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시키는 일이나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동무도 있었다.

그때마다 송미는 새 초급당비서가 아직 소조생활을 잘 몰라서 그럴것이라고,언젠가는 자기들을 리해할 때가 있을것이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달래며 소조원들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이였다.

작업현장으로 들어서던 송미는 반장으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되였다.

방금전에 초급당비서가 왔댔다고 하면서 소조원들의 출근시간이 늦다고 질책하고 갔다는것이였다.

불쑥 전날 저녁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밤깊어 퇴근을 서두르는 송미,소조사무실로 들어서는 초급당비서,소조원들이 좀전에 퇴근했다고 말을 얼버무리는 송미를 바라보며 안색을 흐리는 초급당비서,청년들은 밤이 열둘이라도 할 일은 해제끼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고 하며 방을 나서는 초급당비서…

송미의 마음은 착잡했다.

자기들을 위해서 그러는것이라고 좋게만 생각하려 해도 고까운 감정만은 지워지지 않았다.

(우리야 소조가 아닌가.더군다나 태반이 처녀들인데 그쯤한것도 리해 못할가?)

종일토록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저녁늦게까지 작업을 마무리한 송미는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초급당비서의 방으로 향했다.그 기간의 사업정형을 보고하고 앞으로의 사업계획을 토의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내민 보고서며 계획서들을 받아본 초급당비서가 이런 말을 하는것이였다.

《어째서 소조원들을 현장에 내려보냈는지 송미동무는 잘 모르는것 같구만.아직도 기름냄새가 덜 나.》

예견했던바대로 또 꾸지람이였다.송미딴에는 많이 연구하고 세운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퉁을 맞을줄이야.

그런데 초급당비서의 다음말이 송미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래일 소조원들의 시내견학을 준비하라는것이였다.

(갑자기 견학이라니?)

송미는 의문을 안고 방을 나섰다.

다음날 송미와 소조원들은 초급당비서며 일군들,기술자들과 함께 평양시안의 여러 공장들을 돌아보았다.

절세위인들의 령도업적이 깃들어있는 공장들이였다.

깨끗하게 꾸려진 일터들,현대화된 생산공정들마다에서 쏟아져나오는 갖가지 새로운 제품들.

송미며 소조원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생각되는바도 많았다.

공장에 돌아온 송미는 새로운 눈으로 작업현장들을 돌아보았다.작업장들마다에서 손로동의 흔적들이 그의 눈앞에 안겨들었다.

그전에는 별치 않게만 여겼던 현상들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지나온 기술혁신의 나날들이 떠올랐다.

현실의 절박성을 외면한채 제나름으로 걸어온 《창조의 나날》들이였다.

자책감이 갈마들었다.소조원들과의 협의끝에 계획서를 다시 세웠다.

그는 자기가 일하는 정선작업반의 벨트콘베아를 개조하기로 마음먹었다.

새롭게 개조한 벨트콘베아를 보며 현장의 로동자들이 좋아했다.

다른 소조원들도 현실적인 착상들을 내놓아 현장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만나는 사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기특한 청년들,보배들이라며…

현장의 속보판들에 《우리 소조원》이라는 고정표제가 새로 생겼다.소조원들을 자랑하는 소식들이 앞을 다투어 나붙었다.

소조원 박철이가 채불기계를 착상하였을 때였다.

설계가 끝나고 설비를 제작하자고 하니 걸리는 문제가 많았다.어떤 소조원들은 공장에 제기해서 해결받자고 하였다.

송미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어떻게 하나 우리 힘으로 해보자요.》

결심하고 달라붙었으나 일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방도를 모색하며 속을 썩이고있던 어느날,뜻밖에도 기사장을 비롯한 공장의 일군들과 기술자들,기능공들이 설비제작에 필요한 자재들을 가지고 소조원들이 일하는 작업장으로 들어서는것이였다.

영문을 몰라하는 송미에게 기사장은 말했다.

《동무들이 설비제작에서 애먹는 문제도 모르고있었으니…우릴 용서하오.초급당비서동무에게서 동무들 사정을 알고서야 정신을 차렸소.》

그리고는 설비제작에 달라붙는것이였다.송미의 눈가에도,소조원들의 눈가에도 뜨거운것이 고여올랐다.

온 공장의 관심속에 채불기계는 짧은 기간에 완성되였다.

공장의 일군들과 종업원들모두가 제일처럼 기뻐하며 소조원들을 축하해주었다.

그들과 함께 기쁨에 겨워있던 송미는 작업장출입구에 미소를 짓고 서있는 초급당비서를 보았다.

불현듯 그의 눈앞에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중학교시절 어쩌다 4점을 맞고 들어온 딸이였지만 그리도 분해하며 매를 안기던 어머니,딸과 함께 문제를 풀며 밤새 잠 못 들던 어머니의 모습이…

송미와 소조원들에게 다가온 홍성희초급당비서는 다정한 어조로 말했다.

