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말 본사로 철도성혁명사적관에서 한통의 원고를 보내왔다.원고에는 글쪽지가 끼워있었는데 사적관 학술연구실에서 입수한 수기를 보내니 전승기념일과 관련한 집필에 리용해달라는것이였다.수기의 필자는 전쟁시기 조선인민군 철도사령부관하 신성천기관구에서 복무한 박영실이라는 녀성이였다.
수기에서는 철도병이라는 말이 자주 나왔다.모름지기 적지 않은 사람들 특히 전화의 년대를 체험하지 못한 세대에게는 귀에 설겠지만 전쟁시기 보병,포병,땅크병을 비롯한 여러 병종 군인들과 함께 조국방위전의 전렬에 섰던 철도수송전사들을 흔히 그렇게 불렀다.그때 침략자들을 무찌르며 남으로 내닫는 공격서렬들과 백병전의 총창이 번뜩이는 고지들에서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판가리싸움터들과 일각이 천추같던 위급한 상황에서 《탄약!》,《포탄!》,《붕대!》하고 웨치는 손과 손들에 무자비한 섬멸의 복수탄과 전투용물자를 섬긴 첫 사람들은 다름아닌 수송전사들이였다.
수기를 읽으면서 마음속으로 조국의 대지를 더듬어보느라니 북부변방의 한끝 철길로부터 심산유곡의 이름없는 철길에 이르기까지 나라의 가로세로 두줄기 궤도마다에 스민 전시철도수송전사들의 선혈이 가슴에 마쳐왔다.
그래서 원고에 근거하여 실화를 시작하게 되였다.수기에 반영된 전시철도수송과 관련한 력사적사실들이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고 더우기는 필자가 나어린 처녀의 몸으로 군수렬차를 몬 전형적인 철도병의 한 사람이라는데 류의하게 되였던것이다.따라서 이 실화는 어느 개별적인물에 대한 형상이나 하나의 위훈담으로 그칠수 없는것이다.그것은 한 녀성기관사의 모습이자 전승에 기여한 수만 수송전사들의 영웅적모습이며 그들을 잊지 않고 그들의 위훈을 전하는것이 전사하였거나 살아있는 모든 전쟁로병들과 전시공로자들에 대한 시대의 경의로,우리 세대의 의무로 되기때문이다.
전시기관사,이렇게 부르면 누구든지 예술영화 《철길우에서》의 주인공처럼 팔에 기관사완장을 두른 억세고 근엄한 남성기관사의 모습을 상상해볼것이다.그러나 전쟁시기 포연을 헤치며 전선으로 달리는 기관차들에서는 녀성의 모습도 볼수 있었다.불타는 고지에서 간호원 조순옥이 수류탄묶음을 안고 적땅크를 맞받아나갔듯이,폭음이 진동하는 하늘에서 비행사 태선희가 적기를 향해 돌진하고 피어린 해전에서 용감한 처녀무전수들이 적들을 수장하는 함대의 눈과 귀가 되였듯이 전화의 날 이 땅의 녀성들은 기관차도 몰면서 무비의 기개와 군공을 떨쳤다.
박영실녀성은 처음엔 기관조사였다.그가 처녀의 몸으로 기관차에 오른것은 전쟁전부터 기관구에서 일한것과는 무관하다.
사실 《증기 올렷!》,《투탄 빨리!》하고 기관사가 무시로 내리는 구령에 따라 화실에 석탄을 퍼넣는 작업은 섬약한 그에게 있어서 견디기 어려운 중로동이였다.그는 투탄작업에 매일 녹초가 되군 하였다.
땅우에서와 달리 철길우엔 전호도 은페호도 없었다.기관조사가 애숭이처녀인데다가 전투경험도 없는것이 마음놓이지 않아 운행도중 늘 뒤돌아보고 폭격을 뚫고갈 때면 그를 자기 등뒤에 눌러앉히군 하던 기관사가 하루는 물집투성이가 된 손으로 투탄하는 영실에게서 삽을 앗아들었다.
《자,보라구.화실을 열등분해서 이렇게 탄을 차례로 고루 먹여야지 그렇게 순서를 헛갈리며 퍼넣다가는 기관차가 헐떡대며 힘을 못써.투탄은 사내들도 잠자리에 오줌을 갈기는 힘든 작업이고 지금같은 전시엔 군수화차의 생사가 달린 전투조법이네.그러니 이제라도 소임을 바꾸는게 어떤가.》
영실이는 훌쩍 삽을 도루 앗아냈다.
《타고난 기관조사란 없지요.누구에게나 걸음마떼던 시절도 있구요.》
눈언저리며 코주변이 새까맣게 된 그가 비칠거리며 기관차에서 내리는것을 보고 동정의 말을 꺼낸 남자기관조사들도 그런 반박에 부딪쳤다.
