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24일

전설같은 동포애의 서사시,성스러운 애국충정의 력사는 영원하리라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조국과 인민은 애국애족의 선각자,애국충정의 모범인 총련과 재일동포들을 가지고있는것을 커다란 긍지와 자랑으로 여기고있습니다.》

우리 인민들은 총련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총련동포들을 더없이 사랑한다.어머니조국을 찾아온 동포들을 볼 때면 오래동안 헤여졌던 한식솔을 만난듯 눈길에는 반가움이 한껏 어리고 바람세찬 이역땅에서 수령과 조국을 옹호하고 총련조직을 사수하며 민족성을 꿋꿋이 지켜나가는 그들에 대한 미더움으로 가슴 부풀어오른다.

누구나 한결같이 말한다.총련은 위대한 수령님들의 고귀한 애국유산이며 모진 고난속에서도 신념을 변치 않고 충정의 한길을 변함없이 걷고있는 총련동포들이야말로 애국자들이라고.

총련동포들도 한없는 긍지에 넘쳐 소리높이 웨친다.

총련은 우리 수령님의 총련,우리 장군님의 총련,우리 원수님의 총련이며 조국인민들과 더불어 우리도 존엄높은 태양민족의 당당한 한식솔이라고.

주체의 길,애국애족의 길을 꿋꿋이 걸어온 불패의 대오,총련이 결성 예순돐을 맞이한다.열화같은 믿음과 동포애,고결한 애국충정의 년륜으로 수놓아진 총련의 60년 로정을 더듬어보는 이 시각 우리의 가슴가슴은 재일조선인운동사에 불멸의 업적을 쌓으신 백두산절세위인들에 대한 다함없는 경모의 정으로 세차게 끓어오르고있다.

력사에는 무표정한 년대가 없다고 하지만 태양의 빛발아래 전진해온 총련의 60년 력사야말로 범상치 않은 격동의 년대기들로 빛나고있다.그 탄생과 강화발전,지도리념과 투쟁로정 등 그 어느것이나 백두산절세위인들의 불멸의 업적,뜨거운 동포애와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는 총련이다.

식민지노예의 쓰라린 과거와 존엄높은 자주강국의 당당한 해외공민으로서의 값높은 영예가 엇갈려 안겨오는 추억의 령마루에서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은 운명을 구원해주고 빛내여주신 백두산절세위인들에 대한 한없는 감사의 정으로 가슴을 적시고있다.

예로부터 해외동포들은 민족이라는 대하에서 튀여나온 물방울에 비유되였고 그들의 력사는 례외없이 수난의 력사로 불리워왔다.우리 민족의 불행에 찬 해외류랑의 력사는 일제의 조선침략으로부터 시작되였다.그 불우한 행렬가운데서 최악의 처지에 있던 사람들이 다름아닌 재일동포들이였다.

이런 자료가 있다.1910년 《한일합병조약》이 날조되기 전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사는 조선사람들의 수는 수백명에 불과하였다.그런데 1945년 일제패망당시에는 그 수가 무려 240만명에 달하였다.그 절대다수가 일제의 총칼에 떠밀리워 강제로 끌려온 사람들이였다.당시 《침목 한개에 조선사람 한명》이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죽음의 유령이 배회하는 살인고역장들에서 그들의 생명은 파리목숨이나 같았다.얼음판에 떨어진 씨앗과도 같이 차디찬 이역의 대지에 뿌려졌던 재일동포들,그들이야말로 우리 민족사의 가장 비참한 수난자들이였다.

민족의 위대한 태양의 품에 안긴 그들의 운명에서는 말그대로 극적인 전환이 일어났다.

일찌기 항일혈전의 그 나날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작성하실 때에도 재일동포들을 비롯한 해외동포들을 마음속에 그려보시며 한자두자 조항을 새겨넣으시였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조국이 해방된 이듬해 《재일 100만 동포들에게》라는 력사적인 서한을 보내주시여 애국열의로 불타던 재일동포들에게 무한대한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시였다.

날바다에서 표류하는 쪽배처럼 우여곡절의 풍랑속에서 방황하던 재일조선인운동을 구원해주신분도 우리 수령님이시였다.해외교포운동은 비록 이국땅에서 진행되지만 어디까지나 주체적립장에서 자기 나라 혁명에 참답게 이바지하는 민족적애국운동으로 되여야 한다는 그이의 위대한 로선전환방침은 동포들의 머리우에 드리웠던 절망의 짙은 구름장을 뚫고 비쳐든 은혜로운 소생의 빛발이였다.

주체44(1955)년 5월 25일 총련의 결성으로 재일조선인운동은 마침내 애국의 돛을 달게 되였다.어머니조국과 운명의 피줄을 맺은 참으로 뜻깊은 날이였다.이 력사의 날이 있어 애국애족의 선각자,애국충정의 모범,세계해외교포운동의 본보기로 자랑높은 총련의 어제와 오늘,래일이 있게 되였다.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총련)는 드디여 해살도 한결 눈부시며 신록이 춤추는 5월 25일 름름히 새 출발을 했다.…이것은 오로지 영명한 수령 김일성원수님을 모신 우리들만이 능히 달성할수 있는 자랑이며 또 하나의 승리이다.…우리는 이날을 얼마나 고대하고 주목했던가! 또한 이 력사적인 전환을 저애하려고 내외의 적들의 음모와 도발책동은 얼마나 혹심했던가! 재일 60만은 그를 물리치고 기어이 승리하고야만것이다.》

당시 《해방신문》에 대서특필되였던 이 기사에는 공화국의 기치아래 보람찬 애국투쟁의 길에 나서게 된 재일동포들의 격동과 환희가 그대로 어려있었다.

절세위인들의 현명한 령도밑에 존엄높은 자주의 나라로,강위력한 선군의 조국으로,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강국으로 위용떨치는 우리 공화국은 재일동포들이 바람세찬 이역땅에서도 추호의 흔들림없이 애국위업의 한길을 꿋꿋이 걸어올수 있게 한 억척의 지지대였다.