《현실을 떠난 기술혁신이 어디에 필요하겠어요.그건 한갖 개인의 명예를 위한 사치품에 지나지 않아요.우리 언제나 명심하자요.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고 하신 어버이장군님의 명언을 가슴에 간직하고 공장을 멋쟁이공장으로 꾸려나가자요.》

요즈음 송미는 소조원들의 달라진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군 한다.

땀흘리며 일해도,밤을 새워가며 연구를 해도 피곤을 모른다.좀 쉬라고 하면 오히려 《우리 작업반이 앞장서게 해야지요.》하며 열정을 쏟아붓는것이다.

소조라는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우리 작업반,우리 직장,우리 공장이라는 창조의 넓은 마당에 뛰여든 그들,

지난 시기에 비해 기술혁신성과들도 많다.기발한 착상들이 련이어 쏟아져나오고 새 제품개발에서도 앞장에 선다.

영양가루생산공정의 PLC화실현,다시마세척기창안,도서관리프로그람개발…

지금에 와서 송미는 매정하게만 여겼던 초급당비서의 처사가 리해되였다.

그것은 사랑이였다.자식이 잘되길 바라는,자식의 성장에서 기쁨을 찾는 참된 어머니만이 들수 있는 아픈 매,고마운 매였다.

변하지 않은 과녁

우리 조국이 력사의 광풍을 헤치며 힘차게 전진할수록 천만군민의 가슴마다에 비상한 각오를 더욱 가다듬게 하는 사상감정이 있다.

그것은 세대는 바뀌여도 혁명의 과녁은 변하지 않았으며 피로써 쟁취한 사회주의제도를 지켜 계급적원쑤들과 끝까지 싸워 결판을 내야 한다는 투철한 반제계급의식이다.

우리 군대와 인민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새 세대들에게 반제계급의식을 깊이 심어주시려 마음쓰시던 이야기들을 오늘도 잊지 못하고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사회주의수호전은 제국주의와 계급적원쑤들을 반대하는 치렬한 계급투쟁입니다.》

주체49(1960)년 4월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 만경대혁명학원을 찾으시였을 때의 일이다.

학원에 정중히 모셔져있는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앞에 이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령님의 동상을 경건한 마음으로 우러르시였다.

싸창을 허리에 차시고 백포자락을 날리시며 항일대전의 혈로를 헤쳐나가시는 만고의 령장 김일성장군님의 거룩한 모습,

숭엄한 감정에 휩싸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수령님의 동상앞에 서면 학원교사준공식때 어머님을 모시고왔던 일이 눈앞에 선히 떠오른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그날의 못 잊을 사연을 더듬으시며 천천히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앞을 거니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 그때 수령님의 동상을 보면서 어머님에게 아버님은 왜 싸창을 차고계시는가고 물어보았다고,어머님은 아직도 싸움이 끝나지 않았으며 앞으로 미국놈들과 싸워야 하기때문이라고 하시였다고 깊은 추억을 담아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말씀은 일군들의 가슴을 세차게 울려주었다.

혁명의 총대를 왜 놓지 말아야 하는가를 새겨주는 그날의 가슴뜨거운 이야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다시금 걸음을 멈추시고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을 우러르시였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지저귀던 새들도 정숙을 지키는듯싶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였어도 혁명의 과녁은 변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만경대혁명학원 학생들은 나이는 어리지만 원쑤에 대한 복수심과 적개심이 매우 높다고 하시면서 학생들에게 미제와 일제가 우리 인민의 피맺힌 원쑤이라는것을 똑똑히 알려주어야 하며 지주,자본가계급의 착취적본성도 잘 알려주어야 한다고,그리하여 학생들이 원쑤들을 끝까지 소멸하고 조국을 통일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가지도록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때로부터 세월은 흐르고 세대는 바뀌였다.하지만 오늘도 혁명의 계승자들의 가슴에 그날의 우리 장군님의 귀중한 가르치심이 울리고있는것은 무엇때문인가.

그것은 오늘도 혁명의 과녁은 변하지 않았으며 투철한 반제계급의식을 지니고 싸워나갈 때 우리 식 사회주의제도를 대를 이어 고수하고 영원히 빛내여나갈수 있다는 신념을 심장에 새겨안았기때문이리라.

숭고한 동지애의 력사,사랑의 세계

동지애의 위대한 력사를 아로새기며 63명의 비전향장기수들이 꿈결에도 그리던 따사로운 태양의 품,어머니조국의 품으로 돌아온 주체89(2000)년 9월 2일,잊지 못할 그날로부터 세월은 흘러 어느덧 14년이 되였다.

