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 로씨야 스뻬쯔쎄르비스뽀스따브까유한책임회사 총사장 아.이.벨로뛴스끼와 달레스뜨로이무한주식회사 총사장 죠민 윅또르 윅또로비치가 선물을 드리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 드리는 선물이 로씨야주재 우리 나라 특명전권대사와 관계부문 일군에게 각각 전달되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 로씨야 스뻬쯔쎄르비스뽀스따브까유한책임회사 총사장 아.이.벨로뛴스끼와 달레스뜨로이무한주식회사 총사장 죠민 윅또르 윅또로비치가 선물을 드리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 드리는 선물이 로씨야주재 우리 나라 특명전권대사와 관계부문 일군에게 각각 전달되였다.
이브라힘 부바까르 케이타 말리공화국 대통령에게 김준갑 이 나라 주재 우리 나라 특명전권대사가 10월 24일 신임장을 봉정하였다.
석상에서 대사는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이브라힘 부바까르 케이타대통령에게 보내시는 인사를 전하였다.
그는 또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김영남동지의 인사를 전달하였다.
대통령은 이에 깊은 사의를 표시하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 자신의 충심으로 되는 축원의 인사를 전하여드릴것을 대사에게 부탁하였다.
또한 김영남동지에게 인사를 전달해줄것을 부탁하였다.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말리정부와 인민의 이름으로 형제적조선인민이 경애하는 김정은각하의 현명한 령도밑에 강성국가건설과 나라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위한 투쟁에서 보다 큰 성과를 거둘것을 진심으로 축원한다.
말리와 조선사이의 친선협조관계는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와 말리 초대대통령 모디보 케이타각하께서 마련해주신 귀중한 재보이다.
모디보 케이타대통령이 1964년 10월 조선을 방문하여 김일성주석을 만나뵙고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은것은 말리사회의 정치구도와 경제발전의 중요한 계기로 되였다.
우리는 김일성주석께서와 김정일각하께서 독립된 말리정부와 인민을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진심으로 협조해주신데 대하여 영원히 잊지 않을것이다.
앞으로 두 나라사이의 다방면적인 교류와 협조가 더욱 활발해지기를 바란다.
얼마전 퇴근길에서였다.
김책공업종합대학 교육자살림집앞을 지나던 나는 곁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였다.
《살림집이 정말 멋있지.낮에 볼 때는 대동강에 떠있는 돛배같더니 이렇게 밤에 보니 꼭 우주에로 올라가는 계단승강기같구만.》
《우주행계단승강기라?! 거 참 비유가 그럴듯 한데.동무말대로 한다면 우주려행이 꿈이 아니라는건데.》
《그렇지 않구.저 궁궐같은 살림집에서 사는 우리 과학자,기술자들이 우리의 그 꿈을 현실로 펼쳐놓지 않나 이제 두고보라구.》
그들의 이야기를 듣느라니 꿈많은 청년들이라는 느낌과 함께 생각은 저도모르게 깊어졌다.
과연 언제부터였던가.우리 인민이 아름다운 꿈을 지니게 된것은.
지난 세기초 우리 나라를 다녀간 유럽의 한 작가는 지게를 무겁게 지고 서있는 소년을 형상한 조각품을 빚어놓고 꿈을 잃은 소년의 얼굴이 곧 조선사람의 표상이라고 사람들에게 말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 세계에 주는 우리 인민에 대한 표상은 너무도 달라지지 않았는가.
오늘 우리 인민은 꿈을 꾸어도 사회주의부귀영화만을 꿈꾸는 긍지높은 인민으로 되였다.
이런 생각을 하느라니 이 나라 천만자식의 꿈을 그토록 소중히 여기시며 고스란히 꽃피워주신 절세위인들에 대한 다함없는 감사의 정을 금할수가 없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인민들을 잘살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것은 우리 당활동의 최고원칙입니다.》
돌이켜보면 위대한 대원수님들처럼 인민의 꿈을 현실로 꽃피워주기 위해 크나큰 심혈과 로고를 바쳐오신분이 과연 이 세상 그 어디에 있어본적 있었던가.
언제나 인민의 행복만을 꽃피우시려고 한평생을 바쳐오신 어버이수령님과 우리 장군님의 숭고한 지향과 리상은 조선로동당의 로선과 정책에 그대로 담겨졌었다.
자식들의 밝은 래일에 얹은 이 나라 천만부모들의 꿈을 실현시켜주기 위해 우리 당은 아이들을 나라의 왕으로 떠받들며 해빛밝은 곳마다에 새 학교와 사랑의 궁전을 세워주었다.
가정일의 무거운 부담에서 벗어나려는 우리 녀성들을 위해서는 식료품가공을 공업화할데 대한 정책을 세우고 나라의 곳곳에 남새가공공장,물고기가공공장,과일가공공장들을 세워주었다.