동해의 파도너머 들려오는 조국의 자랑찬 소식,천하제일위인들을 높이 모시고 주체의 한길에서 민족의 존엄을 떨쳐가는 어머니조국의 드높은 숨결은 재일동포들에게 있어서 신념과 투쟁의 활력소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동포애는 그 얼마나 동포들의 가슴을 끓이였던가.

일찌기 10대의 어리신 나이에 이국살이의 설음이 어떤것인가를 너무도 가슴아프게 체험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총련과 재일동포들을 남달리 아끼고 극진히 위해주시며 온갖 사랑과 은정을 아낌없이 베풀어주시였다.재더미밖에 남지 않았던 전후의 어려운 시기에 재일동포자녀들을 위해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주시는 사랑의 전통을 마련하여주신분도,재일동포들의 귀국의 배길을 열어주시여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의 민족대이동의 새 력사를 펼쳐주신분도,나라일에 그처럼 바쁘신 가운데서도 조국을 방문한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을 몸가까이 부르시여 최상의 영광과 행복을 안겨주신분도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이역땅에서 고생하는 총련동무들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조국을 방문한 재일동포들을 만날 때가 제일 기쁘다고 하시며 조국과 민족을 위한 애국애족의 길에서 세운 공헌도 값높이 평가해주시고 그들의 애국충정이 조국청사에 길이 빛나도록 하여주신 우리 수령님,그 자애로운 영상을 천만년세월이 흐른다한들 동포들이 어찌 한시도 잊을수 있겠는가.하기에 재일동포들은 오늘도 수령님의 높고 큰 이 사랑을 산이나 바다에 그 어이 비기랴고,주시고주신 그 사랑 총련의 세월을 펼치여 우리 아들딸들을 하나같이 키워주셨다고 눈물겹게 노래부르고있는것이다.

어버이수령님께서 가리켜주신 주체의 한길,애국애족의 한길로 힘차게 전진하도록 걸음걸음 이끌어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아래 총련애국위업은 끊임없는 강화발전의 길을 걸어올수 있었다.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런 일화가 있다.

주체45(1956)년 12월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평양제1중학교 3학년 1반 학생들과 함께 총련 야마구찌조선제1중급학교 3학년 1반 학생들에게 수십통의 격려편지와 조국에서 출판된 귀중한 도서들을 보내주시였다.장군님께서 친히 쓰신 편지에는 재일동포 새 세대들이 아버지 김일성원수님을 높이 모신 조선의 아들딸들로 름름히 자라나 인생의 첫걸음을 애국의 길에서 힘차게 떼기 바란다는 믿음의 글발이 새겨져있었다.

이처럼 일찌기 어리신 시절부터 총련의 강화발전과 재일동포들의 운명문제에 깊은 관심을 돌리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혁명령도의 전기간 비범한 사상리론적예지로 재일조선인운동이 나아갈 길을 환히 밝혀주시였으며 재일동포들이 애국애족의 한길에서 값높은 삶을 빛내이도록 온갖 사랑과 은정을 다 베풀어주시였다.

선군의 기치를 높이 드시고 제국주의자들의 고립압살책동을 짓부시며 사회주의수호전을 승리에로 이끄시던 나날에도 우리 장군님의 마음속에는 조국과 함께 시련을 헤쳐나가는 총련이 자리잡고있었다.

그이께서 준엄한 시련의 시기에 총련과 재일동포들에게 보내주신 력사적인 서한 《재일조선인운동을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발전시킬데 대하여》는 주체적재일조선인운동을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강화발전시켜나가기 위한 방향과 방도가 집대성된 불멸의 총서였다.줴기밥과 쪽잠으로 고난의 행군,강행군길을 끊임없이 이어가시는 속에서도 자신의 마음은 언제나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과 함께 있다고 하시며 베풀어주신 그이의 한량없는 믿음은 이역의 아들딸들의 가슴속에 필승의 신심이 용솟음치게 한 원동력이였다.

정녕 우리 수령님께서 계셨기에 총련은 주체의 항로우에 애국의 돛을 올릴수 있었으며 우리 장군님께서 이끄셨기에 최악의 고난속에서도 주저앉지 않고 아름다운 미래가 약속된 애국의 한길로 줄달음쳐올수 있었다.백두산절세위인들의 존함은 그대로 재일동포들의 운명이였고 힘이였으며 승리였다.그 위대한 품에 운명의 피줄기를 이었기에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은 모진 시련과 고난속에서도 신념을 변치 않고 성장과 희망과 헌신의 기쁨속에 애국의 긍지를 노래하며 값높은 생의 보람을 누려올수 있었다.

부모들은 자식을 처음에는 두팔로 안고 다니다가 자란 다음에는 마음속에 안고 다닌다는 말이 있다.위대한 수령님들께서는 바람세찬 이역땅에서 모진 세파를 헤쳐나가는 자식들을 두고 어느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시였다.태양의 존함과 더불어 빛나는 총련의 년대기들마다에는 이역의 아들딸들을 위해 베푸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한량없는 사랑과 은정을 전하는 전설같은 이야기들이 수없이 새겨져있다.

예로부터 하루 은혜 백날 갚는다고 하였지만 태양의 품속에서 재일동포들이 받아안은 은정이야말로 천날만날을 바친대도 다 갚을수 없는 참으로 고귀한것이다.

즐거운 일이 있으면 그 기쁨을 함께 나누자고 조국으로 불러주시고 방문일정을 마치고 돌아갈 때면 조국을 떠나는 동포들인데 아무리 바빠도 꼭 만나주어야 한다고 하시며 머나먼 현지지도의 길에서 서둘러 돌아오시던 자애로운 어버이.

재일동포들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들의 사랑은 가장 숭고하고 헌신적이며 가장 따사롭고 열렬하며 가장 폭넓고 웅심깊으며 가장 자애롭고 다심한 태양의 사랑이였다.

