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4일

박봉주총리 대안중기계련합기업소 현지료해

【평양 6월 23일발 조선중앙통신】박봉주내각총리는 생산적앙양으로 들끓고있는 대안중기계련합기업소를 현지에서 료해하였다.

사회주의건설의 년대기마다 우리 당을 높은 생산성과로 받들어온 대안의 로동계급은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올해신년사와 당의 경제강국건설구상을 높이 받들고 인민경제 여러 부문에서 절실히 요구하는 대상설비생산을 힘있게 벌리고있다.

총리는 여러 생산공정들을 돌아보면서 대상설비들의 기술적특성과 가공 및 조립정형을 알아보고 협의회를 진행하였다.

협의회에서는 대상설비생산을 늘이고 성능을 끌어올리기 위한 문제들이 토의되였다.

한편 총리는 버섯공장건설장을 료해하고 현지에서 공사를 다그치기 위한 대책을 협의하였으며 황해남도의 여러 지역을 돌아보면서 가물피해를 극복하는것이 가지는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독특하고도 민족적색채가 짙은 공연,조선을 잘 알게 된 훌륭한 계기

【평양 6월 23일발 조선중앙통신】우리 나라 소편대학생예술단이 쾨뻰하븐을 비롯한 단마르크의 여러곳에서 성황리에 공연하였다.

예술단성원들은 합창 《조국찬가》,중창 《인민의 환희》,기악중주 《세상에 부럼없어라》,가야금독주 《평양날파람》,《꽃놀이》,무용 《목동과 처녀》,《장고춤》 등과 단마르크노래들을 공연무대에 올렸다.

어머니당과 조국의 따사로운 품속에서 자기의 희망과 재능을 마음껏 꽃피우며 앞날의 주인공들로 씩씩하게 자라나는 우리 행복동이들의 밝고 명랑한 모습을 감명깊은 예술적화폭으로 펼쳐보인 공연은 관중들의 절찬을 받았다.

공연장소마다에서 수많은 관중들이 우리 학생예술단의 공연에 대해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였으며 격정에 넘쳐 관람소감을 피력하였다.

베티 난쎈극장 총지배인 헨리크 하트맨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20여년간 이 극장에서 일하면서 이처럼 훌륭하고 관중들의 대절찬을 받은 공연을 본적이 없었다.

조선학생들의 공연은 독특하고 민족적이며 예술적기량이 매우 높다.

극장 총지배인으로서 예술단이 첫 공연을 우리 극장에서 진행하고 관람자들에게 지울수 없는 인상을 남긴데 대하여 긍지로 생각한다.

우리 극장에서 훌륭한 공연무대를 펼쳐보인 조선의 학생들에게 열렬한 축하와 함께 진심으로 되는 사의를 표한다.

특히 이처럼 훌륭한 예술인재들을 키워내고 단마르크에 와서 공연할수 있도록 해주신 조선의 령도자께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북유럽 아시아연구소 소장 게이르 헬게슨은 격동된 심정을 이렇게 토로하였다.

지난 수십년간 조선을 연구하고있지만 오늘 공연을 통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너무도 모르고있다는것을 느끼게 되였다.

이 나라에 대하여 부정적으로만 알고있던 관중들의 놀라움이 매우 크리라고 본다.

예술단의 한시간도 못되는 공연은 사람들의 머리속에 지배하고있던 조선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뒤바꾸어놓았다.

조선과의 문화교류를 촉진시키기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티다극장그룹 대표 쏘렌 오브쎈은 단마르크의 이름있는 극장들에서 조선의 학생예술단이 공연을 성과적으로 진행한것을 축하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소감을 이렇게 터놓았다.

모든 관중들이 은은하고 독특한 음색을 가진 가야금연주와 우아하고 민족적인 무용들에 완전히 매혹되였다.

공연이 끝난 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그들이 너무도 잘 부른 단마르크노래들을 눈물을 흘리면서 함께 불렀다.

나는 조선예술의 높은 수준에 대하여 잘 알고있었기때문에 이번 공연이 크게 성공하리라고 생각은 하였지만 이토록 열광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리라고는 상상도 못하였다.

지금까지 조선에 대해 부정적인 보도를 해오던 단마르크의 신문,방송들이 예술단의 단마르크순회공연에 대하여 사진과 함께 매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공연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아왔으며 좌석이 모자라 관람석계단과 바닥에 앉아 관람하였다.

우리 극장에서 이처럼 초만원을 이룬 관중의 커다란 흥분과 절찬속에 진행된 공연은 아직 없었다.

링쾨빙시 예술 및 극장 기금리사회 리사 벤트는 이렇게 말하였다.

단마르크서부의 관광도시인 링쾨빙시로는 많은 나라 예술단들이 찾아와 공연을 하고있다.

이곳 주민들은 세계 여러 나라의 예술공연들을 관람하는 기회가 많기때문에 아무리 훌륭한 공연이라고 해도 적당히 박수를 치는것이 일반적이였다.

그러나 조선학생들의 공연을 보며 열광적으로 박수를 치면서 함께 호응하였다.

관중들은 이들의 공연성과를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로학자의 결심

장태화는 조국해방전쟁시기에 배출된 첫 육탄영웅이다.주체39(1950)년 6월 26일 림진강을 도하하여 문산뒤고지를 점령할데 대한 임무를 수행하던중 그는 적의 화구를 가슴으로 막아 구분대의 돌격로를 열어놓았다.

우리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을 도서에서 알게 되지 않았다.뜻밖에도 영웅의 무훈에 대한 생동한 자료를 어느 한 전쟁로병의 수기에서 읽어보게 된 우리는 그 수기의 주인공을 찾아 취재길을 이어가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남반부인민들은 실지생활을 통하여 우리 당 로선의 정당성을 인식하였으며 우리 당만이 조국과 인민의 리익을 철저히 옹호하는 유일한 정당이라는것을 확신하였습니다.》

전승 60돐을 맞으며 전국의 전쟁로병들과 그들의 가족들,전우들과 친우들이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 기증한 전시유물,유품들속에서 그의 수기집을 찾아 읽어보았을 때 우리는 안타까움을 금할수 없었다.다른 전쟁로병의 일기장속에 끼워져있던 그의 수기집에는 이름 석자뿐 본인의 소속과 경력도 밝혀져있지 않았던것이다.

최상원,분명히 장태화의 지휘관이였을 그는 지금 어디에서 살고있겠는지.

애써 실머리를 찾던 과정에 우리는 그 수기집 《화선천리》의 주인공이 평양연극영화대학에서 일하는 최학철의 아버지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최학철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게 되였을 때 우리의 아쉬움은 더욱 커졌다.그토록 만나보고싶었던 최상원전쟁로병은 8년전에 세상을 떠났던것이다.

《맏아들인 저도 아버지에 대하여 아는것보다 모르는것이 더 많습니다.함께 산 날보다 떨어져 산 날이 더 많은데다 평시에도 아버지는 자기에 대하여 말하는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산중초막에서 나서자라 마소와 같이 일하다가 새 조선과 더불어 나라의 주인이 되여 누려온 황금시절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손에 총을 잡은 그날로부터 예순살이 지날 때까지 군복을 입고 살아온 평범한 당원의 경력에 대하여 무엇을 이야기하겠는가.최상원로병은 늘 이렇게 생각하였던것이다.

한생토록 군복을 입고 전사들을 키우고 맡겨진 초소를 지키는데 생활의 전부를 바쳐온 전쟁로병,그가 기록한 전쟁시기의 많은 이야기가운데서 전투실화나 전선생활단편이 아닌 류다른 체험담이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비록 전투이야기는 아니여도 20대에 정치부중대장으로 탄우속을 헤쳐오던 전화의 그날부터 수십년세월을 정치일군으로 복무하여온 한 로병에 대한 표상을 가질수 있는 뜻깊은 세부였다.그리고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이 이 나라 사람들의 운명에서 어떤 극적인 변화를 가져왔는지 다시금 깨달을수 있게 하는 생동한 생활의 화폭이였다.

후퇴의 행렬이 지나가고있어도 해방의 감격이 끓어번지던 충주시의 면모에는 변화가 없었다.바람벽,전보대 그리고 길가의 곳곳에 우리의 구호들이 그대로 붙어있었다.

시병원앞에서였다.한 중로인이 갈길을 잃은 사람처럼 서성거리고있었다.그러다가 벽에 붙은 한장의 구호앞에 멈춰섰다.그의 앞에는 이런 구호가 붙어있었다.

《로동자,농민,근로인테리들이여! 승리는 우리의것이다.모두다 승리를 위하여 힘차게 떨쳐나서자!》

우리 보기에는 모를 말이 하나도 없었다.그런데 이 로인은 고개를 기웃거리고있는것이였다.