10여년세월 위대한 사랑을 젖줄기로 하여 이 세상에 다시 태여나 행복한 삶을 누리고있는 비전향장기수들 아니 온 나라 전체 인민이 뜻깊은 이 아침 동지애의 화신이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와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 최대의 경모와 뜨거운 감사의 인사를 삼가 드리고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우리 당과 우리 공화국은 인민들을 사랑과 믿음으로 이끌어주고 보살펴주며 그들의 운명을 지켜주는 가장 친근한 어머니당이고 어머니조국이며 당과 조국의 품은 인민들의 참다운 삶과 행복의 요람으로 되고있습니다.》

지옥행의 길에서 모대기던 그들이 꽃수레를 타고 락원행으로 생의 궤도를 바꾸고 영광과 행복의 절정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고있는것은 정녕 세계사적인 사변이다.

지금 비전향장기수들은 모두 고령이다.하지만 모두가 생기에 넘쳐있다.무슨 힘이 숨쉬는 화석에 불과하던 이들을 삶의 향기가 한껏 풍기는 청춘기로 되돌려세웠는가.

전설적인 기적을 현실로 목격하면서 우리 인민은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과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한없이 뜨거운 동지애의 세계,고결한 의리에 대하여 가슴뜨겁게 생각하고있다.

비전향장기수들은 조국과 민족을 위한 신념,통일의지를 버리지 않았다는 리유로 모진 옥중고초를 겪었다.손발을 얽어맨 철쇄와 높디높은 감옥의 담벽은 그들의 생사여부에 대한 소식조차 끊어버렸고 대문을 열어놓고 돌아올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던 가족들도 살아 만날 생각을 오래전에 단념해버리게 했다.

하지만 망각속에 묻힌 전사들을 잊지 못하시여 잠 못 이루시고 그들의 운명을 지켜주신분은 바로 우리의 김정일장군님이시였다.

지금도 우리 인민들은 잊지 못하고있다.우리 장군님께서 남조선에 있는 비전향장기수들의 가슴아픈 소식을 들으시고 일군들에게 하신 말씀의 구절구절을.

…전사들을 생각하는 우리의 마음은 세월이 흘러갈수록 희미해지는것이 아니라 그만큼 더욱더 생동하게 새겨지고있다.그래서 나는 34년동안이나 남조선의 철창속에서 고생하던 리인모동지를 잊지 않고 지난해에 기어이 데려왔다.이렇게 하는것이 전사들에 대한 참된 령도자의 의리이고 의무라고 생각하고있다.우리 당이 있는 한 남조선에서 고통받고있는 비전향장기수들을 모두 당의 품으로 반드시 데려와야 한다.…

혁명승리에 대한 투철한 신념을 안고 조국과 민족을 위해,조국통일을 위해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 투쟁해온 비전향장기수들에게 가장 큰 영광과 행복을 안겨주시려는것이 우리 장군님의 심정이였다.

통일애국투사들을 당의 품으로 데려오기 위해 강령적인 가르치심을 주신것만 해도 무려 수십차,1994년 3월 24일 비전향장기수들을 데려오기 위한 비상설기구인 남조선의 비전향장기수구원대책 조선위원회를 조직,비전향장기수문제가 20세기 최대의 인권문제,인도주의적문제로 되여 세계적인 관심을 모으게 한 국가적인 규모에서의 강력한 조치들…

이것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비전향장기수들을 조국의 품으로 데려오시기 위하여 기울여오신 그 어떤 말로나 글로도 다 표현할수 없는 로고와 심혈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비전향장기수들이 조국의 품에 안기기 며칠전인 주체89(2000)년 8월 어느날 깊은 밤이였다.

일군들과 이야기를 나누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문득 화제를 비전향장기수문제로 옮기시였다.그이께서는 남조선의 감옥에서 수십년동안이나 용감하게 투쟁한 그들은 모두 애국자,혁명가라고 참으로 고귀한 칭호로 불러주시였다.그러시면서 그들이 이제 조국의 품에 안기면 조국통일상도 수여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웅칭호도,새 당원증도 안겨주자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순간 일군들은 가슴이 뜨거워옴을 금할수 없었다.혁명전사들의 삶과 운명을 책임지고 돌봐주는것을 자신의 본분으로,행복으로 여기시는 어버이장군님,어느 시대에 이런 령도자,위인이 있었던가.그이의 말씀을 새겨안는 일군들은 격정을 금치 못하였다.

그 열화같은 사랑과 의리에 떠받들려 63명의 비전향장기수들은 주체89(2000)년 9월 2일 꿈결에도 안기고싶던 어머니조국의 품에 안기게 되였다.

