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보석이 땅속에 묻혀있어도 빛을 잃지 않는것처럼 애국의 마음은 그것이 비록 크지 않아도 귀중한것이며 언제나 아름다운것입니다.》
씨앗은 그 어디에 뿌리를 박건 태양을 향하여 가지를 뻗고 꽃을 피우는 법이다.만리이역땅 외진 곳에서 태양의 빛발이 찬란한 사회주의조국을 심장속에 안고 살며 수십년세월 변함없이 애국충정의 자욱을 새겨가는 한 해외공민이 있다.로씨야련방 깜챠뜨까변강 옐리조보시에서 살고있는 리채선녀성,심산속의 도라지꽃처럼 조용히 피여있어도 청신한 향기를 풍기는 그의 애국의 삶은 참으로 순결하고 아름답다.
지금으로부터 40여년전인 주체61(1972)년 초봄 어느날 평양으로부터 수만리 떨어져있는 쏘련(당시)의 깜챠뜨까변강 옐리조보시의 한 집에서는 밤깊도록 불이 꺼질줄 몰랐다.저 멀리 조국땅에서는 시내물소리에 겨울잠을 깬 버들개지들이 통통하게 살쪄가는 봄계절이 한창이련만 동토대와 가까운 이곳에서는 여전히 엄혹한 추위가 기승을 부리고있었다.하지만 절세위인에 대한 다함없는 그리움안고 축원의 송시를 엮어가는 리채선녀성의 가슴은 한껏 달아있었다.
《꿈결에도 뵙고싶은 어버이수령님!…》
탄생 60돐을 맞으시는 어버이수령님께 삼가 드리는 편지의 첫머리를 쓰고난 그는 저도모르게 벽면에 모신 한상의 사진을 숭엄히 우러렀다.
혁명의 성산 백두산마루에 근엄하신 모습으로 서계시는 민족의 어버이 위대한 수령님,그이의 곁에 정중한 자세로 서있는 조국의 한 일군,
어제를 보며 오늘과 래일을 생각하게 하는것이 사진이라고 하였다.
이 뜻깊은 사진이 그의 집에 모셔지게 된데는 사연이 있었다.조국을 방문하였던 리채선녀성은 당시 공화국의 내각부수상으로 사업하던 리주연동지의 집에서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있었다.(리주연동지와 리채선녀성의 아버지는 사촌형제간으로서 일제식민지통치시기 한마을에서 이웃하여 살았었다.)그러던 그가 뜻밖의 영광을 받아안게 될줄 어찌 알았으랴.
어느날 어버이수령님께서 리주연동지와 사업을 토의하시던중 조카가 조국을 찾아왔다는것을 아시고 이역땅에서 고생하는 조카인데 잘 돌봐주라고,그 어디에 가있어도 조국을 잊지 않고 살도록 하라고 간곡히 이르시였다는것이 아닌가.그 소식을 전해듣는 순간 리채선녀성은 높뛰는 심장의 박동을 누를길 없었다.나라일에 그토록 바쁘신 우리 수령님께서 평범한 해외동포에 불과한 내가 뭐라고…
예로부터 넋을 준 사람은 피를 준 사람의 자격을 가진다고 하였다.
그 어디에 가 살아도 조국을 잊지 말라!
이역의 세파속에서 뚜렷한 목적이 없이 살아오던 자기에게 참다운 애국의 뜻을 새겨주는 수령님의 이 말씀은 리채선녀성의 가슴속에 애국의 불길을 활활 지펴주었다.조국을 떠나던 날 리주연동지는 언제나 어버이수령님의 영상을 우러르며 그이의 가르치심대로 살라고 하면서 리채선녀성에게 이 뜻깊은 사진을 안겨주었다.
그날의 못 잊을 추억을 되새기며 그는 한자한자 써나갔다.
어버이수령님의 건강을 바라는 간절한 소원,그이의 뜻대로 애국의 길을 꿋꿋이 걸어갈 불타는 충정의 맹세를…
그로부터 몇달후 깜챠뜨까동포사회는 감격의 도가니로 끓어번지였다.어버이수령님께서 리채선녀성에게 은정어린 선물을 보내주신것이다.조국의 정취를 안고 살라는 다심한 뜻이 담겨진 도자기와 고급침대보,갖가지 술들…
숱한 동포들이 찾아와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축하해줄 때에도 그는 꼭 꿈을 꾸는것만 같았다.그날밤 사랑의 선물을 가슴에 안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그는 마음속으로 목메여불렀다.
