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에 널리 알려진 동해의 해군용사들중에 18살막내였던 홍혁성병사의 어머니는 삼천군 읍 82인민반에서 살고있었다.단층집들이 아담하게 들어앉은 마을앞산에는 수유나무가 무성한데 집앞으로는 개울물이 조잘대며 흐르고있었다.
갸름한 얼굴에 선하게 웃는 고운 눈을 가진 리성애녀성은 체소하고 단아한 몸매에 내성적인 성격의 40대녀인이였다.
수수한 집안에서 먼저 눈에 띄운것은 아들의 조선인민군입대증과 나란히 걸려있는 애국렬사증이였다.애국렬사증을 유심히 바라보는 우리에게 리성애녀성은 나직이 말하였다.
《사실 저는 혁성이의 친어머니가 아닙니다.》
용사의 어머니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였다.
제 자식 열 키우기보다 남의 자식 하나 키우기가 더 힘들다는 말도 있는데 어느때가 제일 가슴아팠는가고 묻는 우리에게 리성애녀성은 이윽토록 아무 말없다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어렸을 땐 엄마엄마 하고 따르던 혁성이의 입에서 철들어서는 어머니라는 부름이 쉽게 나오지 않더구만요.이것이 제일 가슴아팠다고 해야 할지…》
혁성이가 군대로 떠나기 한달전에 있은 일이였다.농장일에 늘 바삐 지내던 그의 삼촌이 불쑥 집울안에 들어섰다.그뒤로 머리를 푹 숙인 혁성이가 마지못해 따라들어왔다.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부터는 말이 점점 없어지더니 요즈음은 며칠째 집에 들어오지 않아 성애의 속을 빠질빠질 태운 그였다.
시동생은 혁성이를 끌고 집안에 들어가 문을 꾹 닫았다.성애는 토방에 쪼그리고앉아 방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왜 집에 들어오지 않는거냐? 그래가지고도 군대에 나가겠다구?》
철썩 매를 안기는 소리에 성애의 가슴도 철렁했다.
《어머니속을 작작 태워라,이 녀석아!》
체통은 작아도 활달하고 시원시원하여 물불을 가리지 않는 성격이지만 일단 고집세우면 요지부동인 혁성이였다.그런데 침묵끝에 퉁명스럽게 흘러나오는 말이 성애를 깜짝 놀래웠다.
《친어머니나요 뭐?》
그 말은 성애의 가장 아픈 곳을 찔렀다.가슴이 와르르 무너져내리는것만 같았다.
(정말 키운 정이 낳은 정보다 못하단 말인가!)
집앞의 개울가에 외로이 앉아 눈물속에 달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속에서는 흘러온 10여년세월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다섯남매의 막내로 궂은일 한번 못해보고 자라난데다 달천영예군인료양소에서 온실의 꽃처럼 살아온 그가 처녀의 몸으로 엄마잃은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될 결심을 안고 삼천군산림경영소에서 일하는 홍정경과 가정을 이루기까지는 사실 쉽지 않았다.
최고사령관동지를 초소에 모시고싶어 낮이나 밤이나 중대의 전투력강화를 위해 헌신적인 복무의 길을 걸어온 병사,발이 닳도록 산판을 오르내리며 한그루 나무도 살붙이처럼 가꿔가는 진실하고 뜨거운 사람… 위대한 대원수님들을 모시고 진행된 조선인민군 사관장대회의 높은 연단에서 토론하는 그의 모습을 찍은 사진까지 보니 더 큰 걸음을 떼야 할 사람이 엄마없는 두 자식때문에 발목을 잡히우고있구나 하는 생각에 더이상 결심을 미룰수가 없었다.
신혼생활은 없었다.4살,5살짜리 장난세찬 총각애들의 뒤시중에 시름덜새 없었고 쌓이는 빨래감에 손이 마를새 없었다.우리 아이들이 선참으로 눈에 띄우게,그는 늘 이 심정으로 기쁘게 허리띠를 조였다.낳은지 돌도 안되는 혁일이는 할머니손에 맡겨 키울지언정 혁성이네 형제는 단 하루도 품에서 떼여놓은적이 없었다.…
(혁성이를 훌륭한 병사로 키우자는것이 우리의 소원이였는데… 미안해요,여보!)
며칠후 일터에서 돌아온 성애는 혁성이가 다니는 삼천군 온천중학교(당시)의 교장 김영숙을 만났다.담임선생님도 그러하였지만 혁성이에 대한 교장의 평가도 정말 뜻밖이였다.
《언제인가 물에 빠진 두 아이를 구원한 학생도,저 송곳산줄기에 나무를 제일 많이 심은 학생도 바로 혁성입니다.》
혁성이의 남다른 문학적재능을 위하여 문학교원은 그 애가 쓴 시를 들고 도에까지 백수십리길을 오갔다고 한다.