나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로인은 자기의 이름이나 직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워낙 과묵한 편이여서 말보다 생각을 많이 하는 학자풍의 기질을 가진 그에게는 가족들과 그리 크지는 않으나 연구실도 있었다고 한다.

전쟁이 일어날 때까지만 해도 그는 포연이 어느쪽으로 밀려가건 관계없이 오로지 이 땅에 평온만 깃들면 그만이라고 생각해왔다고 하였다.외국에 가서 박사학위를 받고 8.15후에는 서울에서 교수노릇을 하다가 전쟁판에 밀려나와 별로 하는 일없이 포연이 가시기를 기다리는 로인인듯 하였다.그러한 인물이고보면 포연이 다시 북으로 밀려가는 거리에서 복잡한 생각을 뒤적일 필요도 없을터인데 무엇때문에 고민하고있는지 알수 없었다.

《무엇을 생각하십니까?》하고 물었더니 그는 천천히 대답하였다.

《의학이란 정치학과는 인연이 없어 생체를 탐구하는 학문으로 알고있었습니다.그러나 백발이 날리는 오늘에 와서야 좋은 정치체제하에서만이 좋은 의학이 탐구된다는것을 깨달았습니다.

해방된 이 땅에서 두달,저는 이 두달동안에 동서국을 돌아다니면서도 배우지 못한 참된 진리를 체득할수 있었습니다.

인민정권에 저는 매혹되였습니다.사람을 아끼고 사람을 위하는 말그대로 인민의 정권이지요.인민정권은 당장에 은을 내지 못하는 학문까지도 소중히 여기며 마치 제것인양 도와주고 이끌어주었습니다.그러나 그 인민정권은 떠나가고있습니다.

아,붙잡고싶은 인민정권,따라서고싶은 인민정권이였습니다.

인민정권은 저를 끌고가지 않았습니다.그러나 저는 인민정권을 따라가고싶습니다.그런데…》

《그런데 무엇때문에 망설이십니까?》

내가 다시 묻자 그는 한숨끝에 이렇게 말을 이었다.

《이 구호를 보십시오.로동자,농민,근로인테리들이여! 했는데 손에 호미 한번 쥐여보지 못한 제가 근로인테리가 될수도 없지요.그러니 로동자,농민의 국가에 제가 설 자리가 과연 있겠는지…》

그제야 나는 이 로학자가 망설이는 까닭을 알았다.

《선생님,동서방을 다 다니면서 산전수전을 겪으신 선생님앞에서 외람된지는 모르겠지만 선생님은 아직까지 우리 정권을 잘 모르십니다.》

나의 말에 그는 눈이 둥그래졌다.

《저의 말을 선생님은 어느 정도 리해하시겠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인민의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께서는 해방후 20개조정강을 발표하시였는데 그 한조항에 과학과 예술에 종사하는 인사들의 사업을 장려할뿐아니라 그 방도까지 규정되여있습니다.

근로인테리라 하여 삽이나 곡괭이를 쥐고 일을 하는 인테리를 말하는것이 아닙니다.자기의 지식을 로동자,농민의 리익을 위하여 바치는 그런 학자가 바로 근로인테리입니다.

인민정권은 선생님같은 과학자들을 귀중히 여기고 기쁘게 맞이할겁니다.》

이렇게 되여 로학자는 우리와 함께 북행길에 들어섰다.

걷지 않던 늙은이가 날마다 산길을 걷자니 조련치 않았다.식사조건도 나빴다.그런데도 그는 책과 시약이 가득찬 무거운 배낭을 살붙이처럼 등에 지고 그냥 우리만 따라걸었다.우리는 그 로학자를 할수 있는껏 위해주고 보호해주었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식사를 하는 우리를 찾아왔던 학자는 이제부터 절대로 흰쌀밥을 먹지 않겠다고 선포하였다.아무리 권하였지만 막무가내였다.우리는 삶은 통강냉이나 군고구마 몇알로 끼니를 에우면서도 그에게만은 끼때마다 더운 흰쌀밥을 지어 대접하군 하였던것이다.

《세상에 이런 젊은이들은 처음 보았소!》

그가 우리에 대하여 다시한번 더 깊이 알게 된것은 그로부터 며칠후 불의의 폭격을 받은 행군길에서였다.

적기가 급강하하는 순간이였다.등에 졌던 배낭을 벗어던지며 로학자가 갑자기 산탁으로 줄행랑을 놓기 시작하였다.

《선생님 위험합니다.엎드리십시오!》

목이 터지게 웨쳤지만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그는 냅다 달리기만 하였다.

적기 한대가 방향을 바꾸어 그를 따랐다.불기둥이 솟구치는 속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간 병사들은 학자를 와락 몸으로 덮었다.적기의 폭탄이 눈앞에서 터지고 기총탄알이 귀전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학자는 무사하였다.

그런데 배낭에 불이 달렸다.학자가 그렇게도 소중히 여기던 배낭이였다.

《아,배낭!》하며 두 동무가 재빨리 폭격속을 뚫고 달려나갔다.

《군대동무들!》

이번에는 학자가 그들을 목터지게 불렀다.

그들이 불이 달린 배낭을 그러안고 돌아섰을 때 가까이에서 폭탄이 또 터졌다.온통 흙속에 묻혔던 그들은 한참후에야 일어났다.배낭은 무사하였다.

로학자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사실 그때 한 병사는 파편에 발뒤축을 다쳤다.그러나 절룩거리면 학자가 미안해할것 같아 아무 일도 없었던듯이 자연스럽게 걷기 위해 애를 썼다.

학자가 그 병사의 상처에 대하여 알게 된것은 그때로부터 5~6년후였다.그때 부상당했던 병사가 그 상처로 하여 병원에 입원하였는데 우연히도 로학자는 그 병원에서 일하고있었다.전상자의 병력서를 읽다가 너무도 놀랍고 감격하여 병사를 찾아왔다.로학자는 병사의 주치의사가 되여 성의껏 치료해주었다는것이였다.

병원에서는 그를 임교수라고 불렀다고 한다.

우리는 전쟁로병이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잊지 못해한 그 임교수를 찾고싶었다.그러나 떠나간 로병의 그후 이야기를 우리는 더 들을수도 알수도 없었다.더우기 전쟁시기에 벌써 백발이였던 그 임교수를 성 하나만 가지고 찾는다는것은 어려운 일이였다.

하지만 우리는 그 임교수가 조선예술영화 《한 의학자의 길》의 주인공과 같이 인생의 참된 길을 찾아 떠났던 그 걸음으로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최상원을 비롯한 인민군병사들앞에,품어안아준 조국앞에 떳떳하고 필요한 사람으로 아름다운 삶의 흔적을 남겼을것이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천금보다 더 소중한 사상일군의 멋

◇ 지금 우리 당사상일군들은 조선로동당 제8차 사상일군대회의 정신을 높이 받들고 항일유격대식배낭을 메고 대중속으로 들어가고있다.

배천군당위원회 비서 안효동동무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끊임없이 이어지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혁명활동소식과 어머니 우리 당이 펼치는 인민사랑의 전설같은 이야기들에 접하고 감격과 환희,불같은 맹세로 가슴끓이는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정말 생각되는것이 많습니다.바로 이런 멋에 사상사업을 하는구나 하는 긍지와 함께 솟구치는 열정과 일욕심을 금할수 없습니다.》

이것이 어찌 그 일군만의 심정이라고 하겠는가.혁명적인 사상공세가 맹렬하게 벌어지고있는 오늘의 시대에 우리 사상일군들모두가 체험하고 자각하게 되는 자부이고 영예일것이다.

◇ 사상일군의 멋,이것은 언제나 대중속에 들어가 꺼지지 않는 홰불,진격의 나팔수로서의 본분을 다해나가는데서 찾는 삶의 보람이고 희열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사람들이 어느때나 당의 목소리를 듣고싶어하고 당정책을 쌍수를 들어 지지할 때 가슴뭉클해지는 멋을 천금보다 더 소중히 여길줄 아는 사람이 참된 사상일군입니다.》

지금으로부터 40년전 2월 19일,력사의 이날에 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뜻깊은 말씀이 오늘도 우리 사상일군들의 가슴을 뜨겁게 울려주고있다.우리는 수령님께서 현지지도를 하시다가 포전에서 《동무 누구요?》하고 물으시면 《예,저는 군당사상비서입니다.》라는 대답이 나오고 《무엇하러 나왔소?》라고 물으시면 《당정책을 해설하러 나왔습니다.》라는 대답이 나오면 이것이 가장 리상적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그날의 가르치심은 우리 사상일군들의 사명과 본분을 깊이 새겨주는 고귀한 지침이다.

1970년대 당사상일군들은 당정책이 제시되면 즉시에 배낭을 메고 대중속으로 들어갔으며 그 관철을 위해 물과 불속에도 서슴없이 뛰여들며 대중을 이끌었다.그처럼 엄혹했던 고난의 행군,강행군시기에도 우리 사상일군들이 있는 곳에서는 언제나 당정책이 살아숨쉬고 훌륭한 결실을 맺군 하였다.