오늘도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은 《조국의 사랑은 따사로워라》,이 노래를 눈물없이는 부르지 못한다.이역에서 나서자라는 아들딸들도 지덕체를 갖추어 사회주의조국의 역군이 되기를 바라시는 친어버이심정으로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해마다 보내주신 교육원조비와 장학금,그것은 정녕 영원히 마를줄 모르는 은혜로운 사랑의 젖줄기였다.

밤낮이 따로없이 혁명과 건설을 령도하시는 그 바쁘신 속에서도 위대한 수령님들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총련민족교육을 위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문제가 자리잡고있었다.공장과 농촌들에 대한 끊임없는 현지지도의 길에서도 늘 재일동포자녀들을 생각하시며 그들에게 해마다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을 보내주자고 하여도 생산을 더 늘여야 한다고 간곡히 당부하시던 어버이수령님,총련의 후대들을 키우는 일이라면 나라의 재부를 다 보내주고싶다고,총련에 보내는 교육원조비라면 아까울것이 없다고 절절히 말씀하시던 위대한 장군님의 그 자애로운 영상을 동포들 누군들 정녕 잊을수 있겠는가.하기에 그들은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이야말로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총련의 민족교육에 남기신 고귀한 유산이라고 심장의 목소리를 터치는것이다.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은 영원히 잊지 못한다.

나는 언제나 동무들과 함께 있다고,동무들의 뒤에는 내가 서있다고,우리는 운명을 같이해야 할 한집안식솔이라고 하시던 장군님의 그 하늘같은 믿음의 말씀을,잘 가라는 말보다 잘 갔다오라는 말을 하고싶다고 하시며 오래도록 바래워주시던 정깊은 어버이의 그윽하신 그 눈길을.

주체81(1992)년 4월 28일,총련애국운동사에 영광과 행복의 날로 아로새겨진 이날의 화폭은 돌이켜볼수록 참으로 가슴뜨겁다.

이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여든돐과 조선인민군창건 예순돐을 경축하여 조국에 온 총련일군들과 상공인들,예술인들을 위해 뜻깊은 자리를 마련하시였다.자애로운 어버이를 한자리에 모시고 조국과 총련의 한식솔들이 스스럼없이 어우러진 장내는 위대한 가르치심과 충정의 결의로 숭엄하고 랑만과 웃음,노래와 춤으로 흥겨웠다.그때는 행복에 겨운 나머지 동포들 누구도 미처 알지 못하였다.분과 초를 쪼개가며 일하시면서도 늘 시간이 모자라 안타까와하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 자기들을 위해 무려 6시간반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아낌없이 바쳐주신줄은.

오늘 저녁은 바쁜 일이 제기되여도 전화를 하지 말라고 이르고 왔으니 마음놓고 실컷 이야기하자고 하시며 한가정의 단란한 분위기를 펼쳐주신 어버이장군님,이역의 아들딸들은 친아버지에게 응석부리듯 그이께 스스럼없이 안겨들며 저마다의 자랑거리도,가슴속에 품고있던 시름과 걱정거리도 숨김없이 아뢰였다.그날의 뜻깊은 연회장에 흘러넘치였던 따뜻한 정은 그대로 령도자와 총련동포들,조국인민들과 총련동포들은 피를 나눈 한식솔의 관계임을 세상에 전하여주었다.이토록 자애로운 어버이,위대한 스승의 손길아래 이역의 아들딸들의 성장의 도표가 그려졌다.

그 사랑이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에게 불굴의 애국신념을 새겨주고 로당익장의 활력을 주었으며 영생의 삶을 안겨주었다.

망망대해에도 끝이 있고 기슭이 있지만 총련을 생각하시는 위대한 수령님들의 마음은 기슭도 끝도 없는 무한대한 우주의 세계였다.그 위대한 품에 운명도 미래도 맡기였기에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은 참기 어려운 시련의 고비,고난의 언덕을 넘고 헤치며 주체혁명위업의 완성과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한 애국의 길에 힘과 열정,지혜를 다 바쳐올수 있었다.

세계에는 수많은 해외교포조직이 있지만 자기 조국과 민족에 대한 충정의 열도에 있어서나 조직의 규모와 활동범위,단결력과 전투력에 있어서 총련과 같이 애국애족적이며 강위력한 해외교포조직은 없다.한식솔로 품어주고 이끌어주신 백두산절세위인들의 그 뜨거운 사랑이 이런 경이적인 현실을 펼치였다.참으로 총련이 걸어온 지난 60년은 위대한 수령님들의 주체적해외교포운동사상리론과 탁월한 령도의 위대한 승리의 력사인 동시에 절세위인들의 한없이 숭고한 동포애,민족애로 수놓아진 사랑의 력사이다.

사나운 광풍이 마지막악을 쓰고있다.총련을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면서 결성된 첫날부터 어떻게 하나 없애버리고 재일동포들을 우리 공화국의 품에서 떼여내려고 별의별 모략과 탄압에 광분해온 내외반동들의 책동이 더욱 극도에 달하고있다.

하지만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의 배심은 든든하고 기세도 충천하다.

풍파사나운 시대의 한복판에 서시여 력사의 키를 억세게 틀어쥐고나가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존귀하신 영상에서 그들은 민족의 륭성번영과 총련의 밝은 미래를 보고있다.

그이를 만나뵈온 동포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따뜻한 체온,친근한 눈빛,인자하고 름름한 모습,만사람을 끌어당기는 거대한 견인력,어쩌면 우리 수령님과 장군님 그대로이실가,사상도 령도도 덕망도 태양의 혈통,백두의 혈통을 그대로 이으신 절세의 위인을 모신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고.

누구나 신심에 넘쳐 웨친다.

망국의 그 세월 남들처럼 크지도 세지도 못해 부끄럽다고 울며 한탄하던 약소민족의 설음은 이젠 옛말로 되였다.보라,백두의 칼바람으로 압살의 먹구름을 가르고 세상천지를 진동시키는 주체조국,선군조선의 억센 기상을.

