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4일

사연깊은 저금통장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마음속에는 언제 어디서나 사랑하는 조국과 인민이 소중히 자리잡고있었습니다.》

문학예술혁명의 불길이 세차게 타번지던 주체61(1972)년 4월 어느날이였다.

새로 만든 영화의 작업필림을 보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문득 옆에 앉아있는 조선영화문학창작사의 한 책임일군에게 창작사건설에 동원된 작가들과 돌격대원들이 일을 많이 한다는데 그들에게 간식이랑 제대로 공급되고있는가고 물으시였다.

뜻밖의 물으심에 일군은 선뜻 대답을 드릴수 없었다.창작사건설을 발기하시고 건설력량과 자재,설비들까지 몸소 해결해주시며 건설이 최상의 수준에서 진행되도록 마음쓰시는것만도 가슴뜨거운데 작가들과 돌격대원들의 간식문제에 대하여서까지 알아보시니 그이를 우러르며 일군은 눈굽이 뜨거워져 한동안 대답을 드릴수 없었다.일군은 마음을 다잡고 간식량이 좀 적어졌다고 사실대로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오늘 아침 알아보니 지난밤에도 그들이 새벽까지 큰 토량공사를 해제꼈다고,그들에게 어떻게 해서라도 간식을 제대로 주어야 하겠다고 하시였다.그러시고는 잠시 무엇인가 생각하시더니 자신의 저금통장에 저금한 생활비가 얼마나 있는가 알아보고 그것을 찾아다가 쓰도록 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아니,자신께서 쓰셔야 할 생활비를 돌려주시다니?…)

자그마한 특전도 허용하지 않으시는 우리 장군님께서는 여느 일군들과 똑같은 생활비를 받으시며 검박하게 생활하시였다.하지만 장군님께서는 요긴하게 쓰셔야 할 생활비까지도 창작사건설에 동원된 작가들과 돌격대원들을 위하여 아낌없이 돌려주시는것이였다.

그이께서 보내주신 사연깊은 생활비를 어떻게 천만금의 재부에 비길수 있으랴.

그날밤 건설장에서 사랑의 간식봉지를 받아안은 작가들과 돌격대원들은 차마 그것을 입에 대지 못하고 뜨거운 눈물만 삼키였다.

그날부터 건설장에서는 놀라운 기적들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이 안아온 기적이였다.

그러나 우리 장군님의 사랑과 은정은 시작은 있어도 끝이 없었다.

며칠후였다.창작사의 책임일군은 당중앙위원회의 해당 부서로 오라는 련락을 받게 되였다.

건설과 관련한 중요한 문제가 제기된것이라고만 생각하고 급히 달려간 그는 뜻밖에도 한 일군이 내놓는 저금통장과 보자기에 싼 현금을 마주하게 되였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는 저희들이 저금통장에 있는 금액의 절반만 찾아다준것을 아시고는 몹시 나무람하시면서 다 찾아다주라고 다시 이르시였습니다.

동무들! 동무들은 정말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창작사의 책임일군은 떨리는 두손으로 저금통장을 펼쳐들었다.그것은 빈 저금통장이였다.

돌이켜보면 인류력사에는 위인들도 적지 않았고 인민을 위한다는 정치가들도 없지 않았다.그러나 어느 위인,어느 지도자가 작가들의 창작실을 꾸려주기 위하여 자신이 직접 시공주가 되여 세간난 자식의 집을 지어주듯 그렇듯 세심히 보살펴준적 있었으며 더우기 그들을 위하여 생활비마저 고스란히 돌려준적 있었던가.

문학예술혁명을 구상하시고 정력적으로 지도하시는 그 바쁘신 속에서도 창작가,예술인들의 생활에 제일먼저 관심을 돌리시며 그들을 위하여 주실수 있는 모든 사랑과 은정을 다 돌려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진정이 그 저금통장에 비껴있었다.

창작사의 책임일군만이 아닌 작가들과 돌격대원들모두가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이 담겨있는 사연깊은 보자기를 쓸어보고 또 쓸어보며 이렇게 마음속으로 웨쳤다.

(혁명전사들을 위하시는 그이의 뜨겁고도 위대한 사랑과 믿음의 세계의 시작과 끝은 과연 어디인가! 그이의 높은 뜻을 더 높은 창작적성과로 받들어가리라.)

이것이 바로 문학예술부문의 모든 창작가,예술인들이 수십년세월이 흐른 오늘까지도 잊지 못하는 위대한 장군님의 저금통장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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