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신영복동무는 여느날과 같이 초소에 섰다.어둠속에 묻힌 사위는 고요했다.짙은 안개까지 서려 한치앞도 가려보기 힘들었다.신영복동무는 감시초소밖으로 나가 전지불을 켜들었다.아직은 초봄이라 날씨는 추웠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가.멀리서 은은한 기적소리가 울려왔다.기적소리가 가까와졌을 때 문득 자동차의 전조등불빛이 그의 눈을 때렸다.그는 자동차를 향해 정지신호를 보냈다.하지만 짙은 안개때문에 전지로 보내는 신호도,차단봉도 가려보지 못한듯 자동차는 속도를 늦춤이 없이 달려왔다.마치 결승선이라도 되는듯 건늠길을 향해 육박해오는 렬차와 자동차…
순간도 지체할수 없었다.
신영복동무는 자동차를 향해 두팔을 벌린채 쏜살같이 달려갔다.자동차가 급정거하며 멈춰섰다.그로부터 몇발자국앞으로 렬차가 지나갔다.
운전사가 뛰여내려 신영복동무를 안아일으켰다.
신영복동무의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지만 얼굴에는 웃음이 비껴있었다.…
이 이야기는 얼마전 우리가 오몽리역가까이에 있는 건늠길감시초소에서 신영복동무를 만나고있을 때 건늠길을 지나가던 한 운전사가 들려준 말이다.
우리는 그가 유조차운전사이며 20대의 젊은 청년이라는것밖에는 모른다.그가 바람을 일구며 차를 몰아간 후에야 이름이며 소속을 묻지 못했다는것을 깨달았다.신영복동무도 그를 몰랐다.하기야 20여년세월 건늠길감시원으로 성실히 일하면서 그가 무사히 떠나보낸 자동차들과 운전사들은 얼마나 많을것인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사람의 삶의 가치는 사회와 집단을 위하여 얼마나 이바지하였는가 하는데 따라 결정됩니다.》
신영복동무를 취재하러 왔다는 소식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가던 길을 미루고 일손을 멈추고 우리와 마주앉았다.
이 한가지 사실을 놓고도 오랜 세월 자기의 초소를 묵묵히 지켜온 그의 아름다운 정신세계에 대하여 엿볼수 있었다.
나이지숙한 한 철길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신영복동무는 처녀시절에 오몽리의 철길에서 일하였다.그후 제대군인청년과 가정을 이루었고 그의 생활은 철길을 떠나 검덕에서 흘렀다.그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것은 20여년전이였다.그의 품에는 남편의 사회주의애국희생증이 간직되여있었다.
그때 당시 그가 왜 고향으로 돌아왔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못하였다.
광산당조직에서는 남편을 잃은 신영복동무를 극진히 위해주고 아껴주었었다.
그는 어딜 가나 우선이였고 그에게는 늘 헐한 일감만 맡겨졌다.신영복동무는 생각이 깊어졌다.서로 돕고 이끌며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는 사회주의제도가 귀중하고 전사의 위훈을 그토록 값높이 내세워주는 당의 은덕이 고마울수록 더 많은 일을 하고싶었다.이렇게 되여 그는 광산을 떠났던것이다.
《처음 우린 영복동무를 미처 리해하지 못했댔습니다.은혜도 모르는 나약한 인간으로 생각했지요.》
50대의 한 녀성이 하는 말이였다.알고보니 그는 신영복동무와 동창생이였다.
신영복동무는 누구보다 자기를 리해해주어야 할 소꿉동무들까지도 자기를 곡해하는것이 야속하고 안타까왔다.하지만 그는 자기의 진정을 쉽게 터놓지 않았다.갈길은 멀고 험했다.
신영복동무는 건늠길감시원이 되였다.철도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그는 건늠길감시원의 임무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얼마후 그의 건늠길초소는 철길대는 물론 분국적으로도 손꼽히는 초소로 되였다.그러니 그에게는 늘 시간이 모자랐다.
그러던 어느날 밤이 깊어서야 집에 들어서던 그는 깜짝 놀랐다.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던것이다.
아이들을 부르는 신영복동무의 목소리가 어둠속으로 애타게 울려갔다.그때 건너편마을쪽에서 대답소리가 들려왔다.신영복동무는 어푸러질듯 달려갔다.누군가가 아이들을 앞세우고 마주오고있었다.철길대의 일군이였다.
《아이들끼리 있더라니 우리 집엘 데려갔댔소.빨리 돌아선다는게 좀 늦었구만.》
새옷들을 입고 좋아라 웃고 떠드는 아이들을 품에 안는 신영복동무의 얼굴로는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내렸다.
이런 밤,이런 날이 그 얼마였으랴.
신영복동무에게는 십여개의 보풀인 수첩들이 있다.
거기에는 그가 수십년세월 맞고보낸 화차며 려객렬차들에 대한 자료들이 적혀있다.
수첩의 갈피에는 이런 수자들도 적혀있다.
《도랑치기 25m,싸리나무심기 15그루,화단가꾸기…》
이것은 신영복동무가 평범한 하루에 진행한 작업량이다.그러니 그는 수십년세월 얼마나 많은 나무와 꽃들을 가꾸고 철길을 관리하였겠는가.
《건늠길초소를 지날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군 합니다.감시원어머니처럼 살수 있을가 하구말입니다.감시원어머니는 사람은 한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깨우쳐주는 스승이나 같습니다.》
한 처녀대학생의 말이였다.
갑자기 신영복동무가 일어섰다.익숙된 동작으로 차단봉을 내린 그는 초소앞에 차렷자세를 하고 섰다.
이제는 미세한 진동을 놓고도 곧 렬차가 통과하게 된다는것을 느끼는 그였다.그의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의 생각은 깊었다.
우리 사회에는 저렇듯 스스로 정한 초소에서 순간의 후회나 동요도 없이 묵묵히 삶을 바쳐가는 아름다운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바로 그런 애국자들이 많아 내 나라,내 조국이 부강번영하는것이며 우리의 생활은 이렇듯 아름다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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