군중이 당정책을 심장으로 접수하고 당의 뜻을 받들어 산악같이 떨쳐나설 때 느끼는 희열과 보람,바로 이런 멋으로 하여 우리 사상일군들이 온갖 고생을 락으로 여기며 인민들을 찾아 걷고 또 걷는것이 아니겠는가.

◇ 사상일군들은 우리 당의 붉은 정수분자들이다.

모든 사상일군들은 언제나 항일유격대식배낭을 메고 군중속에 들어가 당정책을 깊이있게 해설선전하고 그들을 당정책관철에로 불러일으킬줄 아는 능숙한 조직동원자가 되여야 한다.당의 목소리를 제때에 알려주기 위해 하루밤에도 수십리길을 걷는 정신,열백밤을 패가며 당정책을 학습하고 지식과 기술을 배우는 불같은 열정이 사상일군들의 몸에 푹 배야 한다.당의 사상과 믿음을 한생의 재부로 간직하고 당정책을 한사람이라도 더 알게 하며 맡은 단위에서 집단적혁신이 일어나게 하는데서 삶의 보람과 긍지를 느껴야 한다.

[정세론해설] 력사는 고발한다

지난 조선전쟁은 미국의 대조선정책의 필연적산물로서 미국과 리승만도당이 오랜 기간에 걸쳐 준비하고 치밀하게 작성된 계획에 따라 감행한 침략전쟁이다.그러나 미국의 전쟁사환군들과 그에 추종하는 어용사가들은 이것을 북으로부터의 예견할수 없었던 《기습적인 사건》으로 묘사하면서 진실을 오도하려 하고있다.그러나 력사의 진실은 그 누구도 가리울수 없는것이다.

당시의 사건과 관련한 몇가지 사실자료들만 보아도 명백히 알수 있다.

1950년 6월 24일 워싱톤에서는 당시 미중앙정보국 장관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미중앙정보국 장관은 여러 문제들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고나서 흥분된 어조로 기자들에게 더 물을것이 없는가고 반문하였다.

그의 행동에 흥미를 느낀 기자들은 《무엇인가 특종감의 뉴스가 있으면 더 알려주기 바란다.》고 했다.그는 기자들에게 《이것이야말로 당신들이 말하는 특종기사가 되고도 남음이 있을것이다.그러나 이것은 발표할것이 못된다.…》라고 하면서 비밀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받은 뒤 《오늘밤 아니면 래일아침 조선에서 전쟁이 일어날것이다.》라고 말하였다.(미국 《뉴욕 타임스》 1950년 6월 28일)

《인민군대는 38゜선에서 대단히 멀리 떨어진 곳에 배치되여있었다.그들은 방위를 위하여 배치되고있었다.그들은 결코 공격을 위한 배치상태에는 있지 않았다.…반면에 남조선군은 자기의 모든 군수물자와 장비를 38゜선전역에 집결시켜놓고있었으며 배치대형도 종심진지형이 아니였다.38゜선과 서울사이에는 전역이 병참기지였다.》(1951년 4월 맥아더의 증언)

《6월 25일 일요일 아침 미국신문기자는 〈미극동군사령부〉의 소장부부의 안내로 일본의 닛꼬를 구경하기로 했었다.맥아더의 전용차를 련결한 닛꼬행렬차가 막 떠나려고 할 때 소장은 역에 나와서 자기는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맥아더로부터 꼭 출근하여달라는 지시를 받았기때문에 동행할수 없다고 사과했다.닛꼬에 도착하여 점심식사를 하려고 할 때 〈미극동군사령부〉의 한 고관이 도꾜로부터 장거리전화로 호출되였다.그가 돌아와서 낮은 목소리로 기자에게 〈국군〉이 북조선을 공격하기 시작하였습니다라고 알려주었던것이다.》(일본도서 《맥아더의 수수께끼》)

당시 미국과 일본의 신문들은 이미 6월 24일에 남조선군이 38°선을 넘어서 인민군 진지에 대한 맹렬한 공격을 들이대고있다고 하면서 남조선군은 23일 밤 10시부터 24일 4시까지 기간에 옹진반도에만도 105㎜포와 81㎜포 240발을 발사했다고 전하였으며 미국의 한 대학교수도 《불의의 타격을 받은것은 미국이 아니라 북》이라고 폭로했다.

이렇듯 엄연한 력사적사실을 놓고도 그 누구의 도발에 대하여 떠드는것이야말로 닭잡아먹고 오리발내미는 격의 파렴치한 행위가 아닐수 없는것이다.

력사를 부정하며 자기의 잘못된 과거를 되풀이하려는자들이 가닿게 될 종착점이란 파멸의 길뿐이다.

자주적인 새 사회건설을 위하여

라오스는 동남아시아에 위치하고있는 내륙국가이다.윁남,타이,캄보쟈,중국,먄마와 국경을 접하고있다.23만 6 800㎢의 넓이를 가진 이 나라에도 식민주의자들이 강요한 수난의 력사가 력력히 수록되여있다.

라오스는 19세기 후반기부터 유럽식민주의자들의 부단한 침략을 받았다.제2차 세계대전시기 일제에게 강점되였던 라오스는 침략자들을 반대하는 인민들의 무장투쟁에 의해 1945년 10월 독립을 이룩하였다.하지만 그 이후에도 라오스땅에는 제국주의자들의 침략과 지배의 마수가 끈질기게 뻗치였다.미국은 타이와 남부윁남을 거점으로 하여 라오스에서 특수전,국부전쟁을 벌리였으며 친미괴뢰정권을 조작하였다.하지만 라오스인민은 반미구국항쟁을 줄기차게 벌려 미제를 몰아냈다.

1975년 12월 2일에는 라오스인민민주주의공화국창건이 선포되였다.공화국의 창건과 더불어 라오스인민은 자주적이며 번영하는 새 사회건설의 길에 신심드높이 들어서게 되였다.라오스인민혁명당의 령도밑에 이 나라 인민은 사회적진보와 변혁을 이룩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려 낡은 사회의 유물을 청산하고 나라의 면모를 일신시켰다.매해 8%의 경제장성률을 보장하고 국민소득을 높이며 빈곤세대수를 줄이는것은 현시기 라오스정부가 내세우고있는 제7차 5개년사회경제발전계획의 기본목표이다.이 계획수행을 위해 라오스에서는 당의 령도적역할과 전투적기능을 강화하는 한편 다각적인 경제발전에 힘을 넣고있다.

지난 시기 경제발전에서 라오스는 지하자원에 대한 채취와 수출에 의존하여왔다.라오스정부는 이러한 경제적편파성을 없애고 나라의 자연지리적특성과 실정에 맞게 농업과 림업,수력발전을 기본으로 하면서 일련의 대규모기업창설을 통하여 공업화를 실현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고있다.교육을 발전시키고 민족문화전통을 보존,계승하기 위한 조치들도 취해지고있다.특히 이색적이며 불건전한 부르죠아사상문화가 내부에 침습하지 못하도록 하고있다.

라오스주석 쭘말리 싸이냐쏜은 지난해 국가보위와 사회안전보장사업에서 많은 성과가 이룩되였다고 평가하면서 모두가 올해를 단결의 해로 빛내이고 주민들의 생활향상과 나라의 발전을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라오스는 평화,독립,친선,협조의 대외정책을 시종일관 견지하면서 아시아나라들과의 련계를 밀접히 하며 국제관계를 발전시켜나가고있다.

라오스인민혁명당 제9차대회에서는 라오스정부의 이러한 대외정책적립장이 다시금 뚜렷이 표명되였다.

오늘은 우리 나라와 라오스사이의 외교관계설정 40돐이 되는 뜻깊은 날이다.우리 인민은 라오스인민의 정당한 위업에 굳은 련대성을 표시하며 그들의 앞으로의 투쟁에서 새로운 성과가 이룩되기를 충심으로 축원하고있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은동지께서 조선인민군 부대들을 시찰하신 소식을 여러 나라에서 보도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은동지께서 조선인민군 부대들을 시찰하신 소식을 16일과 17일 여러 나라에서 보도하였다.

중국의 보도망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은동지께서 오중흡7련대칭호를 수여받은 조선인민군 해군 제167군부대를 시찰하신데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전하였다.

김정은령도자께서는 혁명사적교양실과 연혁실을 돌아보시면서 잠수함부대를 창설하시고 강화발전시켜오신 김일성주석과 김정일령도자의 불멸의 업적을 감회깊이 추억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수중종합훈련실에서 어뢰돌격훈련을 비롯한 여러가지 실내훈련을 보신 다음 잠수함 748호의 내부격실들을 돌아보시고 직접 실동훈련을 승선지도하시였으며 해병들이 훈련을 잘하였다고 높이 치하하시였다.

