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29일

우리 나라 내각부총리와 로씨야정부 부수상 겸 원동련방구주재 대통령전권대표 회담

로두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부총리와 유리 뜨루뜨네브 로씨야정부 부수상 겸 원동련방구주재 대통령전권대표의 회담이 28일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되였다.

회담에는 우리측에서 리룡남무역상,궁석웅 외무성 부상,임천일 로씨야련방 나호드까주재 우리 나라 총령사,관계부문 일군들이,상대측에서 대통령전권대표일행과 알렉싼드르 찌모닌 주조 로씨야련방 특명전권대사,대사관성원들이 참가하였다.

회담에서 쌍방은 두 나라사이의 경제협조관계를 더욱 발전시킬데 대해서와 호상 관심사로 되는 문제들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였다.

이에 앞서 로두철부총리와 유리 뜨루뜨네브 부수상 겸 원동련방구주재 대통령전권대표사이의 단독회담이 있었다.

회담들은 친선적인 분위기속에서 진행되였다.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규소카리비료

평양에서 진행되고있는 제29차 중앙과학기술축전에 출품된 규소카리비료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있다.

리박신기사장을 비롯한 안변규소카리비료공장 기술자들과 원산농업종합대학 강좌장 한정근은 서로의 창조적지혜와 힘을 합쳐 이 비료를 공업적방법으로 생산할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였다.

이들은 지난 수년간 강원도에 흔한 품위가 낮은 카리광석을 리용하여 석회소성법에 의한 규소카리비료를 생산하는 공정을 확립하기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이였다. 나라의 농업생산을 늘이는데 이바지할 비료를 생산해내야 한다는 자각은 이들의 심장마다에 애국의 피를 끓게 하였다.

연구집단은 창조적사색과 피타는 탐구로 카리광석의 광물학적조성과 화학조성,규소카리비료생산에서 석회석과 형석의 첨가량에 따르는 구용률의 변화를 확증하였다.그리고 산화칼리움의 구용화를 위한 반응조건을 검증하였으며 규소카리비료의 시비량과 방법도 완성하였다.

특히 이들은 형석의 도움으로 진행되는 규산염반응을 새롭게 실현하였다.결과 규소카리비료생산공정에서 소성온도를 낮추면서 로조작을 헐하게 할수 있게 되였다.

현재 공장에서 생산되는 규소카리비료는 강원도안의 많은 협동농장들에 도입되고있다.

종합된 자료에 의하면 논벼는 정보당 9~10%,강냉이는 7~8%의 수확고를 더 낼수 있다고 한다.연구집단은 남새에도 적용해보았는데 정보당 9~12% 생산성이 더 높았다.

안변규소카리비료공장에는 도안의 협동농장들에 요구되는 규소카리비료를 원만히 충족시킬수 있는 생산공정이 그쯘히 꾸려져있다.

[론설] 혁명적사상공세의 본보기-청봉밀영에서의 사상전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조선로동당 제8차 사상일군대회에서 하신 강령적연설 《혁명적인 사상공세로 최후승리를 앞당겨나가자》를 받아안은 당사상일군들은 우렁찬 사상전의 포성으로 온 나라를 들끓게 하고있다.

우리 당사상일군들이 당의 의도대로 사상의 포문을 열고 집중포화,련속포화,명중포화를 들이대여 온 나라에 사상적일색화의 불길,혁명적대고조의 열풍을 세차게 일으키자면 청봉밀영에서의 사상전을 귀중한 교과서로 삼고 투쟁해나가야 한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당사상전선에 먼저 불을 지피고 사상사업의 화력을 강화하여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를 위한 우리 혁명의 진군속도를 비상히 높여나가야 합니다.》

혁명은 대중의 사상과 신념에 의하여 전진하며 당사상일군들은 우리 당의 사상진지를 지켜선 기수,전초병들이다.당사상일군들이 대중을 당의 사상으로 무장시키고 그 관철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킬 때 그들의 혁명적열의가 비상히 앙양될수 있으며 혁명과 건설에서 놀라운 성과들이 이룩될수 있다.당사상일군들이 혁명적인 사상공세로 천만대중의 정신력을 총폭발시킬 때 그 위력을 당할 힘은 세상에 없다.

오늘 미제를 비롯한 혁명의 원쑤들은 우리의 사회주의를 말살하려고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모략선전도 반동적사상문화침투책동도 서슴지 않고있다.이러한 조건에서 우리 인민을 당의 사상으로 튼튼히 무장시키고 원쑤들을 사상정신적으로 타승하자면 당사상일군들부터 투철한 사상론자가 되고 열혈의 전위투사가 되여야 한다.

그러자면 당사상일군들이 간고하고 시련에 찬 항일혁명전쟁시기에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으로 철저히 무장하고 대원들과 인민들에게 널리 선전하시였으며 수령님의 사상을 목숨으로 지켜싸우신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숭고한 모범을 적극 따라배워야 한다.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러 백두산총대를 잡고 투쟁의 길에 나서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떤 어려운 조건에서도 수령님의 혁명사상으로 무장하기 위한 학습을 중단하지 않으시였다.위대한 수령님의 사상을 확고한 신념으로 지니신 김정숙동지께서는 수령님의 사상과 로선을 대원들과 인민들에게 깊이있게 선전하는것을 가장 영예로운 사명으로 여기시고 소부대활동을 하실 때에도,지하공작을 하실 때에도 언제나 주동적이며 적극적인 선전활동을 전개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로선,방침을 헐뜯는자들에 대해서는 그가 누구이든 즉시에 비타협적인 투쟁을 벌리시였으며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지키기 위하여서는 한목숨 서슴없이 내대고 투쟁하시였다.

특히 항일혁명전쟁의 가장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시기에 김정숙동지께서 청봉밀영에서 보여주신 숭고한 모범은 혁명적인 사상공세를 벌려나가는 우리 당사상일군들이 따라배워야 할 귀중한 본보기로 되고있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 혁명앞에 어려운 시련이 나설수록 수령의 혁명사상으로 무장하기 위한 학습열풍을 일으키신것은 당사상일군들이 따라배워야 할 숭고한 귀감이다.

혁명앞에 어려운 시련이 막아서고 방대한 과업이 나설수록 더욱 세차게 일으켜야 하는것이 학습열풍이다.

김정숙동지께서 청봉밀영에 도착하시였을 때는 항일혁명투쟁이 가장 어려운 시련을 겪던 때였다.

당시 좌경모험주의적인 열하원정의 후과로 항일련군부대들이 많은 손실을 당함으로써 조선인민혁명군은 백두산서남부일대에서 증강된 적의 대병력과 단독으로 맞서싸우지 않으면 안되였다.국내에서는 혜산사건으로 하여 수많은 지하조직원들이 체포되고 일제는 조선인민혁명군이 다 망했다고 대대적인 악선전을 벌리고있었다.

