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9일

다시 찾은 행복

로춘선은 여러해만에 고향인 운전군을 찾았다.이곳에 사는 둘째오빠네가 한번 다녀가라고 했거니와 소꿉동무들도 보고싶었던것이다.고향땅은 연기도 달다더니 향토의 모든것이 애틋하고 정다왔다.저녁무렵엔 평양에 시집간 동창생이 오래간만에 왔다면서 중학시절동무들이 찾아왔다.

《처녀때 모색이 여전하구나.》

《집은 통일거리에 있다지?》

동창생들은 이구동성으로 반겨 말했다.

《학생때 뽈 잘 차던 영삼동무는 여기서 농장일군으로 일하고 이 동무는 기사장이야.그래 넌 지금 무슨 일을 하니?》

한 동창생이 이러자 모두가 궁금한듯 쳐다보았다.로춘선은 머밋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궤도전차 차장이란다.》

동창생들은 《그래?!》 하며 놀라와했다.

《아니,원래야 유치원에서 일하지 않았니?》

로춘선이 선뜻 대답을 못한것은 그때문이였다.이전에 그는 유치원에서 일했다. 후엔 부양으로 있었다.오래동안 가두생활을 하던 그가 마흔살이 퍽 지난 나이에 돌연 궤도전차 차장이 되였을 때 동네녀인들 역시 놀라와했지만 사람의 생활에서 일어난 변화엔 그것이 크든작든지간에 동기가 있어 로춘선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다섯해전,하루는 대학졸업을 앞둔 로춘선의 아들이 배치사업때문이라면서 문건을 썼다.맏이가 마침내 대학을 졸업하게 되여 무등 기뻤던 로춘선은 그가 어머니직업란에서 펜을 멈춘것을 보고 《왜 그러냐?그저 부양이라고 쓰려무나.》라고 심상하게 말했다.아들은 대답이 없고 대신 오빠곁에 앉아 문건쓰는것을 들여다보고있던 외동딸인 막내가 고개를 들었다.

《부양이란 무슨 말이예요?》

막내가 제 오빠에게 묻는것인지,자기에게 묻는것인지 알수 없었지만 아무튼 로춘선은 속이 뜨끔해져 입을 다물고말았다. 더구나 맏이가 《그건 늙은이나 불구자,장기환자같은 사람이 남의 도움을 받아 살아간다는 소리야.》 하는 바람에 얼굴이 화끈해졌다.기실 그는 한창 일할 나이였고 환자는 더우기 아닌것이였다.그런데 여러해째 남편의 부양을 받고있었다.하지만 국가의 혜택으로 자식들을 돈 한푼 들이지 않고 공부시키고있었고 아들은 대학까지 졸업하게 된것이였다.그는 량심의 가책에 부대끼지 않을수 없었다.아들이 문건에 쓴 《부양》이라는 두 글자앞에 자신을 세워볼수록 집에 들어앉아 가정잡사에나 신경을 쓰며 살아온 지난날이 마음을 무겁게 하였고 고난의 행군시기 가정을 돌본다고 하면서 유치원을 그만둔것도 몹시 후회되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나는 무엇을 바쳤는가라는 물음에 늘 자신을 비추어보면서 애국의 마음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며칠후 로춘선은 집을 나섰다.다시 직장에 나가겠다니 정말 생각 잘했소,이제라도 늦지 않으니 새 출발하오,그새 나라에 진 빚을 갚기도 할겸 녀성로력이 많이 필요하고 일손이 바른 그런 직장에 들어가는게 좋을것 같소라고 하던 남편이나 어머니직업란에 이제부턴 부양이라고 쓰지 않아도 되겠다고 기뻐하던 아들을 생각하니 걸음에 못내 힘이 갔다.그런데 남편이 한번 가보라고 권고한 도시미화사업소에 들리니 지배인이 반가와는 하면서도 딱해하였다.

《고맙소만 우린 로력이 다 찼구만.이거 정말 미안하오.》

그 말이 다른 녀성들처럼 살지 못한 자기에게 드는 매같아 로춘선은 달아오른 얼굴로 도망치듯 그곳을 나왔다.길거리에 망연히 서서 보니 건너편엔 공장이 있고 옆에는 탁아소가 있었지만 또 거절당할것만 같아 찾아가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그는 집에 돌아가 다시 곰곰히 생각해보고 직장을 정하리라 마음먹고 근방에 있는 서평양-락랑궤도전차정류소로 갔다.정류소에는 차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는데 불만스러운 표정들이였다.한동안이 지나 궤도전차가 도착하자 손님들은 차에 오르면서 한마디씩 하였다.

《요즘엔 왜 궤도전차가 잘 안 다니는지 모를 일이구만.》

《거야 봉사성에 문제가 있어 그러지요.》

《옳습니다.》

듣다못해서인지 운전사가 좌석에서 벌떡 일어섰다.

《손님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가만히들 계시라구요.차장이 부족해 그러는겁니다.》

운전사는 부아가 난듯 윙- 차를 몰았다.그 서슬에 차창곁에 서있던 로춘선은 비칠거리였다.