병을 모르고 장수하려는 인민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외진 섬마을까지 병원이 찾아가고 값비싼 예방주사약을 안은 의사들이 집집의 문을 두드리는 사랑의 화폭도 펼쳐놓았다.
이런 위대한 친어버이사랑이 우리모두를 보살폈기에 겹쌓인 고난속에서도 우리 군대와 인민은 남들이 부러워할 강성국가를 리상으로 간직하고 어려울수록 위대한 장군님의 품에 안겨들며 일심으로 굳게 뭉쳐 비약의 나래를 펼친것 아니던가.
인민의 아름다운 꿈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마련하신 선군복,선군덕속에서 지켜지고 푸른 하늘의 뭉게구름처럼 더욱 부풀어올랐다.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크나큰 사랑과 은정도 담아 천만군민을 따뜻이 위해주시는 경애하는 원수님 계시기에 인민의 오랜 꿈은 실현되고 더더욱 아름다운 꿈을 꾸는 인민으로 되였다.
그렇다.
우리 인민은 꿈많은 인민이다.경애하는 원수님의 자애로운 품속에서 보다 행복할 래일을 그리는 꿈많은 인민이다.
보통일요일들중의 하루였다.
하지만 지난 10월 26일은 온 나라 어린이들과 자식을 가진 부모들에게 있어서 격정속에 흘러간 하루였다.
우리 원수님께서 완공된 평양육아원,애육원을 찾으신 혁명활동소식이 텔레비죤과 방송으로 전해진것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어린이들은 나라의 보배이며 우리 혁명의 미래를 떠메고나갈 혁명의 후비대입니다.》
마을과 마을들이,거리와 거리들이 떠들썩하였다.동화세계를 방불케 하는 멋진 모습을 보며 환성을 올리는 아이들,자식들이 볼세라 눈굽을 닦는 어머니들,일요일의 하루를 부강조국을 위한 사색과 탐구로 분투한 아버지들…
예로부터 설음중에 제일 큰 설음은 고아의 설음이라고 하였다.
하거늘 과연 세상사람들 어느 누가 이렇듯 훌륭한 궁전,행복의 요람이 부모없는 아이들의 집이라고 선뜻 믿겠는가.
꽃잎같은 손을 활짝 펼치며 경애하는 원수님께 매여달리던 그 아이들이,아직은 자기들에게 차례진 행복이 얼마나 큰지를 정녕 알수 없는 철부지들이 스스럼없이 들어설 행복의 집-평양육아원,애육원,
가슴이 뭉클 젖어든다.
고아,이 땅에서는 부르기조차 면구스러운 말이다.
세상에 없는 궁전같은 집에서 자라날 우리 아이들을 어찌 부모없는 고아라고 하랴.
그려만 봐도 그 행복의 집에서 마음껏 뛰놀 원아들의 모습,더욱 밝고 아름다와질 우리 조국의 래일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러나 자본주의사회에서 아이들의 운명은 어떤가.
날마다 사랑의 전설이 태여나고있는 이 땅과 한지맥으로 잇닿아있는 남조선어린이들의 실례를 들어보자.
남조선에서는 망울도 터쳐보지 못한 어린이들이 온갖 사회악속에 시들어가고있다.
지난해말 괴뢰들이 줄여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더라도 남조선에는 부모의 버림을 받고 방랑하는 어린이들이 부지기수라고 한다.그중에는 미혼녀성이 낳고 버린 어린이들도 있고 부모의 리혼으로 방랑하는 아이들도 있으며 부모의 학대로 집을 나선 아이들 또한 많다.
시험성적이 낮다고 하여 부모로부터 매를 맞아 피멍이 들고 학교에 가서는 교원들과 학생들로부터 욕설과 따돌림을 당하여 우울증과 불안감에 모대기며 지어 자살까지 하고있는것이 바로 남조선의 불쌍한 어린이들이다.
어린이들에 대한 학대현상은 특히 《어린이집》들에서 더욱 우심하게 나타나고있다.
《어린이집》들에서는 어린이들이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하여 추운 겨울에 발가벗겨 오래동안 바깥에서 벌을 세우거나 회초리로 아이들을 때리는 사건이 종종 일어나고있으며 두살짜리 아이가 운다고 입에 손수건을 물리고 방에 가두는 사건과 보관기일이 지난 음식을 강제로 먹이는 사건 등이 련이어 일어나 사회적물의를 일으키고있다.
지난해 5월 서울에 있는 《어린이집》들을 조사한데 의하면 거의 모든 시설들에서 어린이들을 학대하고 자금을 횡령한 사실들이 드러났다고 한다. 어느 원장이라는자는 《어린이집》 5곳을 운영하면서 3년동안 거액의 자금을 비법적으로 가로챈것으로 하여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냈다고 한다.
남조선에서는 《입양》의 너울을 쓴 어린이매매행위도 로골적으로 이루어지고있다.
