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시기 당에서는 농업전선을 사회주의수호전의 전초선으로,제1제대 제1선참호로 내세우고있다.하다면 그것은 어떤 정신세계를 지닌 수호자들에 의하여 지켜지고있는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 농사를 잘 지어 인민들의 식량문제,먹는 문제를 원만히 해결함으로써 적들의 반공화국,반사회주의책동을 짓부셔버려야 합니다.》
지난 4월 18일이였다.
이날도 제1작업반의 모판관리공들은 포전에서 모판관리를 하고있었다.아침해가 어느덧 중천에 떠오르자 그들은 작업반기술원인 도명숙동무네 집쪽을 근심어린 눈길로 자주 바라보며 이런 말을 건늬고있었다.
《기술원동무의 병이 어떨가요?》
《글쎄,아직 포전에 나오지 못한걸 보니 병이 심한것 같아.》
전날에 아픔을 참아가며 벼모상태를 알아보다가 포전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도명숙동무를 병원으로 떠나보냈지만 그들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얼마후 그들은 딸의 부축을 받으며 포전으로 나오는 도명숙동무를 보게 되였다.
모판관리공들이 한달음에 달려가 그의 손을 잡고 어서 집에 들어가라고 거듭 권고했지만 도명숙동무는 벼모들을 한번 보아야 마음이 놓인다고 하면서 모판쪽으로 향하는것이였다.
도명숙동무는 새파란 잎새를 펼치며 하루가 다르게 실하게 자라는 벼모들을 사랑어린 눈길로 보고 또 보았다.
그는 심해지는 아픔을 애써 감추며 모판관리공들에게 당면한 벼모판관리에서 나서는 과학기술적문제들을 알려주었다.그러던 그는 또다시 의식을 잃고 자리에 쓰러졌다.
《기술원동무,정신 차리라요!》
의식이 혼미해지는 속에서도 도명숙동무는 농장원들의 손을 꼭 잡고 《모,모를 부탁…》하고는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곁에 있던 농장원들이 오열을 터치며 안타까이 찾았지만 그는 다시 눈을 뜨지 못하였다.
이것이 농장원들의 마음속에 새겨진 도명숙동무의 마지막모습이였다.
나라의 쌀독에 한알의 낟알이라도 더 채우기 위해 밤잠도 잊고 그 누구보다도 발이 닳도록 뛰여다닌 도명숙동무는 이렇게 생을 마치였다.
농촌에서 나서자란 도명숙동무로 말하면 학창시절에 꿈도 많았다.
동생의 학습을 도와주다가도 저도모르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원이 될가 하는 생각도 해보고 잠자리에 누워서는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마을사람들을 치료해주는 의사가 되는 꿈도 꾸군 하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더해만 가는 어머니당의 고마움을 그 누구보다도 깊이 새겨안은 도명숙동무였기에 그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들의 뒤를 이어 사회주의농촌진지를 지켜섰다.
-나라의 쌀독을 가득 채우는 길에 나의 모든것을 다 바치리라.
농사를 잘 짓는것이 곧 우리 식 사회주의를 수호하는 길이라는것을 깊이 명심한 도명숙동무는 자기가 일하는 포전을 사회주의를 지키는 전초선으로 여기고 이악하게 일해나갔다.
얼마후에는 손탁이 세고 일욕심많은 처녀분조장으로 소문이 자자하였다.
작업반기술원이 된 다음부터 농장원들은 그가 언제 잠에서 깨여나고 잠자리에 드는지 알수 없었다.
도명숙동무는 작업반농사가 전적으로 기술원인 자기에게 달려있다고 하면서 새로운 농사방법을 적극 받아들이기 위하여 애써 노력하였으며 작업반원들이 모든 농사일을 주체농법의 요구대로 과학기술적으로 실속있게 해나가도록 하였다.
모판관리가 한창이던 어느날 도명숙동무는 한 모판관리공이 모판박막을 벗기는 일을 소홀히 하는것을 보게 되였다.그냥 스쳐지날 문제가 아니였다.
《풍년농사는 모판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말이 있어요.하지만 그보다는 농사의 주인인 우리들의 깨끗한 량심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봐요.》
도명숙동무의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 모판관리공들의 일본새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언제인가 농장에서 새로운 벼모재배방법을 받아들일 때였다.
작업반의 일부 사람들은 그 방법이 좋다고는 하면서도 선뜻 응하지 못하였다.
그러는 농장원들에게 도명숙동무는 새로운 벼모재배에서 나서는 과학기술적문제들을 하나하나 가르쳐주고 그것을 받아들인 단위들의 경험과 우월성을 차근차근 이야기해주었다.작업반원들은 그의 높은 실력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앞선 영농방법을 대담하게 받아들이는데 알곡증산의 예비가 있다는것을 언제나 잊지 맙시다.》
도명숙동무의 말을 들으며 작업반원들은 왜 그가 늘 사색하고 또 사색하며 농사일에 몸을 아끼지 않는지 잘 알게 되였다.
이렇게 되여 작업반에서는 많은 영농자재와 로력을 절약하면서도 알곡생산을 늘일수 있게 되였다.
한번은 간밤에 갑자기 많은 비가 내린적이 있었다.
뒤늦게야 포전으로 달려나온 작업반원들은 곡식들이 무사한것을 보고는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그러던 그들은 온몸에 흙탕칠을 하고 삽을 쥔채 논뚝에 앉아있는 도명숙동무를 보고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그가 딸과 함께 집에 있던 마대까지 내다가 흙을 담으면서 불어난 산골물에 곡식이 상할세라 밤새워 논뚝을 지켰다는것을 알고는 뜨거운것을 삼키였다.
이런 일은 그후에도 계속되였다.
오늘 작업반에서 영양모를 100% 도입하고있는 사실과 최근년간 줄대같이 실한 모를 키워 시적으로 앞자리를 양보하지 않고있는것도,자체의 힘으로 작업반농사를 짓고있는것도 다 도명숙동무의 이악한 노력을 떠나 생각할수 없다.
작업반의 포전을 손금보듯 환히 꿰들고있던 그는 작업반원들에게 자주 농사지식과 경험을 차근차근 알려주며 미리미리 필요한 영농대책들을 세워주군 하였다.작업반원들은 무슨 일에서나 막힘이 없는 그를 두고 척척박사라고 불렀다.
그는 작업의 쉴참이면 작업반원들에게 더욱 아름답게 변모될 고향마을의 래일을 그려주면서 알곡생산에로 고무해주군 하였다.
자나깨나 오직 농사일밖에 몰랐던 그에게 있어서 작업반의 모든것은 목숨보다 귀중한 조국의 한부분이였고 농장포전은 사회주의를 지키는 성새였다.그래서 농장원들이 그를 더더욱 잊지 못하는것이다.
도명숙동무는 비록 우리곁을 떠났지만 사회주의수호전의 제1선참호를 지켜선 농업근로자들과 더불어 영원히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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