김정은령도자께서는 당중앙은 잠수함련합부대들을 대단히 중시한다고 하시면서 군부대앞에 나서는 과업들을 제시하시였다.

그이께서는 해병들속에서 정치사상교양사업을 강화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준엄한 바다싸움에서의 승리는 훈련을 통하여 마련된다는 자각을 안고 실지전투를 가상한 여러가지 방안을 연구완성한데 기초하여 지휘관들의 해상 및 수중작전조직지휘능력을 높여주기 위한 훈련을 강도높게 진행하여야 한다고 지시하시였다.

김정은령도자께서는 군부대의 식당,잠수함 730호 해병들의 병실,교양실들을 돌아보시면서 해병들의 생활을 보살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잠수함 730호와 748호에 쌍안경과 자동보총을 기념으로 주시고 군부대장병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다.

중국의 《베이징일보》,《길림신문》,중앙TV방송,홍콩 봉황위성TV방송,동북보도망,동북망,길림망,로씨야의 이따르-따쓰통신,윁남의 TV방송,인터네트통신들인 브이엔엑스프레스,윁남네트,미국의 UPI통신,영국신문들인 《텔레그라프》,《데일리 메일》,에스빠냐의 EFE통신,신문 《엘 빠이스》도 같은 소식을 보도하였다.

중국의 《흑룡강신문》,영국신문들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오중흡7련대칭호를 수여받은 조선인민군 제863군부대를 시찰하신 소식을,이란신문 《이란 뉴스》는 이 소식과 함께 동해안전방초소를 지키고있는 려도방어대를 시찰하신 소식을 게재하였다.

중국,윁남,영국의 출판보도물들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사진문헌들을 모시였다.

[정세론해설] 해킹문제로 불거지는 비난전

미사법성이 5명의 중국군관을 네트워크비밀절취죄로 기소한것은 불과 얼마전의 일이다.이번에는 미국의 한 인터네트안전회사가 중국군인들이 위성 및 항공분야발전을 위해 서방나라들을 해킹하고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문제의 회사는 해커의 우편물을 비롯하여 그것을 립증하는 증거들을 쥐고있다며 내용의 신빙성을 강조하고있다.하지만 미국이 내놓은 보고서의 신뢰성을 론하기는 어렵다.해킹문제를 둘러싸고 중국과 치렬한 비난전을 벌리고있는 미국의 회사가 자체로 작성하였다는 점도 그러하지만 보다는 전세계를 대상으로 비법적인 감시도청활동을 벌려온 미국의 행적이 사람들로 하여금 회의감을 자아내게 하고있다.

지난해에 있은 스노우덴사건을 보아도 그렇다.미국의 이전 정보요원이였던 그는 자국정보기관들이 국내와 세계를 대상으로 하여 도청 및 감시망을 수립하고 방대한 자료들을 수집하고있다는것을 폭로하였다.외국간첩도 아닌 내부성원이 자발적으로 단행한 비밀폭로로 미국은 더이상 세계면전에서 비렬한 정탐모략가의 더러운 몸뚱이를 감출수 없게 되였다.특히 스노우덴사건을 계기로 중미관계에서는 대립과 마찰이 표면화되였다.스노우덴이 비밀자료를 공개할 당시는 중미수뇌회담이 진행되던 때였다.미국은 회담에서 자국에 대한 중국의 싸이버범죄문제를 상정시켰었다.두 나라의 개별적인 기업들사이에 빈번한 마찰을 빚어내는 해킹문제를 정부급에서 다루어냄으로써 중국을 범죄자로 기정사실화하고 몰아대자는것이 그들의 흉심이였다.

바로 이런 시기에 스노우덴이 미국이 중국본토와 홍콩의 콤퓨터망들을 공격한 사실들을 련이어 공개하였다.그는 미국가안전보장국이 중국의 손전화회사들과 인터네트에 침입하여 수백만명에 달하는 중국인들의 통보문과 자료 등을 절취하였다고 구체적으로 립증하였다.미국으로서는 아연실색할 사태였다.오죽하면 전 미국부대통령 체이니가 스노우덴은 국가안보에 최악의 피해를 준 《반역자》라고 규정하면서 그가 중국의 《간첩》일수도 있다고 비린청을 돋구었겠는가.

중국을 다불러대는 주패장으로 내들었던 해킹사건은 오히려 부메랑이 되여 미국의 목을 조이였다.이를 두고 광범한 국제여론은 중국으로부터 미국정보기관이 랭전종식후 당한 첫 대참패라고 평하였다.이렇게 막을 내리는듯 하던 해킹문제가 올해에 들어와 다시금 불거지고있다.

몇몇 개인들의 해킹으로 시작된 싸이버공격이 지금에 와서는 국가들의 안전문제로,국제사회의 우려거리로 되고있는것은 사실이다.세계경제가 싸이버범죄로 해마다 5 750억US$의 손실을 보고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미래의 세계대전은 싸이버전쟁으로 될것이라고 예언하고있다.사실상 해킹문제를 놓고 두 대국인 미국과 중국이 벌리고있는 첨예한 공방전은 그러한 예언이 결코 무리가 아니라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인터네트는 미국을 중심으로 관리되고있다.미국은 인터네트관리에서 차지하고있는 특수한 지위를 리용하여 싸이버공간을 하늘과 땅,바다,우주에 이어 5번째 령역으로 간주하고 그에 대한 패권을 노리고있다.미국이 누구보다도 싸이버공격의 《위험성》을 떠들며 그에 대처한 군사적보복을 전략으로 내세운것도 바로 그때문이다.기술적측면에서 볼 때 싸이버공격을 가해온 외부의 망주소를 알아낼수는 있지만 누가 그러한 공격을 하였는가에 대해서는 밝혀내기 어렵다.싸이버공격자를 정확히 알아내지 못한 상태에서 누구도 군사적보복조치를 취하는것을 합법화할수 없다.또 어디까지가 전쟁행위로 간주해야 할 싸이버공격인가를 규정할수 있는 기준도 법률도 없다.

그러나 미국은 무턱대고 싸이버공격이 저들에게 《위협》으로 되며 때문에 《전쟁행위》로 보고 무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있다.이것은 미국이 저들의 비위에 거슬리는 나라들에 싸이버공격혐의를 들씌워 임의의 시각에 군사적행동을 단행하려 하고있다는것을 보여준다.

아시아태평양중시전략을 추진하고있는 미국에 있어서 중국은 첫째가는 잠재적인 적수이다.이에 대해 그들자신이 숨기지 않고있다.2000년부터 미국방성이 발표하고있는 중국의 군사동향에 대한 보고서는 그 단적실례이다.보고서는 중국의 국방예산이 두자리수이상으로 늘어나고 최첨단무기개발과 도입에 많은 자금이 돌려지고있다는것,중국인민해방군이 싸이버전을 강화하면서 미국정부와 기업을 노린 싸이버공격에 관여했다는것 등을 렬거하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안보에 위협으로 되고있다고 주장하였다.

하나의 사건을 더 보자.

몇해전 미국의 최대군수독점체인 《록키드 마틴》회사가 해킹당하는 일이 터졌다.스텔스기능을 갖춘 다음세대 전투기 《F-35》,최신예《F-22 랩터》,《F-16》전투기,핵미싸일 등 주요무기들을 대량생산하며 《초대국》의 군사력을 떠받든다고 하는 이 회사가 싸이버공격을 당하자 미국은 중국을 걸고들었다.중국이 최근시기 스텔스폭격기에 이어 스텔스기능을 갖춘 다음세대 공격형무장직승기를 생산하여 전개할 정도로 스텔스기술이 급속히 발전하고있는데 이것이 자국에 대한 해킹에서 얻어진 결과물이라는것이 미국의 론거였다.

국제적으로 스텔스기술을 전투기에 적용하는 나라는 적지 않다.로씨야는 플라즈마스텔스기술을 전투기에 도입한것으로 알려져있다.일본도 스텔스비행기를 개발하고있는 상태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유독 중국의 스텔스기술발전을 문제시하며 《록키드 마틴》회사가 해킹당한 사건과 련결시키는것은 저들의 지배주의적이며 패권주의적인 대아시아정책이 날로 강화되는 중국의 영향력에 의해 좌절될수 있다는 위기감의 반영이라고 분석가들은 일치하게 주장하였다.

현실적으로 미국은 중국이 자국의 위성체계를 혼란시키는 장본인이라느니,이것이 전시상황에서 우주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미군의 작전능력을 순간에 마비시키는 비극을 초래할수 있다느니 뭐니 하며 한두번만 아부재기를 치지 않았다.지난해 미국방성이 싸이버공간에서 중국에 직접 대응하며 미태평양사령부를 지키는것을 기본임무로 한 특별부대까지 창설한것은 중미사이의 대결이 이미 싸이버공간에서까지 격렬해지고있다는것을 말해준다.요즘 미국이 중국의 싸이버공격이 다른 서방나라들을 대상으로 감행되고있다고 위험성을 류포시키는 리면에도 반중국여론전의 폭을 넓혀 위협공갈의 도수를 높이자는데 목적이 있다.