성애는 학교에서 집까지 나는듯이 돌아왔다.눈물이 나도록 기뻤다.혁성이의 겉만 보았지 속은 들여다보지 못했던 그였다.혁성이는 그가 혼자 키우는것이 아니였다.
그날밤 성애는 품들여 마련한 시집을 잠든 혁성이의 머리맡에 놓아주었다.그 시집을 품고 혁성이는 초소로 떠났다.
혁성이와 그의 동무들을 태운 뻐스는 아득히 사라졌지만 성애는 아들의 모습을 안고 길가에 점도록 서있었다.한참만에야 혁성이가 차창밖으로 손에 쥐여준것이 생각나 펼쳐보았다.
《어머니,용서해주세요.용서하지요?…
어머니가 바라던대로 꼭 아버지와 같은 훌륭한 병사가 되겠습니다.…》
점점이 눈물자욱이 확연한 아들의 편지우에 어머니의 행복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모교의 첫 영웅을 기다려달라는 아들의 시가 적혀진 편지를 품에 안고 성애는 울며웃으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너를 기다리겠다,아들아!)
그때로부터 일곱달후 성애는 초소에서 첫 생일을 맞은 혁성이의 편지를 받았다.편지에는 분대장과 함께 어깨를 겯고 친형제처럼 찍은 사진도 있었다.성애는 편지봉투에 낯익은 글씨로 또박또박 새겨진 자기의 이름을 몇번이나 곱씹어 읽어보았다.
《리성애(어머니)앞》
어린 혁성이의 학습장에 《어머니 보았습니다.》라고 정성들여 첫 수표를 써넣던 그때처럼 가슴이 후두두 뛰고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이밤따라 어머니생각이 더 납니다.〈엄만 먼저 먹었어.〉 하며 늘 내 그릇에 밥을 덜어주던 어머니,언제 한번 아래목에서 편히 쉬여본적 없는 어머니였습니다.꾸중 한번,매 한번 든적 없지만 어머니가 무슨 말을 하고싶어했는지 병사가 되여서야 알게 되였습니다.…
어머니,이제는 군함이 나의 집입니다.제가 입대하기 전에 구대원동지들은 최고사령관동지를 모시고 한집안식구처럼 기념사진까지 찍었습니다.
어머니,난 한생 해병으로 살겠어요.》
키도 더 크고 가슴도 더 넓어진 아들이 《어머니!》 하고 부르며 성큼성큼 다가오는 모습을 성애는 눈으로가 아니라 심장으로 보고있었다.성애는 이렇게 병사의 어머니가 되였다.
동해의 파도소리 처절썩 들려오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해빛이 비쳐드는 양지바른 둔덕,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존함을 모신 화환이 진정되여있고 조선인민군 해군명예위병대가 정렬한 병사릉앞에 병사의 어머니는 그린듯이 서있었다.가슴속에 고이 간직된 마지막모습그대로인 아들이,산뜻한 해군복을 입은 혁성이가 아버지를 꼭 닮은 잔조롬하면서도 록록치 않은 눈매로 18살청춘을 바쳐 지킨 조국의 바다를 바라보고있었다.그 모습은 바로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은원수님께서 심혈을 바쳐 한장한장 골라 완성해주시고 당마크가 새겨진 붉은 천에 싸서 보내주신 그 사진과 꼭같았다.
초소로 떠난지 1년 5개월만에 당마크가 새겨진 붉은 천에 싸여 어머니의 품에 돌아온 아들의 사진을 마주한 그날 리성애녀성은 난생처음 눈까풀이 내려지지 않는것을 체험하였다.3년전 남편을 잃었을 때에도 제발 밤이 오지 말았으면 하고 바라며 울다가는 지쳐 쪽잠에라도 들었던 그였건만 아들의 사진앞에서는 더 새록새록 정신이 맑아져 한시도 눈이 감겨지지 않았다.
처음으로 《엄마!》 하고 부르며 젖가슴을 파고들던 어릴적모습으로부터 초소에서 온 첫 편지까지 아들에 대한 모든 추억이 파도치며 밀려들었다.
군항의 배고동소리가 그의 귀가에 들려왔다.그 배고동소리에 실려 아들의 목소리가 쟁쟁히 메아리쳐왔다.
《어머니,난 한생 해병으로 살겠어요.》
공로메달 한번 달아보지 못한 성애의 앞가슴에는 홍혁성렬사에게 수여된 김정일청년영예상이 빛나고있었다.18살에 당원이 된 아들을 대신하여 받아안은 조선로동당 당원증을 다시금 소중히 안아보는 그의 심장에 경애하는 원수님의 절절하신 음성이 메아리쳐왔다.