조성된 난국을 타개하고 혁명을 계속 앙양시키기 위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이끄시고 류례없이 어려운 고난의 행군을 벌리고계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 청봉밀영에 도착하시였을 때 이곳도 어려운 형편에 처해있었다.혁명의 시련앞에 겁을 먹은 엄광호의 패배주의적인 책동으로 하여 예비병실도 없고 식량도 모자라는 등 난관들이 가로놓여있었고 침체와 무질서,저조한 분위기가 떠돌고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러한 곤난앞에서도 주저하지 않으시고 병실들을 깨끗이 꾸리고 적극적인 환자치료대책을 세우시는 한편 대원들에게 남패자회의방침과 압록강연안으로 진출하는 주력부대의 전투소식을 알려주어 그들의 정신상태를 일신시키시였다.

이어 김정숙동지께서는 군정학습을 통하여 밀영안의 대원들을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으로 무장시키실 계획을 내놓으시고 이 문제를 놓고 엄광호와 여러차례 투쟁을 벌리시였다.

엄광호가 밀영에 있는 대원들의 절반이상이 부상자와 허약자들인데 학습을 해야 그들의 머리속에 들어가기나 하겠는가고 하면서 반대해나설 때 김정숙동지께서는 추호의 동요없이 함께 온 녀대원들과 학습을 시작하시였다.

이 소식은 곧 온 밀영에 알려졌으며 부상당한 대원들도 하나,둘 학습에 참가하게 되였고 미구에 모든 밀영성원들의 관심이 학습에 집중되고 마침내는 군정학습이 진행되게 되였다.이 과정에 대원들이 사상적으로 각성되고 위대한 수령님의 로선과 방침을 더욱 깊이 체득하게 되였으며 사상적으로 변질된 혁명의 배신자의 정체가 드러나게 되였다.

어떤 시련과 난관속에서도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으로 무장하기 위한 학습을 심화시켜나가신 김정숙동지의 숭고한 모범이야말로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위업을 힘있게 다그쳐나가는 오늘의 총진군에서 철저히 구현해나가야 할 귀중한 본보기이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확고히 체득하시고 수령님의 로선과 어긋나는 잡소리들을 즉시에 가려내여 철추를 내리신것은 우리 당사상일군들이 따라배워야 할 고귀한 귀감이다.

수령의 사상의 순결성을 고수하는것은 혁명적사상공세의 중요한 요구이다.수령이 창시한 위대한 사상에 의하여 혁명의 승리가 이룩된다.이로부터 혁명의 원쑤들은 위대한 사상에 잡균을 퍼치여 변색되게 하고 당의 사상진지를 허물기 위해 미친듯이 날뛰고있다.

국제사회주의운동의 력사는 로동계급의 수령이 창시한 사상에는 그것을 수정하거나 말살하려는 원쑤들에 의해 이러저러한 잡균이나 잡음들이 따라다니였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그 잡사상들이 자라나 돌이킬수 없는 사태를 빚어낸 실례들이 력사에는 수없이 많다.

그러므로 혁명적인 사상공세를 벌리자면 수령의 사상을 거세하려는 온갖 이색적인 사상을 옳게 가려보고 제때에 제거해버려야 한다.

그러나 그 잡균,잡음이 누구에게나 다 보이고 들리는것은 아니다.눈과 귀가 밝은 사람에게 먼저 보이고 들린다.그 눈과 귀를 밝게 해주는것은 바로 수령의 혁명사상이다.수령의 혁명사상을 자기의것으로 만든 사람만이 그와 어긋나는 미세한 잡사상까지도 제때에 가려볼수 있다.

청봉밀영에서 엄광호가 남패자회의의 전략전술적방침을 비방중상할 때에도 밀영의 일부 대원들은 그의 말마디들에 은페되여있는 사상적독소를 발견하지 못하였다.

엄광호의 궤변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다른 불순한것을 발견하고 즉시적인 타격을 가하신분은 바로 김정숙동지이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남패자회의에서 제시된 새로운 방침을 받아안은 그날 한밤을 우등불곁에서 꼬박 지새우시며 그 진수를 파악하시였다.별들도 지쳐 잠들었지만 조성된 난국을 타개하고 우리 혁명을 앙양에로 이끌수 있는 위대한 수령님의 전략전술적방침에 무한히 감동되시여 초저녁의 그 몸가짐을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않으신채 수령님의 사상을 체득하시며 새날을 맞으시였다.

이처럼 김정숙동지께서는 항일혁명에 참전하시여 피바다,불바다를 헤쳐오신 전기간 어느 하루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사상과 로선,방침학습을 중단하지 않으시였으며 언제나 자자구구 따져가시며 심장속에 깊이 새겨넣으시는것을 투쟁과 생활의 철칙으로 삼으시였다.하여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의도를 그 누구도 따를수 없는 경지에서 가장 폭넓고 심도있게,정확하게 파악한 사상의 강자가 되시였다.

그러하시였기에 엄광호의 말에서 미세한 잡음이 울렸을 때 그것을 즉석에서 식별해내실수 있었던것이다.

예리한 사상적안목으로 원쑤의 흉심을 발가놓으신 김정숙동지의 투쟁은 당사상일군들에게 당에서 일단 결론한 문제를 흥정하려는 현상,우리 당의 령도업적을 음으로양으로 훼손시키는 현상,당적,계급적원칙에서 탈선하여 우리 내부에 쉬를 쓸게 하는 요소들을 제때에 간파하자면 위대한 대원수님들과 경애하는 원수님의 사상을 자기의 뼈와 살로 만들어야 한다는것을 산모범으로 보여주고있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목숨으로 지켜싸우신것은 혁명적사상공세의 앞장에 선 당사상일군들이 따라배워야 할 가장 숭고한 모범이다.

혁명적사상공세를 힘있게 벌려나가자면 당사상일군들이 령도자의 사상을 목숨으로 옹호하고 령도자의 구상을 한몸바쳐 꽃피우려는 투철한 신념을 지녀야 한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혁명앞에 가장 엄혹한 난관이 가로놓여있고 자신의 생사조차 가늠하기 어려웠던 시기에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을 목숨으로 옹호하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로선,방침대로만 싸우면 혁명은 반드시 승리하게 된다는 확고한 믿음을 간직하고계시였다.

