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애족,애민은 만경대가문의 가풍이다.
만경대혁명일가분들의 생애는 바로 그 숭고한 넋으로 줄기차게 관통되여 빛나는것이다.
오늘은 열렬한 애국자이신 리보익녀사께서 서거하신 때로부터 55돐이 되는 날이다.
이날을 맞으며 우리 군대와 인민은 조국력사에 영원히 지울수 없는 모습을 남기신 리보익녀사의 생애를 가슴뜨겁게 돌이켜보고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하시였다.
《우리 할아버지,할머니는 일생 농사밖에 모르고 살아온 촌늙은이들이였지만 진정을 말하건대 나는 그분들의 견결한 혁명정신에 탄복하였고 거기서 커다란 고무를 받았다.
말이 쉽지 자식들을 키워 고스란히 혁명의 길에 내세우고 그에 뒤따르는 갖은 고초와 시련을 묵묵히 견디면서 자손들의 뒤를 꾸준히 받쳐준다는것이 한두번의 전투나 몇년간의 감옥살이에 비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리보익녀사의 고결한 생애는 만경대일가의 혁명투쟁사에서 특이한 자리를 차지한다.
돌이켜보면 리보익녀사께서는 직업적인 혁명가는 아니시였다.학교를 다니신적도 없었고 조직적인 혁명교양을 받으신 일도 없었다.
1876년 5월 31일 평양시 사동구역 오류리의 가난한 농가에서 탄생하신 리보익녀사께서는 한생 만경대일가분들을 혁명의 길에 내세우시며 온갖 고생이란 고생을 다 하시였다.하지만 녀사께서는 오히려 그것을 긍지로 간주하시였다.
그것은 리보익녀사께서 세상에서 제일 귀중한것이 나라와 백성이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쳐야 한다는 숭고한 뜻을 심장으로 체득하고계시였기때문이였다.
하기에 녀사께서는 언제나 자제분들에게 대가 바르고 굳세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시였으며 아드님이신 김형직선생님께서 혁명투쟁의 길에 나서신 때부터는 나라찾는 큰일을 하자면 마음을 크게 먹고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하시면서 아드님의 혁명투쟁을 적극 도와나서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 조선국민회를 결성하시고 줄기찬 투쟁을 벌리실 때에도,일제놈들에게 체포되여 철창속에서 불굴의 투쟁을 벌리실 때에도 녀사께서는 아드님에게 힘과 용기를 안겨주고 뒤바라지를 고스란히 해오시였다.
자신보다 먼저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생각하신 리보익녀사이시였기에 손자분들을 곁에 두고싶으신 마음 간절하시였건만 대를 이어 혁명의 길로 떠밀어주시였다.
그 어떤 강권이나 불의앞에서도 휘여들지 않는 강의한 신념과 절개,그것은 리보익녀사의 고결한 천품이였다.
우리의 눈앞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리보익녀사를 추억하신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의 글줄들이 어려온다.
우리 할머니의 특징은 한마디로 강의한 늙은이라고 표현할수 있을것입니다.할머니는 그 나이의 녀성들치고 보기 드문 강자였습니다.가난하고 불행하고 선량한 사람들에게는 그지없이 상냥하고 부드럽지만 사람같지 않은자들에게는 추상같은것이 우리 할머니입니다.…
우리 인민들속에 널리 알려진 일제의 《귀순공작》이 바로 그러하였다.한차례도 아닌 두차례,그것마저 어떤 때에는 1년가까이 걸리는 일제의 《귀순공작》,그러나 리보익녀사께서는 그 어떤 강권이나 위협에도 절대로 넘어가지 않으시였다.
놈들은 리보익녀사를 얼려도 보고 위협도 하였지만 그것은 괜한짓이였다.이렇게 말이나 돈으로는 만경대집안사람들을 움직일수 없다는것을 알게 된 적들은 강제로 리보익녀사를 끌어내여 만주로 데리고 떠났다.녀사께서는 좋다,너희들이 억지로 날 데리고가겠거든 가자,그렇다고 너희들을 도와줄줄 아느냐,그대신 나는 나대로 이 기회에 손자가 싸우고있는 백두산과 만주의 산천이나 실컷 돌아보겠으니 어디 누가 이기나 보자고 당당히 맞서시였다.
그후 일제의 강요로 다시 만주땅을 밟으시였을 때에도 리보익녀사께서는 항일유격대가 싸움에서 승리하였다는 소식을 전해들으실 때면 《내 손자가 장하다! 어서 왜놈들을 다 잡아치우고 우리 나라 땅에서 왜놈들의 씨를 말려라!》라고 기세를 올리군 하시였다.
놈들이 산판을 헤매다가 위협하며 손자의 이름을 부르라고 강요할 때마다 녀사께서는 나는 그런 미친 소리는 할줄 모른다,네놈들이 나를 죽이고 무사할줄 아느냐,우리 손자의 총알을 받고싶거든 어디 네놈들 하고싶은대로 해봐라 하고 호령을 치군 하시였다.
서리발치는 녀사의 기상앞에서 원쑤들은 전률하였다.
이런 일도 있었다.
설명절때 독찰관이라는 놈이 특무들에게 김장군 할머니에게서 설인사를 받고싶은데 그 늙은이더러 와서 세배를 하게 하라고 호령질하였다.
독찰관의 말을 전달받은 리보익녀사께서는 쓴웃음을 지으시며 세상에 별소릴 다 듣는구나,버릇없는 놈!그놈더러 와서 김장군 할미한테 세배를 하라구 해라!하고 불호령을 내리시였다.독찰관은 그 말을 듣고 어찌나 큰 충격을 받았던지 손에 들고있던 술잔까지 떨어뜨리였다.그놈은 수틀리면 흉기부터 뽑아들고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빌 때까지 야료를 부리는 독종이였는데 그날만은 기가 꺾이여 아무 행패질도 못하고 과시 김장군의 할머니가 다르긴 다르다고,손자가 백두산의 호랑이라더니 그도 역시 호랑이가 틀림없다고 하며 더는 어쩌지 못하였다.
이처럼 리보익녀사께서는 총 한자루 없는 로인의 몸으로 적들과 맞서싸워 이기시였던것이다.
놈들의 온갖 회유와 박해속에서도 굴함없이 혁명적절개를 지켜싸우신것만으로도 녀사께서는 해방후 호강하게 살수 있었다.하지만 녀사께서는 손자분을 나라의 수령으로 모시고서도 오직 견결한 혁명정신으로 그이의 사업을 도와 생의 말년까지 농사일을 계속하시였다.
참으로 리보익녀사께서 우리 혁명의 길우에 쌓아올리신 불멸의 업적은 조국청사에 길이 빛나고있으며 녀사께서 지니셨던 견결한 혁명정신과 고결한 풍모와 덕성은 혁명하는 모든 사람들이 따라배워야 할 참다운 귀감으로 우리 인민의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되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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