괴뢰들은 부모없는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목밑에 5월 11일을 《입양의 날》로 정하고 곳곳에 《입양》기관들을 만들어놓고는 공개적으로 아이들을 해외에 팔아먹고있다.
2004년부터 2011년까지 8년동안 남조선에서 해외에 《입양》된 어린이는 1만 1 826명이라고 한다.
또한 인터네트를 통해 갓난아이를 팔아먹고있으며 거래비용은 갓난아이의 남녀별,혈액형,외모 등에 따라 1 700US$에서 최고 1만US$까지 된다고 한다.
상상을 초월한다.치가 떨린다.아직은 인생의 첫 기슭에서 부모의 사랑을 받아야 할 어린이들을 돈벌이수단으로 여기는 사회,이것이 바로 남조선사회,자본주의사회의 현실이다.
어린이들을 나라의 왕으로 떠받드는 사회주의조국과 한창 피는 꽃망울들을 짓밟아버리는 남조선사회!
이 얼마나 대조적인가.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인민사랑의 숭고한 뜻이 활짝 꽃핀 우리 나라,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계시여 더욱 밝고 아름다와질 내 조국이 세상에서 제일이다.
우리 인민이 그처럼 어려운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면서도 우리 당만을 믿고 당과 운명을 같이하는것은,천만군민이 경애하는 원수님만 계시면 우리는 반드시 이긴다는 철석의 신념과 의지를 안고 더욱 용기백배하여 나아가고있는것은 바로 실생활을 통해 우리 제도,우리 사회가 제일 좋다는것을 뼈에 새기였기때문이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우리 어린이들의 이름을 빌어 이 땅의 어머니들은 자부한다.
사회주의 우리 제도가 세상에서 제일이다!
◇ 위대한 어머니당의 크나큰 은정속에 솟아난 위성과학자주택지구에 새집들이경사가 난 때로부터 여러날이 흘러갔다.그러나 새 집의 주인들은 오늘도 꿈만 같은 현실에서 격정을 금치 못하고있다.아담하게 꾸려진 살림방들과 그쯘히 갖추어진 부엌세간들,침대를 비롯한 고급가구들… 살림집의 구석구석에 깃들어있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사랑과 은정을 가슴깊이 새기며 누구나 충정과 보답의 일념으로 심장을 끓이고있다.
국가과학원 수산과학분원 원장 신상일동무는 《과학자들의 존엄이 돈에 의해 롱락되는 황금만능의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수 없는 일이다.하늘같은 그 은덕이 너무도 고마와 온 가족이 매일과 같이 어머니당을 우러러 감사의 노래를 부르고있다.》고 격정을 터치였다.
세상에는 나라도 많고 나라마다 과학자들이 있다.그러나 우리의 과학자들처럼 복받은 사람들,자본주의나라 부자들도 부러워하는 《백만장자》들이 이 세상 그 어디에 또 있겠는가.
◇ 과학자,기술자들은 우리 당이 아끼고 내세워주는 애국자들이며 사랑의 금방석의 당당한 주인들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공화국의 존엄과 국력을 최상의 경지에 올려세운 과학자들에게는 아까울것이 없습니다.》
오늘 최첨단을 돌파하며 끊임없이 비약해나가는 우리 조국의 약동하는 기상과 불패의 위용속에는 우리 과학자,기술자들의 고귀한 피와 땀,열렬한 애국심이 슴배여있다.누가 보건말건,알아주건말건 묵묵히 조국을 떠받드는 뿌리가 되고 밑거름이 되여온 그들의 애국헌신의 세계를 어찌 다 헤아릴수 있겠는가.최악의 시련속에서도 사회주의신념을 버리지 않은 견결한 혁명가들,생활상어려움보다 조국의 앞날을 먼저 생각하며 고심어린 과학탐구의 길을 꿋꿋이 걸어온 참된 애국자들이 바로 우리의 과학자,기술자들이다.
하기에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훌륭한 일을 한 사람은 금방석에 앉혀준다는 말이 있는데 우리의 과학자들에게 금방석과 같은 집을 지어주어 거기서 생활하게 하자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준엄한 나날에나 행복한 나날에나 당과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신념으로 간직하고 과학과 기술로 조국의 미래를 가꾸어가는 이런 애국자들의 대부대를 가지고있는것이야말로 우리 당과 인민의 크나큰 자랑이며 힘이다.
◇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우리의 과학자,기술자들에게는 주체의 사회주의조국이 있다.
오늘날 우리가 자본주의를 압도하고 적들과의 대결에서 결정적승리를 이룩하기 위하여서는 과학기술을 빨리 발전시켜야 한다.우리 인민의 아름다운 꿈과 리상을 앞당겨 실현하는 길도 과학기술의 선차적발전에 있다.