바로 이런 신념이 있었기에 김정숙동지께서는 이른바 간첩단사건을 조작하고 녀대원들에게까지 악착스런 고문을 들이대던 엄광호와 정면으로 대결하여 싸우실수 있었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권위를 옹호하여 불사조가 되여 싸우시는 김정숙동지를 굴복시킬수 없다는것을 뒤늦게나마 깨달은 엄광호는 주력부대가 일제의 《토벌》에 다 흩어져버리고 눈속에서 얼어죽었다는 《소식》을 날조하면서 그 무슨 《자백》을 강요하였다.

하지만 김정숙동지께서는 혁명의 배신자로 전락된 그자에게 《네놈이 그따위 독설로 우리를 놀래울수 있다고 생각하느냐.사령관동지께서는 건재하시여 우리 혁명을 이끌고계신다.우리 유격대원들과 전체 인민이 사령관동지를 목숨으로 보위하고있다.우리는 사령관동지를 영원히 높이 우러러모시며 충성다할것을 맹세한 사람들이다.살아도 죽어도 우리는 사령관동지께 드린 충성의 맹세를 영원히 저버리지 않을것이다.이것을 똑똑히 알아두라.》고 불같이 호령하시였다.

이처럼 김정숙동지께서는 사령부와 멀리 떨어져계시였어도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지켜 신념을 굽히지 않고 견결히 싸우시였으며 마침내는 승리자가 되여 수령님의 품에 다시 안기시게 되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엄광호의 죄행을 폭로하는 심판장에서 이렇게 열변을 터치시였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높은 정치적각성과 혁명적신념을 가지고 사령관동지의 혁명사상을 견결히 옹호고수하여야 하며 그이의 혁명사상을 헐뜯는 현상에 대하여서는 날카로운 투쟁을 벌려야 합니다.

사령관동지의 혁명사상을 목숨으로 지킵시다.이것은 우리의 가장 숭고하고 영예로운 임무입니다.》

이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으로 철저히 무장하신 김정숙동지의 심장에서만이 터져나올수 있는 웨침이였다.

당사상일군들은 바로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 지니시였던 이 숭고한 풍모를 더하지도 덜지도 말고 그대로 따라배워야 한다.

그래야 우리 당의 사상사업원칙을 베고 죽는 진짜배기혁명가,당의 목소리를 알려주기 위하여 어떤 시련도 헤쳐나가는 참다운 전위투사,열백밤을 패가며 당정책을 학습하고 지식과 기술을 배우는 열혈의 인간이 될수 있으며 혁명적사상공세를 힘있게 벌려나갈수 있다.

지금 미제를 비롯한 제국주의반동세력들은 우리 당의 유일사상을 신념으로 삼고 부닥치는 애로와 난관을 용감하게 뚫고나가는 우리 인민의 핵무기보다 더 위력한 사상과 불굴의 신념을 허물어보려고 반공화국고립압살책동과 반동적사상문화침투책동을 더욱 악랄하고 끈질기게 벌리고있다.

당사상일군들은 걸출한 사상리론가이시며 탁월한 령도자이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만 계시면 주체의 선군혁명위업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굳은 신념과 누가 최후에 웃는가를 보자는 든든한 배짱을 가지고 정세가 준엄하고 난관이 겹쌓일수록 사상전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올림으로써 군민의 사상정신력을 최대로 발동하여 최후의 승리를 앞당겨나가야 할것이다.

수령결사옹위의 고상한 풍모를 보여준 훌륭한 소행

구장군안의 일군들과 주민들,군에 출장으로 내려갔던 중앙과 도의 일군들,인민군군인들이 불길속에 뛰여들어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태양상초상화와 당의 기본구호들을 안전하게 모셔내오는 소행을 발휘하여 사람들의 심장을 뜨겁게 울려주고있다.

이들의 소행은 당의 품속에서 자라난 우리 인민이 얼마나 투철한 수령결사옹위정신의 소유자들인가를 잘 보여주고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수령을 높이 우러러모시려면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확고한 사상적각오와 결심으로 간직할뿐아니라 수령을 그 어떤 사심도 없이 진심으로 모시려는 깨끗한 마음과 수령을 자기 운명의 은인으로,어버이로 모시고 수령의 은덕에 보답하려는 숭고한 의리심을 간직하여야 하며 그것을 일상생활에서 공고히 하고 실천활동에 철저히 구현하여야 합니다.》

지난 3월 31일 저녁 8시 20분경이였다.

군문화회관에서 뜻밖에 화재가 발생하였다.이날따라 바람이 세차게 불다나니 불길은 사정없이 번져갔다,사람들이 삽시에 회관으로 달려가기 시작하였다.바로 그들의 앞장에서 비호같이 회관의 문을 열어제끼고 뛰여드는 사람이 있었다.구장공업전문학교 2학년 학생 유명혁동무였다.

그보다 한걸음 앞서달리는 사람은 문화회관에서 일하고있는 안명찬동무였다.그들은 서로 앞서거니뒤서거니 하며 달렸다.그들의 생각은 하나였으니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태양상초상화를 한시바삐 안전하게 모셔내오는것이였다.

이윽고 회관의 무대가까이에 있는 한 방에 이른 그들은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태양상초상화를 안전하게 모셔내오기 위해 안깐힘을 썼다.군의 김일성김정일주의연구실에서 일하고있는 전영일,군청소년체육학교에서 일하는 김남혁동무들이 힘을 합치였다.천정에서 떨어지는 불뭉치가 사정없이 머리와 팔에 닿았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초상화에 한점의 불티라도 튀지 않도록 하는데 온 신경을 썼다.

또다시 불길속에 뛰여든 안명찬동무가 군의 어느 한 단위에서 일하는 오공찬,백룡호동무들과 함께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태양상초상화를 안전하게 모셔내오고있을 때 유명혁동무는 회관의 무대쪽으로 달리였다.시꺼먼 연기가 날리는 속에 구호가 어렴풋이 안겨왔다.

《조선인민의 모든 승리의 조직자이며 향도자인 조선로동당 만세!》

시간이 한초한초 흘렀다.그는 구호를 내리우기 위해 옆에 놓여있던 길다란 나무판대기를 벽체에 대고 오르려고 애썼으나 그때마다 미끄러지군 하였다.심장이 타드는듯 하였다.그때 누군가가 급히 다가와 그의 잔등을 툭 쳤다.김남혁동무였다.

《내 어깨우에 올라서라구.》하고 말하고난 그는 익숙된 동작으로 유명혁동무가 깍지낀 자기의 손을 밟고 몸을 솟구치게 하였다.유명혁동무는 몸을 솟구기 전에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그러자 김남혁동무는 《제대군인이 뭘 주저하나.군대식으로 빨리!》하고 소리쳤다.그는 김남혁동무가 어디서 일하는 누구인지 미처 몰랐다.더우기는 그가 수많은 병사들을 거느렸던 제대군관이라는것을 알리 없었다.애써 노력한 끝에 그들은 구호를 안전하게 내리울수 있었다.