경애하는 원수님의 특출한 위인적풍모와 탁월한 정치실력에 의하여 그 존엄과 위력이 민족사상 최상의 경지에서 떨쳐지고 세기를 주름잡는 비상한 속도로 천하제일강국으로 솟구쳐오르는 조국의 모습은 재일동포들에게 공화국의 해외공민된 끝없는 긍지와 함께 천백배의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며 총련의 새 전성기개척에로 힘있게 고무추동하고있다.

승리의 신심이 차넘치는 동포들의 심장속에 위대한 어버이의 엄숙하고도 사랑넘친 선언이 메아리치고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나는 수령님께서 무어주시고 장군님께서 이끌어주신 총련과 언제나 함께 있을것입니다.

재일조선인운동의 최후승리를 향하여 나아가는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의 앞길에는 빛나는 승리와 영광만이 있을것입니다.》

구절구절 얼마나 믿음과 정과 사랑이 넘치는 말씀인가.

재일동포들은 두터운 정을 안고 사는 하나의 혈육이라고 하시며 주체의 애국유산인 총련을 귀중히 여기고 백방으로 보호할것이며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의 존엄높은 삶과 밝은 미래를 위하여 모든것을 다할것이라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뜻깊은 말씀,그이께서 총련에 보내주신 사랑의 축전과 축하문들에는 위대한 수령님들의 사랑이 그대로 어려있다.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 그이의 뜨거운 동포애,민족애에 동포들의 가슴은 맹세로 높뛴다.

총련의 운명이시고 미래이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과 팔을 끼고 어깨를 겯고 나가는 해외혁명전우,해외혁명동지가 되여 주체혁명위업,총련애국위업의 천만리길을 끝까지 이어나가자.심장으로 택한 성스러운 애국의 길 끝까지 이어가자.

주체사상의 기치를 변함없이 높이 들고 충실성의 전통,일심단결의 전통,애국애족의 전통을 굳건히 이어나가라는것은 위대한 수령님들의 유훈이다.그 간곡한 유훈을 기어이 관철하여 재일조선인운동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놓기 위해 전 총련조직이 부글부글 끓고있다.

얼마나 미더운 모습인가.

총련동포들이야말로 백두산절세위인들을 충정으로 높이 모시고 변함없이 따르는 길에 애국위업의 최후승리가 있고 자기들의 영원한 행복이 있다는 진리를 뼈에 사무치게 체험한 사람들이다.내외반동들이 아무리 발악해도 그들을 공화국의 품에서 절대로 떼여낼수 없으며 원수님의 두리에 굳게 뭉쳐 나아가는 이 도도한 흐름을 결코 멈춰세울수 없다.

최후의 승리를 향하여 총련 앞으로!

폭풍에도 굽힘없는 의지를 주고 애국의 신념을 벼려주는 백두산,필승의 넋을 주는 태양의 성산을 마음속에 안고 사는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은 이 세상이 천만번 변한다 해도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을 받들어 애국애족의 천만리길을 억세게 걸어나갈것이다.

백두산절세위인들께서 축복해주시고 주체의 우리 조국이 지켜주고 보살펴주고있기에 총련은 끄떡없으며 재일조선인운동의 앞길에는 언제나 승리와 영광만이 있을것이다.

우리 인민이,온 겨레가 그것을 굳게 믿는다.

축지법에 녹아난 일제의 비명소리

대홍단혁명전적지에서 우리와 만난 강사동무는 무산지구진공작전의 승리로 하여 《무적황군》이라 뽐내던 일제의 허장성세가 거덜이 나고 패배자의 추악한 몰골이 온 세상에 드러난 반증자료들을 가지고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전략전술과 주체적인 유격전법앞에서 수많은 병력을 내몰아 온 산판을 발칵 뒤지던 일제는 헛물만 켜고말았다.위대한 수령님의 유인전술에 감쪽같이 속아넘어간 일제는 《김일성공산군은 5월 18일 함남도 갑산군 보천면 포태리목재장을 습격하고…3호물동으로부터 포위망을 뚫고 24도구오지를 향하여 돌아갔다.》라고 얼빠진 소리를 하면서 조선인민혁명군의 향방을 찾지 못하고 허둥지둥 산속에서 헤맴으로써 세상을 웃겼다.

이처럼 산속을 돌아치던 일제침략자들은 대홍단벌에서 청천벽력과 같은 섬멸적타격을 받았다.놈들은 대홍단의 진펄속에 널린 수백을 헤아리는 많은 주검과 부상자들을 실어나르기에 급급하였다.장교놈들은 주검과 부상자들을 실은 자동차를 라남의 군대병원까지 몰고간 운전사들에게 《군대부상자들을 많이 싣고왔다는 이야기만 하면 너는 당장 죽는다.》고 눈을 부라리면서 위협하였다 한다.

일제침략자들은 무산지구전투에서 무리죽음을 당하고 녹아난 제놈들의 패배상이 세상에 드러나는것이 무서워 이렇게 인민들을 위협하고 보도관제까지 하였으나 결코 진상을 가리울수는 없었다.

《조선총독부》의 기관지 《경성일보》는 도꾜에서 진행되고있던 일본전국경찰부장회의에 참가했던 놈들이 얼마나 질겁하고 공포에 떨며 비명을 질렀던가에 대하여 이렇게 전하였다고 한다.

