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11일

예술인살림집의 행복한 미술가가정

수도 평양의 풍치수려한 대동강반에는 쌍벽을 이루며 나란히 일떠선 두동의 원형고층살림집이 있다.위대한 장군님의 은정속에 마련된 예술인살림집이다.

1호동은 국립연극단 예술인들의 살림집이고 2호동에서는 국립교향악단 예술인들이 살고있다.

최고인민회의 제13기 대의원선거가 진행되던 날 우리는 1호동 4층 2호에서 살고있는 국립연극단 미술가인 공훈예술가 리종훈의 가정을 찾았다.방금 선거를 하고 집에 들어선듯 식구들모두가 명절옷차림새였다.

세대주인 리종훈은 올해 70살인데 나이에 비해 무척 정정하였다.5대혁명연극이 창조되던 시기 불같은 열정과 뛰여난 솜씨로 무대미술의 새 경지를 개척하는데 한몫한 그는 위대한 장군님의 여러차례의 평가를 받은 재능있는 미술가이다.

그의 긍지높은 인생행로를 보여주듯 위대한 대원수님들을 모시고 찍은 기념사진들과 표창장,명예칭호증서들이 집벽면을 가득 채우고있었다.우리가 그에게 오늘 선거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후보자가 누구인가고 물으니 홍서헌 김책공업종합대학 총장이라는것이였다.

《알고보니 총장선생도 평범한 의학자의 가정에서 태여났더구만요.이처럼 근로하는 인민의 아들딸들이 우리 공화국정권의 주추돌을 이루고있으니 나라의 모든 시책이 근로인민의 리익과 행복을 위한것이 아닐수 있겠습니까.》

많은것을 생각하게 하는 말이였다.

《우리 가정의 경우를 놓고보아도 그렇지요.자본주의나라들에서는 백만장자들이나 엄두를 낼수 있는 이런 궁전같은 희한한 집을 나라에서는 돈 한푼 받지 않고 우리에게 무상으로 주지 않았습니까.처음 이 집을 받았을 때 나와 령감은 나라의 은덕이 너무 고마와 며칠밤을 자지 못하고 울었답니다.》

리종훈의 안해 리인숙의 말에 아들,딸,사위,며느리들이 머리를 끄덕이였다.그들의 얼굴마다에는 고마운 제도에서 사는 긍지와 행복감이 가득 어려있었다.

리종훈의 가정은 식솔이 많은 가정이다.중앙출판물보급사에서 일하는 맏딸 리성희네 가족과 출판지도국 산하단위 로동자인 아들 리명일네 가족이 함께 살고있다.하지만 집이 하도 넓다나니 그들은 생활에서 아무런 불편을 모르고 화목하게 지내고있다.공동살림방을 비롯하여 살림방이 4칸이고 식사칸과 위생실도 2개이니 우리같은 대가정이 살기에는 그저그만이라고 리성희는 웃으며 말하였다.

《난 해방전에 황해남도 벽성땅에서 지주집머슴군의 아들로 태여났습니다.나나 우리 로친이나 부모들이 그때에는 사람축에도 못 가던 막바지인생들이였지요.어버이수령님께서 나라를 찾아주시고 인민의 정권을 세워주신 다음에야 우리같은 머슴군의 자식들도 허리를 쭉 펴고 보란듯이 살게 되였답니다.》

이렇게 말하는 리종훈의 눈가에는 물기가 어려있었다.

예로부터 은혜에는 보답이 따라야 한다고 하였다.그의 가족은 지난 시기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해 성실한 애국의 땀을 바쳐왔다.

리인숙녀성만 하여도 그가 대동강반에 심은 나무와 꽃모는 수천그루나 된다고 한다.그에게는 전망적인 식수계획이 있는데 다음해에는 아빠트주변에 사과나무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과일나무들을 수십그루 심을 계획이라고 한다.

우리가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고있는데 한 총각애가 아장아장 다가와 리종훈의 품에 척 안기는것이였다.방금 잠에서 깨여난듯 그의 귀여운 두볼에는 홍조가 피여있었다.리명일의 아들이였다.

《우리가 이 집에 입사한 후 태여난 손자녀석이랍니다.복둥이지요.아마 이 세대들은 행복이란 말밖에 모르고 자랄것입니다.》

밝은 앞날에 대한 확신에 넘쳐있는 리종훈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생각하였다.

얼마나 좋은 인민의 나라,인민의 세상인가.세금을 모르는 인민,치료비를 모르는 인민,수업료란 말자체를 모르는 인민,세상에 이런 인민이 또 있을가.그래서 온 나라 인민이 경애하는 원수님을 사회주의대가정의 어버이로 모시고 조국을 위해 헌신분투하고있는것이 아닌가.

우리의 생각을 말해주듯 텔레비죤에서는 《인민이 사랑하는 우리 령도자》의 노래선률이 울려나오고있었다.

우리는 화목한 미술가의 가정에 보다 큰 행복이 있기를 바라며 그의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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