그무렵 소식을 듣고 뒤따라 달려온 군당위원회 부원 강철동무를 비롯한 여러명의 일군들과 근로자들이 회관으로 뛰여들었다.그들은 사정없이 몰려오는 연기로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속에서 손더듬을 해가며 사무실들에 모셔진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초상화와 대원수님들의 자애로운 영상을 모신 미술작품을 안전하게 모셔내왔다.일군들과 근로자들이 저마다 희생을 무릅쓰고 회관으로 뛰여들었다.

천정에서는 불뭉치가 쉬임없이 떨어져내렸고 연기로 하여 숨쉬기조차 힘들었지만 누구 하나 물러설념을 하지 않았다.

군의 인민보안원들 그리고 평안북도인민보안국 아래단위에서 복무하고있는 류진혁동무를 비롯한 여러명의 사관들이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태양상초상화와 당의 기본구호들을 회관밖으로 정중히 모셔내가도록 철저한 안전대책을 세우면서 사람들의 생명에 위험이 없도록 각별히 관심을 돌리였다.그러던 그들의 눈앞에 뜻밖에도 여러명의 학생들이 나타났다.그들은 두팔을 벌려 학생들의 앞을 막아서며 소리쳤다.

《위험하오.학생들은 들어서지 마시오.》

그러자 심주혁학생이 당돌하게 맞받아 소리쳤다.

《우리도 이젠 군인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들은 얼마후이면 군복을 입게 될 구장군 구장고급중학교 졸업생들이였다.

군사임무수행중에 구장군을 지나고있던 인민군군인들과 출장으로 군에 내려와있던 국가계획위원회 일군들인 리기철,류남철,운전사인 전송남동무들과 평안북도인민위원회 일군인 리철동무도 불붙는 회관으로 뛰여들었다.그들의 머리우로 시꺼먼 먼지가 날리고 불덩어리들이 쉴새없이 떨어졌지만 누구 하나 제 목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원수님들의 태양상초상화는 어떻게 되였소?》

이것이 그들이 문화회관에 뛰여들며 사람들에게 한 첫 물음이였다.

《안전하게 모시였소.》하고 누군가가 뛰여가며 웨치는 소리에 그들은 안도의 숨을 쉬며 당의 기본구호를 내리우기 위한 전투에 달라붙었다.

인민군군인들과 일군들은 서로서로 어울려 당의 구호를 한시바삐 내리우기 위해 전투를 벌리였다.리철동무와 전송남동무는 손더듬하여 찾은 구호를 내리우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마음먹은대로 되지 않았다.5m정도높이에 든든한 고정끈이 있었던것이다.전송남동무가 곁에 있던 책상우에 올라 팔을 뻗치려고 애를 쓸 때 리철동무가 《송남동무,내 어깨를 밟으라구.》하고 소리치며 어깨를 들이댔다.다른 군인들과 일군들도 서로서로 어깨로 탑을 쌓고 올라서서 전투를 벌리였다.드디여 구호가 무사히 내리워졌다.불길이 타래치는 속에 군인들과 일군들은 구호의 글발을 한없이 격동된 심정으로 한자한자 읽어내려갔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을 선군태양으로 천세만세 높이 받들어모시자!》

이렇게 일군들과 근로자들,군인들의 불같은 충정에 의하여 당의 기본구호들도 모두 안전하게 지켜낼수 있게 되였다.

사나운 불길속에 서슴없이 뛰여들어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태양상초상화와 당의 기본구호들을 안전하게 모셔내온 군안의 일군들과 근로자들,청년학생들은 모두 어디서나 만날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였다.그들은 누구나 하나같이 말하였다.

《우리는 모두 당의 품속에서 자랐습니다.달리는 살수 없는 우리들이 아닙니까.》

구장공업전문학교 학생인 유명혁동무는 전쟁로병인 할아버지와 제대군관인 아버지 그리고 두 형의 뒤를 이어 군복을 입고 최전연초소에서 군사복무의 하루하루를 위훈으로 수놓은 제대병사이다.그 나날은 자신을 수령결사옹위정신으로 만장약된 혁명적군인정신의 소유자로 억세게 준비하는 과정이기도 하였다.군문화회관 로동자인 안명찬동무의 모교는 구장군 김광철고급중학교이다.학창시절 위대한 장군님께서 1990년대의 첫 영웅으로 내세워주신 김광철영웅처럼 삶의 순간순간을 빛내일 맹세를 안고 조국보위초소에 섰던 그는 제대후에도 늘 그런 마음으로 살며 일하였다.

군당위원회 부원인 강철동무도 당의 크나큰 믿음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맡은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였다.

구장고급중학교 졸업생들인 심주혁,차평일,리윤일,전금성,현일광,권정민,류현오동무들의 정신세계는 또 얼마나 훌륭한것인가.

《우린 학창시절에 선생님으로부터 혁명적구호문헌을 한목숨바쳐 구원한 무재봉의 17명영웅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처럼 생을 빛내일것을 결의다졌습니다.조국보위초소에서도 우리는 그 결의를 언제나 잊지 않고 수령결사옹위의 제1선에 설것입니다.》

이것이 타래치는 불길속에서 장한 일을 한 구장고급중학교 졸업생들의 한결같은 심정이였다.

국가계획위원회에서 일하고있는 리기철,류남철,전송남동무들도 군사복무의 나날 당과 수령의 부름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여들던 강의한 정신력의 소유자들이였다.

불길속에 뛰여들어 수령결사옹위정신을 높이 발휘한 사람들 누구나 다 그런 사람들이였다.

자기를 키워주고 내세워준 당의 품을 떠나 한시도 살수 없다는것을 실생활을 통하여 삶의 진리로 받아안았기에 그들은 불길속에 들어가면 죽을수도 있다는것을 알고있었지만 서슴없이 그 길을 택하였던것이다.

그들모두의 심장에 고동친것은 하나였다.

-수령결사옹위에 우리의 삶도 미래도 있다.

이런 사상의 강자,신념의 강자들이 천만의 대오를 이루고있기에 우리 조국은 그 어떤 대적이 달려들어도 끄떡없는 일심단결의 보루로 불패의 위용을 떨치고있는것이다.

사회주의대지를 가꾸어가는 미더운 농촌초급일군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오늘 농업부문앞에 나서는 가장 중요한 과업은 농사를 잘하여 농업생산을 결정적으로 늘이는것입니다.》

사회주의수호전의 전초선,경제강국건설의 주타격방향인 농업전선에서 혁신의 봉화가 활활 타오르고있다.

