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방사업은 당조직의 몫이다.하다면 당일군들이 후방사업에서 지닌 무거운 책임을 다하기 위한데서 절실하게 제기되는 문제들은 무엇인가.
군중관문제,헌신적복무정신문제,실력문제…
그중에서 특별히 중요한 문제가 있다.사회주의를 결사수호하려는 신념문제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신념이 확고한 사람은 아무리 어렵고 복잡한 환경에 처하고 난관이 앞을 가로막아도 동요없이 그것을 과감하게 뚫고나가며 맡겨진 혁명임무를 끝까지 수행합니다.》
남포항 당위원회 비서 안윤덕동무가 지난 3년간 후방사업에서 거둔 커다란 성과는 당일군의 사회주의수호신념이자 후방사업실적이라는것을 말해주고있다.
철썩-,처절썩-
안윤덕동무는 방파제우를 거닐고있었다.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바다물에 옷이 젖는것도 느끼지 못하고있었다.
후방사업을 대하는 일부 일군들의 근시안적인 안목때문이였다.
당비서사업을 새로 시작하면서 그가 돌아본 항의 후방토대는 너무도 빈약했다.
볼품없는 단층건물의 버섯재배장,20여마리의 집짐승들로 현상유지나 하고있는 축사,자그마한 면적의 남새온실…
종업원들의 수요를 충족시킨다는것은 꿈도 못 꾸고 이름만 걸어놓은 후방사업실태였다.
이 문제를 놓고 혁신적안을 내놓았을 때 후방부문의 한 일군이 하던 말이 다시금 귀전에 울리였다.
《지난 시기처럼 이제 항이 번창하면 후방사업이 저절로 따라서겠는데 너무 일판을 크게 벌리는것이 아닙니까?》
그러면서 그는 후방사업이 비교적 잘되던 때를 옛말처럼 이야기하였다.
그때는 정말 대외무역이 활발했다는것,물동들이 항을 채우다싶이 하였다는것,그에 따라 후방사업도 괜찮았다는것…
주어진 사실들을 놓고볼 때 항에서 후방사업이 추서지 못하는 원인은 일군들의 그릇된 사고관점에 있었다.
그 일군이 회고하는 그때로부터 환경은 많이 달라졌다.이전 사회주의시장이 무너지고 우리를 압살하려는 제국주의자들의 봉쇄책동은 날로 악랄해지고있다.그전과 달리 누가 주겠다는데도 없고 가져올데도 없다.
그런데도 일군들은 유리한 조건이 마련되기만 기다리면서 자체의 힘으로 후방토대를 꾸려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있는것이였다.
후과는 컸다.
종업원들속에서 점차 일터에 대한 애착이 식어지고 다른 단위를 넘겨다보는 현상까지 나타나고있었다.출근률도 이전보다 높지 못하였다.
이대로 나간다면 항의 오늘은 물론 래일의 밝은 전도도 담보할수 없을것이였다.
철썩-,처절썩-
안윤덕동무는 항을 감싸안고 연 10여리 늘어서있는 방파제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항구를 믿음직하게 지켜서있는 그 방파제가 오직 자기 수령,자기 당만을 굳게 믿고 그 어떤 시련의 광풍도 꿋꿋이 이겨내며 항과 함께 운명을 같이해온 종업원들의 불굴의 모습으로 안겨왔다.
그는 이런 종업원들의 생활향상을 위한 후방토대를 튼튼히 다져놓을 때 그들이 사회주의수호전에 더욱 힘있게 떨쳐나서게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날 파도사나운 방파제우에서 선군시대 당일군으로서의 책임감을 다시금 깊이 자각한 안윤덕동무는 결심하였다.
(항의 후방사업을 추켜세우기 위한 벅찬 실천투쟁속에서 사회주의수호신념을 검증받으리라!)
모든 성공의 비결은 신념의 확고부동성에 있다.
안윤덕동무는 후방사업개선을 위한 사업을 통이 크게 작전하고 굳은 각오를 가지고 밀고나갔다.
4 200㎡의 새땅을 찾아내여 남새온실을 번듯하게 일떠세운 과정을 놓고보자.
지금까지 후방일군들은 항에서 남새온실건설을 위한 적합한 부지를 얻어내는것을 불가능한것으로 여기고있었다.
그런데 며칠동안 항을 돌면서 안윤덕동무는 한곳을 정하였다.이전에 남포제련소의 굴뚝이 있던 자리였다.백여m의 굴뚝이 무너져 산을 이루었다고 하여 사람들은 그곳을 굴뚝산이라고 하고있었다.