(차장이 모자라다니?!…)

그는 다음정류소에서 서둘러 차를 내렸다.그리고 한달음에 락랑궤도전차사업소로 갔다.사업소일군은 난데없이 나타난 그를 한동안 쳐다보다가 정말 차장을 하겠는가 곱씹어 물었다.

《차장로력이 긴장한것은 사실인데 잘 생각해보오.나이도 적지 않은데… 우린 한번 받으면 잘 놓아주지 않소.한두번 차를 타보고 그만둘 생각이면 아예 단념하고.》

하지만 로춘선은 결심이 확고했다.다시는 나라의 짐이 되는 사람,제 가정의 리익만 추구하는 녀성,공짜밥을 먹는 인간이 되지 않으리라 속다짐했던것이다.그런데 첫 출근날 딸이 슬그머니 아빠트마당까지 따라나오더니 팔을 끄당겼다.

《엄마,정말 차장을 하려나?》

로춘선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였다.그러자 딸이 《다른 직업도 많은데 하필이면 그 나이에 궤도전차 차장을,우리 학급엔 어머니가 차장을 하는 애가 없어.》 이러며 등을 돌려댔다.로춘선은 그만 생각이 착잡해져 잠시 섰다가 마음을 다잡을겸 말하였다.

《차장이 어째서.우리 나라엔 직업의 귀천이 없다.너도 그 영화 봤지.〈한 당일군에 대한 이야기〉.군당책임비서의 안해가 수매원으로 일하지 않던.》

그러나 딸은 《거야 간부의 안해이니까 그랬지.》 하며 얼굴을 돌릴줄 몰랐다.아침 5시에 집을 떠나야 첫 운행을 보장할수 있었다.그래서 새벽에 일어나 밥을 짓고 서둘러 사업소에 나가 궤도전차에 올랐지만 딸의 일로 하여 로춘선은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거리는 아직 고요했다.첫 정류소쪽을 보니 밤교대를 마치고 퇴근하는 동평양화력발전소 로동자인듯 한 손님들이 몇명 있을뿐이였다.그들을 보자 딸이 한 말이 되살아났다.

(뭐? 로동자의 안해이기때문에 차장을 하느냐고? 덜돼먹기란 원…)

(아니,다 내 잘못이지.애들앞에 본보기로 살지 못한탓이야!)

이런 생각을 엇바꾸느라니 회오의 눈물이 솟구쳤다.그러다나니 자기에게 고정배차된 궤도전차 3038호가 거리를 향해 사업소를 출발하는것도 모르고 앉아있었다.그때였다.운전사가 사령실앞에 차를 세우며 그를 돌아보았다.

《로아주머니,매일 아침 여기선 잠간 내렸다 올라야 합니다.》

무슨 일인가 하여 로춘선이 엉거주춤 일어서는데 차창밖에서 이런 목소리가 울렸다.

《3038호,빨리 빵과 콩우유를 받아가라요!》

빵이라니? 콩우유는 또 웬것인가?!…

그는 묻는 얼굴로 운전사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운전사는 빙긋 웃을뿐이였다.그날 로춘선은 운전사 배학철이 하는 이야기를 새겨들으며 따끈한 빵과 콩우유를 눈물속에 들었다.

(나라에서 궤도전차,무궤도전차,뻐스운전사,차장들에게 빵과 콩우유를 공급하다니!손님들을 나르고 차표를 받는게 무슨 힘든 일이라고…)

그는 지금껏 무심히 스치였던 많은 사람들을 여겨보기 시작하였다.명절날,일요일 가림없이 운행길을 달리는 뻐스,무궤도전차,궤도전차의 운전사와 차장들,아침저녁으로 길을 쓰는 도로관리원들과 하수도를 정비하는 오수준첩공들,공공위생시설관리공들… 그들모두가 돋보이였다.소문없이 사회를 초석처럼 받들고 인민들의 생활에 자신을 고이는 사람들속에 자기도 서있다는 긍지도 컸다.하기에 딸이 어머니가 차장을 하는것이 남보기에 창피하다고 하면서 거리에서 궤도전차 3038호를 만나면 피한다는것을 알게 되였을 때 그를 앞에 꿇어앉히였다.

《너 지금 누굴 모욕하고있는지 아니? 이 어머니 하나가 아니라 인민들을 위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애써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모욕하고있다.그게 얼마나 죄되는 일인지 아니?》

몇달후 설명절날 막차를 운행하고 밤늦어 퇴근해오니 딸이 아빠트마당에 나와 기다리고있었다.로춘선은 《늦어 미안하구나.》 하고 어느새 입버릇처럼 된 이 말을 하며 안고 온 꽃송이들을 내밀었다.

《손님들이 주더구나. 명절날에 수고한다면서.》

딸은 말없이 꽃송이들을 매만지였다.그날 막내는 어머니를 꼭 그러안고 잤다.다음날 로춘선은 차에 손님들을 태우다가 누군가 자기 손에 차표를 쥐여주며 다정히 건드리는것을 느꼈다.얼굴을 돌리니 딸이 웃으며 쳐다보고있었다.로춘선은 그를 껴안아주었다.