과학자,기술자들은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랑의 금방석을 마련해주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하늘같은 사랑과 믿음을 한시도 잊지 말고 최첨단돌파전을 더욱 드세차게 벌려나가야 한다.고마운 사회주의조국을 하루빨리 천하제일강국으로 빛내이기 위한 투쟁에 지혜와 열정을 아낌없이 바쳐나가야 한다.전사회적으로 과학기술을 중시하고 과학자,기술자들을 적극 내세우며 그들의 사업조건,생활조건보장에 깊은 관심을 돌려야 한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력사유적유물들은 우리 선조들이 투쟁과 창조적활동을 통하여 이룩한 귀중한 유산이며 후세에 길이 전해갈 민족의 재부입니다.》
주체97(2008)년 5월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백운산유원지를 찾으시였다.그날 장군님께서는 백운산에 위치하고있는 오랜 력사문화유적인 룡흥사를 돌아보시였다.
절승경개를 이룬 백운산 깊은 골안에 아름드리 두그루 전나무를 문주로 고풍을 떨치며 서있는 룡흥사앞마당에서 붉은 도포를 걸친 승려가 위대한 장군님께 정중히 인사를 올렸다.
절간입구에 멋들어지게 자란 두그루 전나무를 오래도록 바라보시는 위대한 장군님께 승려가 그 유래를 말씀올렸다.
350년 자라 높이가 30m를 넘는 두그루의 전나무는 룡흥사의 문주로 심은것인데 옛날에 절간으로 올라갈 때에는 반드시 이 나무들사이로 걸어지나야 하였다.전나무는 좀이 쓸지 않고 벌레가 기여들지 못하게 하는것으로 하여 옛날 중들은 룡흥사에 병치료로 오는 사람들에게 이 전나무사이를 지나가면 몸에 붙어있던 온갖 잡귀신이 다 떨어져나간다고 유혹했다고 한다.
승려의 이런 이야기를 들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벌써부터 설교가 시작된다고 하시며 유쾌하게 웃으시였다.
대웅전을 중심건물로 하고 무량수각,운하루,향로전 등으로 이루어진 룡흥사는 고려시기인 1048년에 세운 절로서 처음에는 성불사라고 불렀다.1794년에 고쳐 세우면서 그때 절이름도 룡흥사라고 부르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선조들의 높은 건축예술과 뛰여난 예술적재능을 보여주는 국보적유산인 룡흥사를 구체적으로 돌아보시였다.
조선식목조건물의 건축구조학적특성을 잘 살린 웅장한 대웅전의 네 기둥에 씌여진 주련들만이 아니라 대웅전에 놓은 석가모니불상을 비롯한 모든것이 진품이라는 사실을 두고 못내 기뻐하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나무로 만든 불상에 도색을 한것을 보면 그때사람들이 용타고,력사문화유적이 잘 보존되였다고 만족해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단청을 유심히 살펴보시던 장군님께서는 벽체굽도리에 정교하게 짜올린 포의 단청은 보색한것이 아니라 원래의것이라고 확신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은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이 절의 일부 단청을 몇십년전에 다시 했다는것만 알았지 어느 부분을 보색했고 어느 부분은 하지 않았는지 누구도 알지 못하고있었던것이다.
1792년에 절이 불탔을 때 13살 난 목수를 데려다 대웅전을 새로 지은 이야기를 사실그대로 써놓은 《함흥부백운산성불사향로전중건현판기》라는 현판도 진품이라는 승려의 말씀을 들으시고 다시금 기뻐하시며 걸음을 옮기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대웅전 건너편 운하루의 지붕에 시선을 주시며 저 기와가 진품이 아닌가고 물으시였다.
승려의 놀라움과 감동은 참으로 컸다.
지금껏 아무도 그 기와에 관심을 돌린적이 없었고 그것이 오래전의 진품이라는것을 알아본 사람은 더욱 없었던것이다.
바로 그 기와도 옛날의 진품 그대로라고,기와는 세겹으로 이어 그 어떤 센 비도 새지 않는데 기와 한장의 무게는 12~13kg이나 된다고 말씀올리는 승려의 목소리는 감격에 젖어있었다.
진품들이 많이 원상보존된 룡흥사에서 선조들이 창조한 옛 시대의 유물들을 실물 그대로 보신 감흥이 류다르시고 민족의 슬기와 재능이 비낀 그 귀중한 재보들을 통해 조선민족된 긍지와 자부심을 더 뜨겁게 간직할 인민들을 생각하시며 마음이 즐거우신듯 그이의 눈가에는 시종 유정한 미소가 흐르고있었다.