사회주의농촌테제발표 50돐이 되는 뜻깊은 올해에 농업생산에서 새로운 앙양을 일으키기 위한 오늘의 총공격전의 앞장에 대동군 마산협동농장 제10작업반 반장 장현철동무,룡천군 신암협동농장 제2작업반 3분조장 장영삼동무,어랑군 운곡협동농장 제3작업반 2분조장 최순녀동무와 같은 미더운 농촌초급일군들도 서있다.

몇해전까지만 하여도 장현철,장영삼,최순녀동무들이 맡은 작업반과 분조들은 알곡생산을 비롯한 여러 면에서 앞선 단위가 못되였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을 농촌초급일군으로 내세워준 당의 믿음과 기대에 높은 농업생산성과로 보답할 불타는 일념을 안고 언제나 대오의 기수가 되여 이악하게 투쟁해나감으로써 짧은 기간에 작업반과 분조농사에서 전국의 본보기를 창조하는 놀라운 성과를 이룩하였다.

장현철동무가 대동군 마산협동농장 제10작업반 반장으로 일하기 시작한것은 몇년전이다.작업반도 그때 무어졌다.

너무도 메마르고 농사짓기가 힘들어 알곡을 정보당 수백㎏밖에 수확하지 못하던 곳이여서 작업반조차 뭇지 못했던것이다.얼마 안되는 논은 지력이 낮고 랭해를 많이 받는데다가 마산리라는 이름그대로 산이 많은 곳이여서 밭마저 모두 비탈밭들이였다.보습날조차 제대로 댈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모든것이 지나간 일로 되였다.작업반은 오늘 마산리는 물론 군적으로도 제일 높은 알곡소출을 내고있다.해마다 알곡생산계획을 넘쳐 수행하는 일 잘하는 작업반,3대혁명붉은기를 수여받은 자랑많은 단위로 이름떨치고있다.

작업반의 전변을 두고 그 비결을 묻는 사람들에게 제10작업반 농장원들 누구나 한목소리로 말한다.

《허리치게 쌓인 숫눈길도 먼저 걷는 사람이 있어야 열릴게 아닙니까.우리 작업반포전길에 난 첫 자욱의 주인은 언제나 작업반장입니다.그 일본새와 배짱이 오늘과 같은 현실을 안아왔지요.》

작업반장으로 임명된 날 장현철동무는 해가 기울도록 작업반포전들과 마을을 돌고 또 돌았다.보면 볼수록 모든것이 어설프고 아름찼다.갓 제대되여 아직 농사경험도 부족한 그였다.참으로 생각이 깊었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이였다.재너머 월풍동포전을 돌아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그의 귀전에 한생을 농사로 늙어왔다던 한 로인의 이야기가 좀처럼 사라질줄 몰랐다.

《아무리 척박한 땅이라도 주인다운 립장에서 제 집터밭처럼 걸구면 안될턱이 있겠소.그런 각오로 달라붙도록 사람들을 이끄는 기수가 있어야지요.》

깊어지는 생각을 안고 솔숲 우거진 고개마루에 오르니 멀리서 깜빡이는 불빛들이 안겨왔다.마을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였다.문득 그의 뇌리에 보람찼던 군사복무시절이 떠올랐다.

어느해 겨울밤 야간행군길에 오른 그의 중대가 산길을 톺아오를 때였다.부르튼 발을 끌고 힘겹게 대오를 따라가는 그에게 중대장이 다가와 이렇게 말하였다.

《현철이,산아래 저쪽에 농장마을불빛이 보이지? 저 불빛을 떠나온 고향마을의 불빛이라고 생각하면 힘이 날거야.우리가 남다 자는 깊은 밤에 이런 숫눈길을 헤쳐가는게 무엇때문이겠나.》

자기의 배낭을 빼앗다싶이 메고 달리는 중대장의 잔등에서 여러개의 총신들이 달빛을 받아 번쩍거렸다.…

(그렇다.내가 주인이 되고 기수가 되여 제일 무겁게 짐을 짊어지고 농장원들의 앞장에 서야 한다.내가 걷지 않은 길,내가 해보지 않은 일을 농장원들에게 요구할수는 없지 않는가.)

다음날 작업반원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장현철동무는 누구에게라없이 이렇게 물었다.

《우리 작업반이 일어설 방도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대답이 없었다.잠시후 농장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였다.땅자체가 못쓸 땅이라는것,논밭이 모두 산탁에 붙어있거나 물곬과 떨어진 곳이여서 농사짓기에도 불리하다는것,거름원천도 별로 없다는것 등…

농사를 잘 짓기 위한 방도가 아니라 농사를 지을수 없다는 그들의 이야기에 장현철동무는 두손에 갈라쥔것을 농장원들에게 펴보이며 말했다.

《왼쪽의것은 우리 작업반포전흙이고 오른쪽의것은 어느 집터밭의 흙입니다.한눈에도 두 흙의 차이가 알리겠지요.그런데 문제는 이게 모두 우리 마산땅의 흙이라는겁니다.》

웅성이던 작업반원들이 갑자기 물을 뿌린듯 조용해졌다.

《머지않아 우리 작업반도 남 보란듯이 어깨를 쭉 펴게 될것입니다.》

이렇게 격식없는 모임을 끝낸 장현철동무는 아무말없이 거름지게를 지고 마을앞산쪽으로 향했다.그의 뒤모습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그렇게 큰 거름지게는 난생 처음 보았던것이다.그후 내버려지다싶이 했던 땅이 잠에서 깨여나기 시작했다.주인들의 손길이 가닿기 시작했던것이다.

장현철동무는 낮과 밤이 따로 없이 뛰고 또 뛰였다.사람들은 그가 언제 일터로 나오고 언제 포전을 뜨는지 모르겠다고,새벽에는 앞쪽을 봐야 작업반장을 찾을수 있고 저녁에는 뒤쪽을 봐야 그를 만날수 있다고들 했다.

거름실어나르기가 한창일 때였다.농장원들은 비탈이 심한 밭들은 할수 없는것으로 생각하였다.작업조직을 할 때 그런 밭들을 아예 셈에 넣지 않는 분조장들도 있었다.

어느날 아침 장현철동무는 분조장들을 이끌고 작업반적으로 제일 조건이 불리한 밭으로 올랐다.맨몸으로도 오르기 힘든 밭꼭대기에 이른 순간 분조장들은 자기 눈을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고랑마다 질좋은 거름이 무드기 쌓여있는것이 아닌가.거름더미들에서는 아직도 더운 김이 피여오르고있었다.