《제 딸이예요.》

그가 손님들에게 이러자 딸이 말하였다.

《우리 어머니입니다.우리 어머닌 차장입니다.》

손님들은 껄껄 웃으며 뜻있게 눈인사를 보냈다.

이젠 구면지기가 된 그들을 로춘선은 우리 차 고정손님이라고 부르군 하였다.그렇게 궤도전차 3038호를 늘 타고 다니는 사람들속에는 영웅도 있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도 있으며 로력혁신자도 많았다.대학,연구소의 박사들도 있고 공장,기업소의 지배인,당비서들도 있었다.전쟁로병,영예군인들이 차에 오르면 앉을 자리를 마련해주고 애기어머니가 타면 차장자리를 내주는 로춘선을 손님들모두가 칭찬하고 존경하였다.

궤도전차 3038호에서는 늘 노래소리가 울리였다.선창은 로춘선이 떼고 손님들이 합창으로 받군 하였다.새 노래가 나오면 남먼저 배워 손풍금을 타며 보급하는 로춘선을 손님들은 우리 선동원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그가 해설하는 사회공공질서와 법규범들,그가 랑독하는 혁명소설,그가 읊는 시들을 듣느라 내려야 할 정류소를 지나치는 손님도 있었고 그가 부르는 노래를 더 듣고싶어 우정 종점까지 가는 손님도 있었다.보통강구역 봉화동 9인민반에서 살고있는 김성환전쟁로병은 신문에 새 노래가 실리면 그것을 로춘선에게 가져다주군 하였다.로춘선이 고마와하였더니 로병은 머리를 저었다.

《인민을 위해 헌신적으로 복무하고 당정책선전에 노력하는 차장동물 돕고싶어 그러오.내 언제인가 동무가 구겨진 차표를 낸 손님에게 하는 말을 듣고 무척 감동되였댔소.그때 이랬지.어제나 오늘이나 나라에서는 인민들을 위해 차표값을 눅게 정하고있다.차표는 국가에서 인민들에게 베푸는 혜택의 증표이기도 하다.그런데 이렇게 건사하면 되겠는가.》

그가 로춘선과 인연을 맺은것은 네해전 겨울이다.그때 궤도전차 3038호에 오른 그는 좌석에 앉자 그만 깜빡 졸았다.이상하게 무릎도리가 따스해 눈을 떠보니 털세타가 씌워져있었다.곁에 앉은 청년이 차장아주머니가 자기 세타를 벗어 씌워드렸다고 귀띔하였다.딸이나 며느리이면 이보다 더하랴 하고 그가 눈을 슴벅이며 세타를 거두어드는데 로춘선이 다가와 말하였다.

《아버님,그냥 덮고계십시오.감기라도 들면 어쩌나 해서 그랬습니다.》

그후부터 로병은 궤도전차를 탈 일이 있으면 우정 3038호를 기다려 타군 했다.살틀한 차장을 한번 더 보고싶었고 그가 부르는 노래도 다시 듣고싶어서였다.

로춘선은 운전사와 인차 친동기간처럼 되였다.항상 그를 도와 차정비도 하고 차안도 알뜰히 거두었다.배학철은 집에서 만든 별식을 운전대곁에 놓아주기도 하고 새옷도 안겨주며 운행길을 한마음이 되여 달리는 로춘선을 로아주머니라고 부르던 대신 우리 누이라고 불렀다.하루는 그가 느닷없이 말했다.

《누이,좀 힘이 든다 해도 다른데 가지 마오.나와 함께 이 3038호에서 늙읍시다.》

로춘선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별말을 다.내가 가긴 어디로 가겠어요. 난 3038호를 못 떠나요.이젠 손님들을 떠나 못살겠어.》

배학철에게서 그 말을 듣고 사업소 초급당비서는 머리를 끄덕이였다.

《제 맡은 일에 진짜로 량심을 바치는 사람의 직업애란 바로 그런것이고 생활에서 그렇게 표현되는 법이지.》

로춘선의 추억담에 동창생들은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정말 훌륭하구나.일을 더 잘해줘.그렇게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것이 얼마나 좋니!》

로춘선은 눈물이 글썽해 늘 생각하고있던것을 말하였다.

《그래,난 정말 행복해.그게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겠구나.사실은 다시 찾은 행복이지.난 속으로 손님들과 약속했다.년로보장받을 때까지 차에서 내리지 않겠다고.》

다음날 이른아침 평양역에 도착한 로춘선은 곧장 사업소로 갔다.언제 봐도 정다운 궤도전차 3038호가 기다리고있었다.

(조국에 바치고 사회와 집단,인민을 위하는 로동은 얼마나 보람찬가.인생의 가치도 행복도 거기에 있는것이다.)

궤도전차는 거리를 달리였다.인민들의 웃음을 싣고,생활의 진리도 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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