며칠후 조역이 그를 찾았다.
《사람들말에 섭섭해말라구.다들 걱정해서 그러는거요.봄바람 맞는 길도 아니고 노상 폭격속을 다니고 탄가루를 마시며 철길우에서 밤낮을 보내야 하는데 몸이라도 상할가봐 그러는거지.글쎄 여태 살면서 처녀가 기관차를 탔다는 말은 들어본적 없다니까.》
영실이는 부르튼 손에 천오래기를 동치며 이를 사려물었다.
《그래도 타야겠어요.기총탄에 맞아도 좋고 폭격에 재가 돼도 일없어요.원쑤놈들과 끝까지 해보겠어요.물어뜯으면서라도 싸우겠어요.》
기관구뒤산엔 봉분 두개가 있었다.거기엔 아버지,어머니가 누워있었다.파괴된 기관차를 수리하다가 쓰러진 아버지곁에 《치안대》놈들에게 매맞아 숨진 어머니를 묻은 길로 기관차에 달려온 영실이였다.바로 원쑤들에 대한 피맺힌 증오와 복수심이 그로 하여금 군수화차라는 조국의 짐 하나를 스스로 작은 어깨에 걸머지게 하였다.
아직은 기관조사이지만 결심은 기관사였다.그것은 처녀의 한갖 허영심이 아니였다.다시 노예가 되느냐 아니냐 하는 때 싸움이면 일선에 서고 목숨이면 먼저 바치고 일이라면 제일 힘든것을 맡으려는 희생성이였다.
기관차가 신성천을 떠나 거차령을 넘자면 석탄을 여러t이나 먹여야 했다.그것을 폭격과 포격,앞을 캄캄 막는 매연속에서 해내야 하였다.그러나 영실이는 사생결단하고 맡은바를 수행하였다.투탄할 때마다 입에서 새된 부르짖음이 터졌다.한삽 뜨며 《미제에게》,또 한삽 던지며 《죽음을!》,이러면서 화력을 돋구었다.기압이 오른 기관차는 노도같이 령을 치달아넘었고 기관사는 기적을 울려 기관조사에게 감사를 표하였다.
1951년 7월 30일부 《로동신문》은 이렇게 전하였다.
《기관조사 박영실동무는 남녀평등권법령발포 5주년을 기념하면서 하루속히 훌륭한 기관사로 될 억센 결의밑에 운전기술습득에 더욱 힘쓰는 한편 자기에게 부과된 임무를 항상 남자들에게 못하지 않게 수행하고있다.》
계속하여 그가 적기의 폭격으로 일부 화차가 화염에 싸이자 그것을 분리하고 화차들을 분산소개하여 운행을 성과적으로 보장한데 대해 썼다.
《미제의 〈추기공세〉를 박산내자!》,《승리를 향하여!》
비호같이 내닫는 군수렬차의 차량들에서 언뜻언뜻 비껴오는 이런 글발을 읽으며 총들어 경례를 보내는 철다리의 초병도, 위장망을 쓰고 벼가을을 하다가 손을 흔드는 농민들도 그때 다는 모르고있었다.무기와 탄약,포탄과 식량을 실은 화차를 끌고 전선으로 달리는 기관차들에서 철도병들이 어떤 희생을 치르는가를!
어느날 수송임무를 마치고 거차령을 넘어온 렬차에서 승무조가 내리더니 기관차곁에 나란히 섰다.철도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있었다.승무조에서 한사람이 보이지 않았다.비여있는 기관사자리를 바라보는 영실이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였다.벌써 몇명째였다.그는 선혈이 굳어져있는 가감변을 으스러지게 잡았다.
(그들이 돌아오지 못한 길을 내가 가리라.나 또한 돌아오지 못할수 있다.그러나 승리는 반드시 온다!)
그는 기관사가 되였다.기관구의 16호기관차에 오른 그는 자기 손으로 처음으로 기적을 울렸다.만짐을 받든 강철차륜들은 천백배 복수의 열기로 달아오른 레루를 세차게 구르며 불꽃을 튕기였다.나날이 커져가는 포성을 따라 기적소리가 더 높이 울렸다.
어깨우에 소위의 군사칭호를 얹고 질풍같이 기관차를 몰아가는 처녀기관사의 나이는 19살이였다.
박영실녀성의 수기제목은《포화속의 기적소리》였다.원고를 읽으며 제목을 왜 그렇게 달았는지 사유를 알게 되였다.이 글에 원고의 제목을 그대로 수용한것은 그때문이다.
기적소리!
그가 이 말을 마음속에 깊이 새기게 된 계기가 있다.