조국으로 돌아온 비전향장기수들을 따사로운 사랑의 한품에 안아주시고 그들을 위해 기울이신 위대한 장군님의 다심하신 은정과 배려는 또 얼마나 만사람의 심장을 울리고있는것인가.

생눈길을 헤치시며 멀고 험한 철령을 다녀오신 그밤에도 비전향장기수들의 생활을 료해하시고 수십가지 보약과 지팽이까지 마련해주신 가슴뜨거운 이야기,희귀한 고기도 그들의 식탁에 먼저 오르도록 해주시고 민속명절날이면 민족음식을 잘 차려 대접하라고 오곡까지 보내주신 다심한 사랑,삼복철이면 몸보신에 좋다는 단고기도 대접하게 하시고 눈오는 겨울이면 털내의와 솜옷,털신과 털모자까지 보내주신 뜨거운 은정,조국에서 생일을 맞는 비전향장기수들에게 생일상을 보내주신 친어버이의 보살핌…

친부모의 사랑을 다 합쳐도 비기지 못할 어버이장군님의 한량없는 사랑과 은정은 그대로 비전향장기수들에게 귀중한 보약,사랑의 불사약이 되여 그들은 잃어버린 청춘과 행복을 모두 되찾고 누구나 부러워하는 행복자로 만복을 누리고있는것이다.

어찌 이뿐이랴.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남조선의 감옥에서 얻은 병환으로 고생하다가 세상을 떠난 비전향장기수들을 애국렬사릉에 안치하도록 하시여 그들이 영생하는 삶을 누리도록 해주시였다.정녕 그것은 조국과 민족을 위한 애국의 삶을 영원히 빛내여주시려는 한없이 뜨거운 은정이였다.

오늘도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에 목이 메여 울고웃던 잊지 못할 나날에 대하여 비전향장기수들은 격정에 넘쳐 소리높이 웨치고있다.

어버이장군님의 한량없는 사랑은 자기들에게 있어서 마를줄 모르는 삶의 생명수,사랑의 젖줄기였다고.

비전향장기수들에 대한 숭고한 동지애의 력사,사랑의 세계는 위대한 장군님의 천품을 그대로 지니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계시여 계속 이어지고있다.

온 나라 인민들이 민족의 대국상을 당하고 피눈물속에 몸부림치던 그 나날 누구보다 상실의 아픔이 크셨을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는 뜻깊은 명절을 맞는 비전향장기수들에게 고급어족을 비롯한 식료품들을 가슴가득 안겨주시고 자신께서는 삼복철의 그 무더운 날 련이은 전선시찰의 길에 계시면서도 그들의 건강을 위해 휴양길과 료양길,동해명승 송도원과 천하절승 금강산에로의 탐승길을 마련해주시였다.불보다 뜨거운 동지애의 사랑,한량없는 은정은 기나긴 옥중투쟁의 나날 원쑤들의 모진 고문속에서도 눈물을 보이지 않던 억센 사나이들의 눈물을 터치게 했다.

선군혁명령도의 그 바쁘신 가운데서도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비전향장기수들이 생일을 맞을 때면 잊지 않으시고 은정어린 생일상을 보내주신다.언제나 통일애국투사들을 생각하시는 그이의 크나큰 사랑에 의해 비전향장기수들은 위대한 수령님 탄생 100돐 경축행사와 조국해방전쟁승리 59돐,60돐 경축행사때에도 대표로 참가하였으며 경애하는 원수님을 한자리에 모시고 영광의 기념사진까지 찍는 최상최대의 특전을 누리였다.

오늘 비전향장기수들이 고령에도 조선작가동맹 맹원으로 창작활동을 정열에 넘쳐 벌리고 서화전시회,국가미술전람회를 비롯한 여러 계기들에 자기들의 기량을 마음껏 펼치며 강성국가건설과 조국통일을 위한 애국위업에 헌신하고있는것은 위대한 장군님 사랑그대로 통일애국투사들을 한없이 귀중히 여기고 삶을 빛내여주시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시는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계시기때문이다.

대를 두고 이어지는 수령과 전사들사이의 사랑과 충정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를 세계는 일찌기 알지 못하고있다.이것은 정녕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동지애의 력사,인민사랑의 세계를 수놓아오신 위대한 대원수님들과 그분들의 고매한 천품을 그대로 이으신 경애하는 원수님을 모신 내 조국에서만 볼수 있는 자랑스러운 화폭이다.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을 민족의 태양,조국통일의 구성으로 높이 모시고있는것은 우리 겨레에게 있어서 영광중의 영광이고 행운중의 최대의 행운이다.

북과 남,해외의 온 겨레는 민족의 위대한 태양이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을 모신 크나큰 영광과 긍지를 깊이 간직하고 그이의 숭고한 애국애족의 뜻을 따라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의 새시대를 힘차게 열어나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