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8일

태양조국의 력사와 더불어 영생하는 해외의 애국충신

《조국찬가》의 숭엄한 선률이 울려퍼지는 이 땅,가없이 맑고 푸른 9월의 하늘가에 람홍색공화국기가 펄펄 휘날린다.백두산절세위인들의 령도따라 공화국의 승리와 영광넘친 로정을 빛내여온 애국충신들의 모습이 자랑스러운 기폭의 세찬 퍼덕임속에 어리여온다.그 못 잊을 군상들가운데는 투철한 애국의 신념을 지니고 주체적해외교포운동의 강화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한 전 총련중앙상임위원회 의장 서만술동지도 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애국자란 칭호는 조국과 인민이 자기의 훌륭한 아들딸들에게 주는 값높은 칭호입니다.》

서만술동지는 절세위인들의 뜻을 받들어 거치른 이역땅에서 간고하고 시련에 찬 애국의 초행길을 묵묵히,꿋꿋이 헤쳐온 해외의 애국충신이였다.

백두산절세위인들로부터 참다운 혁명가,열렬한 애국자,로련한 해외교포활동가라는 값높은 평가를 받아안고 영생의 삶을 누리는 서만술동지,그의 남다른 인생길에 수놓아진 사랑과 은정의 서사시를 우리는 뜻깊은 9월과 더불어 감회깊이 되새겨보게 된다.

이야기는 공화국창건의 환희로 삼천리강토가 설레이던 66년전의 그 나날에로 거슬러올라간다.

주체37(1948)년 12월 어느날 한척의 자그마한 배가 이역의 한적한 포구를 조용히 떠나고있었다.공화국창건 재일조선인경축단 성원들을 태운 쪽배였다.

거치른 이역땅에서 고생하는 동포들과 건국의 기쁨을 나누시기 위해 우리 수령님께서는 재일동포대표들을 평양으로 초청하시였다.

반동들의 악랄한 방해책동으로 하여 조국에로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하지만 어버이품으로 달리는 자식들의 발걸음을 그 무엇으로 가로막을수 있으랴.조국에로의 항로가 개척된 속에 한덕수동지를 포함하여 10여명의 대표들이 출발하였다.이 범상치 않은 일행속에는 애젊은 나이의 서만술동지도 있었다.

한겨울의 바다는 가랑잎같은 쪽배를 뒤집어놓을듯 사납게 갈개였지만 청년 서만술의 가슴은 이름 못할 환희로 둥둥 떠오르기만 하였다.그 존함만 들어도 강도 일제가 벌벌 떨고 온 겨레가 재생의 희망으로 잠 못 들던 민족의 전설적영웅,백두산 김대장님을 찾아가는 길이 아닌가.

기승을 부리던 파도가 잔잔해지고 어느덧 려명이 깃들기 시작한 바다를 바라보느라니 베잠뱅이괴춤을 움켜쥔채 해돋이를 구경하겠다고 정신없이 달음박질치던 소년시절이 떠올랐다.

그의 고향은 경상북도 영일군(당시)이였다.영일이라는 지명은 해맞이라는 뜻이다.어렸을 때 그의 유일한 즐거움은 새벽에 영일만으로 달려가 수평선우로 솟아오르는 불덩어리같은 태양을 가슴벅차게 안아보는것이였다.그럴 때면 가난에 찌들고 설음으로 멍이 든 파리한 얼굴에도 한가닥 꿈이 봄무지개마냥 비끼군 하였다.하지만 자연의 태양은 망국소년의 애달픈 소원앞에 너무도 무정하였다.어떻게 하나 공부해보겠다고 바다건너 이역땅으로 간 농사군의 아들에게 차례진것이란 모진 민족적천대와 멸시뿐이였다.

그렇듯 불우한 운명을 한탄하던 그가 오늘은 민족의 태양이 찬연한 빛을 뿌리는 그리운 조국으로 가고있는것이다.

주체37(1948)년 12월 23일,이날은 그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되는 영광의 날이였다.어버이수령님께서 사선을 넘어 조국으로 찾아온 재일조선인경축단 성원들을 몸가까이 불러주신것이다.

거치른 일본땅에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가고,사나운 겨울날씨에 작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오느라 고생이 많았겠다고 하시며 한사람한사람 따뜻이 손잡아주시는 김일성장군님,예지로우시면서도 겸손하시고 비범하시면서도 소탈하신 그이의 존안에서 서만술동지는 순간도 눈길을 뗄수 없었다.수령님의 시선도 일행중 남달리 애젊은 서만술동지에게서 자주 멈춰서군 하였다.이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재일동포들이 공화국의 두리에 굳게 뭉쳐 조국의 통일독립과 민주주의적민족권리를 옹호하기 위한 투쟁에서 더 큰 성과를 달성하기 바란다는 크나큰 믿음을 표시하시였다.온몸이 눈과 귀가 되여 그이의 천금같은 가르치심을 새겨안는 서만술동지의 가슴속에서는 세찬 격랑이 일어번지였다.

아! 듣던바 그대로 위대하고 은혜로운분이시구나.

돌이켜보면 동서고금에 그 어느 나라의 령도자가 해외동포들을 위해 이처럼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준적 있었던가.예로부터 해외동포들은 민족이라는 대하에서 튀여나온 물방울에 비유되였고 그들의 력사는 례외없이 수난의 력사로 불리워왔다.더우기 재일동포들로 말하면 낯설고 물설은 이역땅에 끌려가 일제의 포악한 칼날밑에 등살을 벗기웠던 력사상 가장 비참한 수난자들이였다.그들이 이제는 민족의 위대한 태양을 모시여 가슴을 쭉 펴고 운명전환의 활무대를 펼치게 되였다.

참다운 애국의 진리를 가르쳐주시는 위대한 스승,보람찬 삶의 길을 열어주시는 민족의 자애로운 어버이를 끝없는 매혹과 격정속에 우러르며 그는 이렇게 부르짖었다.

나는 오늘 진짜태양을 뵈왔다! 운명의 태양을 뵈왔다!

태양의 눈부신 빛과 열이 흘러드는 애국의 화원에 서만술동지는 인생의 씨앗을 묻었다.못 잊을 그날 수령님께서 주신 고귀한 가르치심은 서만술동지에게 있어서 한생 흔들림없을 삶의 좌표로 되였다.

서만술동지는 생전에 해맞이에 대해 자주 말하군 하였다.민족이 낳은 절세의 위인들을 만나뵈옵던 잊지 못할 순간들을 그는 인생의 해맞이에 비유하군 하였다.

행운이라고 해야 할지 필연이라고 해야 할지 영광의 그 순간들은 공화국창건의 력사적인 나날을 돌이켜보게 하는 9월에 특별히 많았다.주체63(1974)년의 9월도 그중의 하나였다.

공화국창건 26돐 재일조선인축하단 단장으로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뵙게 된 서만술동지의 가슴은 세차게 높뛰였다.당시 그는 총련중앙상임위원회 국장으로 사업하고있었다.

《…얼굴이 좀 축간것 같구만.먼길에 오느라고 수고가 많았겠소.》

무척 반가와하시는 수령님의 눈빛에는 름름하게 성장한 자식을 두고 대견해하는 어버이의 심정이 력력하였다.북받치는 격정으로 서만술동지는 그이의 품에 와락 안겨 어린애마냥 흐느끼였다.수령님께서는 오늘은 기쁜 날인데 왜 우는가고,울지 말고 사진이나 찍자고 하시면서 그의 손을 잡아 자신의 곁으로 이끄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이번에 동무를 만나게 되니 대단히 반갑다고,명절에 이렇게 만나니 얼마나 좋은가고 하시며 환하게 웃으시였다.그러시면서 총련이 지금 투쟁을 잘한다고,동무들이 사업을 잘한 결과이라고 하시며 그의 등을 다정히 두드려주시였다.어버이를 한자리에 모신 단란한 가정적분위기속에서 시간은 꿈같이 흘러갔다.

