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53(1964)년 9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수덕등판을 찾으시였다.
그날 수령님께서는 비내리는 진창길을 걸으시며 이곳 농사정형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시면서 농사방향을 가르쳐주시고 뜨락또르를 더 보내주며 농기계작업소도 따로 내오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그러시면서 한동안 아무 말씀없이 아득히 펼쳐진 오수덕등판을 바라보시였다.
수천정보의 면적을 차지하고있는 서북단의 이 등판은 개간할만 한 땅은 많았지만 물이 없어 오랜 세월 불모지로 남아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다가 동행한 일군들에게 여기에 물을 끌어올려주자고,이 좋은 세상에서 건강에 좋지 못한 물을 이곳 인민들에게 그대로 먹게 해서야 되겠는가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사실 일군들은 물때문에 이 고장 사람들이 겪은 고생이 가슴에 사무치게 맺혀있었지만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엄두를 내지 못하고있었다.
한 일군이 크게 마음을 먹고 어느 한 강의 물을 끌어올리면 된다고 말씀올리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양정이 좀 높아도 좋은 물을 끌어다 주자고 하시며 압록강물을 끌어올릴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그리하여 200세대도 못되는 주민들을 위해 70리밖에 있는 압록강물을 오수덕고원에 끌어올리고 그곳에서 다시 50리나 되는 거리에 주철관을 묻어 주민지역에 물을 보내는 방대한 공사가 벌어지게 되였다.
이것은 인민을 위해서는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주시려는 우리 수령님께서만이 하실수 있는 일이였다.
서성거리(오늘의 천리마거리)건설기일이 확정되자 공사지휘부일군들은 등이 달았다.한것은 조선로동당 제5차대회전으로 건설을 끝내려면 날고뛰여도 아름찬데 건설부지에 있는 단층집들의 철거를 못했으니 공사를 시작할수가 없었기때문이였다.
그러던 주체59(1970)년 1월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화로 평양시의 한 일군을 찾으시여 서성거리건설에 착수하였는가고 물으시였다.
그는 건설자들이 착공준비를 다 갖추었는데 철거사업이 지체되여 건설을 내밀지 못하고있다고 말씀드리였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새 거리건설착공을 4월로 미루어야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순간 일군은 자기 귀를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년초에 시작해도 기일이 촉박한데 석달씩이나 미루다니?
그의 이런 심정을 헤아려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서성거리때문에 철거되는 세대들이 겨울에 이사를 하게 되면 곤난한 점이 많을것이다,지난해에 시작된 살림집건설에 힘을 넣어 빨리 완공한 다음 거기에 철거세대 사람들을 옮기고 건설에 착수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살림집을 철거시킬 때 군중로선을 위반하지 않게 하여야 하겠다고 간곡히 이르시였다.
그때에야 수령님의 깊은 뜻을 깨닫게 된 일군은 목이 메여 아무 말씀도 드리지 못하였다.
일군은 철거세대들에 림시로 살 방이나 마련해주고는 더 좋은 살림집을 지어주겠으니 불편하더라도 몇달만 참아달라고 설복한 자신들의 처사가 얼마나 그릇된것이였는가를 돌이켜보았다.
《수령님,저희들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일군이 이렇게 말씀올리자 수령님께서는 겨울에 이사를 하게 되면 김장독을 파내야 하는데 조선사람들이 김치없이 어떻게 살겠는가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말씀은 몇백마디 꾸지람보다 일군의 가슴을 더 깊이 파고들었다.
이렇게 되여 공사는 봄철에 가서야 시작되였다.그러나 공사기일을 두고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인민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이야기가 온 건설장에 전해져 상상을 초월하는 기적과 혁신이 날에날마다 창조되였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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