《아버지!》
절세위인과 리채선녀성과의 혈연의 정은 이렇게 맺어졌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후 그가 또다시 소박한 지성품을 마련하여 선물로 올리였을 때에도 앞으로 해외에서 조국과 민족을 위한 일을 더 많이 하기 바란다는 사랑과 믿음의 편지를 보내주시였다.영광의 그날 그는 다시금 굳게 결의다지였다.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어머니조국을 위해 한가지라도 더 많은 일을 해놓자.
이런 결심밑에 자체의 힘으로 수백㎡의 온실을 건설한 그는 북방의 추위와 맞서싸우며 이악하게 꽃과 남새를 가꾸었다.10여년세월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않고 손이 북두갈구리처럼 험해지도록 일하면서 한푼두푼 자금을 마련하는 그의 속마음을 주변의 그 누구도 알지 못하였다.
주체78(1989)년 조국의 륭성번영에 이바지해달라고 적지 않은 자금을 내놓으며 그가 한 말은 사람들의 심금을 세차게 울리였다.
《나의 소원은 오직 어버이수령님께서와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부디 건강하시고 내 조국이 더욱 부강해지는것뿐입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국의 부강번영에 이바지하는데서 생의 희열과 긍지를 느끼는 평범한 해외공민의 소행을 기특히 여기시며 크나큰 사랑과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장군님의 따뜻한 보살피심속에 리채선녀성은 혁명의 성산 백두산과 금강산,묘향산 등 조국의 이름난 명승지들에서 꿈같은 가족휴양의 나날을 보내였다.이역의 세파속에서 생긴 병도 조국의 병원들에서 깨끗이 털어버렸다.지방에서 살던 아들내외도 위대한 장군님의 다심하신 은정에 의해 풍치수려한 대동강기슭에 새 보금자리를 폈다.
리채선녀성이 이미 깜챠뜨까의 자기 집에서 60번째 생일을 소박하게 쇠였다는것을 아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국에서 생일상을 다시 차려주도록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청류관에서 은정어린 생일상을 받아안던 날 그는 솟구치는 격정으로 어깨를 들먹이였다.자본주의백만장자들에게는 큰돈이 아닐지 모르지만 자신께서는 꽃을 가꾸며 한푼두푼 마련한 돈을 통채로 조국에 바치였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는 장군님의 말씀을 전달받으며 그도 울고 자식들도 울었다.
그날밤 리채선녀성은 세월의 언덕을 넘어 더욱 뜨거워지는 백두산위인들의 한없는 믿음과 사랑에 가슴이 젖어들어 도무지 잠들수 없었다.나라없던 그 세월에 겪은 피눈물나는 생활도 떠올랐다.
단천군(당시)의 빈농가였던 그의 가정은 밑이 빠지도록 가난하였다.밤에 누우면 하늘의 별들이 총총히 올려다보이고 아침이면 축축하게 젖은 노전밑에서 뱀이 기여나오는 집아닌 집에서 그의 7남매가 살았다.월사금을 물수 없어 1년만에 학교에서 쫓겨나고 애어린 어깨에 고역의 멍에를 쓰지 않으면 안되였던 그였다.반일활동가로서 《요시찰대상》인 리주연의 친척이라는 리유로 일제경찰로부터 받은 박해는 또 얼마나 가혹하였던가.
(암흑의 그 세월 울밑의 봉선화처럼 시들번 했던 내가 오늘은 절세위인들의 품속에서 이토록 영광과 행복의 절정에 올라섰구나.)
고마운 그 은정이 가슴을 칠수록 절세위인들을 한번이라도 몸가까이 뵙고싶은 마음이 사무치게 간절해졌다.
주체83(1994)년 4월 꿈결에도 소원하던 영광의 시각이 왔다.어버이수령님께서 세계 여러 나라와 지역의 해외동포대표들과 함께 그를 만나주신것이다.그날 리채선녀성이 삼가 올리는 축원의 인사를 받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등을 다정히 두드려주시면서 앞으로 해외에서 일을 더 잘하기 바란다고 정을 담아 말씀하시였다.수령님을 모시고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던 그 순간은 정녕 이 세상의 모든 행복을 독차지한것만 같은 꿈같은 순간이였다.
절세위인들의 이토록 크나큰 믿음과 사랑은 이름없는 해외공민에 불과한 리채선녀성의 가슴속에 애국충정의 불길이 세차게 타번지게 한 원동력이였다.
리채선녀성이 살고있는 깜챠뜨까반도는 동토대를 가까이하고있어 년중 대부분이 한겨울이나 같다.조국에서처럼 세면이 바다로 둘러싸여있지만 해수욕 한번 할수 없을 정도로 기후가 차디차고 때없이 불을 뿜는 활화산들이 류달리 많다.이런 엄혹한 곳에서 살고있지만 리채선녀성의 가슴속에는 언제나 화창한 봄날만 있다.