사실 그날 외국의 친선사절들과의 접견 등 바쁜 행사일정으로 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잠시라도 쉬셔야만 하였다.하지만 그이께서는 총련동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것이 가장 유쾌한 휴식이라고 하시며 서만술동지일행을 위해 오랜 시간을 바치시였다.그 각별한 사랑에 서만술동지의 가슴은 축축히 젖어들었다.

다음날 공화국창건 26돐을 경축하는 국가연회장에서였다.서만술동지는 자기 눈을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어버이수령님을 모신 주탁에 자기 자리가 있었던것이다.이것은 너무나도 특례적인 조치였다.그는 정말 몸둘바를 몰랐다.

이날 그는 재일조선인축하단 단장으로서 축하연설을 하였다.격정으로 높뛰는 가슴을 진정하며 마이크앞에 나선 서만술동지는 공화국의 창건자,령도자이시며 재일동포들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위대한 수령님께 다함없는 감사의 인사를 삼가 올리였다.

안경을 벗으시고 손수건으로 눈시울을 닦으시며 서만술동지의 연설을 들어주시던 수령님께서는 그가 축배잔을 정히 받쳐들고 다가오자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그러시고는 정에 넘친 눈빛으로 그를 한동안 바라보시였다.

《…》

장내는 물뿌린듯 고요해졌다.이윽하여 수령님께서는 우렁우렁하신 음성으로 축배는 후에 하고 우선 동무의 손부터 잡아보자고 하시며 그를 자신의 넓은 품에 따뜻이 안아주시였다.순간 우뢰같은 박수소리가 장내를 진감하였다.참으로 눈물없이는 볼수 없는 감동적인 화폭이였다.

수령님께서는 곁에 있던 다른 나라의 국가수반에게 이 동무가 재일조선인축하단 단장이라고 소개까지 해주시였다.서만술동지의 가슴은 격정으로 터질듯 부풀어올랐다.

그 깊이를 헤아릴수 없는것이 어머니의 사랑이고 자식을 위해 바치는 어머니의 정은 모자라는 법이 없다.

그로부터 얼마후 조국을 방문한 재일조선고급학교 학생들의 예술공연을 보아주시려 극장에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객석을 둘러보시다가 문득 총련축하단 단장이 왜 보이지 않는가고 물으시였다.

그때 서만술동지는 공교롭게도 감기에 걸려 치료를 받고있었다.

수령님께서는 안색을 흐리시며 몹시 앓는가고 다시 물으시였다.열이 38℃까지 올랐댔다는 보고를 들으신 그이께서는 몹시 놀라와하시더니 이국땅에서 고생하는 동무인데 앓으면 되겠는가고 하시며 치료대책을 단단히 세워주어야 하겠다고 당부하시였다.

숙소로 찾아온 조국의 일군으로부터 그 소식을 전해들은 서만술동지는 수령님께 심려를 끼쳐드린것이 못내 죄송스러워 어쩔바를 몰라하였다.그런데 이때 전화종소리가 울리였다.송수화기를 드는 순간 그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수령님께서 걸어오신 전화였던것이다.

건강은 어떤가고,열이 높다고 하는데 일없는가고 물으시는 그이의 음성에는 다 자란 자식을 두고도 늘 마음놓지 못하는 친어버이의 다심한 정이 어려있었다.

서만술동지는 너무도 감격하여 《이젠 다 나았습니다.수령님!》 하고는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수령님께서는 래일 동무를 한번 더 만나주려고 하였는데 갑자기 다른 일로 만날수 없게 되여 이렇게 전화를 건다고 하시며 이국땅에서 건강을 잘 살피라고,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에 주의하라고 거듭거듭 당부하시였다.

통화는 끝났지만 서만술동지는 송수화기를 틀어쥔채 굳어진듯 서있었다.이토록 따사로운 보살핌속에 애국사업을 하는 우리 총련일군들처럼 복받은 행운아들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밤 수령님께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아뢰였다.

(해빛같이 따사로운 수령님의 그 사랑,그 은정을 길이 전하며 이역의 찬바람,눈속에서도 애국의 꽃송이들을 활짝 피워가겠습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후에도 서만술동무는 한덕수의장이랑 쪽배를 타고 자신을 찾아왔던 일행가운데서 제일 젊은 재일조선인활동가였다고 두고두고 외우시며 아끼고 내세워주시였다.그리고 그가 이역의 사나운 풍파를 꿋꿋이 헤쳐나가도록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정녕 그 은혜로운 해빛은 애국의 씨앗을 움틔우고 꽃피워 열매맺게 해주는 사랑의 활력소였다.

언제인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총련일군들에 대해 참으로 가슴뜨거운 사랑과 믿음의 말씀을 하시였다.

《… 나는 일본과 같이 돈이 모든것을 지배하는 황금만능의 사회에서 애국의 신념과 의지를 가지고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는 총련일군들의 고상한 정신세계를 높이 평가합니다.》

총련일군들에 대한 크나큰 믿음이 얼마나 후덥게 어려있는 말씀인가.

신념은 인생의 가치를 규정하는 기본핵이며 값높은 삶의 비결이다.때없이 들이닥치는 준엄한 시련의 폭풍우를 헤쳐나가야 하는 총련일군들에게 있어서 신념은 생명이다.총련이 형언할수 없는 시련의 광풍속에서도 좌절을 모르고 지나온 년대기들에 승리와 영광만을 수놓을수 있었던것은 서만술동지와 같은 미더운 충신들이 억척같은 뿌리가 되여 애국위업이라는 거목을 떠받들어왔기때문이다.

실력과 인격,일본새에서 로련하고 청렴결백한 일군,동포들속에 몸을 푹 잠근 신망있는 일군,심산속에 묻혀서도 짙은 향기를 풍기는 도라지꽃처럼 누가 알아주건말건 묵묵히 일하는 성실한 일군…

이것이 서만술동지에 대한 총련일군들과 동포들의 한결같은 평가였다.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의 높은 뜻을 받들어 총련애국위업의 대를 꿋꿋이 잇기 위해 자기 자식들부터 모두 총련일군,교육자로 내세운것만 보아도 그의 결곡한 성품을 잘 알수 있다.서만술동지를 이토록 신념의 애국투사로,로련하고 신망있는 해외교포활동가로 키워주시려 심혈을 기울이신분은 우리 장군님이시였다.

평소에 자기 자랑이라고는 도무지 할줄 모르던 서만술동지가 남다른 긍지속에 터놓은 이런 말이 있다.

《나는 총련일군들가운데서 두분의 백두산위인들을 제일먼저 만나뵈온 행운아이다.》

주체69(1980)년 10월 서만술동지는 조선로동당 제6차대회 재일조선인축하단 단장의 중임을 지니고 조국땅을 밟게 되였다.대회가 개막되던 날 주석단으로 나오시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를 뵙는 순간 그는 마치 30여년전 어버이수령님을 처음으로 만나뵙던 그날의 자리에 서있는듯 한 환각에 빠져들었다.겨우 마음을 진정한 서만술동지가 《안녕하십니까? 총련의 서만술입니다.》라고 정중히 인사올리자 장군님께서는 그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며 《알고있습니다.먼길을 오시느라고 수고하였습니다.》라고 정겹게 말씀하시였다.

예지와 열정으로 빛나는 안광,크나큰 도량과 인정미가 넘쳐나는 미소,활달한 기상이 맥박치는 몸가짐…

장군님의 위인적풍모에 대하여 말은 많이 들어왔지만 이렇게 직접 만나뵈오니 과시 비범한분이시구나,주체조국의 미래는 창창하구나 하는 탄성이 절로 터져나왔다.후날 그는 그 영광의 대회장에서 자기는 인생의 두번째 해맞이를 하였다고,영명하신 지도자동지를 뵙는 순간 1948년의 그 해맞이가 눈물겹게 생각났다고 감격에 넘쳐 말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령의 사상을 높이 받들고 오로지 애국위업에 한생을 묵묵히 바쳐가는 서만술동지를 자신의 해외혁명동지들중의 한사람으로 굳게 믿으시고 걸음걸음 이끌어주시였다.