《때마침 그때에 개척동의 습격사건에 대하여 이쪽(무산쪽을 말함)에서 연방 전보가 오므로 모두가 몹시 근심하고있었다.마치도 함북이 유격대의 무서운 위력밑에라도 있지 않는가 생각하는 모양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일행천리전술에 따라 베개봉일대에 있던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대낮에 갑무경비도로로 100여리를 단숨에 행군하여 무산지구에 나타나 총성을 울리자 포태산일대에서 헤매던 적들은 《공산군이 어느결에 무산에 나타났는가.김일성장군이 축지법을 쓴다는것이 과연 사실이구나!》 하며 아우성을 쳤다고 한다.적들은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토벌》에 나설 때마다 위대한 수령님의 축지법을 생각하며 전률하다가 변화무쌍한 전법에 녹아나군 하였고 우리 인민들은 그 축지법을 무한한 긍지속에 자랑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김일성장군님은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니신다.》

김일성장군님은 땅을 주름잡아 하루에 천리를 달리신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압록강에 종이 한장을 띄우시고 군사를 건늬시였다.》

우리는 통쾌함을 금할수 없었다.그리고 생각하였다.

오만무례한 미제가 우리를 어째보려고 숱한 신형무장장비들을 끌어다놓고 허세를 부려도 우리에게 감히 접어들지 못하는것을 보면 백두산호랑이에게 걸려들어 기를 못 펴던 일제의 신세와 꼭 같다는것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

어머니의 소원

여러해전 축하의 꽃보라속에 묻혀 김성주소학교에 들어서는 신입생들가운데는 평범한 로동자가정의 아들인 박성산학생도 있었다.

그날 학교에 정중히 모셔진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앞에서 발걸음을 떼지 못하던 성산이는 문득 웃학년 형님,누나들처럼 자기도 래일부터 동상주변관리사업을 진행하겠다고 하여 어머니를 감동시켰다.

아들애의 가슴속에 움터나는 충정의 싹을 소중히 여기고 잘 키워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한 김혜영동무는 다음날 새벽부터 성산이의 손목을 잡고 이 길에 나섰다.

직장일도 하고 가정도 돌봐야 하는 녀성의 몸으로 늘 바빴지만 몇년동안 성산이를 데리고 동상주변관리사업을 꾸준히 진행해오며 어머니가 바란 소원은 무엇이였던가.

어느날 새벽 아들과 함께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을 찾아가는 길에 김혜영동무는 속삭이듯 말하였다.

《성산아,우리 이 길을 끝까지 가자꾸나.자기를 안아키워준 당과 수령의 은덕에 보답할줄 아는 인간이 앞으로 커서도 훌륭한 사람이 될수 있단다.》

명절이 오면 동상주변관리사업에 필요한 수많은 물자들을 정성껏 마련하던 어머니,아들의 충정의 마음에 티끌만 한 공백이 생길가봐 불편한 몸이지만 자리에서 일어나던 어머니의 진정은 성산이의 정신적성장에 귀중한 밑거름이 되였다.

성산이는 모범소년단원이 되였다.그후 중구역 창광고급중학교 학생이 된 성산이는 충정의 길,보답의 한길을 곧바로 이어나갔다.

올해 1월 성산이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던 김혜영녀성의 눈가에는 맑은것이 고여올랐다.

《…오늘은 흰눈이 많이도 내렸다.흰눈을 보니 대원수님들이 더욱 그리워져 만수대언덕으로 달려갔다.

만수대언덕에서 눈을 치느라니 우리의 행복을 위해 한평생 험한 눈길을 많이도 걸으신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거룩한 자욱자욱이 어려와 가슴이 젖어들었다.…

앞으로 커서 인민군대에 입대하여 경애하는 원수님을 결사옹위하는 육탄용사가 되겠다.어머니의 소원대로 조국이 알고 인민이 기억하는 참된 아들로 살겠다.》

민족의 존엄을 지켜가는 사람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총련은 각급 조직과 재일동포들의 합법적지위와 민주주의적민족권리를 옹호하고 확대해나가기 위한 대외활동을 보다 능동적으로 활발히 벌려나가야 합니다.》

지난 2009년 12월 일본의 극우보수단체로 악명높은 《재특회》(《재일조선인들의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들의 모임》)의 깡패들이 총련 교또조선제1초급학교(당시)에 무리로 몰려와 란동을 부리였었다.

전체 조선민족과 세계 진보적인류의 치솟는 격분을 불러일으킨 이 사건에 대한 판결이 늦게나마 결말지어졌다.《재특회》는 조선학교주변에서의 가두선전을 금지당하고 손해배상금을 물게 되였다.이것은 총련과 재일동포들의 굴함없는 투쟁이 가져온 응당한 결실이다.

사건이 발생한 후 총련은 중앙과 지역본부에 대책위원회를 내오고 일본당국에 《재특회》에 대한 엄격한 단속과 란동의 주모자처벌 및 사건의 재발방지 등을 요구하며 여러해동안 강력한 투쟁을 벌려왔다.유엔기구 등에도 이 엄중한 인권침해행위를 제소하였다.총련과 재일동포들의 투쟁은 끝내 승리로 이어졌다.

지금 재일동포들의 가슴속에는 민족적권리는 오직 굴함없는 투쟁으로써만 지켜나갈수 있다는 확신이 더욱 차넘치고있다.

용기백배해진 동포들은 총련과 민족교육에 대한 일본당국의 부당한 탄압과 차별을 분쇄하고 애국의 1세,2세들이 피땀으로 쟁취한 권리를 지키기 위한 투쟁에 더욱 한사람같이 떨쳐나서고있다.

최근 일본에서 괴이한 놀음들이 벌어지고있다.지난 세기 일본땅에 강제로 끌려온 수많은 조선사람들의 피땀을 짜내여 건설한 근대산업시설들을 버젓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만들려 하고있는것이다.

얼마나 많은 조선사람들이 일본에 끌려와 어둑컴컴한 굴속에서 중세기적인 노예로동을 강요당하였던가.

당시 어렵고 위험한 일은 전부 조선사람들 몫이였다.수난자들은 매일,매 시각 죽음의 위협을 받지 않으면 안되였다.그런데 일본반동들은 저들의 이토록 잔인무도한 행위들에 대한 반성은커녕 오히려 파렴치한 력사외곡행위에 매여달려 동포사회의 격분을 자아내고있다.이런 가운데 최근 총련 조선대학교 학생들이 일본 각지에 있는 조선인강제로동의 현장들을 찾아 력사학습을 하였다.