조국의 뜻깊은 기념일마다 재로조선공민중앙협회 부회장,깜챠뜨까변강조선공민협회 회장의 중임을 맡고있는 리채선녀성의 집은 그야말로 흥성인다.년중 다채로운 경축행사들이 끊임없이 진행되는 그의 집을 가리켜 사람들은 공화국의 《작은 령사관》이라고 부른다.리채선녀성은 때없이 공화국의 해외공민증을 마음속으로 더듬어보군 한다.그러면 가슴은 절로 넓어지고 배심든든해지군 한다.
언제인가 반통일세력의 손탁에 놀아나 북이니 남이니 하면서 동포사회의 분렬을 꾀하는자들이 그에게 왜 변변히 먹고 입고 쓰지도 않으면서 한평생 조국을 위한다며 그 고생인가고 비양거린적이 있었다.그때 그는 이렇게 단호히 내쏘았다.
《나는 태양조선의 해외공민이다!》
우리 공화국이 미제를 우두머리로 한 제국주의련합세력과 단독으로 맞서 겹쌓인 난관과 시련을 뚫고나가던 고난의 행군시기 지면과 화면을 어지럽히던 반동들의 반공화국악선전은 그가 사는 동포사회도 뒤숭숭한 분위기에 휩싸이게 하였다. 그러나 리채선녀성은 그 어떤 잡소리에도 흔들림이 없이 어깨를 쭉 펴고 애국활동을 벌리였다. 무비의 담력과 강철의 의지,천변만화의 지략을 지니신 천하제일명장을 모신 우리 조국은 필승불패이라는 확신에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뜻밖에 서거하시였다는 청천벽력같은 비보에 그는 오열을 터뜨렸다.
(아,장군님! 그토록 바라시던 조국통일의 그날을 보시지 못하시고 이렇게 떠나가신단 말입니까.조국을 위한 좋은 일을 더 많이 해놓아 기쁨을 드리려 하였는데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입니까.)
조국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고싶어 늘 왼심을 쓰던 남편이 림종의 시각에 남긴 말도 눈물겹게 되새겨졌다.
《수령님과 장군님을 위해, 조국의 번영을 위해 좀더 많은 일을 하자고 했는데…
내 소원을 부디 잊지 말고 이루어주오.》
(비애의 눈물만 흘릴 때가 아니다.위대한 장군님의 유훈을 꽃피우고 경애하는 원수님을 더 잘 받들기 위해 일어서자.)
피눈물속에 이렇게 속다짐한 그는 금수산태양궁전을 주체의 최고성지로 꾸리는 사업에 자기의 깨끗한 마음을 바치였고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한 일을 스스로 찾아하였다.
경애하는 원수님의 자애로운 손길에 이끌려 그는 뜻깊은 태양절경축행사들과 공화국창건 65돐 경축행사 등 조국에서 진행된 수많은 행사들에 참가하였다.그 나날 절세위인들의 령도밑에 천하에 으뜸가는 강국으로 그 존엄과 위용을 높이 떨쳐가는 내 조국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가슴속에 차넘침을 금할수 없었다.
우리 조국을 천하제일강국으로 일떠세워주시기 위해 밤낮이 따로 없이 헌신의 자욱을 찍어가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모습에서 그는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태양의 모습을 뵈웠다.하기에 지난 1월 경애하는 원수님께 삼가 선물을 올리면서 그는 어버이수령님께 첫 편지를 올리던 40여년전의 그날을 생각하였다.
날이 갈수록 충정의 의지가 더더욱 용솟음쳐 리채선녀성은 80고령의 나이도 잊고 애국의 발걸음을 끊임없이 재촉하고있다.애국에는 만족이란 있을수 없다는것이 그의 신조이다.
일신의 안일과 향락만을 추구하면서 덧없이 보낸 사람의 한생은 아무런 가치도 없으며 그런 사람처럼 가련한 인간은 없다.조국앞에 후회없이 떳떳이 살고 어머니조국을 위해 깨끗한 량심과 의리를 바치는것이 인간의 참된 삶이다.태양의 품속에서 리채선녀성이 누리는 애국의 삶도 그것을 말해주고있다.
충정의 꽃은 그 영원한 향기속에 진정한 아름다움이 있는 법이다.
리채선녀성은 자기가 걸어온 보람찬 애국의 길에 외손녀를 내세웠다.어머니당의 은정으로 조국에서 대학공부를 하며 배움의 나래를 활짝 꽃피우고있는 외손녀 한목란에게 그가 늘 하는 말이 있다.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을 충정으로 받드는 길이 위대한 대원수님들과 우리 가정이 맺은 혈연의 정을 이어나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