그가 총련의 부의장,제1부의장,의장으로 사업한 시기는 총련이 사상 류례없는 시련을 겪던 때였다.총련의 존재를 눈에 든 가시처럼 여겨온 반동들은 우리 공화국이 어려움을 겪고있는것을 절호의 기회로 삼아 총련을 말살하려고 온갖 비렬한 책동을 다하였다.그 엄혹한 시기에 서만술동지는 동포대중의 앞장에서 애국위업을 고수발전시키기 위한 투쟁을 이끌었다.

주체90(2001)년 5월 일본 도꾜에서는 총련 제19차 전체대회가 성대히 진행되였다.새 세기 첫해에 진행되는것으로 하여 특별한 의의를 가진 대회에서는 20세기에 총련이 이룩한 자랑스러운 업적과 빛나는 애국전통을 살려 21세기 재일조선인운동을 새롭게 앙양시켜나가기 위한 활동방침들이 제시되고 참가자들의 열렬한 지지찬동을 받았다.이 대회에서 새로 총련의장사업을 맡게 된 서만술동지는 신심에 넘친 총련일군들의 모습을 보면서 격정을 금할수 없었다.총련애국위업의 력사적전환을 마련하기 위해 위대한 장군님께서 바치신 끝없는 로고가 되새겨져서였다.

주체87(1998)년 4월 하순 어느날이였다.끊임없는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서만술동지를 비롯한 총련의 책임일군들을 몸가까이 불러주시였다.장군님께서는 불철주야의 강행군으로 쌓이는 자신의 피로는 생각지도 않으시고 총련일군들부터 걱정하시며 그들이 비행기가 아니라 안전하게 특별렬차를 타고 오게 하라고 간곡히 이르시였다.그리하여 불과 두명의 총련일군들을 위해 특별렬차가 편성되여 궤도우를 달리는 전설같은 광경이 펼쳐지게 되였다.

그토록 장군님을 그리워하던 서만술동지였지만 선군장정의 길에서 쌓인 피로가 력력한 그이의 모습을 뵈옵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져나옴을 금할수 없었다.

아! 이만큼 나이를 먹은 내가 장군님의 로고도 헤아리지 못하고 제 생각만 했댔구나.

그런데도 장군님께서는 먼데까지 오게 해서 안되였다고,너무도 일이 바빠 몸을 뺄수가 없어 그렇게 되였다고 하시며 오히려 량해를 구하시는것이였다.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 서만술동지에게 주신 강령적인 가르치심은 재일조선인운동의 강화발전을 위한 참으로 귀중한 지침이였다.

한해후인 주체88(1999)년 4월에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서만술동지를 만나주시고 변화된 새로운 환경에 맞게 총련애국위업을 강화발전시켜나가기 위한 강령적인 지침을 제시하여주시였다.자기들이 그토록 안타까이 방도를 모색하던 문제를 명쾌하게 풀어주시는 위대한 장군님을 우러르며 서만술동지는 근 반세기전 우리 수령님께서 재일조선인운동의 주체적로선전환방침을 내놓으셨을 때 받아안았던 감격이 밀물처럼 가슴속에 차오름을 금할수 없었다.대를 이어 천출위인들의 손길아래 애국사업을 하는 긍지와 행복감으로 온몸이 달아올랐다.줴기밥과 쪽잠으로 고난의 행군,강행군길을 끊임없이 이어가시는 속에서도 총련과 재일동포들을 위해 뜨거운 심혈을 기울이고계시는 우리 장군님,자신의 마음은 언제나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과 함께 있다고 하시는 그이의 말씀은 총련을 허물려고 어리석게 날뛰는 원쑤들에게는 뢰성벽력과도 같은 선언이였고 동포들에게는 필승의 신심을 백배로 해준 원동력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역의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군말 한마디없이 남모르게 많은 수고를 하는 서만술동지를 남달리 사랑하시며 온갖 사랑과 은정을 다 베풀어주시였다.서만술동지의 일흔번째 생일과 여든번째 생일에 깃든 가슴뜨거운 사연은 오늘도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의 심금을 세차게 울려주고있다.그의 생일은 4월 14일이였다.태양절을 하루 앞둔 날이라고 그는 애당초 자기 생일을 쇠지 않았었다.그의 이런 고결한 충정의 마음을 헤아려주신분은 우리 장군님이시였다.

주체86(1997)년 3월 어느날 위대한 김정일동지께서는 문득 총련의 서만술부의장(당시)이 얼마 안 있어 일흔번째 생일을 맞는다고 하시며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였다.이윽하여 장군님께서는 그는 총련의 원로의 한사람이고 지금까지 변함없이 총련사업을 잘해온 공적있는 사람이라고,그에게 영웅칭호도 수여하고 자신의 축하의 인사와 선물도 보내주며 생일축하연도 잘 차려주도록 하라고,그의 결곡한 성품을 보아서도 우리가 생일을 잘 쇠게 해주자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두해전에도 서만술부의장은 21살때 한덕수의장과 함께 풍랑을 헤치고 위대한 수령님의 접견을 받으러 왔던 사람이라고,총련에서는 서만술과 같은 사람을 선배부의장으로 내세워주어야 한다고 정을 담아 말씀하시던 우리 장군님이시였다.

로력영웅의 금메달을 달고 위대한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사랑의 생일상과 은정어린 선물을 마주한 서만술동지는 평범한 인생을 진주보석처럼 빛내여주시는 그이의 한량없는 믿음과 은정에 오열을 터뜨렸다.

(위대한 장군님! 제가 무엇이라고,지금껏 무엇을 해놓은것이 있다고 이토록 과분한 은총을 베풀어주십니까!)

사실 당시 서만술동지로서는 한 인간이 누릴수 있는 영광을 다 받아안은것이나 같았다.어버이수령님의 탄생 70돐을 맞으며 김일성훈장수훈자의 영예를 지니였고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의 표창장도 받아안았다.조국통일상도 제일먼저 수여받았다.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의 건강이 걱정되시여 10여차례에 걸쳐 귀중한 보약도 보내주시였다.그러시고도 못다 주신 사랑이 있으신듯 이토록 크나큰 은정을 부어주시는것이였다.

10년후 서만술동지가 여든번째 생일을 맞던 주체96(2007)년 4월에도 가슴뜨거운 화폭이 펼쳐졌다.그때 위대한 장군님의 따뜻한 축복속에 마련된 서만술동지의 생일축하연회에 초대되였던 일본의 한 인사는 서만술동지에게 당신은 어떤 연고로 김정일총비서의 특별한 신임을 받고있는가고 호기심을 담아 물었다.그러자 서만술동지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애젊은 시절 태양이 그리워 쪽배에 몸을 실었던 자기를 총련의 원로로 내세워주시고 걸음걸음 이끌어주신 감동깊은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들려주었다.그 일본인사는 참으로 꿈같은 이야기라고 하면서 《의장선생의 인생에 비낀 아름다운 추억을 통해서도 김정일총비서의 위인적천품을 잘 알수 있다.》고 감동을 금치 못해하였다.

일편단심 백두산위인들만을 따르며 순간도 애국의 신들메를 풀지 않은 서만술동지는 위대한 대원수님들 그대로이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을 모시여 인생의 찬란한 세번째 해맞이를 하게 되였다.

어버이장군님을 잃고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겨있던 피눈물의 그 나날 우리 장군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시던 총련일군들을 못내 그리워하시며 총련의 서만술의장이랑 몇해째 조국에 오지 못하고있는데 자신의 인사를 전해달라고 뜨겁게 말씀하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김정일훈장이 제정되였을 때 첫 수훈자들의 명단에 서만술동지의 이름을 꼭 넣도록 세심히 헤아려주신분도 우리 원수님이시였다.