이르는 곳마다에서 그들은 경악을 금할수 없었다.죄악의 력사가 비낀 곳들에서 관광의 물결만 어지럽게 흐르고있기때문이였다.

동포학생들은 생각하였다.

과거 일본의 침략과 략탈,조선사람들에 대한 야수적만행의 흔적이 어디에나 력력하고 억울한 피해자들과 그 후손들인 우리가 력사의 증견자로 남아있는데도 저들의 극악한 범죄를 미화하며 그토록 수치스러운 장소들을 뻐젓이 관광지로까지 꾸린 일본당국이야말로 얼마나 파렴치한가.

참관에 이어 진행된 토론들에서 그들은 한결같이 자기들의 할아버지,할머니들이 겪은 피눈물나는 생활을 언제나 잊지 않고 그 쓰라린 력사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마음의 신들메를 든든히 조여매고 애국위업의 믿음직한 역군으로 자라날 불같은 결의를 다지였다.

재일본조선인체육련합회(체련) 도꾜도체육협회에는 자랑거리가 많다.체련산하의 24개의 지방체육협회가운데서 오사까부체육협회와 함께 맨 앞장에서 내달리는 단위가 바로 도꾜도체육협회이다.

바로 이곳에서 세계권투왕자와 세계축구선수권대회 공화국대표선수를 비롯한 우수한 선수들이 나왔고 4명의 인민체육인과 16명의 공훈체육인,40여명의 체육명수들과 근 60명의 공화국심판원이 배출되였다.조국과 민족의 존엄을 떨치고 동포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며 총련조직의 위력을 과시하는데서 그들이 논 역할은 자못 크다.

하기에 지난해말에 진행된 협회결성 60돐 행사장에는 한없는 긍지와 자부심의 파도가 물결쳤다.행사에서는 광범한 동포체육인,체육애호가들을 조직의 두리에 묶어세우고 군중체육활동을 더욱 활기있게 벌리며 지부를 거점으로 체육소조들을 더 많이 꾸리고 2020년 도꾜올림픽경기대회에 출전시킬 공화국대표선수를 육성하는것 등 높은 목표가 제시되였다.

지금 이곳 체육인들은 자기 단위의 자랑스러운 력사와 전통을 빛내이고 이역땅에 민족의 슬기와 기개를 더욱 높이 떨칠 의지로 가슴 불태우며 애국의 땀방울을 흘리고있다.

축구반운영의 생활력을 힘있게 과시

지난 13일부터 22일까지 평양에서는 제5차 전국중학교축구반 축구경기대회가 성황리에 진행되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체육을 발전시키자면 체육선수후비양성사업에 품을 들여야 합니다.》

대회에는 각 도(시)들에서 선발된 초급 및 고급중학교축구반 남,녀선수들이 참가하여 관중들의 감탄을 자아내고 예상을 뒤집어엎는 훌륭한 경기장면들을 수많이 펼치였다.

고급중학교부류 남자경기만 놓고보아도 그러했다.

조별련맹전 첫 경기에서 남포시팀은 전반전이 시작되여 15분동안에 석점이나 잃었다.하지만 와우도구역 서흥고급중학교 선수들을 기본으로 하는 남포시팀에서는 전술적의도를 잘 살리면서 련속 꼴을 성공시켜 4:3으로 함경북도팀을 이기였다.

이 놀라운 경기성과는 우연한것이 아니다.지난 시기 시선발경기 등 여러 계기들을 통하여 축구반학생들에 대한 훈련지도의 부족점들을 정확히 찾아쥐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데 열정을 아낌없이 바쳐온 서흥고급중학교의 리철동무를 비롯한 지도교원들의 적극적인 노력의 결과이다.

3,4위를 결정하는 경기에서 황해북도팀을 2:0으로 누르고 순위권에 입선한 성과 역시 지도교원들의 진취적인 지도밑에 남포시팀 선수들이 더욱 튼튼히 다진 기술전술적잠재력을 떠나 생각할수 없는것이다.

수많은 관중들의 이목을 최대로 집중시킨것은 평양시팀이였다.한것은 전국적인 경기에 처음으로 참가한 락랑구역 3중영예의 붉은기 승리고급중학교 축구반학생들을 기본으로 구성된 이 팀이 결승경기에서 평안북도팀을 5:1이라는 압도적인 점수차이로 이기고 우승의 영예를 떨쳤기때문이였다.

이것을 통해서도 당의 령도아래 온 나라에 체육열풍이 차넘치는 속에 축구반운영에서도 경쟁열풍이 세차게 일고있음을 잘 알수 있다.

관중들은 시대의 요구에 맞게 교육사업을 부단히 개선하는데서 훌륭한 성과를 거두고있는 승리고급중학교가 체육에서도 통장훈을 불렀다고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리광진,김억식동무를 비롯한 지도교원들의 축구반운영사업을 힘있게 떠밀어준 교장 로력영웅 인민교원 김석렬동무의 불같은 열정도 감동적이다.더욱 주목을 끈것은 이 결승경기의 관람자들속에 락랑구역의 책임일군들도 있은것이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평양시팀 선수들의 기세는 더욱 충천해졌으며 전반전에 두꼴을 성공시킨데 이어 후반전에 세꼴이나 더 넣었다.

사업이 바쁜 속에서도 축구반학생들의 경기를 관람하면서 선수들에게 신심을 북돋아줄뿐아니라 앞으로 더 힘을 넣어야 할 문제점까지 탐구하는 책임일군들의 적극적인 사업기풍은 본받을만 한것이다.

지난 시기와 마찬가지로 이번 대회 고급중학교부류 남자경기에서도 각지의 여러 학교 축구반학생들이 두각을 나타내여 소백수,리명수,룡남산체육단,선봉축구단 등 전문단체의 감독들의 관심을 모았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회가 기초기술교육이 기본인 축구반운영을 통한 선수후비양성체계가 보다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였음을 보여주었다는 견해를 표명하였다.