그런것만큼 중국의 반발이 이만저만 드세차지 않다.중국은 스노우덴사건을 다시금 상기시키면서 세상이 다 아는 해커제국인 미국이 자기를 피해자로 위장하는 처사야말로 도적이 매를 드는 격이라고 단죄하였다.한편 중국은 싸이버공격이 세계적인 우려거리로서 그를 방지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호상존중과 신뢰의 기초우에서 협조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고있다.

2011년에 《정보안전국제행위준칙》초안을 유엔에 제출한 중국은 인터네트관리를 위한 다무적협상을 적극 추진함으로써 미국이 어떻게 하나 유지하려고 하는 인터네트관리의 독점적지위에 구멍을 내려 하고있다.

보이지 않는 싸이버공간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중미사이의 비난전은 상반되는 전략적리해관계에 뿌리를 둔것으로 하여 갈수록 첨예화될것이다.

그날은 평화로운 일요일이였다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난 그때로부터 어언 64년의 세월이 흘렀다.이제는 이 땅의 새 세대들에게 그때의 사연을 전해줄 전쟁의 참화를 직접 체험한 세대들도 얼마 남지 않았다.하지만 세월이 아무리 많이 흘렀다 해도,세대가 바뀌고 또 바뀌여도 력사는 이 땅의 평화를 파괴한 미제와 남조선괴뢰들의 침략적죄악을 낱낱이 고발하고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미제국주의자들이 리승만역도를 사촉하여 조선전쟁을 일으킬 때에도 공화국북반부를 단숨에 삼켜보려고 불의에 침공하였습니다.》

1950년 6월 25일,그날은 평화로운 일요일이였다.

1950년 6월 24일부 《로동신문》 1면에는 《로동법령실시 4주년》이라는 제목의 사설이 게재되였다.

사설은 김일성장군님의 령도밑에 로동법령이 실시된 후 4년만에 공화국북반부 로동자들의 물질문화생활이 공화국정부의 일상적인 배려에 의하여 비약적으로 향상되고있다고 전하였다.사설은 또한 모든 근로자들이 이미 쟁취한 로동법령의 성과를 더욱 공고히 하여야 할것이며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위하여,남북반부 로동계급과 전체 인민들이 행복한 생활을 누릴수 있게 하기 위하여 2개년경제계획의 기간단축 및 초과완수의 증산투쟁을 힘있게 벌릴것을 호소하였다.

3면에 실린 보도기사 《해마다 확장되는 북반부 각 정휴양소시설》에서는 우리 공화국의 로동자,기술자,사무원들이 해금강,삼방,주을(당시) 등 공화국북반부 각지의 여러 명승지에 설치된 정양소와 휴양소들에서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있는데 대하여 보도하면서 석왕사,해금강,묘향산 등 16개소에 근로자들을 위한 정휴양소가 개설되여 수만명의 수용능력을 갖춘데 대하여 전하였다.

보다싶이 공장들마다에선 창조의 마치소리 높이 울리고 농촌에서는 농민들이 푸르싱싱한 벼포기들을 바라보며 흘러내리는 땀마저도 기쁨에 넘쳐 내리닦던 이 땅이였다.자기들을 나라의 주인으로 내세워주신 김일성장군님의 은덕에 보답하고저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일하던 인민들이였다.

하지만 미제와 그 앞잡이들은 새 생활이 약동하던 평화로운 조국강토에 전쟁의 참화를 들씌워 인민들의 행복한 삶을 깡그리 짓밟았다.그것도 평화로운 일요일의 그 새벽에.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아직도 단잠에 들어 꿈에 도취된 아이들의 입가에 행복의 웃음기가 어려있었을 그 시각이였다.일요일의 휴식계획을 밤새도록 토론하며 래일의 희망을 속삭였을 청춘남녀들,새벽잠이 없다는 로인들마저도 잠결에 미처 정신차릴새 없었을 그 시간이였다.

평온했던 일요일의 그 새벽에 미제와 남조선괴뢰들은 한없이 순박하고 선량한 인민의 기쁨과 꿈을 짓밟고 그들의 머리우에 전쟁의 참화를 들씌웠다.이날 이른새벽 남조선괴뢰군은 미리 준비된 침략전쟁도발계획에 따라 미제침략군 고문들의 지휘밑에 38°선전역에 걸쳐 우리 공화국에 대한 불의의 무력침공을 감행하였다.

전선서부의 옹진-토성일대에서는 괴뢰군 1전투사령부소속 부대들이 2개 제대의 작전대형을 편성하고 포병화력의 지원밑에 침공하여왔다.그중 태탄과 벽성의 2개 방향으로 괴뢰수도사단 17련대,개성지역에서는 괴뢰1보병사단이 연안-평천,개성-금천,장단-구화리의 3개 방향에서 침공을 개시하였다.련천지역에서는 괴뢰7보병사단이 2개 제대의 전투서렬을 편성하고 동두천리-련천,포천-김화의 2개 방향에서 침공해들어왔다.

전선동부에서는 괴뢰군 2전투사령부소속 부대들이 1개 제대의 작전대형을 편성하고 침공해들어왔다.괴뢰6보병사단은 2개 제대의 전투서렬을 편성하고 춘천-화천,어론리-양구의 2개 방향에서 침공하여 화천방향으로 침입하였으며 동해안에서는 소치-양양,서림리-양양,북분리-양양의 3개 방향에서 괴뢰8보병사단이 쳐들어왔다.공화국북반부에 대한 무력침공을 개시한 적들은 해주,금천,철원 및 그밖의 여러 방향들에서 38°선이북지역으로 1~2㎞까지 쳐들어왔다.

적들의 불의의 침공에 대처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무성은 공화국경비대에 38°선이북지역으로 침입한 적들을 격퇴할것을 명령하였다.공화국경비대는 모든 진지와 초소들에서 적들과 대항하여 가렬한 전투를 벌리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의 위임에 따라 공화국내무성은 보도를 발표하여 리승만괴뢰도당에게 모험적인 전쟁행위를 즉시 중지할것을 강력히 요구하면서 만약 38°선이북지역에 대한 모험적전쟁행위를 즉시 중지하지 않는다면 적들을 제압하기 위하여 결정적대책을 취하게 될것이며 동시에 이 모험적전쟁행위로 말미암아 발생되는 엄중한 결과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지게 되리라는것을 엄중히 경고하였다.

하지만 우리 공화국정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미제와 남조선괴뢰들은 전쟁의 불길을 더욱 확대하는 길로 나갔다.이로 말미암아 이 땅의 평화는 우리의 정당한 요구나 경고로써는 더는 지킬수 없는 엄중한 사태에 직면하게 되였다.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6월 25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비상회의를 여시고 조국에 조성된 엄중한 사태에 대처하여 적들에게 반공격을 가할 단호한 대책을 취하시였으며 공화국경비대와 인민군대가 적들의 무력침공을 저지시키고 즉시 반공격에로 넘어갈것을 명령하시였다.

치렬한 방어전을 전개하여 적들의 침공을 좌절시킨 공화국경비대는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을 높이 받들고 인민군부대들과의 협동작전밑에 38°선이북지역에 침입한 적들을 완전히 격퇴하고 원쑤들을 무찌르며 반공격에로 넘어갔다.

미제와 그 앞잡이들에 의하여 강요된 이 전쟁은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존엄을 고수하느냐,아니면 미제의 식민지노예가 되느냐 하는 판가리싸움이였으며 가장 준엄한 시련이였다.

하지만 평화로운 일요일에 시작된 이 전쟁이 그날로부터 삶과 죽음,피와 눈물,사랑과 증오로 이어지는 1 129일간이나 지속될줄은 그때까지는 아직 그 누구도 알수 없었다.

전선에서 만나자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력사적인 방송연설을 높이 받들고 나라의 이르는 곳마다에서 엄숙히 열리였던 전선탄원모임을 담은 사진자료들도 전시되여있다.평화로운 조국강산에 전쟁의 검은구름을 몰아온 철천지원쑤 미제를 백배,천배로 복수할것을 호소하는 열정적인 목소리와 힘찬 화답소리가 금시 울려나올것만 같은 한장한장의 화면들.

사진속에 애어린 청년들의 모습도 있다.

그들의 앞에는 생사를 판가름하는 격전장,그러나 추호의 동요나 주저도 모르는 강인한 모습들이다.

그들중의 한 처녀는 비발치는 탄우속을 뚫고 끊어진 통신선을 찾아 몸으로 잇던 월미도의 영옥이가 아닌지.