1952년 2월말,한달간에 걸친 수송전투를 마치고 기관구로 돌아온 그는 평양에서 열리는 철도일군열성자대회에 참가할 준비를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제가요? 혹시 이름이 삭갈린게 아닐가요? 다른 기관구들에도 녀성기관사가 있는데 거기에 나와 이름이 같은 사람이…》
이처럼 그는 믿기 어려워하였다.
(내가 무슨 큰일을 했다고 대회에서 토론까지…)
그는 평양으로 가면서도 이렇게 생각하였다.
주체41(1952)년 3월 11일,모란봉지하극장은 만세의 함성으로 떠나갈듯 하였다.조국해방전쟁을 승리에로 령도하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철도일군열성자대회에 몸소 참석하신것이였다.
꿈결에도 그립던 어버이수령님,깊은 밤 수송길을 달릴 때에도,이른새벽 역으로 돌아올 때에도 마음속으로 그려본 자애로운 영상…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회에서 연설을 하시면서 지나온 전쟁행정에서 철도일군들이 발휘한 대중적영웅주의와 숭고한 애국주의를 높이 평가하시였다.
《특히 전시수송을 직접 담당한 기관사동무들이 아주 용감하게 잘 싸웠습니다.기관사동무들은 적들의 가혹한 폭격과 포격속에서도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전선에 무기와 탄약,포탄과 식량을 제때에 수송하였습니다.우리의 용감한 기관사들이 높이 울린 기관차의 기적소리는 전선에서 싸우는 인민군용사들과 후방인민들을 승리에로 고무하였습니다.》
영실은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
승리에로 고무하는 기관차의 기적소리!
그때처럼 기적소리가 크낙한 힘과 산악같은 무게로 가슴에 파고든적은 없었다.기관사 박영실동무가 토론하겠다는 사회자의 말에 연단에 나섰지만 선뜻 말이 나가지 않았다.원쑤들의 흉탄에 숨지는 마지막순간까지 렬차를 몬 선배기관사들이 떠올랐다.적기의 폭격으로부터 화차를 목숨바쳐 구원한 승무원들의 모습도 비껴왔다.참으로 조국에 바치는 피와 생명으로 울리는 기적소리였다.그 소리를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들으시고 조국과 인민이 듣고있기에 고난도 슬픔도 꿋꿋이 이겨내며 힘차게 울려가는것이 아니던가.그의 토론은 길지 않았으나 거기에는 승리에로 부르는 기적소리를 더 높이 울려갈 철도병들의 의지와 기상이 한껏 차넘치였다.그에 대해 1952년 3월 15일부 《로동신문》은 다음과 같이 전하였다.
《녀성모범기관사 박영실동무는 지난해의 자기 투쟁경험을 피력하면서 금년도에는 200일 무사고운전을 전개하여 더욱 높은 성과를 거둘데 대한 자기 결의를 표명하였다.》
전쟁 전기간 미제는 철도를 파괴하는데 광분하였다.군수물자보급을 차단하기 위해 철도역과 철다리,철길에 대한 집중폭격,포격에 매달렸다.
전선서부로 군수화차 20차량을 긴급수송할데 대한 임무를 받고 영실이가 급수를 위해 기관차를 몰고 역구내를 지날 때였다.불의에 적기편대가 달려들었다.사방에 연방 불기둥이 치솟는 속에 한 화차가 화염에 휩싸였다.불이 번지면 뒤에 서있는 기관차와 화차가 위험에 처할수 있었다.그는 폭격을 뚫고 불달린 화차에 뛰여올라 살수호스를 들이댔다.이어 선두기관차를 몰고 뒤차들을 안전구역으로 인도하였다.화염으로 철길이 보이지 않고 파편이 기관사실로 마구 날아들었지만 그는 두렴없이 기관차를 달렸다.그가 여는 길로 다른 기관차들이 뒤따랐다.적기총탄이 머리를 스쳐 피가 줄줄 흘러내렸지만 그는 가감변을 놓지 않았다.철도성혁명사적관에는 당시와 관련한 이런 자료가 있었다.
《적들의 화염에 잠긴 8대의 기관차와 26차량의 군수화차들이 박영실동무의 희생적인 투쟁에 의하여 구출되였다.》
철길우에도 목숨바쳐 헤쳐야 하는 쏘구역이 있었고 한치한치를 피로 물들일지언정 일보도 물러설수 없는 1211고지가 있었다.강원선의 고원-안변구간도 그러하였다.그만큼 이곳에 대한 적들의 폭격과 포격이 극심했다.기관사들은 《이 구간은 철길뚝이 낮아도 1211고지이다.》라고 말하였다.바로 그런 구간을 통과하여 군수물자를 석왕사까지 날라 인민군련합부대에 넘겨주어야 할 임무가 신성천기관구에 하달되자 영실이는 그 과업을 자진 맡아나섰다.
