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31일

애국,애족,애민으로 빛나는 고귀한 생애

오늘은 리보익녀사의 탄생 139돐이 되는 뜻깊은 날이다.

이날을 맞으며 우리 군대와 인민이 녀사의 생애를 가슴뜨겁게 되새겨보고있는것은 바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굳세게 살아오신 그이의 한생에 애국,애족,애민의 넋이 빛발치고있기때문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할머니는 마음속 깊은 곳에 꿈을 묻어두고 살았습니다.말하자면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값있게 살았습니다.할머니의 생애가 속절없이 흘러간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한걸음한걸음이 다 의의가 있고 목표가 있었습니다.》

애국,애족,애민은 리보익녀사께서 한평생 간직하신 숭고한 뜻이였다.

돌이켜보면 리보익녀사의 한생은 일가분들모두를 혁명의 길에 떳떳이 내세우시고 오로지 조국의 해방과 우리 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신 빛나는 생애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 무송에 오신 리보익녀사께서 우리 수령님께 하신 말씀은 오늘도 만사람의 가슴을 뜨겁게 울려주고있다.

증손아,이제는 아버지가 메고있던 짐을 네가 메야겠구나.너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기어이 나라를 찾아야 한다.나나 어머니에게 효도를 못해도 좋으니 조선을 독립하는 일에 몸과 마음을 다 바치거라.…

그때 할머니의 심정이 과연 어떠했으랴.

하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할머니의 그 말씀에서 큰 충동을 받았다고,만일 그때 할머니가 조선독립이 아니라 앞으로 부자가 되거나 출세할 생각이나 하라고 하였더라면 자신께서는 그다지 큰 감동을 받지 못했을것이라고 뜨겁게 회고하시였다.

이렇듯 조국과 민족을 위한 리보익녀사의 뜻은 매우 높으시였다.

그때 리보익녀사의 특징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강의한 조선의 녀성이라고 말할수 있다.

리보익녀사는 보기 드문 강자이시였다.

가난하고 불행하고 선량한 사람들에게는 그지없이 상냥하고 부드럽지만 사람같지 않은자들에게는 추상같이 무서운것,그 어떤 강권이나 불의앞에서도 휘여들지 않는것이 바로 리보익녀사의 성미이고 기개였다.

자그마한 농촌마을의 소박한 할머니이시였으나 애국심이 남달리 불같은분이시였기에 목숨도 내대야 하는 독립전에 10대의 우리 수령님을 그리도 선뜻 내세우신것이 아니랴.

리보익녀사께서 얼마나 강직하고 대바르시였는가 하는것은 적들이 벌려놓았던 《귀순공작》의 나날을 놓고보아도 잘 알수 있다.원쑤들의 강요에 의하여 서간도의 산악지방으로 1년가까이 다니시면서도 주접이 들거나 의기소침해하신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제놈들과 혁명의 배신자들을 엄하게 다불리시던 녀사의 그 음성이 지금도 들려오는것만 같다.

힘들어도 내 손자가 싸우고있는 산천을 보니 기운이 솟는다고 하시며 원쑤들을 전률케 하시던 리보익녀사,

년로한 몸으로 온갖 고생을 다 겪으시면서도 혁명일가의 존엄과 기개를 조금도 굽히지 않으신 강의한분이시기에 일제의 강요로 다시 만주땅을 밟으시였을 때에도 항일유격대가 승리하였다는 소식을 전해들으시면 《내 손자가 장하다! 어서 왜놈들을 다 잡아치우고 우리 나라 땅에서 왜놈들의 씨를 말려라!》라고 기세를 올리군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할머니의 강직한 성품을 너무도 잘 알고계시였기에 일제가 할머니까지 만주의 설한풍속에 끌어내였다는 소식을 들으시였을 때에도 사사로운 인정에 묻히신것이 아니라 일제에 대한 천백배의 복수심을 굳히시며 원쑤격멸의 총성을 더 높이 울리시였다.

녀사께서 남기신 고생의 흔적은 오늘도 만주의 산야에 점점이 찍혀있다.

리보익녀사께서 총 한자루 없는 몸으로 적들을 전률시킬수 있은것은 신념과 의지가 강하고 미래에 대한 신심이 확고하시였기때문이다.

일제의 폭압이 절정에 달하였던 시기에 늙으신 몸으로 혁명가의 할머니로서의 절개와 지조를 굳세게 지킨다는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어버이수령님께서 회고하신것처럼 리보익녀사는 직업적인 혁명가가 아니시였다.

학교를 다니신적도 없었고 조직적인 혁명교양을 받으신 일도 없었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끄시는 조선혁명은 반드시 승리할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안고계시였기에 원쑤들의 그 어떤 박해와 고초,모진 시련과 난관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적들과 그처럼 당당히 맞설수 있었으며 마침내 해방의 날을 맞으실수 있었다.

해방후 고향집을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을 부둥켜안으시고 아버지,어머니는 어데다 두고 이렇게 혼자 왔느냐,… 같이 오면 못쓴다더냐라고 하시며 눈물지으시던 리보익녀사,

끌끌하던 자손들이 조국해방의 날을 보지 못하고 스무해사이에 한줌 흙이 되여 낯선 산천에 뿔뿔이 흩어졌으니 녀사의 심정이 그 얼마나 아프고 쓰리시였으랴.

이렇듯 녀사께서는 쓰라린 아픔과 고생은 한가슴에 다 묻어두시고 나라의 해방을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가장 크고 귀중한것으로 여기신 열렬한 애국자이시였다.리보익녀사께서는 가난과 싸우고 불의와 싸우고 적과 싸우지 않으면 안되였던 풍랑사나운 세월속에서도 언제나 미래에 대한 락관과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한평생을 꿋꿋이 살아오시였다.해방전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안아오실 독립의 날을 기다리시였고 해방후에는 수령님께서 고향으로 돌아오시기를 기다리시였으며 그후에는 만민이 잘사는 날과 조국이 통일되는 날을 기다리시였다.

만경대일가분들의 애국,애족,애민의 숭고한 뜻은 또 한분의 선군태양이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 계시여 이 땅우에 찬란히 꽃펴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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