또 그들중 한 나어린 청년이 단신으로 고지를 지켜낸 불사신같은 그 영웅전사는 아닌지.그들은 조국에 시련이 닥쳐왔던 그때 전선행렬차에 몸을 실으며 이런 말을 주고받았었다.

《전선에서 만나자!》

그것은 요구도 호소도 아니였다.시련이 없고 고난이 없을 때 그것은 있을수 없는 말이였다.가장 어려운 순간에,사선을 헤쳐야 할 가장 엄숙한 시각에 조국의 진정한 아들딸들사이에만 오갈수 있는 심장의 약속이 바로 《전선에서 만나자!》라는 웨침이다.

문득 취재길에서 만났던 로병들,열병광장을 보무당당히 행진해가던 조국해방전쟁로병종대가 눈앞을 꽉 채우며 흐른다.

나이를 두살이나 불구며 입대했던 전사의 머리에도,련대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꼬마병사의 머리에도 백발이 짙다.

이 땅에 전승의 축포가 오른 때로부터 60여년,

전쟁로병세대와 우리 세대들사이에는 어언 인간의 한생과 맞먹는 세월의 격차가 흐르고있다.

우리는 전쟁을 영화나 책으로나 보아왔고 유적과 유물로만 눈에 새겨온 세대.

그러나 1950년대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시공간적인 개념으로는 가늠할수도 없는 불굴의 조국수호정신이 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조국보위는 청년들을 비롯한 전체 인민들의 신성한 의무입니다.》

주체82(1993)년 3월 15일부 《로동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보도가 실리였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을 받들고 전국,전민,전군이 준전시상태에 들어간 오늘 도처에서 청년들이 앞을 다투어 인민군대입대를 열렬히 탄원해나서고있다.…

새 세대 청년들의 이 비등된 기세와 멸적의 투지로 하여 준전시상태에 들어간 오늘의 분위기는 전쟁전야를 방불케 하고있다.…》

조국앞에 엄중한 정세가 닥쳐올 때마다 이 땅의 이르는 곳마다에서는 수십년전 그때처럼 인민군대입대를 탄원하는 모임이 열리였고 수많은 청년들이 《전선에서 만나자!》고 웨치며 멸적의 기세높이 전선행렬차에 몸을 실었다.

전승절경축행사장에서 만났던 한 로병은 청년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는 내 나이 80을 훨씬 넘겼지만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나도 동무들과 같이 총을 메고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을 받는 대오에 설것이요.》

그렇다.전쟁은 끝나지 않았다.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늙음과 젊음은 있어도 수호자의 사명감과 원쑤에 대한 증오는 변함이 없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6.25를 뇌리에 새기고 사는 병사들이다.

《전선에서 만나자!》,60여년전의 그 웨침소리는 세대를 이어 오늘도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 간직되여있으며 선렬들의 피가 스민 조국강산에 끝없이 메아리치고있다.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 끝없이 흐르는 사람들의 물결은 다름아닌 그 심장의 언약으로 움직이는 철의 대오,포화에 끓는 강도,험한 진펄길도 넘고 헤쳐나갈 불패의 대오인것이다.

[사설] 전당이 선전원,선동원이 되자

혁명적인 사상공세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있다.어느 부문,어느 단위에서나 사상사업을 확고히 앞세우고 선전선동의 집중포화로 전진의 돌파구를 열어나가는 기풍이 확립되여 사상의 위력이 최대로 분출되고있다.

《전당이 선전원,선동원이 되자!》,이것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일찌기 40년전에 제시하신 전투적구호이다.

사상을 혁명과 건설의 가장 위력한 무기,유일한 무기로 틀어쥐고나가는 우리 당에 있어서 이 구호는 오늘도 앞으로도 높이 들고나가야 할 전진과 혁신,비약과 승리의 고무적기치로 되고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전당이 선전원,선동원이 되고 모든 일군들이 다 정치사업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사상사업은 전당이 발동되여야 할 사업이다.각이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여 전국적범위에서 진행되고 한시도 중단없이 내밀어야 할 사상사업을 전임일군들의 힘만으로는 원만히 진행할수 없다.

전당이 선전원,선동원이 된다는것은 당일군이건 행정경제일군이건,중앙의 일군이건 아래단위의 초급일군이건 모든 일군들과 평당원들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다 사상교양사업,정치사업을 하여야 한다는것이다.여기에는 인민대중의 혁명적열의와 창조적적극성에 의하여 발전하는 사회주의사회의 본성적요구가 담겨져있으며 하나가 열,열이 백,백이 천을 교양하고 불러일으켜 혁명과 건설을 전진시켜나가는 우리 당의 사상사업선행의 원칙이 구현되여있다.

강성국가건설의 최후승리를 위한 총진군을 힘있게 다그쳐나가고있는 오늘날 사상사업의 중요성과 의의는 더욱더 뚜렷이 부각되고있다.반제대결전에서의 승리도,모든 전선에서의 새로운 비약의 불바람도 당의 두리에 사상의지적으로 굳게 뭉친 천만군민의 정신력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다.지금이야말로 전당이 사상사업에 떨쳐나서고 집중적인 선전선동공세로 심심산골의 마지막 한사람까지도 오직 우리 당의 사상으로 숨쉬게 하고 천만군민이 애국적헌신성을 남김없이 발휘해나가도록 하여야 할 때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조선로동당 제8차 사상일군대회에서 가르치신바와 같이 사상전선이 들끓는것만큼 대중의 정신력이 폭발하며 천만군민이 일떠선것만큼 혁명이 전진한다.

우리는 당의 의도대로 전당이 선전원,선동원이 되여 혁명적인 사상공세를 맹렬하게 벌려나감으로써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를 힘있게 다그치며 선군조선의 새로운 번영기를 열어나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모든 일군들이 사상교양사업,정치사업을 중요한 혁명임무로 여기고 이 사업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서야 한다.

일군들은 우리 당의 핵심력량이며 혁명의 지휘성원들이다.대중의 정신력이 어떻게 발동되고 우리 당의 결심과 구상이 어떤 결실을 맺는가 하는것은 전적으로 일군들의 역할에 달려있다.

일군들은 오늘의 총진군에서 진격의 나팔수가 되고 능숙한 정치활동가가 되여야 한다.정치,경제,문화를 비롯한 모든 부문의 일군들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정치사업,사람과의 사업을 자기에게 맡겨진 중요한 혁명임무로,혁명과업수행의 첫 공정으로 삼고 정치사업을 힘있게 벌려야 한다.사상교양사업,선전선동사업을 하지 않고서는 일군으로서의 본분을 다할수 없고 당이 맡겨주는 그 어떤 과업도 성과적으로 수행할수 없다는 확고한 관점을 지녀야 한다.사업과 생활의 모든 계기와 공정이 사람들을 교양하고 대중의 정신력을 불러일으키는 과정으로 되게 하여야 한다.특히 도,시,군당책임비서들과 모든 부문,모든 단위의 당책임일군들이 사상사업을 직접 틀어쥐고 품을 들여 진지하게 해나가야 한다.

1970년대의 일군들처럼 항일유격대식배낭을 메고 군중속에 들어가는것을 생활화,습성화하여야 한다.

당의 기초축성시기 일군들은 사업의욕과 열의가 대단히 높았으며 무슨 일이나 군중속에 들어가 작전하고 실천하였다.새로운 당정책이 제시되면 즉시에 당원들과 근로자들에게 해설선전하고 그 관철을 위한 투쟁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는것이 1970년대 일군들의 체질화된 사업기풍이였다.바로 그렇기때문에 그들은 사업권위도 있었고 군중의 신망도 높았다.

들끓는 현실은 선전선동의 활무대이며 광범한 대중속에 문제해결의 묘술이 있고 기적창조의 원천이 있다.모든 일군들은 당정책을 한사람이라도 더 알게 하며 맡은 단위에서 집단적혁신이 일어나는데서 삶의 보람과 긍지를 찾아야 한다.수수한 배낭을 메고 군중속으로 들어가는것이 어길수 없는 생활처럼 몸에 푹 밴 일군,당의 목소리를 제때에 알려주기 위해 하루밤에도 수십리길을 걷는 당정책의 적극적인 선전자,교양자가 되여야 한다.

1970년대의 일군들은 언제나 한몸을 내대여 당에서 준 과업을 결사관철하였으며 그들의 이러한 이신작칙은 대중을 격동시키고 불러일으키는데서 커다란 작용을 하였다.모든 일군들은 왕성한 투지와 정열에 넘쳐 오늘의 총진군의 앞채를 메고 진격의 돌파구를 열어나가야 한다.패배주의와 보신주의,요령주의,형식주의와 같은 그릇된 사상관점과 일본새를 철저히 극복하고 뼈심을 들여 당정책관철을 위한 투쟁을 이끌어나가야 한다.우리 일군들은 손에 기름을 묻히고 신발에 흙을 묻히면서 대중의 앞장에서 내달리는것을 떳떳하게,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

전당의 모든 당원들이 선전원이 되고 선동원이 되여야 한다.

