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화는 조국해방전쟁시기에 배출된 첫 육탄영웅이다.주체39(1950)년 6월 26일 림진강을 도하하여 문산뒤고지를 점령할데 대한 임무를 수행하던중 그는 적의 화구를 가슴으로 막아 구분대의 돌격로를 열어놓았다.
우리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을 도서에서 알게 되지 않았다.뜻밖에도 영웅의 무훈에 대한 생동한 자료를 어느 한 전쟁로병의 수기에서 읽어보게 된 우리는 그 수기의 주인공을 찾아 취재길을 이어가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남반부인민들은 실지생활을 통하여 우리 당 로선의 정당성을 인식하였으며 우리 당만이 조국과 인민의 리익을 철저히 옹호하는 유일한 정당이라는것을 확신하였습니다.》
전승 60돐을 맞으며 전국의 전쟁로병들과 그들의 가족들,전우들과 친우들이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 기증한 전시유물,유품들속에서 그의 수기집을 찾아 읽어보았을 때 우리는 안타까움을 금할수 없었다.다른 전쟁로병의 일기장속에 끼워져있던 그의 수기집에는 이름 석자뿐 본인의 소속과 경력도 밝혀져있지 않았던것이다.
최상원,분명히 장태화의 지휘관이였을 그는 지금 어디에서 살고있겠는지.
애써 실머리를 찾던 과정에 우리는 그 수기집 《화선천리》의 주인공이 평양연극영화대학에서 일하는 최학철의 아버지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최학철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게 되였을 때 우리의 아쉬움은 더욱 커졌다.그토록 만나보고싶었던 최상원전쟁로병은 8년전에 세상을 떠났던것이다.
《맏아들인 저도 아버지에 대하여 아는것보다 모르는것이 더 많습니다.함께 산 날보다 떨어져 산 날이 더 많은데다 평시에도 아버지는 자기에 대하여 말하는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산중초막에서 나서자라 마소와 같이 일하다가 새 조선과 더불어 나라의 주인이 되여 누려온 황금시절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손에 총을 잡은 그날로부터 예순살이 지날 때까지 군복을 입고 살아온 평범한 당원의 경력에 대하여 무엇을 이야기하겠는가.최상원로병은 늘 이렇게 생각하였던것이다.
한생토록 군복을 입고 전사들을 키우고 맡겨진 초소를 지키는데 생활의 전부를 바쳐온 전쟁로병,그가 기록한 전쟁시기의 많은 이야기가운데서 전투실화나 전선생활단편이 아닌 류다른 체험담이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비록 전투이야기는 아니여도 20대에 정치부중대장으로 탄우속을 헤쳐오던 전화의 그날부터 수십년세월을 정치일군으로 복무하여온 한 로병에 대한 표상을 가질수 있는 뜻깊은 세부였다.그리고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이 이 나라 사람들의 운명에서 어떤 극적인 변화를 가져왔는지 다시금 깨달을수 있게 하는 생동한 생활의 화폭이였다.
후퇴의 행렬이 지나가고있어도 해방의 감격이 끓어번지던 충주시의 면모에는 변화가 없었다.바람벽,전보대 그리고 길가의 곳곳에 우리의 구호들이 그대로 붙어있었다.
시병원앞에서였다.한 중로인이 갈길을 잃은 사람처럼 서성거리고있었다.그러다가 벽에 붙은 한장의 구호앞에 멈춰섰다.그의 앞에는 이런 구호가 붙어있었다.
《로동자,농민,근로인테리들이여! 승리는 우리의것이다.모두다 승리를 위하여 힘차게 떨쳐나서자!》
우리 보기에는 모를 말이 하나도 없었다.그런데 이 로인은 고개를 기웃거리고있는것이였다.
나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로인은 자기의 이름이나 직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워낙 과묵한 편이여서 말보다 생각을 많이 하는 학자풍의 기질을 가진 그에게는 가족들과 그리 크지는 않으나 연구실도 있었다고 한다.
전쟁이 일어날 때까지만 해도 그는 포연이 어느쪽으로 밀려가건 관계없이 오로지 이 땅에 평온만 깃들면 그만이라고 생각해왔다고 하였다.외국에 가서 박사학위를 받고 8.15후에는 서울에서 교수노릇을 하다가 전쟁판에 밀려나와 별로 하는 일없이 포연이 가시기를 기다리는 로인인듯 하였다.그러한 인물이고보면 포연이 다시 북으로 밀려가는 거리에서 복잡한 생각을 뒤적일 필요도 없을터인데 무엇때문에 고민하고있는지 알수 없었다.
《무엇을 생각하십니까?》하고 물었더니 그는 천천히 대답하였다.
《의학이란 정치학과는 인연이 없어 생체를 탐구하는 학문으로 알고있었습니다.그러나 백발이 날리는 오늘에 와서야 좋은 정치체제하에서만이 좋은 의학이 탐구된다는것을 깨달았습니다.
해방된 이 땅에서 두달,저는 이 두달동안에 동서국을 돌아다니면서도 배우지 못한 참된 진리를 체득할수 있었습니다.