《오늘 새벽에 제가 져나른 거름더미들입니다.한번 져나르는 거름량과 밭등성이까지의 거리를 측정해보았는데 장정로력 두어명이면 여기 있는 밭들에도 모두 거름을 낼수 있습니다.》

작업반장의 이야기에 분조장들은 머리가 숙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장현철동무는 이렇게 자신과 작업반초급일군들에 대한 요구성을 부단히 높여나갔다.

벼모내기와 강냉이심기가 끝난 어느날이였다.자정이 가까와올무렵 늦어진 애벌김매기를 마저 끝내고 집에 들어서는 그에게 안해가 말했다.

《여보,작업반장이 꼭 그렇게 해야만 하나요?분조들에 분담을 준 다음 조건보장과 총화를 따라세워도 되겠는데.》

안해가 자기의 몸상태를 념두에 두고 하는 말임을 모르지 않았지만 장현철동무는 이렇게 말하였다.

《군대로 말하면 작업반은 중대와 같다고 할수 있소.작업반장은 중대장이구.당에서는 나를 믿고 수십정보나 되는 땅을 맡겨주었는데 지휘관인 내가 어떻게 몸이 불편하다고 가만히 앉아있을수 있겠소.》

그날밤 장현철동무는 안해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그러나 사실 그것은 자기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였다.

아직 작업반의 모든 일이 당이 바라는 높이에 이르지 못했다는 생각,하루를 열백으로 쪼개서라도 줄달음쳐살아야 한다는 자각으로 그는 불편한 몸을 애써 가누며 열정적으로 일했다.

그는 포전에서는 깐진 실농군이였고 작업반꾸리기전투장에서는 솜씨있는 축조공,미장공이였다.밤에는 어떻게 하면 농사를 더 잘 지을수 있는가를 연구하고 사색하며 손에서 책을 놓을줄 몰랐다.

그렇게 날과 달이 흐르는 속에 첫해 가을이 왔다.봄내,여름내 애써 가꾼 이삭들이 포전마다 무겁게 실리여 전해에 비해 무려 10배의 알곡소출을 내게 되였다.그전에는 생각조차 할수 없었던 알곡소출이였다.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자기들의 손끝에서 이런 기적이 이루어지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것이다.

첫해농사에서 신심을 얻은 농장원들모두가 다음해부터 두팔을 걷어붙이고 떨쳐나섰다.

고리형순환생산체계를 도입하고 집짐승우리에서 나오는 두엄은 물론 도시거름,풀거름과 개바닥흙을 비롯한 거름원천을 남김없이 찾아 논밭에 냈다.마을에 양어장을 꾸리고 버섯재배장과 남새온실도 번듯하게 건설해놓았다.

해마다 알곡소출이 높아지고 살림살이가 윤택해지자 신바람이 난것은 농장원들이였다.자체의 힘으로 알곡생산계획을 넘쳐 수행하여 나라쌀독에 보탬을 주고 분배몫도 늘어가니 그자체가 곧 농장원들에 대한 말없는 교양이고 고무였다.그런 가운데 농사일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던 농장원들도 작업반이 자랑하는 혁신자로 이름떨치게 되였다.

올해초 작업반에 경사가 났다.다른 작업반,다른 농장과는 달리 이곳 작업반에서는 작업반장과 분조장들모두가 전국농업부문분조장대회에 참가하게 되였던것이다.

경애하는 원수님을 모시고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은 끝없는 감격속에 고향마을로 돌아온 날 장현철동무는 농장의 작업반장,분조장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린 인민들의 먹는 문제때문에 그토록 마음쓰신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소원을 아직까지 못다 풀어드렸습니다.그런데도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해놓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이 더 많은 우리들에게 대해같은 은정을 베풀어주시였습니다.사랑과 은정에는 보답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날 장현철동무는 알곡증산을 위한 사회주의경쟁을 호소하였다.그리고 그달음으로 작업반에 내려가 농장원들을 당면한 영농전투에로 불러일으켰다.

그리하여 작업반은 올해 3월초까지 정보당 수십t의 질좋은 유기질복합비료를 포전에 내고 수백t의 흙보산비료를 생산하였으며 근 10정보의 랭습지를 개량하고 영양모에 의한 모내기면적을 80%까지 끌어올리는 성과를 이룩하였다.작업반의 올해농사도 문제없다.

오늘도 작업반원들의 앞장에서 남먼저 헌신의 자욱을 찍어가는 장현철동무,

농장포전의 곳곳마다 찍혀지는 그의 발자욱들은 말해주고있다.온 나라 농장의 작업반장들이 남먼저 찍혀지는 발자욱의 주인공이 될 때 나라의 농사가 잘될수 있다고.

지난해 12월 어느날이였다.

운전군 운하협동농장의 한 작업반에 꾸려진 온실의 여기저기를 부지런히 돌아보는 사람이 있었다.관리공들의 이야기를 한마디라도 흘릴세라 수첩에 적어넣으면서 온실에서 실한 벼모를 키워낸 경험을 배우는 그는 룡천군 신암협동농장 제2작업반 3분조장 장영삼동무였다.

벼모를 키워 내보낸 다음에는 남새와 버섯을 심고 가꾸는데 그야말로 꿩먹고 알먹기라며 신이 나서 설명하던 온실관리공이 신암협동농장이야 농사를 잘하기로 소문난 곳인데 왜 여기까지 왔는가고 느닷없이 물었다.

《나라의 쌀독을 책임진 우리들인데 어떻게 만족이 있을수 있겠습니까.한g의 쌀이라도 더 생산하여 농민의 본분을 다 하자면 아직 멀었습니다.》

이런 지향을 안고 장영삼동무는 알곡소출을 높이기 위해 온갖 열정을 다 바쳐왔다.그의 가슴속에는 언제나 현대의 농사는 과학농사이며 모든 영농작업이 기술작업이라고 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가르치심이 깊이 새겨져있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 분조장으로 일하게 되였을 때 장영삼동무의 가슴은 흥분으로 높뛰였다.농장에 찾아오시여 비에 질벅해진 논두렁길을 걸으시며 농사작황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시고 일군들에게 사회주의분배원칙을 잘 지키고 분조관리제의 우월성을 발양시키며 농사를 과학기술적으로 지어 알곡생산을 높일데 대하여 간곡히 이르시던 어버이수령님의 자애로운 모습이 무연히 펼쳐진 협동벌과 함께 어려왔다.

절세위인들의 불멸의 령도업적이 뜨겁게 깃들어있는 영광의 대지우에 성실한 땀방울을 아낌없이 뿌려 알찬 이삭만이 무르익게 할 결심이 그의 가슴속에 바위처럼 자리잡았다.