그 소식에 접하고 뜨거운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충정의 맹세를 다지던 전사는 며칠후인 주체101(2012)년 2월 19일 애석하게도 세상을 떠났다.그 비보를 받으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위대한 대원수님들께 무한히 충직하였던 해외혁명동지를 잃었다고 못내 가슴아파하시면서 조의행사와 관련한 온갖 은정깊은 조치들을 취해주시였다.그리고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마음까지 담아 그를 영생의 언덕에 세워주시였다.

이렇듯 백두산절세위인들의 은혜로운 손길아래 서만술동지는 년대와 세기를 이어 해외교포운동의 저명한 활동가로 값높은 생의 자욱을 새겨올수 있었고 태양조국의 빛나는 력사와 더불어 오늘도 영생하고있는것이다.

일편단심 위대한 대원수님들을 받들어 애국의 한길을 꿋꿋이 걸어온 서만술동지처럼 경애하는 원수님을 충직하게,진실하게,성실하게 받들어나갈 총련일군들의 의지는 확고하다.

우리는 이 글을 서만술동지가 생전에 류달리 사랑하였고 총련일군들이 신념의 주제가로 즐겨 부르는 노래의 한구절로 맺으려 한다.

좋아도 장군님의 조국 장군님의 총련에서

어려워도 장군님의 조국 장군님의 총련에서

내 언제나 살리라

[정세론해설] 유럽의 긴장격화를 불러오는 나토의 확대

얼마전 로씨야대통령 뿌찐은 어느 한 회의에서 나라의 대외정책문제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나토의 군사하부구조가 로씨야의 국경가까이로 접근하고있는데 대해 대응할 립장을 다시금 천명하였다.그가 이러한 발언을 한것은 우연하지 않다.

올해는 나토가 동쪽에로 확대되기 시작한지 15년이 되는 해이다.이와 관련하여 나토사무총장은 나토의 확대가 유럽의 평화와 안정,민주주의를 강화하는데 이바지하는 가장 중요한 과정으로 되였다고 말하였다. 과연 그런가.

로씨야의 많은 전문가들과 정치학자들은 로씨야의 리익을 고려하지 않은 나토의 동쪽에로의 확대과정은 사실상 유럽의 평화와 민주주의에 이바지한것이 아니라 긴장격화만을 초래하였다고 평하였다.

실지로 오늘 나토의 동쪽에로의 확대과정은 이 지역에서 긴장격화를 몰아오는 화근으로 되고있다.

나토확대의 첫 단계는 1999년에 꼬쏘보의 독립이 일방적으로 선포된것과 동시에 시작되였다.

나토는 20세기말 발칸전쟁을 치르고 새 세기에 들어선 후 아프가니스탄전쟁과 이라크전쟁에 개입하였을뿐아니라 리비아침공에서는 돌격대역할을 놀았다.

그후 미국과 서방은 나토의 동쪽에로의 확대를 적극 추진하여왔다.1999년에 뽈스까와 체스꼬,마쟈르가 나토에 정식 가입하였으며 2004년에는 로므니아 등 7개 나라를 성원국으로 정식 받아들였다.나토성원국들은 동쪽에로의 확대로 유럽에 대한 통제를 완성하려고 시도하였으며 이로 하여 로씨야의 강한 반발을 초래하였다.

2007년 2월 뿌찐은 나토의 동쪽에로의 확대는 로씨야에 있어서 도발적이며 로미는 이미 새로운 랭전에 접근하였다고 말하였다.

그해 8월 로씨야가 15년간 중단하였던 장거리전략폭격기의 정례적인 전투근무비행을 재개함으로써 로미사이의 관계는 점점 악화되게 되였다.나토의 동쪽에로의 확대의 마지막단계는 2009년 4월 알바니아와 흐르바쯔까가 가입하였을 때이다.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혼란된 정세도 의심할바 없이 나토의 동쪽에로의 확대로 하여 조성된 결과이다.

최근 나토는 동유럽에 새 기지들을 건설하려 하고있다.

나토사무총장은 어느 한 회의에서 로씨야국경부근에 나토의 병력과 장비를 전개할수 있는 기회가 마련될것이라고 말하였다.

이보다 앞서 그는 로씨야군이 우크라이나령내에서의 군사작전들에 직접 관여하고있다고 강짜를 부리면서 그것이 이 나라의 주권과 령토완정에 대한 란폭한 유린으로 된다고 주장하였다.로씨야가 우크라이나사태에 책임이 있다는 소리였다.그러면서 그는 우크라이나국회가 비동맹지위를 포기하고 나라를 미국주도의 나토성원국으로 되게 하기 위해 내리는 그 어떤 결정도 나토는 전적으로 존중할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우크라이나정세를 둘러싸고 로씨야와 나토사이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고있다.

지난 8월 미해군미싸일순양함 《벨라 갈프》호가 흑해에 진입하였다.

현재 우크라이나동부지역의 사태악화를 걸고 미국과 나토동맹국 해군군함들이 흑해에 뻔질나게 드나들고있다.나토군부대들이 흑해와 발뜨해에 보란듯이 증강되고있으며 나토군의 기동 및 전투훈련도 빈번해지고있다.

그런가 하면 나토사무총장은 앞으로 동쪽에서의 나토의 존재는 보다 뚜렷해질것이라고 하면서 우크라이나사태를 놓고 로씨야를 위협하기도 하였다.

이에 대한 로씨야의 립장 또한 강경하다.

로씨야외무성은 우크라이나위기악화의 책임을 로씨야에 전가하려는 나토사무총장의 발언을 배격하면서 낡아빠진 레코드판과 같이 《로씨야의 침략과 영향권》에 대한 주장이 항시적으로 울려나오고있으며 랭전시기의 기타 선전용문구들이 열성스레 재현되고있다,이 모든것은 나토성원국들에 대한 가상적인 외부적위협앞에서 《대오결속》의 필요성을 증명하며 21세기 나토가 군사비를 늘이고 자기의 리익을 챙기기 위한데 있다고 까밝혔다.

로씨야대통령 뿌찐은 미싸일방위체계문제와 관련하여 그것이 방어체계라고 말들을 하지만 이것은 방어의 외피를 씌운 미국의 공격체계의 일환이다,서방이 무엇이라고 말하든간에 우리는 현실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있는가를 보고있다고 하면서 나토의 동쪽에로의 확대와 관련하여 사실상 새롭게 군사하부구조를 재건해야 하는 크림과 쎄바스또뽈 등에서 나라의 방위력강화를 위한 계획들을 제기일내에 끝낼것이라고 강조하였다.

현실은 나토의 동쪽에로의 확대로 하여 이 지역 나라들에서의 정세가 날을 따라 악화되고있으며 로씨야와 나토사이의 군사적대결이 새로운 양상을 띠고 더욱 격화되고있다는것을 보여준다.

송전선늘이기공사 95%계선 돌파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건설부문 일군들과 근로자들은 당의 원대한 건설구상을 자랑찬 현실로 펼쳐나갈 불타는 열의를 안고 건설전투장마다에서 대비약,대혁신을 일으킴으로써 백두산대국의 위용과 선군조선의 기상을 만방에 떨쳐나가야 합니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숭고한 뜻을 높이 받들고 청천강계단식발전소건설장에서 새로운 조선속도,제2의 희천정신창조투쟁의 불길이 세차게 타오르는 속에 송전선늘이기공사에서도 자랑찬 위훈이 창조되고있다.

공사를 맡은 전력공업성려단의 지휘관들과 돌격대원들은 이미 수백기의 송전탑세우기와 송전선 1회선늘이기를 성과적으로 끝낸데 이어 총돌격전에 더욱 드센 박차를 가하여 9월초현재 송전선 2회선늘이기실적을 95%계선에 올려세우는 눈부신 혁신을 일으켰다.

지금 애자와 권선을 비롯한 자재들이 도착하는 차제로 전선늘이기공사가 계속 박력있게 추진됨으로써 이곳 려단에서는 목표한 기일을 훨씬 앞당겨 송전선공사를 전부 끝낼수 있는 확고한 전망을 열어놓았다.