《그곳은 제일 위험구간이요.만약 돌아오지 못하면 어린 동생들의 울음소리를 우리가 어떻게 들으라는거요.》
한 남성기관사가 자기가 가겠다고 막아나섰지만 영실이는 조역에게 재촉하였다.
《어서 발차신호를 주십시오.저도 1211고지 전투원입니다.》
야음을 타고 군수화차 15차량이 수백리길을 떠났다.적들은 조명탄까지 걸어놓고 폭격에 날뛰였다.영실이는 적기가 정면에서 달려들면 급정거하고 선회하면 내닫고 뒤에서 내리꽂히면 후진하면서 쏘구역을 돌파하였다.원산을 앞둔 개활지대에서 적기와 또다시 맞다들리자 이번에는 좌우로 증기를 내뿜어 견인기가 화염에 싸인것처럼 기만하였다.그렇게 적기를 따돌리고 다시 출발하려고 할 때였다.기관조사와 다른 한명이 자리에서 움직일줄 몰랐다.그들의 군복은 피에 물들어있었다.영실이는 몸부림치면서 그들을 막 흔들었다.기관조사가 간신히 눈을 떴다.
《기관사동지,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을 끝까지…》
천만근 무거운 걸음으로 철길에 내려선 영실이는 천천히 권총을 뽑아들었다.비분강개한 조총소리는 가슴을 끝없이 허비였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대기하던 군인들이 환성을 올리며 렬차를 맞이했다.그들은 기관사가 단발머리처녀임을 알아보고 그자리에 우뚝 섰다.
《동무가 이 화차들을 끌고왔단 말이요?!》
련합부대지휘관의 물음에 영실이는 말없이 전우들의 시신을 돌아보았다.
군인들은 묵묵히 모자를 벗었다.영실이는 눈물을 삼키며 지그시 기적변을 당기였다.복수에로,승리에로 부르며 기적소리는 철길우로 멀리 퍼져갔다.
수기엔 그후 이야기가 없었다.그래서 녕변군에서 살고있다는 박영실로병을 찾아가 후일담을 들으려 했다.그때 철도성혁명사적관에서 그가 견학차로 평양에 올라와 철도합숙 8층 12호실에 들었다고 알려왔다.그리하여 철도합숙을 찾았다.전화의 날로부터 60여년세월이 흘러 로병은 여든두살이였다.
《왜 수기를 석왕사도착으로 끝냈습니까?》
그는 인차 대답하지 못하였다.한참후에야 조용히 《죄스러운 일이 있었지요.》라고 말하였다.놀라운 말이였다.
…석왕사에서 돌아왔을 때 그는 기관차에서 선뜻 내리지 못했다.앞이 거의나 보이지 않았다.장정들도 다루기 힘든 기관차를 몰며 무시로 포연길,밤길을 헤치고 잠과 휴식을 잊다나니 갑자기 시력이 떨어지고 야맹증이 겹쳤던것이다.손더듬하며 차를 내리다가 넘어진 그의 군복웃주머니에서 성냥개비같은것들이 흘러나와 땅에 흩어졌다.
《이게 뭐요?》
조역은 후들후들 손을 떨며 그것을 모아쥐였다.그 싸리나무꼬챙이들이 운행길에서 졸음을 이겨내기 위해 눈까풀에 뻗치였던것이라는것을 누구인들 몰랐겠는가.…
전시수송에 한몸바친 처녀기관사의 건강상태는 최고사령부에까지 보고되였다.그리하여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여름 그는 외국휴양을 떠나게 되였다.국제렬차에 오르며 그는 평양하늘을 우러렀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정말 고맙습니다.시력을 회복하고 다시 기관차를 몰겠습니다.)
그러나 휴양을 마친 후에도 그의 시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그렇다고 시력회복에 거듭 베풀어지는 은정을 가만 앉아 받기만 할수 없었다.비록 기관차에서는 내렸어도 인생의 궤도는 바꿀수 없었다.그는 방송으로 전승열병식광장을 지나는 철도병종대의 발구름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기관구를 떠났다.어제날 군공을 마음속에 묻어둔 그는 전시에 못다한 일을 대신하여 알곡증산과 원군에 힘쓰고 대를 이어 자식을 조국보위의 길에 세우면서 애국의 나날을 이어갔다.여러해가 지나 시력을 회복한 후에는 후대들앞에 지닌 전세대의 의무로부터 붓을 들었다.그리하여 전시수송에 청춘도 생명도 아낌없이 바친 철도병들의 영웅적투쟁자욱이 원고지에 옮겨지게 되였다.…
이야기를 마치며 다시금 생각해본다.
(그가 스스로 빚으로 간주한 일,그로 하여 한생 마음 무거웠던 사연과 소문없이 조국을 받들어온 그 후반생 또한 하나의 뜨겁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겠는가.그것은 포화속에서 울린 기적소리의 계속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