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시에는 《관서제일루》로 불리우는 백상루뿐아니라 안주성과 충민사비,봉수지들도 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력사유적유물들을 원상대로 잘 보존관리하여야 합니다.》
고구려가 수도를 평양으로 옮긴 후 안주는 평양성을 방위하는 북쪽의 주요군사요충지로 건설되였다.당시 고구려는 평양성을 중심으로 곳곳에 많은 성을 쌓았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안주성이다.
옛 기록에 의하면 안주를 고구려시기에는 식성이라고 불렀고 고려초시기에는 팽원이라고 하였으며 12세기 중엽부터 안주라고 고쳐부르게 되였다.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놓여있었던 안주성은 교통의 중심지였다.이 성의 총길이는 근 6 500m에 달한다.
안주성은 내성과 외성,신성의 3개 부분성으로 이루어져있으며 부분성들을 쌓은 년대는 서로 다르다.
내성은 고구려시기 쌓은것인데 성벽은 청천강변에 뻗어내린 가두산줄기의 등성이와 강기슭언덕에 쌓았다.성벽은 바깥경사면을 깎아내린 다음 거기에 기초돌을 놓고 외면쌓기방법으로 바깥면에만 쌓아올렸고 곳에 따라 량면쌓기방법도 적용하였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쌓은 외성의 길이는 3 650m이다.
신성은 외래침략자들을 물리친 후 17세기에 쌓았는데 그 길이는 500여m이다.
안주성은 고려시기인 930년과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여러차례 보수되였다.
안주성의 각 부분성들의 성문들은 대체로 동,서,남,북방향에 배치되였다.
안주성안에는 곳곳에 큰 못을 파고 물을 가득 채워놓았다고 한다.그중에서 제일 큰 못은 칠성못이다.칠성못가운데는 북두칠성을 상징하듯 작은 흙섬을 7개 만들어놓았다.
안주성은 여러차례에 걸친 외래침략자들을 물리치는 싸움에서 강력한 거점으로 되였다.
당시 청천강은 해자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충민사는 안주시에서 동쪽방향 즉 외성,내성,신성으로 둘러쌓인 지점에 있으며 이곳을 따라 북쪽방향으로 가면 칠렬사터자리가 있다.충민사는 현재 터자리만 알아볼수 있다.
여기에 충민사비가 서있다.비문에는 당시 외적과의 전투상황을 전하면서 전투에서 무비의 용감성을 발휘한 사람들처럼 나라를 위하여 싸우는 사람이 되라는 내용이 씌여져있다.
충민사비의 높이는 2.52m이다.
청산봉수지는 안주시내로부터 신안주방향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봉오산의 봉우리에 있다.여기서 서쪽으로 열두삼천리벌이 펼쳐져있다.
봉화대(봉수지)는 산봉우리의 천연바위를 리용하여 축성하였는데 바위만 보존되여있고 봉화대의 시설은 없다.
옛 기록에는 청산봉수는 북으로 박천군 칠학산에서 련락을 받고 남으로는 오도산봉수에 련락하였다고 한다.
태조봉수지는 안주시에서 동쪽으로 700m되는 지점인 태조봉이 위치한 곳에 있다.봉수지 동남쪽에 서산봉이,남쪽에 마두산 그리고 서쪽에 안주성과 백상루가 있으며 북쪽에 청천강이 있다.
봉화대의 제일 높은 곳은 손상되였으나 형태는 남아있다.
오늘 안주시의 력사유적들은 우리 인민들과 청소년학생들을 애국주의정신으로 교양하는 장소로,근로자들의 문화휴식터로 되고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