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16일

인민의 행복을 꽃피우시는 길에서

창광원건설이 한창이던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 또다시 건설현장을 찾으시였을 때였다.

새로 꾸려진 대중탕을 돌아보시며 건설정형을 료해하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초음파기계실로 드나드는 출입문을 보시고 무슨 문인가고 물으시였다.

한 일군이 기계운전공이 드나들 문이라고 말씀올리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저으기 심려어린 음성으로 문을 이렇게 내면 기계소음이 새여나올뿐더러 기계운전공들이 자주 드나들어야 하므로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줄수 없다고 하시면서 기계실로 드나드는 문을 대중탕밖으로 낼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일군들은 커다란 자책감으로 아무 말씀도 드릴수 없었다.

사실 그 문으로 말하면 일군들이 설계과정에 수많이 보았을뿐아니라 시공과정에도 늘 드나들던 문이였다.하지만 그 문으로 하여 목욕탕을 리용하는 인민들에게 불편을 줄수 있다는데 대하여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였던것이다.

모든 사색과 실천의 첫자리에 인민을 놓으시고 인민들에게 가장 훌륭한 생활조건과 환경을 마련해주시려 모든것을 다 바치시는 위대한 장군님이시였기에 대중탕에 들어서시는 첫 순간에 부족점을 발견하신것이였다.

인민을 위한 일에서는 자그마한 부족점도 절대로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는것이 우리 장군님의 뜻이였다.

빙상관건설을 앞둔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빙상관이야 우리 인민들이 쓸 집인데 그들의 의견을 들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공사를 시작하겠는가고 하시며 설계대로 실지모형을 만들어놓고 인민들의 의견을 들어보자고 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건물의 높이와 모양,크기를 보여줄수 있도록 여러개의 줄을 단 커다란 기구를 띄워놓고 광범한 인민들의 반영을 듣게 되였다.

며칠후 일군들로부터 사람들이 한결같이 건물륜곽도 좋고 높이도 알맞춤하며 위치도 좋다고 하였다는데 대한 보고를 들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인민들이 보고 좋다면 그만이라고 하시며 환하게 웃으시였다.그러시면서 이제는 공사를 본격적으로 내밀어야 하겠다고,건축예술에 대한 우리 인민의 요구수준이 나날이 높아지는만큼 그들의 요구를 기준으로 삼고 빙상관을 최상급으로 건설하자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우리 인민들이 요구하는 우리 식의 독특한 형식으로 빙상관을 설계하도록 하시고도 인민들의 의견을 들어보기 위한 대책까지 세우도록 하신 우리 장군님,

여기에는 인민의 요구가 곧 모든 사업의 기준으로 된다는 위대한 장군님의 의지가 비껴있다.

수십년전 7월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새로 건설하게 되는 북새거리(당시)의 형성안을 보아주시였다.

가을부터 단층집들을 정리하고 이듬해 봄부터 건설을 본격적으로 내밀데 대하여 가르쳐주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철거세대들의 불편한 생활을 념려하시면서 북새동주민들에게 새로운 살림집을 건설하여준다고 약속하고 북새동주민이라는 증서를 따로 만들어주어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순간 일군들의 가슴은 세찬 격정으로 설레였다.낡은 집을 헐고 새 집을 짓자면 누구나 한동안은 불편한 생활을 하기마련이다.이런것으로 하여 일군들은 물론 주민들까지도 얼마 안 있어 새 집에 들게 되겠는데 그쯤한 고생이 무슨 큰것인가고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있었던것이다.

오직 우리 장군님께서만이 인민들이 겪게 될 사소한 불편도 헤아리시여 새 집을 지어줄것을 담보하는 증서까지 만들어주자고 하시는것이였다.

그러시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시는듯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새 집배정에서 혹시 한집이라도 빠질세라 북새동에 건설하는 살림집들은 꼭 그렇게 배정하여야 한다고 다시금 강조하시였다.

북새동주민들이 받아안은 증서!

정녕 그것은 인민들에게 더 좋은 생활의 보금자리를 약속하는 사랑의 증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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