현장지휘부일군들은 송전선 1회선늘이기공사에서 이룩한 성과와 경험에 토대하여 2회선늘이기까지 하루빨리 끝내여 발전소완공의 튼튼한 담보를 마련할 비상한 열의밑에 해당 부문,단위들과의 련계를 강화하면서 송전선을 비롯한 자재보장을 책임적으로 해나가고있다.

이에 맞게 송전선공사를 맡은 전력공업성려단의 지휘관들은 송전선공사에서 기어이 제2의 희천정신을 창조함으로써 발전소가 완공되는 즉시 전력공급을 진행할수 있게 할 대담하고 통이 큰 작전밑에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완강하게 밀고나가고있다.

제일 긴 구간의 선늘이기공사를 맡은 송전선건설사업소대대 전투원들은 산판마다에 천막을 치고 방대한 량의 물동을 제때에 운반하면서 완강한 립체전을 벌려 9월초현재 40여리 구간의 선늘이기과제를 끝내는 집단적혁신을 일으키였다.

평안북도대대 지휘관들은 지난 7월말 폭우로 청천강이 불어나고 우회도로들이 차단된 불리한 조건에서도 전대오가 전선퉁구리들을 메고 사품치는 강물을 헤가르며 운반작업을 성과적으로 진행하고 련이어 돌격전을 들이대여 20여리 구간의 선늘이기공사를 8월 5일까지 전부 끝내는 자랑을 떨치였다.

자강도대대의 전투원들은 옥외변전소의 여러 대상공사를 다그치는 속에서도 근 20리 구간의 선늘이기과제를 맡아안고 낮과 밤이 따로 없이 줄기찬 전투를 벌리였다.이들은 경사급한 산판까지의 중대별물동운반전투를 완강하게 벌리고 합리적인 선늘이기방법들을 받아들이면서 총돌격전을 벌려 8월 4일까지 공사과제를 목표한 기일보다 훨씬 앞당겨 해제끼는 혁신적성과를 이룩하였다.

함경북도대대 지휘관들과 돌격대원들은 20여리 구간의 기본선로와 2개의 분기선로공사를 맡은 조건에서도 권양설비의 가동률을 높이면서 활차고정과 선끌어올리기 등 공정마다에서 앞선 작업방법들을 널리 받아들여 8월 중순까지 선늘이기를 원만히 끝내였으며 함경남도대대,평양시대대 전투원들도 완강한 공격전을 벌려 2회선늘이기공사를 기한전에 전부 끝내였다.

평안남도,남포시대대의 돌격대원들도 자재들이 도착하는 차제로 산판마다에서 물동운반을 앞세우면서 작업방법을 혁신하여 맡은 구간의 선늘이기를 마감단계에서 힘있게 추진하고있다.

지금 려단안의 전체 지휘관들과 돌격대원들은 경애하는 원수님의 숭고한 뜻대로 청천강을 하루빨리 보배강,애국의 강으로 전변시킬 불타는 열의안고 남은 선늘이기공사와 시운전준비에 계속 드센 박차를 가하고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 주조 무관단이 꽃바구니와 축하편지를 드리였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시며 우리 당과 인민의 최고령도자이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66돐에 즈음하여 주조 무관단이 꽃바구니와 축하편지를 드리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 드리는 꽃바구니와 축하편지를 무관단 단장인 장평 중화인민공화국대사관 국방무관이 7일 인민무력부장인 조선인민군 륙군대장 현영철동지에게 전달하였다.

《바다 만풍가》의 선창은 누가 떼야 하는가

나라의 수산업을 추켜세울데 대한 당정책을 높이 받들고 동해와 서해가 들끓고있다.어느 포구에 가보아도 《바다 만풍가》의 노래소리를 들을수 있다.

그렇다면 이 노래의 선창은 누가 떼야 하는가.

김책수산사업소 일군들의 사업에서 그 대답을 찾아본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은 창조적이며 진취적인 사업기풍과 일본새를 가지고 일해나가야 합니다.》

수산부문의 어느 단위나 그러하듯이 올해에 이곳 사업소가 내세운 수산물생산목표도 지난해에 비해 훨씬 많은 량이다.상반년계획을 완수하여 년간계획수행의 돌파구를 열어제낀 사업소에서는 서해에서 울려퍼진 증산포성에 화답하기 위한 돌격전을 계속 힘있게 벌리고있다.

높이 내세운 전투목표,그 수행을 위해 이 수산사업소의 일군들은 어떤 작전을 펼치였는가.

뭐니뭐니해도 선차적인것은 사전준비라고 해야 할것이다.어느 수산사업소에 가보아도 일군들이 먼저 꺼내군 하는것이 바로 이 이야기이다.사업소에서는 지난 시기 2월 지어는 3월까지 진행하던 수십척에 달하는 배들의 수리 및 정비를 올해에 들어와서는 1월 한달동안에 와닥닥 끝냈다고 한다.이와 함께 여러척의 배를 새로 뭇는 전투도 립체적으로 내밀었다.포구가 들썩하게 《바다 만풍가》를 울리기 위한 투쟁은 이렇듯 정초부터 활발히 벌어졌다고 말할수 있다.

초봄에 사업소에서 진행된 어구전시회를 놓고보자.각 선단의 선장들과 어로공들은 계절별에 따르는 각종 어구들을 종합적으로 갖추어 여기에 내놓았다.윤학주,허경철동무를 비롯한 사업소의 일군들은 이 전시회가 실무적인 사업이 아니라 물고기잡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어구들을 량적으로뿐아니라 질적으로 갖추는 계기로 되도록 키잡이를 잘하였다.물고기잡이에 당장 쓰일 어구는 물론 그 예비도 충분히 마련하도록 요구성을 높이였으며 전시회를 통해 실제로 결과가 나타나도록 하였다.지난 3월말과 4월초에 두차례에 걸쳐 전시회가 진행되였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폭과 깊이를 가늠해볼수 있다.첫번째 전시회에서는 어구의 량적측면을 중시하였다면 다음번 전시회때는 질적측면에서 평가를 심화시켰다.게드레 하나만 놓고보아도 그 수량은 무려 수천개에 달하였다.이것을 제작하는데 든 각종 규격의 바줄만 해도 4t이 훨씬 넘는다고 한다.

사업소의 일군들이 어구를 충분히 마련하기 위한 사업과 함께 중시한 또 다른 문제가 있다.어구수리에 필요한 자재들을 넉넉히 갖추는것이였다.어구예비가 량적으로 아무리 원만히 갖추어졌다 하여도 물고기잡이실천에서는 어떤 정황에 부딪칠지 예측할수 없다.어구수리를 제때에 하지 못해 물고기떼를 눈앞에 두고도 놓쳐버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이중삼중으로 생길수 있는 정황에 이중삼중으로 앞질러가면서 대처해나간것은 이곳 일군들의 작전에서 찾게 되는 좋은 점이라고 볼수 있다.

사전준비도 결국은 실천을 위한것이다.사업소에서는 일찌기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물고기를 집단적으로도 잡고 분산적으로도 잡으며 먼바다에서도 잡고 가까운바다에서도 잡고있다.큰 배로도 잡고 작은 배로도 잡으며 이것도 잡고 저것도 잡는 식으로 쉴새없이 물고기를 잡고있다.

낙지잡이가 한창인 때 중심어장에 위치하고있는 모선주변에 사업소의 모든 배들을 집중시켜놓고 집단어로를 한것을 실례로 들수 있다.바다에서 연유도 직접 공급받고 잡은 물고기를 그때그때 모선에 옮겨실으니 어로시간과 어획량은 그만큼 늘어났다.