그곳에 온실을 건설하자고 할 때 일군들은 아연해하였다.
제정신이 있는 소리인가.집채만 한 콩크리트부재들을 까내고 수만㎥의 버럭을 처리해야겠는데 그 많은 물동을 무슨 수로 나른단 말인가.당비서가 주관에 빠져도 단단히 빠졌다고들 하였다.
그러나 그 어떤 말도 안윤덕동무의 굳은 신념과 의지를 돌려세울수 없었다.그는 대중속에 들어가 힘있는 정치사업을 벌리였다.항장 박준호동무와 부비서 장은석,김영길동무들을 비롯한 당위원회일군들도 종업원들속에 들어가 후방사업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시켰다.
항이 생겨 일찌기 없던 방대한 온실건설전투가 벌어졌다.항의 운수수단과 함께 련관단위의 자동차들을 효과적으로 리용하여 버럭을 실어날랐고 안윤덕동무자신이 앞장에서 함마전과 마대전을 벌리였다.
그야말로 격전이였다.우리의 제도를 말살하기 위해 날뛰는 적들과의 말없는 대결전이였다.
굳은 콩크리트부재들을 까내기 위해 무려 300회의 발파를 하였다니 그 간고성을 더 말해 무엇하랴.
그 과정에 있었던 하많은 이야기를 어찌 한두마디로 다 전할수 있겠는가.
한번은 필요한 자재가 미처 보장되지 않아 건설이 처지고있었다.자재보장을 맡은 일군이 주어진 조건을 내대면서 맥을 놓고있었다.이것을 알게 된 안윤덕동무는 그길로 그 일군을 데리고 시안의 련관단위를 찾아다니며 끝끝내 자재를 해결하여 공사가 일정대로 추진되게 하였다.
그날 심한 자책감에 젖어있는 일군에게 안윤덕동무가 한 말은 무엇이였던가.
《지금 미제를 비롯한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은 종업원들의 얼굴에 피여나는 웃음꽃을 제일 무서워하오.우리가 후방토대를 갖추기 위한 사업에서 잠시나마 마력을 내지 못한다면 그 웃음꽃을 피우는 날이 그만큼 늦어진단 말이요!》
그날 일군은 후방사업을 실무적으로만 대하던 자신의 결함을 심각히 뉘우쳤다고 한다.
이것은 안윤덕동무의 사회주의수호신념이 얼마나 투철한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실례이다.
이런 그였기에 그는 남들이 엄두도 못 내던 굴뚝산자리에 끝내 온실을 건설하고야말았다.
일군의 사회주의수호의지는 돌우에 꽃을 피웠던것이다.
안윤덕동무는 후방사업개선을 위한 투쟁에서 해보다가 성공하면 좋고 안되면 할수 없다는 식을 제일 경멸하였다.우리 당정책은 어느것이나 정당하며 뼈를 깎아서라도 무조건 끝장을 보아야 한다는 확고한 립장에 선것이다.
당에서 버섯기지를 꾸리라면 최상의 수준에서 건설하였고 양어를 대대적으로 할데 대한 방침이 제시되면 양어장에 물절반,물고기절반이라고 할 정도의 풍만한 메기풍경을 펼쳐놓았으며 축산에서 비알곡먹이비중을 높이기 위해 천여㎡의 단백풀재배장도 펼쳐놓았다.
바로 후방사업개선을 위한 투쟁과정을 곧 일군의 사회주의수호신념이 발현되는 과정으로 보았기에 그는 후방토대가 령이나 다름없던 항에 기적적인 성과를 안아올수 있었다.
물론 우리는 남포항의 후방사업이 남흥이나 성강과 같은 높은 수준에 있다고는 말하지 않는다.하지만 이곳에 사회주의수호신념이 그처럼 굳센 안윤덕동무와 같은 일군들이 있기에 래일의 눈부신 성과가 기약되여있다고 본다.
오늘에 와서 우리는 후방사업에서 비약을 일으키며 종업원들의 심장에서 로동당만세의 함성이 울려나오게 하는 단위 당일군들을 다시 보게 된다.그들은 종업원들의 참된 복무자,충복인 동시에 사회주의수호신념을 그 누구보다 투철하게 간직하고있는 일군들인것이다.
안윤덕동무의 사업을 놓고 모든 당일군들은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나는 과연 후방사업에서 얼마나 실적을 내고있는가.사회주의수호신념이 과연 얼마나 투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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