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들이 차지한 고지밑에서 대오는 일제히 산개하여 엎드렸습니다.
그런데 얼마쯤 지나 머리를 들어보니 글쎄 저 혼자뿐이 아니겠습니까.
그때에야 나는 깜빡 졸았다는것을 알았습니다.》
리인수전쟁로병의 전투체험담은 이렇게 시작되였다.…
제2군단 제27보병사단 14련대의 막냉이전사였던 리인수는 눈앞이 캄캄하였다.
달빛 한점 없는 이 야밤에 어떻게 대오를 찾는단 말인가?
지휘관들은 날 얼마나 애타게 찾고있을가.
의용군에 갓 입대한 애숭이병사 리인수에게는 강행군에 온통 부어오르고 물집투성이가 된 자기의 발을 근심스럽게 쓸어보며 기어이 말잔등에 올려태우던 련대참모장 김명주의 모습이 불쑥 떠올랐다.김이 문문 나는 소간을 식을세라 감싸안고 달려오던 상등병아바이의 걸걸한 목소리도 들려왔다.
《꼬마,어서 먹게.분대장의 명령이야.》
불시에 지휘관들에 대한 그리움이 북받쳐올랐다.
저도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쑥 문지르며 그는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기어이 우리 분대,우리 련대를 찾아가리라.
(련대는 분명히 저 고지를 점령하려고 하였다.하다면 내가 눈속에 묻혀 조는 사이에 벌써 고지를 점령했는가? 그런데 고지는 왜 저렇게 조용할가.…)
느닷없이 련대참모장의 귀익은 목소리가 되새겨졌다.
《련대장동지,왜 아직도 적후정찰에서 소식이 없을가요?》
그렇다.련대는 고지정찰소식을 기다리고있었다.하다면 련대는 어디로?
그는 오직 혼자 물어보고 혼자 대답을 찾아야 하였다.
병사에겐 지휘관이 얼마나 필요한가!
숨죽은듯 잠잠한 고지를 망연하게 올려다보던 그는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수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우세한 미제침략자들을 물리치고 조국해방전쟁에서 위대한 승리를 이룩할수 있은것은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전체 인민들과 인민군장병들이 굳게 단결하여 생사를 같이하면서 용감하게 싸웠기때문입니다.》
가파로운 산고지를 발볌발볌 톺아오르느라니 자기 발자국소리에마저 머리칼이 곤두섰다.죽음이 당장 손을 내밀것만 같았다.네발걸음으로 한치 또 한치…
어림짐작으로 나무가지를 움켜잡는데 난데없이 모난 돌이 굴러내려오더니 정면으로 얼굴을 때렸다.소리가 더 크게 번지면 끝장이였다.그는 피흐르는 얼굴로 무작정 그 돌을 덮었다.
(소대장동지가 이렇게 나를 덮었댔지.…)
의용군에 입대하여 처음으로 전투를 치르던 날이였다.
《엎드렷!》 하고 웨치며 누군가가 비호같이 날아와 그의 몸을 콱 덮었다.
그런데 바로 엎드린 그의 눈앞에서 수류탄이 뱅글뱅글 돌아가고있지 않는가.
큼직한 손이 그 수류탄을 덥석 잡았다.적진에서 날아왔던 수류탄은 다시 적진에로 날아갔다.
리인수는 죽지 않았다.그러나 그는 자기가 살아있다는 놀라움보다도 얼굴도 채 익히지 못한 병사를 위해 목숨도 내대는 소대장이 있다는것이 더욱 놀라웠다.그런 놀라움은 전투가 거듭될수록 더욱 커갔다.
중상을 당한 문화부중대장에게서 들은 마지막명령은 무엇이였던가.
《인수,왜 나에게로 오는가? 멈춰섯,자기 전호를 지키시오!》
그는 다시 고지를 톺아오르기 시작하였다.바로 지금 그는 그 소대장의 품을 찾아가고있는것이였다.잊지 못할 문화부중대장의 구령소리를 듣고있는것이였다.
대오를 찾아가는 전사의 마음에 하늘도 감심하였는가.낫가락같은 쪼각달이 살며시 얼굴을 내밀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가.그의 눈앞에 끝내 전호가 나타났다.이제는 전우들만 찾으면 된다는 생각에 안도의 숨을 내쉬던 그는 별안간 터져오르는 비명소리에 얼른 몸을 숨겼다.
《야,임마! 사병따위가 감히 장교침실을 훔쳐봐? 배가 고프단 말이지.》
사정없이 발길질을 해대고도 분이 삭지 않았던지 드디여 기합이 가해졌다.전쟁전에도 많이 보아왔던 괴뢰군사병들의 처참한 모습을 가렬한 전쟁마당에서 다시 목격하는 그의 심정은 형언할수 없이 괴로웠다.