열의는 높았지만 그때까지만 하여도 장영삼동무는 과학농사의 원리를 깊이 파악하고있지 못했다.그에게 큰 충격을 준것은 분조장으로 임명된 첫해의 농사작황이였다.들인 품은 컸으나 전해와 별반 차이가 없었던것이다.

그는 자기의 사업을 심중히 돌이켜보았다.뼈심을 들여 농사를 지으면 그만큼 알곡소출이 따라설것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을 뉘우치며 안타까운 마음을 터놓는 그에게 관리위원장이 의미깊은 어조로 말하였다.

《뚝심으로만 농사를 지을 때가 아니지 않나요.과학기술지식이 부족하면 분조농사의 주인구실도 바로 해나갈수 없답니다.과학농사의 참된 주인이 될 때 영광의 이 땅을 가꾸는 진짜배기실농군이 될수 있습니다.》

관리위원장의 그 말이 장영삼동무의 가슴속에 그루처럼 박히였다.

-열심히 배우자.과학농사로 영광의 이 땅을 더욱 기름지우고 풍요한 가을만을 안아오자.

이런 결심과 함께 장영삼동무는 모든 영농공정들의 과학기술적요구를 환히 알기 위해 이악하게 달라붙었다.작업의 쉴참에 포전머리에서도,작업이 끝난 후 포전에서 돌아오는 길가에서도 그의 손에는 언제나 책이 떨어질줄 몰랐다.하루일을 끝마친 저녁이면 작업반 농업과학기술지식선전실로 찾아가 작업반기술원의 방조를 받아가며 밤늦게까지 농업과학기술지식들을 습득했다.모든 영농공정들의 적기보장문제,농작물의 생물학적특성과 기후풍토조건 등을 반영한 해당 작업수행의 기술적문제를 비롯하여 그는 실천에서 써먹을수 있는 산 지식을 하나하나 배우며 탐구의 세계를 넓혀갔다.이러한 과정에 알곡소출을 결정적으로 높일수 있는 방도는 과학농사에 있다는것을 더욱 절감하게 되였다.

그의 일본새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거름을 내여도 매 포전들의 지력을 기술적으로 따져가며 그에 맞게 내였고 작업분담을 줄 때에도 분조원들에게 진행하게 될 작업에서 나서는 과학기술적문제들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군 하였다.모판관리공들에게 가면 온습도관리,모영양관리,병충해방지 등 모판관리에서 나서는 요구들을,시약시비공들에게는 병해충예찰과 구제사업에서 소홀히 여기지 말아야 할 문제들을,논물관리공들에게는 물고를 알맞게 조절하도록 알기 쉽게 일깨워주었다.모내는기계도 직접 타보면서 벼포기사이의 간격을 정확히 보장하도록 하였다.

그는 자기 집은 물론 분조원들의 집에서 생산되는 거름도 온도와 습도를 정확히 보장하면서 기술적으로 썩이도록 하였다.그렇게 마련한 질좋은 거름들이 해마다 분조의 포전들에 정보당 수십t씩 덮이여 기름진 지층을 이루었다.

우리 분조장은 정말 모르는것이 없다고 하면서 분조원들이 혀를 찼다.분조의 알곡소출이 다른 분조들보다 높아진 현실앞에서 과학농사에 대한 분조원들의 견해도 달라졌다.

다른 분조장들이 자기 분조와 별반 차이가 없는 포전들에서 알곡소출을 높일수 있은 비결을 물을 때면 장영삼동무는 확신성있게 말해주었다.

《과학농사에 알곡증산의 예비가 있습니다.우리 분조장들이 과학농사를 대하는 관점과 태도에 따라 분조의 한해농사가 좌우됩니다.그러니 더 많이 배워서 과학농사의 참된 주인이 될 때 이 땅에 열리는 낟알의 무게도 더 무거워질것입니다.》

이렇게 장영삼동무는 과학농사의 하루하루로 영광의 땅우에 풍요한 가을만을 안아왔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마련해주신 전국농업부문분조장대회에 참가하였던 장영삼동무가 돌아왔을 때 그의 가방속에는 여러개의 부피두툼한 수첩들이 들어있었다.그 수첩들에는 랭해가 심한 동해지구에서 두벌농사,세벌농사를 실속있게 하고있는 함주군 동봉협동농장과 정보당 10t이상의 소출을 내고있는 사리원시 미곡협동농장을 비롯하여 전국의 수많은 단위의 분조장들이 들려준 귀중한 경험들이 빼곡이 적혀있었다.수첩들을 펼쳐보던 분조원들의 미더운 눈길이 장영삼동무에게로 쏠리였다.

《우리 분조장이 이렇게 많은 보물수첩들을 안고온걸 보니 올해농사에서 통장훈은 문제없구만요.》

우리 당의 농업정책과 주체농법을 실농군의 기준자로 삼고 과학농사의 선구자가 될 일념으로 심장을 불태우며 장영삼동무는 오늘도 드바삐 달리고있다.

분조장들은 농사일에서 모르는것,막히는것이 없어야 하며 현대농업과학기술지식을 소유하고 여러가지 농기계들을 능숙하게 다룰수 있게 준비하여야 한다고,분조장들은 새것에 민감하고 진취성이 강해야 하며 앞선 영농기술과 방법,좋은 농사경험들을 대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력사적인 서한의 구절들을 깊이 새겨보며.

오늘의 시대는 이런 과학농사의 참된 주인,진짜배기실농군들을 부르고있다.

단 1년사이에 정보당 1~2t정도였던 강냉이수확고를 7~8t으로 끌어올린 분조장!

어랑군 운곡협동농장 제3작업반 2분조장 최순녀동무를 한마디로 평가하라면 농장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한다.

운곡사람들도,그곳을 찾는 타고장사람들도 그 현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운곡협동농장 제3작업반 2분조의 전변은 말그대로 단 1년동안에 실현되였다.

최순녀동무는 14년전에 2분조장사업을 시작하였다.당시 분조는 농장적으로 제일 뒤떨어진 단위였다.분조에 부림소는 한마리밖에 없었고 소농기구들도 넉넉치 못하였다.운곡지방은 바다안개가 자주 끼고 랭해가 심하여 농사조건 또한 매우 불리하였다.

(내가 정말 분조를 꽤 이끌어갈수 있을가?)

이런 생각으로 옴해있던 그에게 리당일군이 힘을 주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벌써 수십년전에 우리 어랑땅을 찾으시여 함경북도라고 하여 강냉이를 7~8t 내지 못할 조건이 없다고 가르쳐주시였소.》

그러면서 리당일군은 처녀시절 경성군에 있는 한 공장에서 소문난 혁신자였고 여러해 작업반장사업도 해본 동무가 로동계급의 본때로 일한다면 무엇을 못해내겠는가고 덧붙였다.