조선로동당원은 우리 당의 혁명위업을 앞장에서 실현해나가는 로동계급을 비롯한 근로인민대중의 선봉투사이다.수백만 당원들이 대중을 교양하고 이끌어나갈 때 우리 혁명대오의 일심단결이 백방으로 강화되고 당의 위업이 활력에 넘쳐 전진할수 있다.

모든 당원들은 우리 당정책의 열렬한 지지자,옹호자로서뿐아니라 그 관철의 기수로서의 책임과 본분을 다해나가야 한다.당원들의 선봉적역할은 말없는 정치사업이고 힘있는 선전선동이다.당원들속에서 당의 방침을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이고 무조건성의 원칙에서 끝까지 관철하는 혁명적기풍을 철저히 확립하여야 한다.어려운 과업이 제기될 때마다 남먼저 어깨를 들이밀고 대중의 심장에 혁명열,투쟁열을 북돋아주는 불씨가 되고 전위투사가 되여야 한다.우리 당원들이 있는 그 어디에서나 사회주의본태가 살아맥박치고 자력갱생과 집단적혁신의 불길이 세차게 나래치게 하여야 한다.

일군들과 당원들이 선전원,선동원의 역할을 다해나가자면 정치실무적자질을 높이는것이 중요하다.

서로 다른 장소와 시간에 서로 다른 정황속에서 진행되는 사상교양사업,선전선동사업은 높은 자질과 능력을 요구한다.세상에 생활경위도 같고 성격과 취미도 같으며 준비정도와 지식수준도 똑같은 사람이란 있을수 없다.사람들을 교양하고 불러일으키자면 연구도 많이 하고 사색도 깊이하여야 하며 사상리론적으로나 정신도덕적으로 본보기가 되여야 한다.

모든 일군들과 당원들은 발전하는 현실에 자기의 수준을 따라세우지 않고서는 당이 맡겨준 영예로운 임무를 감당해나갈수 없다는것을 명심하고 정치실무적자질을 높이기 위하여 피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위대한 대원수님들의 불후의 고전적로작들과 당문헌들,당정책에 대한 학습에 선차적인 힘을 넣어 누구나 당의 사상으로 철저히 무장하여야 한다.언제 어떤 정황에서나 당정책을 능숙하게,대중의 심금을 울릴수 있게 해설선전할수 있도록 자신들을 준비해나가야 한다.자기 부문에 대한 전문지식과 현대과학기술을 비롯하여 폭넓고 다방면적인 지식을 습득하여야 한다.높은 문화적소양과 뜨거운 인정미,고상한 품성을 지니기 위하여 부단히 자신을 수양하고 단련해나가야 한다.스스로 제강도 쓰고 군중속에 들어가 직접 선전도 하고 선동도 하면서 경험을 쌓고 수준을 높여나가야 한다.

당책임일군들은 아래일군들을 자주 만나 교양하고 그들을 끼고다니면서 실지 사업을 통하여 배워주어야 한다.특히 늘 군중속에 들어가 활동하는 당선전일군들과 기층단위의 당일군들의 수준을 높이는데 큰 힘을 넣어야 한다.

전당이 선전원,선동원이 되여 혁명적인 사상공세의 화력을 최대로 높여나갈 때 강성국가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비약의 불바람이 일어나고 보다 큰 승리가 이룩되게 될것이다.

당결정은 우리의 생명이다

선군혁명의 전위투사들인 우리 당원들은 당결정을 어떤 투철한 자세와 립장에서 집행해나가야 하는가.

평안북도인민병원 고려치료부문 당세포 당원들의 투쟁은 여기에 생동한 대답을 주고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당에 대한 충실성은 말로써가 아니라 당의 결정과 지시를 관철하는 실천투쟁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큰비가 올것이 예견된다는 일기예보에 접한 당세포비서 김명철동무가 한창 건설중에 있는 고려치료부문병동으로 향하였다.부원장 리경희동무가 건설에 필요한 목재해결을 위해 먼 출장길을 떠날 차비를 하고있었다.비구름이 서서히 몰려드는것을 보며 당세포비서는 말하였다.

《좀 후에 떠나는것이 어떻습니까.폭우가 쏟아질텐데…차라리 제가 떠나겠습니다.》

당원들도 막아나섰다.

그러나 부원장은 화물자동차에 몸을 실으며 말하였다.

《제가 가야 합니다.뜻깊은 10월까지 병동을 완성하자는 당세포결정을 채택하는데 저도 손을 들었습니다.목재때문에 그 집행이 늦어지면 되겠습니까.…》

비발속으로 멀어져가는 화물자동차를 바라보는 당원들의 가슴은 뜨거워졌다.

그는 한가정의 주부이고 자식을 거느린 어머니이다.이제는 나이도 많다.그러나 험한 길을 서슴없이 떠나간다.부원장이라는 직무에 앞서 당결정을 채택한 당세포의 한 당원이라는 높은 자각에서 우러나온 용단이다.…

사실 이곳 당세포에서 자체의 힘으로 병동을 건설하자는 높은 목표를 내걸고 투쟁하게 된데는 사연이 있다.

어버이장군님의 유훈에 따라 병원에 고려치료부문이 새로 생기면서 신의주시 본부지구종합진료소에서 소장으로 사업하던 리경희동무가 이 부문을 맡아보는 부원장으로 임명되여왔다.그때는 빈터나 다름없었다.

리경희동무를 비롯한 당세포 당원들은 한자리에 모여앉았다.자체의 힘으로 병동을 건설하여 어버이장군님의 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는 부원장의 제기는 당원들의 찬동을 받았다.초급당위원회의 적극적인 지지밑에 곧 당세포에서는 당결정이 채택되였다.

낡은 건물의 지붕해체작업으로부터 시작된 병동건설은 본격적인 단계에 들어섰다.당원들과 종업원들은 낮과 밤이 따로 없는 전투를 벌렸다.

건물의 골조공사가 끝나갈무렵 난관이 조성되였다.자재가 부족하여 지붕공사가 일시 중단되게 되였던것이다.기와도 엄청나게 모자랐고 더우기 긴장한것은 목재였다.지붕공사를 하루빨리 끝내지 못하면 이미 해놓은 일들이 수포로 돌아갈수 있었다.장마철이 박두했던것이다.이것을 알기에 리경희동무는 기어코 비발속을 뚫고 길을 떠났던것이다.…

당세포비서는 당원들을 불러일으켜 비막이대책을 세우고 기와생산을 계속 힘있게 내밀었다.

이곳 당세포당원들과 종업원들의 투쟁모습은 병원의 모든 성원들을 감동시켰다.힘있는 전투가 벌어지는 속에 기와생산이 성과적으로 끝났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리경희동무가 왕복 수백리길을 달려 수많은 목재를 싣고 도착하였다.차에서 내리는 리경희동무의 모습은 말이 아니였다.진탕이 발린 옷,며칠사이에 몹시 축간 얼굴,피곤이 몰려 충혈진 두눈,부르튼 입술…

휴식을 하라며 당원들이 그의 등을 떠밀었다.그러나 리경희동무는 당세포결정을 집행하기 전에는 쉴 권리도,쓰러질 권리도 없다고 하면서 작업장으로 향하였다.

지붕공사는 짧은 기간에 끝났다.이것은 시작에 불과한것이였다.내부공사 역시 간단치 않았다.한편으로 치료사업을 하면서 다른편으로 건설을 다그치자니 다들 어지간히 힘이 진하였다.일부 사람들속에서는 맥을 놓는 기색이 나타났다.

(우리가 너무 욕망을 앞세운것이 아닌가? 과연 자기 날자를 보장할수 있을가?…)

순간이나마 이런 생각에 잠겨있던 리경희동무는 소스라쳐 놀랐다.그는 자신을 다잡으며 당세포비서를 찾아갔다.

나약해졌던 자신을 뉘우치며 속마음을 터놓는 그의 이야기에 당세포비서는 뜨거운 생각을 달래지 못하였다.

잠시후 당원들앞에 나선 리경희동무는 자신을 호되게 꾸짖어달라고 하면서 염전의 세 당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예술영화 《심장에 남는 사람》 제1부 《언약》에서 나오는 감동깊은 장면이 모두의 눈앞에 어려왔다.