(만일 내가 괴뢰군사병이였다면 나도 저렇게 매맞다가 얼어죽고말겠지.)
사병의 운명이 가슴을 허빌수록 그는 더욱 지휘관들이 보고싶어졌다.
적후에서 홀로 헤매이느라 추위는 뼈속까지 스며들었지만 그에게는 알지 못할 힘이 용솟음쳤다.이제는 모든것이 명백해졌던것이다.
고지를 깨끗이 정찰해가리라 마음먹은 그는 전호를 따라 화점까지 조심조심 포복전진해나갔다.그의 마음은 또다시 정든 곳을 찾아 날아갔다.…
《놔두오.어서 들여보내오!》
그것은 최현군단장의 호령소리였다.
깜짝 놀란 병사들의 눈길이 약속한듯 문밖으로 쏠리였다.화선음악회도 진행되고 종종 영화도 돌리군 하는 1211고지의 《반토굴구락부》앞에는 후렁후렁한 어른옷을 걸친 아이들이 올망졸망 서있었다.영화를 돌린다는 소식을 어떻게 알고 구락부를 찾아 십여리를 달려온 농촌아이들이였다.
호위군관은 문앞에서 어쩔바를 모르는데 왕별단 아저씨의 성난 목소리에 힘을 얻은 아이들은 좋아라 물밀듯이 쓸어들었다.그러더니 군단장앞에 질서정연하게 자리를 잡고앉아 으쓱하여 목을 빼드는것이였다.
영화는 시작되였다.하지만 리인수에겐 영화의 화면이 안겨들지 않았다.호랑이군단장과 농촌조무래기들의 허물없는 어울림이 도저히 리해되지 않았다.너무 공부하고싶어서 우유배달,신문배달 닥치는대로 일거리를 잡아 하루종일 뛰고 또 뛰던 어린시절이 눈물겹게 돌이켜졌다.
어느날 신문배달을 마치고 허기져 집으로 들어서던 그는 다짜고짜 잔등부터 만져보는 어머니의 거동에 의아해졌다.
《너 오늘 하루종일 뭘 달고다녔니,뭘 달고다녔어?》
소리내여 흐느끼는 어머니의 손에서 그가 받아든것은 잔등에 매달고 온 인천시를 돈 종이쪽지-《1전짜리 싸구려》였다.
왜 길을 떠나기만 하면 폭소가 터졌는지,공공기관 사무원이란 놈들이 어째서 뒤잔등을 두드려주며 길을 재촉하였는지 그제서야 알게 된 그의 눈에서 주먹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인수야,이 에미가 변변치 못해서 어린 너를 〈1전짜리 싸구려〉로 만들었구나! …》
영화는 끝났다.그러나 그는 그 행복한 자리에서 일어서고싶지 않았다.
어머니가 군단장과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는 이 아들의 모습을 보셨더라면!…
어느덧 무서움과 외로움은 가셔지고 그의 곁에는 군단장이 함께 서있었다.아슬아슬한 적후를 함께 헤치며 병사의 배심을 든든히 해주고있었다.
놈들의 무력배치상태까지 말짱 알아낸 그는 나는듯이 고지를 내렸다.그러다 그는 숨을 딱 멈추었다.가까이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던것이다.
그런데 그 인기척의 주인공이 분대장일줄이야.
분대장과 전사는 서로 얼싸안았다.
《살아있었구나.얼마나 찾았다구.됐어,이젠 됐어!》
따끈한 주먹밥이 리인수의 손에 쥐여졌다.…
부대는 막냉이전사가 개척한 길을 따라 고지를 공격하였다.한사람의 희생도 없이 적들을 몽땅 생포하고 영구화점을 까부셨다.그들이 낸 길을 따라 련합부대들은 무사히 남진의 길에 올랐다.
참모장이 안아주고 련대장이 업어주고 전련대가 그를 보배덩이로 떠받들어올렸다.
《그때 난 내가 그 무슨 훈장을 받을만 한 일을 했다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솔직히 내가 어떻게 그렇게 용감하게 적진에서 단독으로 행동할수 있었는가 딱히 대답해야 한다면 그건 정말 간단합니다.
나의 목숨은 지휘관들이 준것입니다.그들과 떨어지면 꼭 죽을것만 같더군요.바로 그들,나의 분대장과 소대장,나의 련대를 찾아 나는 그 길을 떠났던겁니다.》
이것이 전승의 날까지 분대장으로 용감히 싸운 한 의용군병사의 위훈의 첫걸음에 대한 고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