집단어로뿐이 아니다.때로 사업소의 일군들은 대담하게 먼바다에 진출하여 2척뜨랄에 의한 물고기잡이도 분산적으로 벌리도록 하였다.실례로 지난 5월말 사업소의 큰 배들이 먼바다에서 며칠동안 2척뜨랄에 의한 물고기잡이전투를 벌리였는데 성과가 좋았다고 한다.물고기떼가 나타났다는 통보를 받고 바다에 진출하면 이미 때가 늦는다.사업소의 일군들은 여러 해구에 물고기떼가 나타날수 있다는것을 과학적으로 예측한데 기초하여 즉시에 여러척의 배들을 그곳으로 기동시켰다.몇척의 배로는 물고기길에 미리 매복진을 치도록 하였으며 또 몇척의 배로는 빠져나가는 물고기들을 모조리 잡도록 하였다.말하자면 물고기떼를 맞받아나가면서도 잡고 따라가면서도 잡자는것이였다.이런 방법으로 사업소에서는 지난 5월 하순 어느날 하루동안에만도 수십t의 낙지를 잡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한다.연유 1t당 잡은 낙지량은 10여t이나 되였다.

수십척에 달하는 사업소의 배들을 돌아보면 하나의 특징을 찾을수 있다.큰 배이건 작은 배이건 할것없이 어떤 종류의 물고기도 다 잡을수 있게 만능화되여있는것이다.올해 초봄에 진행된 어구전시회의 결과는 실천에서 응당한 결실을 맺고있다.단편적인 실례로 사업소의 모든 배들에는 게드레들이 그쯘히 갖추어져있다.이와 함께 낙지그물도 장비되여있는데 게드레를 여러 해구에 침하시켜놓고 그것을 다시 끌어올릴 때까지의 여가시간에는 낙지를 잡았다.큰 배로도 잡고 작은 배로도 잡으며 이것도 잡고 저것도 잡는 식으로 쉴새없이 어로전을 벌린다는것은 이런것을 두고 하는 말일것이다.

고기배들이 바다에 진출한 시간에 륙지에서는 어구수리가 진행된다.물고기를 싣고 사업소로 돌아온 배들은 한번 사용한 어구들을 수리된 어구로 교체한 후 즉시에 바다로 진출한다.이와 같이 어로전투와 어구수리전투를 립체적으로 내밀고있는것은 사업소의 일군들이 물고기잡이에서 자그마한 공간도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얼마만큼 치밀한 작전을 펼치였는가를 뚜렷이 보여주고있다.

이와 같이 일군들이 사전작전을 면밀히 짜고들고 실천하는것도 중요하다.하지만 수시로 맞다드는 정황에 신속히 대처하여 난관을 타개해나가는것은 일군들이 지니고있어야 할 실력에 보다 큰 력점을 찍어주고있다.

6 000여개의 영양성분주입통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지난 3월초 사업소의 다시마양식장에서는 긴급정황이 발생하였다.불리한 날씨가 계속되는것으로 하여 다시마의 영양상태가 급격히 떨어졌던것이다.이런 식으로 며칠만 더 지난다면 수산물생산계획수행에 돌이킬수 없는 후과를 초래할수 있었다.그것을 극복하자면 한정보의 양식장면적에만도 600여개의 영양성분주입통을 설치하는것이 필요했다.사업소의 양식장면적은 10여정보,며칠동안 6 000여개의 영양성분주입통을 마련한다는것은 사실 불가능하다는 말과도 같았다.그러나 단 하루밤사이에 필요한 영양성분주입통들이 모두 마련되여 바다에 설치되였으며 다시마양식장은 활기를 되찾게 되였다.누구나 선뜻 믿기 어려워하는 이러한 사실은 진격의 앞채를 메고 종업원들을 이끈 일군들의 실력을 떠나서는 생각할수 없다.

지금 사업소에서는 원양어로도 활발히 벌리고있다.여러 선장들과 어로공들은 과학적인 어로전으로 검푸른 바다 한복판에서 련일 풍어기를 휘날리고있다.

오늘날 《바다 만풍가》의 선창은 누가 떼야 하는가.

높은 실력과 실천력을 지니고 당의 수산정책을 맨 앞장에서 결사관철해나가는 화선지휘관이 되라.

시대는 수산부문 일군모두의 가슴마다에 이런 비상한 격동의 불을 달아주고있다.

[공식문건] 우리 민족의 온갖 불행과 고통의 화근인 미제의 남조선강점을 끝장내야 한다

미제가 남조선을 불법강점한 때로부터 69년의 세월이 흘렀다.

1945년 9월 8일 《일본군무장해제》를 구실로 미국이 남조선을 강점한것은 일제를 대신한 보다 교활하고 횡포무도한 식민지통치의 시작이였다.

40여년간의 일제식민지통치에 이은 근 70년에 걸치는 미국의 군사적강점으로 조선반도 절반땅은 장장 한세기이상이나 제국주의식민지지배하에 놓여있다.

제2차 세계대전후 제국주의식민지체계가 무너져 수많은 나라들이 억압의 쇠사슬을 벗어던지고 자주,독립의 길을 걸어왔지만 유독 남조선만이 오늘까지도 식민지멍에를 그대로 쓰고있는것은 우리 민족의 수치이고 불행이다.

미국의 남조선강점으로 우리 민족은 북과 남으로 갈라져 력사에 류례없는 분렬의 비운을 겪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으며 미국에 의해 가장 참혹한 전란까지 당해야 하였다.

미국의 지배와 강점하에 남조선은 공화국북반부와 아시아침략,세계제패를 위한 군사기지로,핵전쟁의 전초기지로 철저히 전락되고 우리 민족은 항시적인 전쟁위험속에서 살지 않으면 안되였다.

미제강점군의 횡포로 남조선인민들이 겪은 치욕과 고통은 또 얼마인가.

미국의 남조선강점은 우리 나라의 통일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이다.

미국은 북남사이에 관계개선과 통일분위기가 조성될 때마다 군사적도발과 북침전쟁책동으로 정세를 고의적으로 악화시켜왔다.

1960년대 4.19인민봉기를 계기로 남조선에서 련북통일기운이 급격히 높아가자 5.16쿠데타로 짓눌러버린것도 미국이고 1970년대 7.4북남공동성명이 발표되고 통일에 대한 희망으로 온 강토가 끓어번졌을 때 《두개 조선》조작책동과 무모한 도발로 정세를 전쟁접경으로 몰아간것도 다름아닌 미국이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여러 갈래의 북남대화와 교류가 진행되고 《북남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협력,교류에 관한 합의서》가 채택되자 미국은 수십만의 병력을 동원하여 악명높은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을 광란적으로 벌리고 반공화국핵소동을 일으켜 그를 가로막아나섰다.

2000년대에 들어와 력사적인 북남수뇌상봉들이 진행되고 공동선언들이 채택발표되였을 때에는 남조선당국자들을 닥달질하고 《북핵위기》를 떠들면서 반공화국대결모략책동에 광란적으로 매달리다 못해 친미보수《정권》을 조작하여 6.15시대의 성과물들을 모조리 뒤집고 말살하였다.

우리 민족의 화해와 단합,북남관계개선을 방해하는 미국의 책동은 최근 더욱 우심해지고있다.

미국은 올해 우리의 적극적인 노력에 의해 모처럼 북남고위급접촉이 이루어지고 그에서의 합의로 관계개선의 움직임이 나타나자 《B-52》핵전략폭격기편대를 남조선에 긴급출동시켜 우리를 반대하는 폭격연습을 감행하고 핵잠수함까지 끌어들여 《키 리졸브》,《독수리》북침전쟁연습을 위험하게 벌려 북남관계를 또다시 파국에로 몰아넣었다.

이번에 우리가 제17차 아시아경기대회에 대규모선수단과 함께 응원단을 내보내기로 한데 대해 《평양점령》과 《북핵선제타격》을 노린 《을지 프리덤 가디언》합동군사연습강행으로 응원단파견을 파탄시킨 배후조종자도 바로 미국이다.

모든 사실은 미국이야말로 민족분렬의 원흉이고 핵전쟁위험을 몰아오는 장본인이며 북남관계개선과 통일을 방해하는 주범이라는것을 보여주고있다.

