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일

우리 수령님의 소원

우리 농민들이 기계로 농사를 짓게 하려는것은 어버이수령님의 평생소원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농촌경리의 종합적기계화를 실현하여야 농민들을 어렵고 힘든 일에서 해방할수 있으며 적은 로력을 가지고 농업생산을 늘일수 있습니다.》

수십년전 어느날 어버이수령님께서 청산리를 찾아주시였을 때이다.이날 농장일군들과 허물없이 자리를 같이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앞으로 부침땅 100정보당 뜨락또르가 몇대 있으면 기계화를 할수 있겠는가고 물으시였다.

뜻밖의 물으심에 일군들이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답변을 드리지 못하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논밭갈이를 비롯한 뜨락또르로 할수 있는 모든 영농작업을 잘 타산해보라고 하시였다.

한 일군이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더니 100정보당 뜨락또르가 1.6대만 있으면 될것 같다고 말씀드리자 그이께서는 어떻게 계산했는가고 물으시였다.일군이 년중 평균잡아 계산하였다고 말씀드리자 그이께서는 그렇게 해서는 농민들을 힘든 농사일에서 해방할수 없다고 하시며 뜨락또르가 제일 많이 쓰이는 시기가 어느때인가고 물으시였다.농장일군은 4월과 5월에 뜨락또르가 제일 많이 쓰인다고 말씀드리였다.농장일군의 말을 들으신 그이께서는 몸소 4월과 5월에 진행되는 영농작업은 물론 비료와 석탄,땔나무 등 운반해야 할 물동량까지 계산해보시더니 자동차는 200정보당 1대,뜨락또르는 100정보당 3대,불도젤은 300정보당 1대씩 배치하는것이 좋겠다고 하시며 청산리에서 기계화를 잘해보자고 하시는것이였다.

일군들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한것은 당시 농장에는 농경지 100정보당 뜨락또르가 1대씩 있었는데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단번에 3배로 늘이려고 하시기때문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앞으로 모든 협동농장들에 농기계를 이 수준에서 공급하자고 하시면서 청산리에 먼저 기준량대로 주겠으니 기계화를 잘하여 시범을 창조하라고 하시였다.그러시면서 일군들에게 공업이 농업에 투자하고있다는것을 농민들이 알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때로부터 며칠후 농장에 많은 자동차와 뜨락또르,불도젤이 발동소리 높이 울리며 들어서자 일군들과 농장원들은 뜨거운것을 삼키며 달려가 그것들을 쓸어보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또 흘리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은정속에 힘든 일을 기계로 하게 된 농장원들은 그이의 크나큰 사랑에 알곡증산으로 보답할 드높은 결의로 가슴을 끓이며 떨쳐나섰다. 그리하여 그해는 물론 이듬해에도 농사를 잘 지어 만풍년을 마련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농장에 많은 뜨락또르와 자동차,불도젤을 보내주신 때로부터 두해가 지난 가을 어느날이였다.또다시 농장을 찾아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농기계리용정형을 하나하나 알아보시였다.

당시 뜨락또르운전수들은 수렁논에는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을뿐아니라 고장이 날가봐 걱정부터 앞세우고있었다.그러다보니 기계화수준을 더 높일수 있는것도 높이지 못하고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헤아려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자신은 뜨락또르에 고장이 생기는 한이 있어도 우리 농민들이 기계를 마음껏 써보았다고 하는 말을 들었으면 소원이 풀리겠다고 말씀하시였다.이윽하여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농민들을 힘든 농사일에서 벗어나게 할수만 있다면 아까울것이 없다고,농촌에 더 많은 농기계를 만들어보내주자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주체57(1968)년 5월 어느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또다시 청산리를 찾아주시였다. 이날 농산작업의 기계화수준을 높여 로력을 적게 들이면서 정보당 수확고를 높이였다는 농장일군의 이야기를 들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농촌에서도 8시간로동제를 실시할수 있게 기계화수준을 더 높여야 한다고 하시였다.그러시면서 청산리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보라는 크나큰 믿음을 주시였다.

이때뿐이 아니였다.어느날 농장을 찾아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농촌기술혁명이 쉽게 될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하시면서 우리 함께 힘을 합쳐 일을 하자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잊을수 없는 력사의 그 나날들과 더불어 청산리는 종합적기계화의 시범단위로 온 나라에 그 이름 떨치게 되였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