중들이 불교례식을 올리는 건물인 향로전,신자들이 숙식장소로 리용하던 무량수각도 차례로 다 돌아보신 장군님께서 계단앞에 이르시였을 때였다.계단이 99개로 되여있다는 승려의 이야기를 들으신 그이께서는 99개에는 《복 삼》자가 33개 들어있다고,조선사람들은 예로부터 3자를 좋아했다고 흥그럽게 웃으시며 여기에 다른 나라 사람들도 많이 찾아오는가고 물으시였다.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도 왔댔고 윤이상부인과 딸도 와서 불교례식까지 해주니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는 승려의 이야기를 만족하게 들어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룡흥사를 원상대로 잘 보존관리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시면서 절절히 당부하시였다.
우리는 우수한 민족문화유산을 옳게 살리기 위한 사업을 실속있게 벌려 인민들에게 조선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더욱 북돋아주어야 한다!
남조선의 인간쓰레기들이 벌려놓고있는 반공화국삐라살포광란으로 북남관계는 또다시 파국에 처하고있다.삐라살포의 강행이 북남사이의 대결을 격화시키고 전쟁까지 불러온다는것은 누구나 알고있는 사실이다.하기에 우리는 남조선당국이 진정으로 북남관계개선을 바란다면 정세악화를 부추기는 너절한 추물들의 삐라살포행위를 당장 저지시킬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이것은 남조선 각계층 인민들의 한결같은 요구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남조선당국자들은 삐라살포를 《강제로 막을수 있는 법적명분이 없다.》느니,《표현의 자유》니 하는따위의 판에 박은 변명만 늘어놓으면서 그 책임을 회피해왔다.얼마전에도 통일부 대변인이라는자는 민간단체의 《자률적인 삐라살포를 제한할 법적근거와 관련규정은 없다.》고 떠들어댔다.이것은 저들의 구미에 맞는 인간쓰레기들의 반공화국삐라살포를 극구 반기면서 그것을 한사코 계속 유지하려는 비렬한 술책이다.
사실상 괴뢰당국이 삐라살포를 저지시키려 한다면 얼마든지 할수 있다.남조선의 언론들과 전문가들,각계 단체들의 주장도 바로 그것이다.남조선의 《항공법》에 따르면 비행금지구역인 군사분계선일대에서 대형풍선을 리용하여 삐라를 살포하려면 반드시 당국과 남조선미국련합군사령부의 사전승인을 받아야 한다.이것을 어길 경우 6개월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그뿐이 아니다.남조선의 환경운동련합이 밝힌데 의하면 삐라와 더러운 물건짝들을 공중에 살포하는것은 쓰레기를 투기하는 행위로 볼수 있기때문에 《페기물관리법》위반으로 되며 《경범죄처벌법》도 적용할수 있다.지어 《경찰관직무집행법》으로도 능히 삐라살포를 막을수 있다고 한다.지난 시기 남조선에서는 북남관계파국을 우려한 당국이 여러 법률을 적용하여 보수단체의 삐라살포를 막은 실례가 있다.보다싶이 남조선당국이 반공화국삐라살포를 차단할 법적근거와 수단은 충분하다.
문제는 괴뢰당국이 인간쓰레기들의 삐라살포를 막을 의도가 없다는데 있다.바로 그렇기때문에 괴뢰패당은 반공화국삐라살포에 사용되는 대형풍선이 《항공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둘러치기도 하고 과거에 경찰이 《필요한 조치》를 취한것은 주민들의 신변안전우려가 있거나 삐라살포단체와 주민들과의 충돌가능성때문이라는 궤변도 늘어놓았다.이것은 괴뢰당국이 앞으로도 인간쓰레기들의 반공화국삐라살포를 갖은 구실을 붙여 계속 묵인조장할것이라는것을 시사해주고있다.
실제로 남조선당국은 반공화국삐라살포에 나선 인간추물들을 극구 보호하면서도 그에 항거해나선 사람들은 닥치는대로 탄압하고있다.지난 10월 25일 파주의 림진각앞에서는 아침부터 반공화국삐라를 살포하려는 보수단체들과 그것을 반대하는 지역주민 및 진보단체성원들과의 치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그러나 괴뢰경찰은 보수단체의 삐라살포를 막을 대신 오히려 《도로교통법위반》을 운운하며 삐라를 실은 뻐스가 주민들의 제지에서 벗어나 계속 운행하도록 하였다.또한 더러운 삐라와 풍선들을 빼앗아 찢어버린 주민을 긴급체포하는 망동도 부렸다.
삐라살포를 이렇게 적극 도와주는 경찰측의 처사에 기세가 오른 인간쓰레기들은 장소를 옮겨 김포지역에서 끝끝내 삐라를 뿌리는 란동을 부렸다.
반공화국삐라살포의 재정적원천도 괴뢰당국이다.인간쓰레기들이 반공화국삐라살포에 써먹는 대형풍선 한개값은 최소한 10만원정도이며 지어 어떤것은 500만원까지 든다고 한다.여기에 들어있는 소형라지오,DVD,미국돈 등 유치한 물건짝들의 값까지 계산하면 그것은 변변한 직업이나 생존수단도 없어 구걸로 목숨을 하루하루 연명해가는 추물들에게 있어서 도저히 감당해낼수 없는것이다.하다면 그 엄청난 돈을 누가 대주고있는가.다름아닌 괴뢰당국이다.
