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조국보위전초선에 선 인민군장병들은 혁명의 총대를 억세게 틀어잡고 조국의 방선을 믿음직하게 지키며 후방의 인민들은 뜨거운 원군으로 선군의 내 조국을 받들어나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는 원군을 최대의 애국으로 여기고 인민군군인들을 친혈육의 정으로 적극 도와주는 원군가정들이 나날이 늘어나고있다.
운산군에 가면 원군을 잘하는 가정으로 널리 알려진 김명훈동무의 가정이 있다.
그의 가정은 아버지때부터 시작하여 30여년세월 인민군군인들에 대한 원호사업과 사회주의건설장에 대한 지원사업을 성심성의로 해오고있다.
《사람은 받아안은 사랑에 보답할줄 알아야 하느니라.》
이것은 김명훈동무의 아버지가 늘 하는 말이다.
나날이 더해만지는 나라의 은덕에 조금이나마 보답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농사일로 바쁜 속에서도 수십년세월 해마다 많은 집짐승들을 길러 초소의 군인들과 사회주의건설장들에 보내주는데서 희열을 찾군 하는 아버지의 삶의 지향은 그대로 어린 김명훈동무의 가슴속에 소중히 자리잡게 되였다.
아버지처럼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한 길에 한생을 빛내일 일념을 안고 조국보위초소에 선 김명훈동무가 군사임무수행중 뜻밖의 부상을 당하고 영예군인이 되여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였을 때 그의 마음은 몹시도 괴로왔다.
나라에서 조국을 위해 피흘린 영예군인이라고 생활에서 자그마한 불편이라도 있을세라 따뜻한 사랑을 기울일수록 명훈동무의 가슴속에서는 보답의 마음이 더욱 솟구쳐올랐다.
그는 자기 가정의 자랑이며 가풍인 애국의 길,원군의 길을 변함없이 걸어갈 마음을 안고 산세험한 방목장을 오르내리며 해마다 많은 염소들을 길러내기 위해 애써 노력하였다.
불편한 몸으로 일하느라 몸져누울 때도 있었지만 그는 원군의 길에 참다운 애국이 있다는 숭고한 자각을 안고 해마다 많은 염소들을 길러 인민군군인들에게 보내주고있다.
김명훈동무의 가정에 있는 부피두툼한 원군일지에는 이런 글이 씌여져있다.
《당의 선군령도를 충정으로 받드는 원군길은 우리 가정이 대를 이어 가야 할 량심과 의리의 길,신념과 충정의 길이다.》
《어머니,오늘은 인민군대아저씨들을 찾아가는 날이지요.나도 함께 갈래요.》
《우리 변웅이가 참 용쿠나.》
원군의 길을 함께 걸으며 몸도 마음도 몰라보게 성장하는 어린 아들애를 바라보는 김명화녀성의 눈가에는 밝은 빛이 어리여있었다.
김명화동무의 가정이 이렇듯 원군의 길에서 인생의 보람과 기쁨을 찾으며 한해에도 여러차례 초소의 군인들에게 지성어린 원호물자를 보내주는데는 사연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몇해전 무더운 여름철의 어느날 김명화동무는 훈련길을 다그치는 인민군군인들의 모습을 보게 되였다.비록 그들의 군복은 땀에 젖었어도 얼굴마다에는 성스러운 조국보위의 사명을 다하려는 드높은 열의가 어려있었다.군인들을 보는 그의 마음은 뜨거웠다.
-조국보위의 길에 청춘도 생명도 아낌없이 바쳐가는 인민군대가 있어 우리가 준엄한 정세속에서도 발편잠을 자는것이 아닌가.
문득 그의 눈앞에는 열렬한 조국애와 뜨거운 동지적의리심을 알게 해준 잊지 못할 군사복무의 나날이 어제런듯 방불하게 펼쳐졌다.
(내 비록 군복은 벗었어도 마음속의 군복은 영원히 벗지 않고 조국을 위한 성스러운 복무의 길을 변함없이 이어가리라.)
그날 인민군군인들을 위한 원군길을 걸어갈 그의 결심을 남편도 적극 지지해주었다.
그때부터 김명화동무의 가정은 원군의 길에서 참다운 삶의 보람을 찾으며 인민군군인들을 위해 무엇인가 하나라도 더 하기 위해 마음을 썼다.
많은 집짐승도 맡아 기르느라 언제한번 손이 마를새없이 뛰여다니였다.
그러나 자기들의 지성이 담긴 원호물자들을 받아안고 기뻐하는 군인들의 모습에서 힘과 용기를 가다듬으며 김명화동무의 가정은 오늘도 원군의 길을 쉬임없이 이어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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