《희생된 전사들을 생각하면 잠을 이룰수 없고 밥이 목에 넘어가지 않습니다.그들에게 푸짐한 식사 한끼 제대로 시키지 못하고 떠나보낸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여지는것 같습니다.》
포부도 크고 위훈을 세우려는 꿈과 희망으로 가슴 불태우며 복무의 나날을 보낸 용사들과 영웅이 되여 고향으로 돌아오겠다고 싱글벙글 웃으며 떠난 아들들의 희생을 두고 눈물을 흘릴 부모들,돌아올 남편을 기다리던 안해들을 생각하면 가슴에서 억장이 무너지는것만 같다,내 마음이 이렇게 아픈데 그들의 심정이야 오죽하겠는가.…
성애의 눈가에서는 눈물이 그냥 줄지어 흘러내렸다.병사릉앞에 선 어머니들모두가 울고있었다.
결코 아들을 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였다.자식을 잃은 어머니슬픔보다 더 큰 괴로움으로 해군용사들과 그 유가족까지 다 품어안으시고 누구보다 더 많이 눈물을 흘리시고 더 많은 밤을 지새우신 우리 원수님 생각이 온몸에 사무쳐와서였다.온 나라 병사들의 어머니들의 모성애를 합친것보다 더 크고 열렬한 정의 세계를 안겨주신 원수님에 대한 고마움이 가슴가득 끓어넘쳐서였다.
영생하는 아들을 품어안은 빛나는 그 붉은 글발앞에서 성애는 깊이 허리굽혀 절을 하였다.
《맏이야,병사릉에서 돌아온 11월의 그날에 시작한 편지를 이제야 마저 쓰게 되는구나.오늘 성의껏 마련한 원호물자를 초소에 보냈다.한일없이 당의 사랑만 받아안던 죄스러움이 조금이나마 덜어지는것 같구나.…》
군사복무를 하고있는 맏아들에게 편지를 부친 때로부터 한달이 지난 어느날 깊은 밤 성애는 해군지휘관들을 맞이하게 되였다.그날은 3.8국제부녀절을 하루 앞둔 날이였다.
당의 은정을 가슴가득 받아안은 성애는 목이 메여 아무 말도 못했다.세 자식을 키우느라 생일 한번 쇠여본적 없고 더우기 3.8국제부녀절은 잊고 살아온 그였던것이다.어깨에 별을 제일 많이 단 군관이 그냥 흐느껴우는 성애에게 조용히 말하였다.
《혁성동무는 최고사령관동지의 전우,당의 아들입니다.》
이 말을 성애는 지난 1월 당의 사랑이 담겨진 고급식료품들을 안고 해군지휘관들과 함께 집에 찾아왔던 군당책임비서에게서도 들었다.때없이 문열고 들어서서 가마뚜껑도 열어보고 혁일이의 학습검열도 하군 하는 뚝하면서도 인정무른 군당책임비서는 성애에게 있어서 친정아버지와도 같았다.
당의 아들 혁성이,그는 이름없는 농촌녀성의 작은 품이 아니라 용사의 어머니들도 어머니라고 부르는 크나큰 품속에서 영생하고있었다.
밭은 혈육이나 이웃의 정에도 한계가 있고 어머니의 모성애도 때로 자식생각을 잊는 때가 있다.그러나 전사한 해병모두를 자신의 전우,동지로 품에 안아주신 우리 원수님의 뜨거운 심장은 용사들과 그 유가족들을 한시도 잊은적 없었다.…
리성애녀성은 이런 말로 이야기의 끝을 맺었다.
《용사의 어머니는 과연 누구이겠습니까.》
우리는 그 대답이 비껴있는 홍혁성용사의 애국렬사증앞에 다가섰다.
이름 리성애,렬사와의 관계 어머니!
그는 홍혁성렬사를 낳은 친어머니는 아니였다.그러나 바로 그 렬사증에는 처녀의 몸으로 엄마잃은 철부지아이들의 어머니가 되여 그들을 병사로 조국앞에 내세운 한 어머니의 참된 인생이 수놓아져있었다.그 어머니에게 누구나 쉽게 지닐수 없는 렬사의 어머니라는 값높은 칭호를 준 자애로운 어머니의 크나큰 사랑이 절절히 흐르고있었다.
낳은 정우에 키운 정이 있다.그 키운 정우에 무엇이 있는가.
조국의 아들로 영생하게 해주는 위대한 어머니당의 진정이 있다!
《용사의 어머니는 과연 누구이겠습니까.》라고 격정을 터치던 리성애녀성의 물음이 다시한번 세차게 가슴을 두드렸다.
이 나라의 어머니들이 귀한 자식들을 웃으며 떠밀어보내는 품,비록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해도 아들딸들을 기꺼이 맡기는 그 품이 바로 용사들을 키워내는 위대한 어머니품이 아니랴.바로 그 품에 렬사의 어머니도 안겨사는것이다.
우리의 눈앞에는 구잠함 233호가 달리던 항로를 따라 최고사령관기를 날리며 결사옹위의 돌격침로를 헤가르는 불패의 무적군함들과 수천수만의 용사들의 모습이 선히 보이는것만 같았다.그뒤에 선 병사의 어머니들의 아름다운 모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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