최순녀동무의 눈앞에는 공장동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시집가는 그를 바래주며 그 어느곳에 가든 로동계급의 근본을 잊지 말라던 동무들이였다.

(그렇다!로동계급의 정신과 일본새로 일한다면…)

이렇게 결심을 굳히던 최순녀동무의 머리속에 번개불마냥 번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분조가 농장적으로 뒤자리를 차지하게 된것은 결코 농사조건이 나빠서만이 아니지 않는가.

문제는 농장원들이 분조일을 자기 일로 생각지 않는데 있었다.최순녀동무는 이것이 결코 말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보았다.

그가 분조사업을 맡은지 며칠후부터 하루일이 끝난 깊은 밤이면 달구지를 끌고 마을을 나서는 사람이 있었다.최순녀동무였다.

분조농사를 잘 짓자면 지력부터 높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진거름을 모아들이려는것이였다.온종일 분조원들의 앞장에서 일하고 밤은 밤대로 수십리길을 걷는다는것이 쉬운 일은 아니였다.하지만 물러설수 없었다.

한해농사를 위한 거름생산전투장에 날마다 쌓여지는 진거름더미를 보며 농장원들은 놀라와하였다.그것이 밤마다 분조장이 실어들인것이라는것을 알았을 때에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얼마전에는 자기 집의 구들장들을 들어내고 구들재를 파들고 나온 분조장이였다.

그때 분조장을 보며 감동과 의아함이라는 두 감정을 품었던 분조원들이였다.그러나 하루이틀도 아니고 매일같이 밤마다 달구지를 끌고 진거름을 모아들이려 먼길을 걷는 분조장을 보며 감동되는 마음이 더 컸다.

분조장이라고 왜 힘들지 않겠는가.그라고 이 추운 날씨에 집의 구들을 뜯으면 랭방에서 떨어야 한다는것을 모르겠는가.

분조원들은 머리가 숙어졌다.분조장의 말없는 이신작칙에서 분조원들은 자신들을 자책했다.

그러던 어느날 분조원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일터로 나오던 때였다.어느 짬에 식사를 했는지 분조장이 진거름달구지를 끌고 앞서가고있었다.

분조장을 뒤따라야겠다고 생각하며 걸음을 다그치던 분조원들의 귀전에 여무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제발 우리 학교에는 오지 마세요.동무들이 뭐라는지 알아요?》

분조장의 맏아들이 총알같이 던진 말이였다.그리고는 잔뜩 볼이 부어서 씽하니 달려갔다.맏아들의 뒤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있는 분조장의 어깨가 떨리는것이 알렸다.

분조원들이 달려갔다.

이른봄날씨에 까칠하게 튼 얼굴에 충혈진 눈,부르튼 입술,갈라터진 손…

분조장을 바라보는 분조원들의 눈가에 뜨거운것이 솟아올랐다.

그러는 분조원들에게 최순녀동무는 말하였다.

《아들애가 원망스러워 그러는것이 아니예요.농사군이 농사를 잘 짓지 못하니 아들애앞에서도 할 말이 없군요.어떻게 하나 올해농사부터 잘 지어야 할텐데…》

앉으나서나 오직 분조농사를 두고 안타까와하는 분조장의 마음에서 분조원들은 다시한번 머리를 숙이였다.

최순녀동무와 함께 밤길을 걷는 분조원들이 늘어났다.

저마다 부엌아궁이의 재를 들고나왔고 집짐승우리바닥을 파들고 나왔다.

거름더미이자 쌀더미라고 날마다 높아가는 거름더미를 보며 분조원들이 신바람나 하였다.그럴수록 최순녀동무는 영농공정마다 높은 목표를 세우고 분조농사를 적극 내밀었다.

씨뿌리기부터 과학기술적요구를 정확히 지키도록 하였고 김매기철에도 김매기와 후치질을 6회씩 보장하도록 요구성을 높이면서 자신부터 앞장에서 밭고랑을 탔다.

밭농사는 논농사보다 품이 곱절 든다.병해충피해막이와 강냉이개꼬리뽑기 등 어느 한 공정도 소홀히 대할수가 없는것이다.그럴 때면 최순녀동무는 포전에서 살다싶이 하였다.

장마철에도 포전에서 밤을 꼬박 새우며 한포기의 곡식도 상하지 않게 철저한 대책을 세우군 하였다.이렇게 지력을 높이고 비배관리에 힘을 넣은 결과 분조에서는 그해에 강냉이를 정보당 7.5t 거두어들이는 성과를 이룩하였다.

최순녀동무와 분조원들은 모두가 팔뚝같이 실한 강냉이이삭들을 수확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리였다.

어랑땅에 주신 어버이수령님의 유훈을 농장적으로 제일 마지막자리를 차지하던 자기들이 관철하였다는 긍지와 이악하게 노력하면 우리도 얼마든지 농사를 잘 지을수 있다는 희망이 가슴에 차올랐다.

분조원들은 분조농사이자 나의 농사이라는것을 실천으로 체험하였다.그해 농사경험을 귀중한 밑천으로 삼고 선진영농방법을 부단히 받아들여 분조에서는 해마다 알곡생산량을 늘여나갔다.

분조원들의 살림도 나날이 윤택해졌다.오늘 분조는 농장의 제일 앞자리를 차지하는 분조가 되였다.

지난 2월 전국농업부문분조장대회에 참가하여 경애하는 원수님을 모시고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은 최순녀동무는 심장으로 맹세다졌다.

(경애하는 원수님!우리 운곡땅에서도 어떻게 하나 강냉이를 정보당 10t이상 내겠습니다.)

이 불타는 맹세를 안고 최순녀동무는 오늘도 분조의 포전에 진심을 쏟아붓고있다.자기 집터밭을 가꾸듯…

어떻게 하나 농사를 잘 지어 인민들의 식량문제,먹는 문제를 원만히 해결함으로써 적들의 반공화국,반사회주의책동을 짓부셔버리기 위한 투쟁에서 농촌초급일군들이 지니고있는 임무는 매우 중요하다.

전국의 모든 협동농장의 작업반,분조장들을 비롯한 농촌초급일군들이 장현철,장영삼,최순녀동무들처럼 자기 단위의 농사는 자기가 책임진다는 주인다운 립장에 서서 이악하게 투쟁해나갈 때 나라의 농업생산에서는 획기적인 전환이 일어나게 될것이며 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위업은 그만큼 앞당겨지게 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