괴뢰당국은 해마다 특별예산항목을 정해놓고 인간쓰레기들에게 막대한 자금을 대주며 삐라살포행위에로 적극 내몰고있다.며칠전 남조선의 한 야당의원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괴뢰국무총리실이 반공화국삐라살포에 가담해온 보수단체들에 《민간경상보조사업》의 명목으로 2억원의 돈을 지출하였다고 까밝히였다.괴뢰안전행정부도 지난 2011년부터 현재까지 4년간에 걸쳐 인간쓰레기들과 보수단체들에 근 10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지원하였다.괴뢰통일부도 예산지원놀음에 적극 참가하고있다.
사실들은 날로 험악하게 번져지고있는 반공화국삐라살포소동을 뒤에서 적극 뒤받침해주고있는 장본인이 과연 누구인가 하는것을 명백히 폭로해주고있다.괴뢰패당의 적극적인 비호와 방조가 없다면 인간쓰레기들이 삐라살포에 그토록 기승을 부릴수 없다는것은 너무도 명백하다.
괴뢰패당이 사리에 맞지 않는 변명만 늘어놓으며 반공화국삐라살포를 계속 묵인조장한다면 그로부터 초래되는 엄중한 후과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지게 될것이다.
남조선괴뢰군부에서 부정부패와 추문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있다.
우선 괴뢰군부우두머리들의 성추행이 계속 드러나 각계의 경악을 자아내고있다.
얼마전 남조선 《KBS》방송은 상습적인 성범죄를 일삼던 괴뢰륙군의 어느 한 사단 중령이 긴급체포되여 구속수감된 사실을 전하였다.이자는 지난 9월부터 지금까지 부하녀성에게 여러차례에 걸쳐 성폭행을 가하였다고 한다.이에 앞서 현역 륙군사단장이 성추행으로 체포되는 사건이 빚어지고 그 부대의 어느 한 대대장도 지난 6월 성희롱혐의로 해임된것이 드러나 남조선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지난 9월에도 남조선강원도 원주에서 괴뢰륙군의 한 장교가 깊은 밤에 길가던 20대의 녀성을 성추행하고 도망치다가 경찰에 붙잡히는 사건이 일어났으며 괴뢰공군부대에서도 2명의 괴뢰군이 8월에 술을 처마시고 민간인녀성을 성폭행한 사실이 드러났었다.
바빠맞은 괴뢰군부패거리들은 긴급회의니,재발방지대책이니 하고 분주탕을 피우고있지만 그것이 한갖 민심의 비난을 가라앉히기 위한 기만술책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을 군부우두머리들의 성추행사건들은 폭로해주고있다.
남조선의 어느 한 언론은 괴뢰군부의 각종 추문사건들에 대하여 전하면서 《일반병사에서 대장에 이르기까지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파문이 이어지고있다.》고 개탄하였다.
윤일병폭행사망사건,총기란사사건들에 이은 성추문사건들은 온갖 패륜패덕과 범죄로 망조가 든 괴뢰군의 추한 몰골을 여지없이 드러내보여주고있다.
그뿐이 아니다.지금 괴뢰군부의 우두머리들은 무기장사,기업운영,대외거래 등의 공간을 리용하여 돈주머니를 불구고 저마다 부동산투기에 뛰여들고있으며 《특급비밀》까지 팔아 제배를 불리는데 기승을 부리고있다.군상층부것들이 막대한 돈을 받아먹고 군수업체의 불량군수품을 사들이도록 한 결과 괴뢰군부대들에서 군사기재들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거나 각종 사고들이 련발하고있다.
현 괴뢰국방부 장관은 각종 부정부패행위를 통해 여러 군수업체들로부터 막대한 돈을 긁어모아 이미 《군피아》두목으로 락인찍혔다.
사병들을 전쟁연습에 내몰고 저들은 골프놀음에 열을 올려 여론의 비난을 받고있는것도 괴뢰군부장성들이다.골프장경영에 괴뢰군부패거리들은 《사병복지》예산의 20배이상의 자금을 쏟아붓고있다고 한다.
전 1군사령관이 근무지를 리탈하고 술에 만취되여 추태를 부리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권력의 자리에서 떨어진것도 불과 두달전의 일이다.
남조선언론들이 《군장성의 라태는 치명적수준》,《사병들보다 장성들이 더 큰 문제》라고 평한것은 결코 우연한것이 아니다.
지금 괴뢰군의 실태는 더 말할 여지조차 없다.