인민정권에 저는 매혹되였습니다.사람을 아끼고 사람을 위하는 말그대로 인민의 정권이지요.인민정권은 당장에 은을 내지 못하는 학문까지도 소중히 여기며 마치 제것인양 도와주고 이끌어주었습니다.그러나 그 인민정권은 떠나가고있습니다.
아,붙잡고싶은 인민정권,따라서고싶은 인민정권이였습니다.
인민정권은 저를 끌고가지 않았습니다.그러나 저는 인민정권을 따라가고싶습니다.그런데…》
《그런데 무엇때문에 망설이십니까?》
내가 다시 묻자 그는 한숨끝에 이렇게 말을 이었다.
《이 구호를 보십시오.로동자,농민,근로인테리들이여! 했는데 손에 호미 한번 쥐여보지 못한 제가 근로인테리가 될수도 없지요.그러니 로동자,농민의 국가에 제가 설 자리가 과연 있겠는지…》
그제야 나는 이 로학자가 망설이는 까닭을 알았다.
《선생님,동서방을 다 다니면서 산전수전을 겪으신 선생님앞에서 외람된지는 모르겠지만 선생님은 아직까지 우리 정권을 잘 모르십니다.》
나의 말에 그는 눈이 둥그래졌다.
《저의 말을 선생님은 어느 정도 리해하시겠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인민의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께서는 해방후 20개조정강을 발표하시였는데 그 한조항에 과학과 예술에 종사하는 인사들의 사업을 장려할뿐아니라 그 방도까지 규정되여있습니다.
근로인테리라 하여 삽이나 곡괭이를 쥐고 일을 하는 인테리를 말하는것이 아닙니다.자기의 지식을 로동자,농민의 리익을 위하여 바치는 그런 학자가 바로 근로인테리입니다.
인민정권은 선생님같은 과학자들을 귀중히 여기고 기쁘게 맞이할겁니다.》
이렇게 되여 로학자는 우리와 함께 북행길에 들어섰다.
걷지 않던 늙은이가 날마다 산길을 걷자니 조련치 않았다.식사조건도 나빴다.그런데도 그는 책과 시약이 가득찬 무거운 배낭을 살붙이처럼 등에 지고 그냥 우리만 따라걸었다.우리는 그 로학자를 할수 있는껏 위해주고 보호해주었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식사를 하는 우리를 찾아왔던 학자는 이제부터 절대로 흰쌀밥을 먹지 않겠다고 선포하였다.아무리 권하였지만 막무가내였다.우리는 삶은 통강냉이나 군고구마 몇알로 끼니를 에우면서도 그에게만은 끼때마다 더운 흰쌀밥을 지어 대접하군 하였던것이다.
《세상에 이런 젊은이들은 처음 보았소!》
그가 우리에 대하여 다시한번 더 깊이 알게 된것은 그로부터 며칠후 불의의 폭격을 받은 행군길에서였다.
적기가 급강하하는 순간이였다.등에 졌던 배낭을 벗어던지며 로학자가 갑자기 산탁으로 줄행랑을 놓기 시작하였다.
《선생님 위험합니다.엎드리십시오!》
목이 터지게 웨쳤지만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그는 냅다 달리기만 하였다.
적기 한대가 방향을 바꾸어 그를 따랐다.불기둥이 솟구치는 속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간 병사들은 학자를 와락 몸으로 덮었다.적기의 폭탄이 눈앞에서 터지고 기총탄알이 귀전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학자는 무사하였다.
그런데 배낭에 불이 달렸다.학자가 그렇게도 소중히 여기던 배낭이였다.
《아,배낭!》하며 두 동무가 재빨리 폭격속을 뚫고 달려나갔다.
《군대동무들!》
이번에는 학자가 그들을 목터지게 불렀다.
그들이 불이 달린 배낭을 그러안고 돌아섰을 때 가까이에서 폭탄이 또 터졌다.온통 흙속에 묻혔던 그들은 한참후에야 일어났다.배낭은 무사하였다.
로학자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사실 그때 한 병사는 파편에 발뒤축을 다쳤다.그러나 절룩거리면 학자가 미안해할것 같아 아무 일도 없었던듯이 자연스럽게 걷기 위해 애를 썼다.
학자가 그 병사의 상처에 대하여 알게 된것은 그때로부터 5~6년후였다.그때 부상당했던 병사가 그 상처로 하여 병원에 입원하였는데 우연히도 로학자는 그 병원에서 일하고있었다.전상자의 병력서를 읽다가 너무도 놀랍고 감격하여 병사를 찾아왔다.로학자는 병사의 주치의사가 되여 성의껏 치료해주었다는것이였다.
병원에서는 그를 임교수라고 불렀다고 한다.
우리는 전쟁로병이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잊지 못해한 그 임교수를 찾고싶었다.그러나 떠나간 로병의 그후 이야기를 우리는 더 들을수도 알수도 없었다.더우기 전쟁시기에 벌써 백발이였던 그 임교수를 성 하나만 가지고 찾는다는것은 어려운 일이였다.
하지만 우리는 그 임교수가 조선예술영화 《한 의학자의 길》의 주인공과 같이 인생의 참된 길을 찾아 떠났던 그 걸음으로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최상원을 비롯한 인민군병사들앞에,품어안아준 조국앞에 떳떳하고 필요한 사람으로 아름다운 삶의 흔적을 남겼을것이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