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24일

의술을 끊임없이 혁신하며 열두해

당의 보건정책을 높이 받들고 치료예방사업에서 성과를 거두고있는 의료일군들가운데는 동대원구역인민병원 내과 의사 렴은희동무도 있다.

그는 급성 및 만성담낭염,취장염환자들에 대한 치료와 담낭과 담도에 생긴 돌을 제거하는데 묘기를 가지고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의료일군들은 인민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헌신적복무정신을 가져야 할뿐아니라 자질이 높아야 합니다.》

렴은희동무는 의료일군은 인간생명의 기사이며 의료봉사사업의 직접적담당자라고 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명언을 늘 심장깊이 새겨안고 자기의 의술을 끊임없이 혁신하며 치료예방사업에 전심전력하고있다.

우리가 만나본 렴은희동무는 40대 중반기의 평범한 녀성이였다.

그가 추억하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우리의 관심을 끌었다.

렴은희동무의 아버지는 한생 혁명의 군복을 입고 군의부문에서 일한 보건일군이였다.

렴은희동무가 아버지로부터 소화기질병치료기술을 넘겨받기 시작한것은 신의주의학대학을 졸업하고 박사원과정을 마친 후였다.그때 아버지는 담낭염과 취장염치료를 위한 가온산소치료방법을 착상하고 림상실천에 받아들이기 위해 몹시 바빠하였다.그 모습을 보며 렴은희동무는 아버지처럼 당의 인민보건정책을 충직하게 받드는 참된 보건일군으로 한생을 빛내일 결심을 굳히였다.

그러던 그의 가정에 크나큰 영광이 차례질줄 어찌 알았겠는가.

지금으로부터 20년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렴은희동무의 아버지인 렴병호동무의 치료예방사업정형을 료해하시고 그 방법을 널리 도입일반화할수 있게 잘 도와줄데 대한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그날 아버지는 물론 렴은희동무도 위대한 장군님께서 베풀어주신 크나큰 믿음에 대를 이어 보답할 불타는 결의를 다지였다.

그는 한 병원에서 일하면서 제대된 아버지와 함께 소화기질병치료기술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피타게 노력하였다.

년로보장을 받은 후에도 아버지는 딸에게 자기의 기술을 넘겨주기 위해 무척 애를 썼다.하기에 림종을 앞두고 아버지는 딸에게 자기 마음까지 합쳐 위대한 장군님의 믿음에 꼭 보답해야 한다는 말을 남기였다.렴은희동무는 아버지의 그 당부를 늘 잊지 않고 일하였다.

가정부인인 그에게 있어서 늘 모자라는것은 시간이였다.환자치료로 눈코뜰 사이가 없어 더욱 그러하였다.

하지만 렴은희동무는 보답의 한마음을 안고 분초를 쪼개가며 사색과 탐구를 거듭하였다.그의 피타는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아버지가 물려준 가온산소치료장치를 더욱 발전시킨 그는 독특한 방법으로 담낭염과 취장염치료를 위한 종합치료장치를 연구완성하였다.

그 나날 렴은희동무는 《닫긴 조종에 의한 소화기질병치료장치와 방법》,《전자기파와 가온산소효과를 결합한 담석증치료장치》를 연구완성하고 치료기구를 제작도입하여 2개의 발명증서와 10여건의 새 기술등록증을 받았다.그리고 자기의 림상치료성과를 학술적으로 론증한 론문을 집필하여 학위소유자가 되였다.

그는 자기가 연구완성한 종합치료장치를 리용하여 지난 기간 많은 환자들을 치료하였다.

렴은희동무는 늘 바쁘게 살았다.많은 경우 환자치료를 새벽에 해야 하는것으로 하여 더욱 그러하였다.

그런 속에서도 그는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언제인가 소화기질병과 관련한 새 도서를 손에 쥔 그는 밤가는줄 모르고 책을 읽었다.종소리를 듣고 시계를 보니 새벽 6시였다.

아침밥을 지으려다 말고 그는 서둘러 옷을 입으며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미안해요.환자치료로 급히 병원에 나가요.》

그리고는 종주먹을 쥐고 병원으로 달려갔다.그의 생활에서 이런 날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하지만 그에게서 병치료를 받고 기쁜 마음으로 병원문을 나선 환자들가운데는 렴은희동무의 그러한 헌신성에 대하여 아는 사람들이 많지 못하였다.

몇해전 무더운 여름철 어느날이였다.6시부터 10시까지 환자들에 대한 치료를 성과적으로 마치고 잠시 한숨 돌리려는데 급히 환자치료가 또 제기되였다.그런데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환자치료에 없어서는 안될 산소가 떨어졌던것이다.그달음으로 산소통을 실어온 그는 서둘러 환자치료에 달라붙었다.그가 환자치료를 마쳤을 때는 퇴근시간이 퍽 지난 후였다.

그러나 그는 집으로가 아니라 어느 한 기업소를 찾아 떠났다.다시는 산소가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겠다는 결심에서였다.

그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깊은 밤이였다.

하지만 렴은희동무는 다음날 새벽 환자치료를 위하여 병원으로 나갔다.그리고 정성을 다하여 환자들을 치료해주었다.특별한 약을 쓰지 않고 진행하는 그 치료방법이 독특하였다.

그는 병원당조직의 지도와 함께 일하는 동무들의 방조를 받으며 의술을 더욱 완성하기 위해 애써 노력하였다.

환자들에 대한 치료효과는 더욱 높아졌다.

완쾌된 몸으로 병원문을 나서는 환자들이 고맙다고 인사를 할 때마다 그는 기쁨에 넘쳐 이렇게 말하군 하였다.

《건강하여 더 많은 일을 하기 바랍니다.》,《오래오래 장수하십시오.》

진정 그 말속에는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사회주의보건제도를 마련해준 어머니당을 실천적사업성과로 받들어가려는 그의 진심이 비껴있었다.

렴은희동무는 이렇게 12년세월을 하루와 같이 살아왔고 보람찬 그 길에서 오늘도 참된 삶을 빛내여가고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