력사에 마촌작전으로 알려진 1933년 초부터 이듬해 2월까지 진행된 소왕청유격구방위전투는 영웅적인 전민항전이였다.
일제는 전민항전의 장벽에 부딪쳐 참패를 거듭하게 되자 장기전의 전술,초토화전술로 나왔다.일단 차지한 계선에서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고 끈질기게 달라붙었으며 유격구를 완전봉쇄하고 모조리 불살라버렸다.
유격구에는 기아가 들이닥치고 전사자,희생자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잔악한 일제는 피난민들에게까지 달려들어 무참히 학살하였다.
근거지를 지키고 인민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전술이 있어야 하였다.그것이 적구교란전술이였다.당시의 엄혹한 정황속에서 누구도 감히 생각조차 할수 없었던 이 전술은 천재적군사전략가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친히 유격대의 한 대오를 이끄시고 적들의 포위망을 뚫고 적구로 진출하시였다.
적구는 텅 비여있었다.인민들은 유격대가 다 죽은줄 알았는데 건재해있다고 기뻐하면서 설음식을 푸짐히 대접해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원들을 하루종일 재우시였다.몇달동안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하고 혹한속에 고생하던 사람들이 잘 먹고 뜨뜻한 곳에서 한잠 늘어지게 자고나니 훨훨 날것만 같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음날부터 적들을 들이치시였다.맨 처음에 진행된 전투는 량수천자기습전이였다.유격대의 벼락같은 기습전에 《위만군》과 《자위단》이 녹아나고 일본령사관 경찰병영이 풍지박산되였다.량수천자에서 첫 총성을 울린 유격대는 멀리로 사라지는척 하다가 다시 제자리에 돌아앉아 신남구에서 적자동차수송대를 습격소탕하였다.그리고는 왕청현 북봉오동의 산악지대로 쭉 빠져나가서 《위만군》과 경찰,《자위단》을 소멸하였다.이어 도문-목단강철길을 끼고있는 적의 군사적요충지인 대두천에 대한 습격전을 단행하였다.
련속적인 불의타격으로 후방이 녹아나는데 당황망조한 일제는 유격근거지에 대한 포위환을 풀고 퇴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솔하신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1935년 6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진행한 제2차 북만원정때에 있은 이야기이다.
부대가 액목현 청구자의 4호부락에 주둔하고있던 어느 날 부락의 백가장이 6호부락에 있는 일본수비대와 《위만군》이 《토벌》준비를 하고있다는 적정을 알려왔다.그는 당장 큰 변이 날것 같은지 몹시 불안해하였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정통보를 받으시자 즉시 전부대에 취침명령을 내리시였다.
대원들은 보통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떠들썩하던 마을이 삽시에 조용해졌다.영문을 모르는 백가장은 불안에 싸여 잠도 못 자고 온밤 동구밖을 들락날락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는 그를 보시고 미소를 지으시며 너무 상심하지 말라고,아무래도 오늘밤은 푹 쉬여야 하겠다고,대신 래일 아침 우리가 떠나간 다음 적들에게 찾아가서 《고려홍군》이 마을에 왔다갔다고 신고하라고,백가장님이 본대로 다 이야기하라고 말씀하시였다.
《고려홍군》과 같이 훌륭한 군대를 고발할 생각이 꼬물만큼도 없다고 도리머리를 치는 그에게 수령님께서는 내가 진심으로 부탁하는것이니 거절하지 말라고,이제 두고보면 그 까닭을 알게 될것이라고 하시였다.
다음날 아침 부대는 그이의 명령에 따라 4호부락에서 철수하여 액목행도로를 따라 행군하다가 서남릉선의 유리한 지점에 매복하였다.
유격대가 철수했다는것을 알게 되면 기회만 노리던 적들이 곧 출동할것이라는것,그렇게 되면 마을에서 전투를 하지 않고 적들을 유리한 계선에까지 유인하여 매복소멸할수 있다는것이 우리 수령님의 전술적타산이였다.
적들은 백가장의 신고를 받고 수백명이 출동하여 추격해오다가 매복전에 걸려 몰살을 당하였다.요행 살아남은 놈이 비행기의 구조를 받았으나 착륙사고로 비행기가 박산나는 바람에 역시 황천객이 되고말았다.
그래서 《고려홍군대장》이 도술을 쓰신다,도술을 써서 천리밖의 왜놈비행기도 돌덩이처럼 떨구어버리신다,왜놈수비대같은것은 호랑이 강아지 다루듯 하신다는 전설같은 흠모설화가 생겨나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