이러한 현실에 맞게 대회의 진행방식도 새로와졌다.

실례로 이번 대회에서는 육체기술지표측검을 먼저 진행하고 그 결과를 선차적으로 중시하여 조별련맹전 최종순위를 결정하는 방식을 새롭게 적용하였다.육체기술지표측검에서는 물론 조별련맹전경기성적에서도 제일 앞자리를 차지한 평양시팀과 함께 평안북도팀,황해북도팀 그리고 남포시팀이 고급중학교부류 남자축구 결승단계에 진출하게 된것도 이러한 방식에 따른것이다.

위대한 장군님의 손길아래 중,소학교들에 축구반이 나오고 지난 여러해동안 활발히 운영되는 과정에 수많은 축구선수후비들이 자라 전도유망한 선수로 맹활약하고있는 자랑찬 현실을 통하여,또 올해에 다섯번째의 년륜을 새기며 훌륭한 경기장면들을 펼친 이번 대회를 통하여 각지 일군들과 교육자들,관람자들은 절세위인의 령도의 현명성에 대하여 다시금 절감하였으며 나라의 축구발전의 밝은 미래를 더욱 확신하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유훈을 빛나는 현실로 꽃피워가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령도를 받들어 어디서나 축구반운영에 힘을 넣고 자라나는 새 세대들에 대한 기초기술교육에 품을 들일 때 앞날의 축구명수들을 더 많이 키워낼수 있으며 그와 더불어 체육강국건설의 결승선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조국의 발구름소리는 더욱 높이 울려퍼질것이다.

언제나 백두산을 안고 사는 전쟁로병화가

82살,

사람들은 아마 고령의 그 나이에,그것도 한쪽다리를 잃은 불편한 몸으로 고도의 정신력과 피타는 사색,왕성한 정력을 요구하는 미술창작의 세계를 질주하는 전쟁로병화가가 있다고 하면 선뜻 믿지 못할것이다.

백발을 이기게 하는 힘,무한한 창조의 열정을 낳게 하는 샘줄기는 과연 무엇일가.호기심을 안고 이 이야기의 주인공을 찾은 우리앞에 하나의 큰 화폭이 펼쳐졌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백두산은 민족의 넋이 깃든 조선의 상징이며 우리 혁명의 뿌리가 내린 혁명의 성산입니다.》

금시라도 따웅소리를 지르며 화판밖으로 뛰쳐나올것만 같은 호랑이,무섭게 태질하는 백두의 칼바람속에서도 앞발을 뻗친채 사납게 노려보는 도고한 기상…

백두의 혁명정신,백두의 칼바람정신으로 살며 투쟁할데 대한 경애하는 원수님의 올해신년사의 전투적호소를 받아안고 흥분된 마음을 금할수 없어 화판우에 붓을 달리기 시작했다는 그는 중구역 련화2동에 사는 리률선화가였다.

얼마전에는 또 한분의 백두산장군이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 백두산을 찾으셨다는 격동적인 소식에 접하고보니 낮이나 밤이나 이 화판앞에서 떠나고싶지 않다고,어떻게 하나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그토록 강조하시는 백두의 혁명정신,백두의 칼바람정신이 펄펄 살아숨쉬는 명작으로 완성할 생각뿐이라고 화가는 열정에 넘쳐 말하였다.

백두산과 전쟁로병화가,

알고보니 백두산에 대한 그의 사랑의 감정은 어제오늘에 시작된것이 아니였다.

《사람들은 흔히 날보고 백두산호랑이화가라고들 합니다.아마도 내가 나이 80이 지나도록 여직 화판곁을 떠나지 못하고 창작에 몰두하고있는것도 백두산이 안겨주는 열정과 락관때문인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의 그림들을 담은 사진들을 보면서 전쟁로병화가의 진정의 세계를 더 잘 알수 있었다.

작품들마다에 백두의 기상이 차고넘치였다.그가운데는 화폭의 길이가 3m를 훨씬 넘는것도 있었다.각이한 각도에서 각이한 형상으로 백두산의 억센 기상을 기묘한 화법으로 형상해낸 작품들은 바라볼수록 우리 마음을 백두산악의 정수리에 올려세워주었다.

추억을 더듬는 리률선화가의 이야기는 어느덧 해방전에로 거슬러올랐다.

황해북도의 어느 쓰러져가는 오막살이집에서 태여난 리률선화가의 유년시절은 눈물속에 흘러갔다.3살적부터 그림신동으로 불리운 그의 재간은 온 동리에 파다하게 소문이 났다.마을에서 공연된 극작품을 보고 창호지에 극의 여러 장면을 순식간에 그려놓아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지만 나라잃은 그 세월에는 남다른 재간이 오히려 화가 되여 사방에서 부자들의 뭇매를 맞기가 일쑤였다.게다가 모진 세상에서 일찍 아버지까지 여의였다.그러한 때에 제일 큰 힘이 된것은 백두산에서 들려오는 항일유격대의 투쟁소식이였다.

삼천리강토에 백두산호랑이로 소문이 자자한 항일빨찌산 김대장에 대한 이야기는 남달리 감수성이 빠른 그의 예술적령감에 불을 지펴주군 하였다.망국노의 설음은 컸어도 백두산만 생각하면 어린 마음에도 힘이 솟고 희망이 부풀군 하였다.

백두산호랑이,백두산장수를 칭송하는 화가가 되리라.

그렇게 소리없이 축적되여온 감정은 드디여 해방의 봄을 맞아 용암처럼 터져올랐다.

누가 시킨 사람은 없었지만 리률선은 영명하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한없는 경모의 정을 담은 그림을 그려 해방을 맞이한 고향사람들의 기쁨을 더해주었다.

