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밀영고향집은 천출위인의 탄생과 더불어 우리 인민과 인류의 마음속에 소중히 자리잡고있다.
백두산밀영고향집,그 이름을 조용히 불러보느라면 조선혁명의 억년 드놀지 않는 뿌리를 마련하시여 우리 인민과 후대들에게 안겨주신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감사의 정으로 누구나 가슴을 뜨겁게 적신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김정일동지가 발휘한 조국과 인민에 대한 무한한 충실성과 그가 이룩한 빛나는 업적으로 하여 우리 인민은 그를 높이 존경하며 따르고있습니다.》
위인의 업적은 또 한분의 위인에 의해서만 력사에 더욱 광휘로운 빛을 뿌리게 된다.주체혁명위업을 계승완성하기 위한 투쟁이 새로운 높은 단계에서 벌어지고있던 1980년대 중엽 백두산밀영을 발굴하는것을 더는 미룰수 없는 력사적과제로 보시고 이 일을 꼭 자신께서 하셔야 할 일로 스스로 맡아안으신 어버이수령님,
그이께서는 소백수골에 여러차례나 답사성원들을 파견하시면서 일군들에게 백두산밀영을 발굴하는 문제는 후대들에게 백두의 혁명정신을 따라배우게 하는데도 중요하지만 김정일동지를 충정으로 받들어나가는데 더 큰 의의가 있다고,김정일동지의 고향집을 하루빨리 찾아 꾸리는것은 후대들앞에 지닌 자신의 의무라고 절절히 말씀하군 하시였다.
마침내 소백수골에서 사령부자리며 위대한 장군님께서 탄생하신 고향집,대원들의 병실자리 등이 발굴되였다.
주체77(1988)년 8월 어느날 백두산밀영고향집을 찾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옛 모습그대로 원상복구된 백두산밀영을 보니 무겁던 어깨가 가벼워진것 같다고 기쁨에 넘쳐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뜻깊은 그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또 한분의 백두산장수를 모신 기쁨을 담아 투사들이 항일전의 나날 장수봉이라고 부르던 고향집뒤의 높이 솟은 봉우리이름도 김정일동지의 업적을 후손만대에 길이 전하기 위해 정일봉으로 명명해주시였다.
40여년만에 백두산밀영을 찾으시여 백두산밀영고향집앞에서 뜻깊은 기념사진을 찍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저녁시간에도 잠 못 이루시고 김정일동지야말로 백두산의 정기와 기상을 온몸에 체현한 백두산의 아들이라고,사상이나 성격을 보아도 그는 백두산의 아들다운 기질을 타고났다고,자신께서는 그것이 무엇보다 기쁘고 자랑스럽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혁명의 성지 백두산밀영고향집은 진정 어버이수령님께서만이 우리 인민과 인류에게 안겨주실수 있는 가장 큰 혁명의 재부이고 최대의 선물이며 후손만대에 넘겨줄 최고의 유산이다.
유서깊은 혁명의 성지 백두산밀영고향집을 찾아주시여 혁명의 만년초석을 더욱 튼튼히 다져놓으신 어버이수령님의 력사적공적과 백두산의 아들로 탄생하시여 조국청사에 길이 빛날 불멸의 업적을 이룩하신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거룩한 혁명생애를 고이 간직하고 온 누리에 찬연히 빛을 뿌리는 정일봉,
절세의 위인들을 모시였기에 백두산이 그리도 성스럽고 빛나는것처럼 정일봉 또한 이 나라의 산마루우에 높이 솟아 신비의 빛발을 뿌리고있다.
정일봉은 우리 장군님의 위인상과 더불어 빛나는 선군조선의 존엄과 영광의 상징이다.
정일봉을 우러러 백두의 행군길,혁명의 천만리길을 꿋꿋이 이어갈 불같은 맹세를 심장으로 다지는 우리 천만군민은 백두의 혁명정신,정일봉의 억센 기상으로 주체혁명위업의 최후승리를 이룩하는 그날까지 힘차게 싸워나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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