미국은 우리 민족이 화해하고 단합하며 통일로 나가는것을 바라지 않으며 북과 남이 계속 적대시하고 동족끼리 싸우도록 괴뢰들을 부추기고있다.

그래야 조선반도와 주변지역에서 저들의 군사적지배를 강화하고 아시아와 세계제패전략을 실현하기 위한 구실을 마련할수 있기때문이다.

우리 민족이 과연 언제까지 미국의 이러한 침략전쟁책동의 희생물로 남아있어야 하겠는가.

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강점을 그대로 두고서는 북남관계발전과 나라의 평화와 통일도,민족의 번영도 생각할수 없다.

우리 민족의 온갖 불행과 고통의 화근인 미제의 남조선강점을 하루빨리 끝장내야 한다.

최근 남조선과 국제사회에서 남조선강점 미군철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급격히 높아가는데 바빠맞은 미국은 괴뢰패당과 결탁하여 미군기지이전이니,미군재배치니,련합사단창설이니 뭐니 하는 놀음에 매달리고있다.

그것이 남조선에 더 깊숙이 둥지틀고앉아 군사적강점을 영구화하며 침략과 전쟁책동에 더욱더 광분하려는 교활한 술책이라는것은 두말할것도 없다.

미국이 쩍하면 그 누구의 《유엔결의준수》를 떠들면서도 《유엔군사령부》를 해체하고 남조선에서 미군을 철수시킬데 대한 1975년 유엔총회 제30차회의 결의를 아닌보살하고있는것은 자가당착으로서 파렴치성을 그대로 드러내보일뿐이다.

랭전이 종식되고 북남사이에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들이 채택된 오늘에 와서 미군이 남조선에 남아있을 리유가 더는 없다.

미국이 남조선에 대해 《보호자》요,《원조자》요 뭐요 하던 때는 멀리 지나갔으며 우리 민족은 누구도 불청객인 미제침략군이 남조선에 와있는것을 원치 않고있다.

미국은 우리 민족의 더 큰 항거로 이 땅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우리 혁명무력의 무자비한 불벼락으로 최후의 파멸을 당하기 전에 시대착오적인 남조선강점정책과 대조선적대시정책을 철회하고 침략무력을 걷어가지고 당장 물러가야 한다.

남조선당국은 미국의 하수인이 되여 미제침략군의 영구주둔을 애걸하는 수치스러운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남조선도 이제는 미국의 지배에서 벗어날 때가 되였다.

남조선당국이 대미종속관계를 청산하지 않고서는 북남관계를 실질적으로 전진시켜나갈수 없다.

남조선의 현 《정권》이 진정으로 북남관계개선을 바란다면 친미사대정책을 버리고 미국과 함께 벌리는 모든 북침전쟁연습을 걷어치우며 미군을 남조선에서 철수시키기 위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여기에 조선반도평화와 통일,북남관계개선의 근본해결책이 있다.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와 김정일동지께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66돐경축 재일본조선인축하단 경의 표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 7일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아 허종만 총련중앙상임위원회 의장을 단장으로 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66돐경축 재일본조선인축하단이 경의를 표시하였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양형섭동지가 축하단과 동행하였다.

축하단성원들은 탁월한 사상리론활동과 거창한 혁명실천으로 조국과 혁명,시대와 력사앞에 거대한 업적을 쌓아올리시였으며 재일조선인운동의 전인미답의 길을 환히 밝혀주시고 손잡아 이끌어주신 위대한 김일성대원수님과 김정일대원수님에 대한 다함없는 경모의 마음안고 절세위인들의 립상을 우러러 숭고한 경의를 표시하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와 김정일동지께서 생전의 모습으로 계시는 영생홀들에서 그들은 대원수님들께 삼가 인사를 드리였다.

그들은 훈장보존실들과 위대한 대원수님들께서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현지지도와 외국방문의 길에서 리용하신 승용차와 전동차,배,렬차보존실들을 주의깊게 돌아보았다.

허종만의장은 방문록에 글을 남기였다.

[정세론해설] 침략군의 남조선강점은 최대의 인류사적죄악

1945년 9월 8일은 우리 겨레의 가슴속에 원한의 상처를 남긴 비극의 날이다.바로 이날 미제침략군이 우리 조국의 절반땅을 강점함으로써 민족분렬의 력사,치욕의 력사가 시작되였고 우리 겨레에게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재난이 들씌워졌다.그 저주로운 날이 없었다면 조선민족은 애당초 북과 남이라는 말도 몰랐을것이며 조선반도가 전쟁위험이 가장 짙은 세계최대의 열점지역으로 되지도 않았을것이다.

우리 겨레는 한두해도 아니고 반세기가 훨씬 넘는 기나긴 세월 남조선을 타고앉아 주인행세를 하면서 온갖 범죄적만행을 일삼고있는 미제에 대한 치솟는 증오로 가슴끓이고있다.

미국의 남조선강점은 우리 민족의 자주적발전에 대한 지향과 권리를 무참히 짓밟은 용납 못할 자주권유린행위였다.

8.15해방후 우리 민족은 일제식민지통치의 후과를 청산하고 뛰여난 창조적지혜와 능력을 총발동하여 부강번영하는 자주독립국가를 일떠세우기 위해 한결같이 떨쳐나섰다.그러나 우리 민족의 지향과 열망은 동북아시아지역에서 패권적지위를 수립하기 위해 미쳐날뛰던 미제에 의해 짓밟히고말았다.

일찍부터 아시아침략에서 차지하는 조선반도의 전략적중요성을 간파해온 미국은 일제의 패망이후 조성된 정세를 리용하여 우리 나라의 38°선이남지역을 제멋대로 일본군의 그 무슨 《무장해제》를 위한 작전지역으로 설정하고 남조선을 군사적으로 강점하였다.일제를 대신하여 남조선에 기여든 미제는 《군정》을 선포하고 저들의 손때묻은 주구를 내세워 친미괴뢰정권을 조작하였으며 정치,군사,경제,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식민지지배체계를 구축하였다.미국이 괴뢰들을 부추겨 조작해낸 각종 불평등한 조약과 협정들에 의하여 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지배와 예속이 정당화되고 침략자들에게 무제한한 특혜와 특권이 부여되였다.그리하여 남조선은 자주권을 완전히 상실한 미국의 식민지로 전락되였다.

침략적인 대외전략의 실현을 위해 한 나라,한 민족을 서슴없이 희생시킨 미국의 범죄적책동으로 하여 대대로 하나의 피줄을 이으며 단일민족으로 살아온 우리 겨레가 외세에 의해 인위적으로 북과 남으로 갈라지고 대결을 강요당하며 통일적발전을 심히 억제당하였다.남조선을 비법적으로 강점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의 꿈을 짓밟고 참을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들씌워온 미국의 반인륜적범죄는 그 무엇으로써도 정당화될수 없는 가장 악랄한 주권침해,자주권유린행위이다.

미국의 남조선강점사는 극악한 살인마,파렴치한 날강도들의 피비린 죄악으로 얼룩져있다.

미국은 남조선강점 미군을 평화와 안전을 위한 그 무슨 《억제력》으로,남조선인민들의 《보호자》로 광고하고있다.하지만 그것은 미국이 남조선에서 군림해온 지난 69년의 력사가 보여주는바와 같이 새빨간 거짓말이다.

미국은 남조선인민들의 존엄이나 생명같은것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미제침략군은 남조선인민들을 식민지렬등인으로,략탈의 대상으로밖에 여기지 않는다.이 야수들에게 있어서 남조선녀성들은 한갖 성노리개일따름이다.동두천녀인삭발사건,윤금이살해사건,미군장갑차에 의한 두 녀중학생학살사건 등 세상을 경악케 한 미제침략군의 치떨리는 야수적만행들이 그것을 말해주고있다.최근에도 남조선에서는 미제침략군이 지하철도에서 20대 녀성을 집단적으로 성추행한 사건,식당주인에게 흉기를 휘두른 사건,서울 한복판에서 주민들에게 총을 마구 란사한 사건을 비롯하여 각종 범죄행위를 저지른것이 폭로되였다.