건국사상총동원운동에 떨쳐나선 마을어른들을 도와 벽보도 쓰고 글도 쓰면서 선동사업에 열정을 바치던 리률선은 조국땅 남반부에 둥지를 튼 야수의 무리들인 미제가 시시각각 전쟁의 불구름을 몰아온다는 소식에 접하고 용약 붓을 쥐였던 손에 총을 틀어쥐고 조국보위초소에 섰다.조국이 있어야 청춘의 희망도 재능도 꽃피울수 있다는것이 그 시절 률선의 마음속생각이였다.

그후 가렬한 전화의 나날 그는 해방직후에 그렸던 소중한 그 그림을 심장깊이 새겨안고 전선천리를 종횡무진하며 용맹을 떨치였다.인천의 처절한 싸움판에도 용감하게 뛰여들면서 죽음도 두렴없이 조국을 지켜싸우던 그에게서 원쑤들은 한쪽다리를 앗아갔다.

이대로 주저앉느냐,또다시 일어서 미제와의 판가리결전을 치르느냐.

운명의 갈림길에서 그를 불사신처럼 일떠세운것은 어릴적부터 마음속에 안고 산 백두산이였다.

-나의 마음속에는 백두산이 있다.나에게서 원쑤들이 한쪽다리를 빼앗아갔지만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일성동지만을 굳게 믿고따르는 나의 심장의 불길,열정의 불길만은 빼앗지 못한다.

이런 불굴의 신념을 안고 그는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의 길도 굴함없이 이어나갔고 그후 전선천리를 달리며 원쑤를 무찌르던 병사의 주소를 미술창작이라는 또 다른 좌지에 정하게 되였다.

전상자들에게 베풀어지는 어버이수령님의 은덕속에서 건강을 회복한 그는 수령이자 조국이라는 숭엄한 감정의 바다에 붓을 적셔가며 미술수업과 창작에 전념하였다.

미술,그것은 참으로 아름답고 매혹적인 세계였다.어릴적에 그저 보고 느낀것을 그대로 옮기던 그런 단순한 세계가 아니였다.혁명이라는 크나큰 세계에서 보고 대하는 미술의 세계,수령을 알고 인민과 숨결을 함께 하며 창작하는 그림 한편한편은 황금보다 더 귀중한 재보였고 버릴수 없는 넋이였고 힘이였다.그가 세계청년학생축전에 포화속에서 발휘되는 영웅적희생정신을 반영한 작품을 출품할수 있은것도 언제나 당과 수령,조국과 인민에 대한 불타는 충정과 사랑의 마음을 안고 시대의 숨결에 심장의 박동을 맞추며 살려는 투철한 신념이 있었기때문이였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수령형상미술작품창작이였다.

조선화 《홍두산전투를 지휘하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현실을 보고 그려야 좋은 그림을 그릴수 있소》,《몸소 창광거리건설현장을 찾으시여》,《봄을 맞는 청산리》,《해방된 새 조국건설의 휘황한 앞길을 밝혀주시는 위대한 수령님》,《병사들의 생활을 보살펴주시는 최고사령관 김일성동지》 등 그가 교단에서,학생들을 이끌고나간 실습지에서 제자들과 함께 창작한 수령형상미술작품들은 지금도 주체미술사를 장식하는 걸작들로 빛을 뿌리고있다.

그 그림들은 그대로 백두산에 대한 사랑을 용암처럼 더욱 뜨겁게 분출시켜온 잊지 못할 성장의 자욱자욱이였다.

리률선화가는 한생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미술창작을 하였다.미술창작을 전업으로 하는 전문미술가로도 될수 있었지만 그는 자기가 체득한 백두산에 대한 사랑,수령과 조국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제자들의 심장속에 소중히 새겨주고싶었다.

미술가가 되기 전에 혁명가가 되여야 한다는것이 교육자로서의 그의 신조였다.

리률선의 제자들가운데는 주체미술사에 혁혁한 자욱을 새긴 김일성상계관인,2중로력영웅,인민예술가,공훈예술가,교수,박사 등이 수없이 많다.제자들이 떨친 명성에 비해볼 때 리률선이라는 이름은 그리 높게 울리지는 못하였다.그의 작품들도 제자들의 작품보다 수적으로 많지 못하다.

그러나 어머니 우리 당에서는 교육과 창조라는 헌신의 두 세계에서 보통인간의 생의 두배라고 할만큼 배가의 노력을 기울이며 피타게 헌신해온 그의 삶을 시대와 인민이 알도록 높이 내세워주었다.

여러 조선화참고서들을 집필하여 내놓을 때마다,조선화 《간석지의 개간》,《진펄길을 헤치고》,《지성》,《100만톤 증산》,《출항》,《항쟁의 불길》 등 품위있는 작품들을 내놓을 때마다 당에서는 그의 공로를 높이 평가해주었으며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영광의 기념촬영도 하도록 하여주었고 인민예술가로도 내세워주었다.하지만 그는 만족을 모른다.

교단을 내린지도 벌써 몇년째…

쌓은 공적만으로도 여생을 편히 보낼수 있지만 그는 《나는 이제부터 시작이다.》라고 늘 말하며 붓을 들고있다.

오늘은 백두산칼바람이 휘몰아치는 그림을 그렸다면 래일은 또 백두의 칼바람정신이 맥동치는 미래과학자거리건설장을 비롯한 들끓는 현실을 담은 명화들을 계속 내놓을 결심이다.한 전쟁로병화가의 삶은 우리에게 말하고있다.

누구나 어디서나 백두산을 안고 살라.언제나 수령의 세계,애국의 세계를 안고 살 때 심장은 커지고 조국을 받드는 애국의 숨결도 뜨거워질것이라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에리트레아국가 대통령에게 축전을 보내였다

아스마라

나는 에리트레아독립 24돐에 즈음하여 당신과 귀국정부와 인민에게 열렬한 축하를 보냅니다.

나는 이 기회에 우리 두 나라사이의 친선관계가 더욱 강화발전되리라고 믿으면서 당신의 사업에서 성과가 있을것과 아울러 귀국인민에게 진보와 번영이 있을것을 충심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