괴뢰군부대들에서 구타를 비롯한 폭행이 극심하여 정신병자,자살자가 급격히 늘어나고있다.각종 기합과 구타로 지난해에만도 4만 5 000여명이 불구자,정신병자로 되였고 2 000여명이 탈영하였다.상상을 초월하는 인권유린행위에 견디지 못해 평균 4일에 1명씩 목숨을 끊고있으며 이러한 자살자들이 괴뢰군 전체 사망자의 70%를 차지하고있다.
극도의 대립과 폭력이 란무하는 괴뢰군내에서 《적보다 아군이 더 무섭다.》는 비명까지 터져나오고있다.전연복무를 회피하는 사병들이 늘어나 최전방부대의 인원보충을 위해 자살하거나 상전과 동료들을 쏘아죽일 우려가 있는 《관심사병》들까지 내몰고있는 형편이다.
지난 10월 《국회》에 공식적으로 제출된 자료에 의하더라도 괴뢰륙군에서 발생한 살인,강간,폭행 등 각종 범죄사건이 최근 5년간 2만건에 달한다고 한다.
남조선 각계에서는 《기강이 해이된 군》,《정직하지 않은 군》,《사병에서 대장까지 파문》,《바람잦을 날이 없는 군》이라는 개탄의 목소리가 계속 울려나오고있다.부정부패와 패륜패덕으로 망조가 든 오합지졸의 무리,이것이 남조선괴뢰군에 대한 민심의 평가이다.
한해가 다 저물어가던 주체101(2012)년 12월말 인공지구위성발사에 공헌한 과학자,기술자,로동자,일군들은 경애하는 원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들이 가닿은 곳은 당중앙위원회청사였다.
모든 승리와 영광,존엄의 상징으로 높이 솟아 빛나는 조선혁명의 참모부인 당중앙위원회,마치와 낫과 붓이 새겨진 붉은 당기가 나붓기는 당중앙위원회청사앞에는 촬영대가 설치되여있었고 촬영가들이 그들을 기다리고있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수백명 과학자,기술자,로동자,일군들의 가슴은 뭉클 젖어들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바로 며칠전에 자기들과 하신 약속을 지켜 불러주신것이였다.
누구나 심장에 소중히 안고 이 세상 한끝에서도 끝없이 마음달려오며 우러를 때마다 삼가 옷깃을 여미는 이곳에 력사에 길이 빛날 불멸의 화폭이 펼쳐졌다.그것은 공화국공민으로서,조선로동당원으로서 받을수 있는 최상의 특전,특혜였다.
지난 1월 어느날 연풍호를 향하여 산골길의 흙먼지를 휘말아올리며 달리는 승용차가 있었다.
차안에서 지도를 펼쳐들고 주의깊게 보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심중은 드바삐 달리는 승용차를 앞서고있었다.
지난해 몸소 배를 타시고 풍치수려한 연풍호기슭에 과학자휴양소자리를 잡아주신데 이어 그 위치를 최종적으로 확정하시기 위해 우리 원수님께서는 자신께서 이미전에 보아두신 연풍호기슭으로 향하시였던것이다.
현지에서 그이를 맞이한 일군들은 가슴이 뭉클하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타고오신 승용차의 색이 황토색으로 변한것이였다.
그 승용차를 바라보는 일군들은 과학자들을 위해 바치시는 그이의 사랑의 세계에 가슴이 뜨거워났다.하지만 눈이 밟히고 락엽이 흩날리는 길을 헤치시면서도 볼수록 경치가 좋다고,명당자리라고 말씀하시며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마음껏 휴식하는 과학자,기술자들의 모습을 그려보시는듯 환히 웃고계시였다.
지난해 8월 어느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김일성종합대학 교원,연구사들이 살게 될 살림집건설장을 돌아보실 때였다.시공을 깨끗하게 하였다고,마음에 든다고 평가하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모든 세대들에 놓아줄 가구들과 새집들이를 하는 과학자들에게 안겨줄 텔레비죤에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계속하여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완전무결한 살림집을 과학자들에게 넘겨주어 그들이 집들이를 하며 손을 대지 않게 최상의 수준에서 꾸려줄데 대해서도 강조하시였다.
훌륭한 살림집과 거기에 그쯘하게 갖추어질 가구들을 생각만 해도 마음이 흐뭇해지는 일군들이였다.
일군들의 속생각을 읽으신듯,못다 주신 사랑이 있으신듯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후대들을 키우고 나라의 인재를 육성하는데 한생을 바쳐가는 교원들은 애국자들이라고,그들을 위해서는 아까울것이 없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모든것을 최상의 수준에서 보장해주시고도 그들에게 온갖 영예를 안겨주시려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심중이 어려와 일군들은 목이 꽉 메이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18년전 봄 어느날 신성천철도분국 인평역구내로 려객렬차가 들어섰다.