그뿐이 아니다.미국은 남조선의 도처에 침략군의 기지를 건설하고 전쟁연습소동을 미친듯이 벌려 인민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고 농경지를 황페화시키는 등 생명을 앗아가고 환경을 파괴하고있다.

장구한 인류력사에는 강점군에 의한 범죄행위가 수없이 기록되여있다.하지만 남조선강점 미제침략군처럼 한 나라,한 민족의 운명을 그처럼 악랄하게 롱락하고 인민들에게 그토록 잔인하고 악독하게 불행과 고통을 강요한 야만의 무리는 없었다.미제침략군이 남조선에 남아있는 한 인민들의 불행과 재난은 결코 가셔질수 없다.

미국의 남조선강점은 조선반도의 평화를 파괴하고 핵전쟁위험을 고조시키면서 조국통일의 길에 커다란 장애를 조성하는 반통일적범죄행위이다.

지난 세기 50년대에 전조선에 대한 지배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조선전쟁을 도발하고 우리 겨레에게 참혹한 전쟁의 재난을 들씌운 미국은 전후에도 정전협정을 체계적으로 유린하면서 침략무력을 끊임없이 증강하고 핵무기까지 끌어들이며 전쟁연습소동을 광란적으로 벌려왔다.미국은 그 누구의 《핵,미싸일위협》에 대해 요란히 떠들면서 그에 대비한다는 구실밑에 괴뢰들과 함께 북침련합작전태세를 강화하면서 조선반도에서 핵전쟁발발의 위기를 극도로 증대시키고있다.얼마전에도 미국은 남조선에서 괴뢰호전광들과 함께 북침핵선제공격각본인 《맞춤형억제전략》에 따른 대규모적인 《을지 프리덤 가디언》합동군사연습을 감행함으로써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긴장상태를 조성하였다.이것은 침략적인 대조선전략을 실현하기 위해 조선반도의 평화를 악랄하게 유린하면서 우리 민족의 머리우에 핵전쟁의 검은구름을 짙게 몰아오는 미제의 호전적정체를 다시금 똑똑히 드러내보여준다.

남조선괴뢰들을 북침전쟁도발에로 내모는 미국의 범죄적망동은 북남사이의 불신과 대결을 조장하고 조국통일을 가로막는 엄중한 장애로 되고있다.미국이 남조선괴뢰들과 야합하여 북침전쟁연습소동에 광분할 때마다 북남관계는 최악의 위기상태로 치닫고 이로 하여 민족의 화해와 단합,자주통일을 위한 우리 겨레의 투쟁이 시련과 난관에 직면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있다.

미제침략군의 남조선강점이야말로 최대의 인류사적죄악으로서 더이상 지속되여서는 안될 용납 못할 범죄이다.

지금 북과 남의 온 민족은 신성한 우리 조국의 절반땅을 강점하고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유린하면서 온갖 만행을 일삼고있는 침략자 미제에 대한 끓어오르는 분노를 금치 못하고있으며 남조선강점 미제침략군의 철수를 강력히 주장하고있다.민족적불행과 고통의 화근인 미제침략군무리를 남조선에서 몰아내지 않고서는 나라의 평화도 자주통일도 이룩할수 없다.

북과 남,해외의 온 겨레는 굳게 단합하여 남조선에서 미제침략군을 내몰기 위한 투쟁을 더욱 과감히 벌려나감으로써 평화와 민족의 안전을 수호하고 조국통일의 력사적위업을 앞당겨 성취하여야 할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66돐경축 재일본조선인축하단 만경대 방문

허종만 총련중앙상임위원회 의장을 단장으로 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창건 66돐경축 재일본조선인축하단이 7일 만경대를 방문하였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양형섭동지가 축하단과 동행하였다.

축하단성원들은 먼저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의 할아버님이신 김보현선생님과 할머님이신 리보익녀사의 묘,아버님이신 김형직선생님과 어머님이신 강반석녀사의 묘에 꽃다발들을 진정하고 묵상하였다.

이어 그들은 위대한 수령님과 만경대일가분들의 혁명활동을 보여주는 사적자료들과 사적물들이 전시되여있는 만경대혁명사적관을 참관하였다.

위대한 김일성대원수님께서 탄생하신 만경대고향집을 찾은 축하단성원들은 력사의 집에 깃들어있는 불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적물들을 주의깊게 돌아보았다.그들은 만경대옛집방문을 기념하여 사진을 찍었다.

허종만의장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만경대를 찾으니 김일성대원수님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금할수 없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망국노의 설음안고 살아오던 재일동포들에게 조국해방을 안겨주시고 자주독립국가의 해외공민으로 내세워주시였다.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들에게 베풀어주시던 그이의 크나큰 사랑과 은정을 세월이 흘러도 영원히 잊을수 없다.주체의 산아인 총련을 무어주시고 해외교포운동의 본보기조직으로 강화발전시켜주신 김일성대원수님의 업적은 후손만대에 길이 빛날것이다.

우리들은 위대한 대원수님들을 주체의 태양으로 영원히 높이 모시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령도를 충직하게 받들어 총련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나가겠다.

[정세론해설] 금강산관광재개를 요구하는 목소리

최근 남조선에서 당국이 시대착오적인 대결정책을 철회하고 북남관계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각계의 목소리가 날로 높아가고있다.특히 금강산관광의 재개로 북남관계개선의 출로를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 자주 나오면서 여론의 이목을 집중시키고있다.

지난 8월 13일 조선반도평화통일시민단체협의회는 《국회》에서 북남관계개선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여기에서 단체는 북남관계파국이 장기화되는데 대해 우려를 표시하면서 남조선당국이 북남관계개선의 획기적조치로서 7.4공동성명,6.15공동선언,10.4선언을 비롯한 북남합의들을 준수하며 특히 《〈5.24조치〉해제와 금강산관광재개에 나서기를 기대한다.》고 밝히였다.금강산기업인협의회는 금강산관광이 중단된지 6년이 되는것과 관련하여 기자회견을 열고 남조선당국에 금강산관광재개를 위한 실무회담에 즉시 나설것을 요구하였다.

이런 속에 남조선정계에서도 금강산관광재개를 요구하고있다.새정치민주련합은 북남화해협력의 상징인 금강산관광이 6년간이나 중단된것으로 하여 남조선의 중소기업들이 엄청난 손실을 보고있는 현실에 대해 개탄하면서 금강산관광재개를 계기로 북남관계발전의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이 당의 원혜영의원은 지난 2일 《꽉 막힌 남북관계를 풀려면 금강산관광과 같은 쉬운것부터 해결해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금강산관광은 북과 남사이의 화해와 교류를 위해서뿐만아니라 남조선의 기업들을 위해서도 하루속히 재개되여야 한다고 말하였다.이날 기자회견에서 그는 금강산관광재개는 북이 이미전에 최고위급에서 신변안전보장을 약속했기때문에 《정부》가 조금만 생각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새누리당》내의 일부 인물들도 금강산관광재개요구에 합세해나서고있다.얼마전 《새누리당》소속 《국회》외교통일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북남관계개선방안으로 《5.24조치》해제와 금강산관광재개를 요구했다.그는 북남사이의 긴장완화와 대화를 위해서는 금강산관광을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그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북남관계전문가들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있다.

남조선의 한 언론은 얼마전 여당내에서조차 《5.24조치》를 해제하고 금강산관광을 재개하자는 분위기가 확대되고있다고 하면서 《선택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KBS》,《CBS》를 비롯한 다른 언론들도 북남관계가 극도로 첨예한 국면에서 금강산관광재개로 대화와 협력의 길을 여는것이 합리적이라고 보도하였다.지금 남조선언론들은 북남관계개선을 위해서는 《5.24조치》해제와 금강산관광재개가 이루어져야 한다는것이 부정할수 없는 정설로,엄연한 현실로 되고있다고 한결같이 평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