전쟁이 갓 끝난 때 어느 한 염전에서 3명의 당원들이 첫 당세포총회를 열고 당면한 소금생산을 위한 결정서를 채택한다.처녀당원 인복이 전쟁전당세포결정서를 꺼내면서 그때 결정한 500t을 그대로 하자고 한다.너무도 엄청난 수자앞에서 당세포비서는 그건 당원들이 다 살아있을 때 결정한것이라고 한다.눈물을 뿌리며 하는 인복의 말,《당원들은 죽었어도 세포결정서는 살아있어요.전사한 당원들이 이 회의에 참가하지 못했다구 당결정을 흥정하자는거예요?》

3명의 당원들은 전쟁전당세포결정을 관철하기 위한 필사의 투쟁을 벌린다.기승을 부리는 벼락,뚝을 무너뜨리며 사정없이 밀려드는 물속에서 맨손으로 소금 한t한t을 쌓아가는 당원들,계획했던 소금생산이 끝나던 날 소금더미를 그러안고 숨지는 인복…

당원들은 눈물을 머금고 심장의 맹세를 다지였다.

-세월은 흘렀어도 1950년대 당원들의 넋은 그대로 이어져야 한다.

-당결정은 우리의 생명이다.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살며 투쟁하자!

이런 불타는 맹세를 안고 일떠선 당원들의 투쟁에 의하여 내부미장작업이 빠른 시일내에 끝나게 되였다.침구치료과장 박철혁,고려내과 부과장 한기덕동무들을 비롯한 당원들은 맡은 의사실꾸리기를 남먼저 끝내고 치료실꾸리기를 도와나섰다.당원들의 모범을 따라 종업원들이 한결같이 떨쳐나섰고 가족들도 적극 도와나섰다.

내부공사가 본격화되는데 맞게 리경희동무는 입원실과 세목장을 환자들이 리용하기 편리하게 꾸리는데 달라붙었다.입원실난방체계를 특색있게 하고 항상 더운물을 쓸수 있게 세목장설계도 새롭게 하면서 일판을 크게 벌려나갔다.

성공의 날은 왔다.20명 남짓한 인원으로 연건평 450㎡ 되는 2층건물을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훌륭히 일떠세우고 당창건기념일을 뜻깊게 맞이하게 되였다.의사실,간호원실,치료실,입원실,학습실,세목장,창고 등으로 이루어진 고려치료부문병동을 특색있게 건설하고 치료설비도 그쯘하게 갖춘 이 단위의 경험은 병원적인 보여주기사업을 통하여 널리 일반화되였다.

그후 당세포에서는 3대혁명붉은기쟁취를 위한 결의목표를 높이 세우고 그것을 어김없이 실현하는 과정을 통하여 당결정집행에서 결사관철의 정신이 세차게 나래치도록 하였다.

이곳 당세포당원들이 찍어온 헌신의 자욱자욱은 우리 당원들의 심장을 두드리며 이렇게 호소하고있다.

당세포결정은 생명이다!

[혁명일화] 대회장에서 지어주신 아기이름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 지난 태양절에 조선인민군 제1차 비행사대회의 페회를 선언하시였을 때였다.

비행사들은 영광의 하루가 다 지나간 아쉬움을 안고 열광의 환호를 올리였다.

그런데 그이께서는 주석단을 내리지 않으시고 다시 자리에 앉으시는것이였다.

또 무슨 말씀을 하실가,혹시 긴급전투명령을 하달하시려는것이 아닐가?

비행사들은 긴장한 눈빛으로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를 우러렀다.전국의 령공을 통채로 개방하고 전체 비행사들의 대회합을 하는 뜻깊은 그 시각 미제와 남조선괴뢰들은 하나의 전쟁을 치르고도 남을 비행기들을 동원하여 침략전쟁의 불구름을 몰아오고있었다.

하지만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놈들의 전쟁연습쯤은 쉬파리떼가 돌아치는것만큼도 여기지 않으시는듯 환한 미소를 담으신채 동무들과 한가지 더 의논할것이 있다고 다정히 말씀하시는것이였다.그러시면서 어느 한 비행부대 부부비행사의 아기이름을 짓는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하시였다.

대회참가자들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당사자들이 받은 충격은 더욱 컸다.최고사령관동지를 우러르며 그들은 지나간 일들을 감격속에 되새기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김정은동지는 령도자로서 지녀야 할 특출한 실력과 풍모를 갖추고있으며 인민들로부터 전적인 지지와 신뢰를 받고있습니다.》

한달전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부대에 오시였을 때 아기의 어머니인 녀성비행사는 산후휴가중이였다.

그이께서 오신줄도 모르고 집에서 아기의 요람을 지키고있던 그를 부대일군이 급히 찾아왔다.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부부비행사들을 다 만나보고싶다고 하시였다는 일군의 말에 그는 감격을 금할수가 없었다.

이렇게 그는 남편과 나란히 영광의 자리에 서게 되였다.

가사보다 국사를 더 귀중히 여기고 조국수호의 항로를 함께 날고있는 부부비행사들의 마음은 정말 소중하다고 하시며 뜨거운 정을 부어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앞에서 어려움마저 잊은 녀성비행사는 갓 태여난 아기의 이름을 지어주실것을 바라는 청을 올리였다.

그러자 우리 원수님께서는 환히 웃으시였다.그이께서는 아기의 이름이야 잘 달아야지라고 하시며 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하겠다고 하시였다.

녀성비행사는 푸른 하늘을 통채로 안은듯이 너무 기뻐 어쩔줄 몰라하였다.

하지만 매일같이 전해지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현지지도소식을 들으며 분망하신 그이께 부담을 끼쳐드린 자신을 자책하지 않을수 없었다.

얼마후 그는 급병으로 중태에 빠진 아기를 안고 옥류아동병원에 입원하였다.

어느덧 아기가 완쾌되기 시작하였는데 뜻밖에도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병원에 오시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녀성비행사는 가슴이 울렁이였다.병원의 아래층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울고웃으며 그이께 안겨들고있었다.그도 경애하는 원수님께로 한달음에 달려가고싶었다.하지만 원수님의 품에 서로 안기겠다고 붐비는 사람들이 그의 앞을 꽉 메우고있었다.

이윽고 현지지도를 마치고 떠나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을 눈물속에 바래워드리고있는데 병원의 일군이 그에게로 다가왔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동무네 부부에 대한 말씀을 하시였소.》

《예?》

꿈에도 상상 못한 일이였다.

병원일군들을 통하여 그가 아기와 함께 입원한 사실을 아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비행부대를 찾으시였던 일을 정깊이 회억하시였다.그러시면서 아기의 이름에 대하여 늘 생각하고있지만 신통한 이름을 고르지 못하여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있다고 하시면서 꼭 좋은 이름을 지어주시겠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마디마디 뜨거운 정이 넘치는 그이의 말씀을 전해들으며 녀성비행사는 눈물을 쏟았다.

조국통일위업실현과 강성국가건설의 모든 중하를 한몸에 안으시고 불면불휴의 강행군길을 이어가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웅대한 사색속에 갓난아기이름을 짓는것과 같이 소소한 일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있다고 생각하니 녀성비행사는 그이께 무랍없는 청을 드린 자신이 민망스럽기 그지없었다.

부부비행사의 생각은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자기들의 아기이름때문에 더는 마음쓰시지 말았으면 하는데로 흘렀다.그러면서도 아기의 이름을 선뜻 지을수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 원수님께서는 한시도 그 일을 잊지 않고계시였다.

그이께서는 자애로운 시선으로 대회장을 둘러보시며 혹시 그사이 아기의 이름을 짓지 않았는가고 물으시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녀성비행사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아직 짓지 않았다고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우렁우렁하신 음성이 대회장에 울려퍼졌다.

아기의 이름을 오래동안 생각해보았습니다.당을 따라 변함없이 충정의 길을 가라는 의미에서 《충도》라고 하는것이 어떻습니까?

순간 비행사들은 모두 떨쳐일어났다.우렁찬 환호성이 장내를 진감하였다.

부부비행사는 더는 격정을 누르지 못한채 주석단으로 달려올라갔다.

오늘의 이 영광을 잊지 않고 온 가족이 숨이 지는 마지막순간까지 하늘길을 날으는 충정의 붉은 매가 되겠다고 눈물속에 맹세다지는 부부비행사를 대견하게 바라보시던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아들을 잘 키우라고 따뜻이 당부하시였다.

한없이 거창한 령도자의 사색,더없이 중대한 최고사령관의 구상속에 또 하나의 중대사로 간직되여있은 평범한 비행사가정의 아기이름,천만전사들을 모두 한품에 안으시고 그들의 작은 소망도 하늘같은 정을 기울여 기어이 꽃피워주시는 위대한 어버이께서 몸소 지어주신 뜻깊은 그 이름을 비행사들은 목메여 불렀다.

《충도》!

오늘 아기의 그 이름은 비행사들뿐아니라 온 나라 천만군민의 가슴속에 위대한 대원수님들을 따라 걸어온 선군혁명의 천만리길을 경애하는 원수님 따라 충정과 위훈으로 끝없이 이어나갈 신념과 의지의 대명사로 간직되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