당시 역의 안내원으로 일하던 안영옥동무는 렬차에서 내리는 손님들을 친절히 맞이하던중 뜻밖에도 부축을 받으며 내리는 중학시절 동창생인 림하삼동무를 보게 되였다.사람들에게 에워싸여 멀어져가는 그를 바라보는 안영옥동무의 마음은 무거웠다.
안영옥동무가 그의 집을 찾은것은 며칠후였다.
《병사시절의 그 정신으로 혁명의 꽃을 아름답게 피워가기 바라요.》
그때부터 안영옥동무가 영예군인을 위해 바친 뜨거운 마음과 지성에 대하여 전하자면 끝이 없다.하루일이 끝나 먼저 찾는 곳이 영예군인의 집이였다.
얼마후 림하삼동무의 가정이 신양군 읍으로 이사를 하여 퍼그나 멀어졌으나 그의 발걸음은 조금도 떠지지 않았다.영예군인이 행복한 가정을 이룰 때에도 뜨거운 지성을 기울였고 그가 병으로 앓아누웠을 때에는 먼길을 걸으며 마련한 귀한 약재를 안고 찾기도 하였다.
지난 봄 뜻깊은 건군절을 맞으며 안영옥동무는 영예군인의 집을 찾았다.꽃다발을 안겨주며 성의껏 마련한 생활필수품들을 안겨주는 안영옥동무를 바라보며 림하삼동무는 그날 안영옥동무에게 병사시절처럼 거수경례를 하였다.
지금으로부터 13년전 겨울 어느날 저녁 강동군상업관리소 로동자 홍영희동무의 머리속에서는 우연히 만났던 영예군인 장정철동무의 안해에 대한 생각이 떠날줄 몰랐다.
장정철동무에게는 중학교(당시)동창생인 자기가 꼭 필요하다고,당일군의 자식으로서 영예군인과 일생을 같이하는것은 응당한 본분이라고 하며 영예군인의 안해가 된 그의 높은 정신세계에 머리가 숙어짐을 어쩔수 없었다.홍영희동무의 가슴속에는 자기도 아름다운 삶의 자욱을 새기고싶은 열망이 불타올랐다.
홍영희동무는 이렇게 되여 아름다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되는 첫걸음을 떼게 되였다.그에게 있어서 늘 모자라는것은 시간이였다.그런 속에서도 영예군인의 집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언제 한번 드틴적이 없었다.
영예군인이 군인민병원가까이에 새 살림집을 받았을 때에는 친혈육의 정으로 집꾸리기도 도와주었고 명절날이나 휴식일이면 갖가지 영양식품들과 생활용품들을 안고 그들의 집을 찾았다.그렇게 열세해가 흘렀다.
그 나날들은 조국을 위해 피흘린 영예군인과 그의 안해의 높은 정신세계에 자기를 늘 비추어보며 모든것을 바쳐온 헌신의 날들이였다.
전쟁로병들과 탁아소,유치원아이들의 명랑한 모습과 군에 새로 일떠선 봉사기지,희천발전소건설장을 비롯한 사회주의대건설장들에 비낀 홍영희동무의 헌신의 자욱자욱에는 사회와 집단을 위하여 값높은 삶을 빛내여가려는 아름다운 지향이 맥박치고있다.
지난 11월 4일,
이날도 개천철도국 개천철도합숙 지배인 장금숙동무와 종업원들은 시에서 사는 류병진로인의 집을 찾았다.
그들을 맞이하는 늙은 내외의 눈가에는 고마움의 눈물이 맺혀있었다.얼마전에는 구멍탄을 차에 한가득 싣고와 집창고에 차곡차곡 쌓아주더니 오늘은 겨울용김장남새를 안고 또다시 찾아왔던것이다.
장금숙동무가 전쟁로병인 류병진로인을 알게 된것은 지금으로부터 15년전이였다.
자기가 받아안은 고마운 사랑과 누려가는 행복한 생활에 대하여 다시금 돌이켜볼 때 전쟁로병을 위하는것은 자신의 응당한 본분이고 도리이며 우리 사회의 고상한 륜리라는 생각이 그의 가슴에 가득히 차올랐다.
남편 리도현동무를 비롯한 온 가족도 적극 도와나섰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지만 전쟁로병을 위해주는 장금숙동무의 마음은 날이 갈수록 더욱 뜨거워만졌다.
이 나날에 그는 개천시 천리길동에서 살고있는 영예군인 김창기동무도 알게 되였다.
장금숙동무는 자기의 소행을 고스란히 묻어두었지만 몇해후에는 종업원들에게 알려지게 되였다.이때부터 전쟁로병과 영예군인을 도와주기 위한 사업은 장금숙동무와 종업원들의 생활의 한부분으로 되였다.
사회와 집단을 위하여 헌신하는것을 생활의 륜리로 간직한 장금숙동무,하나는 전체를 위하여,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서로 돕고 이끄는 우리 사회에서 그의 모습이야말로 평범하면서도 돋보이는 모습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